모래시계
김미희
빤히 들여다보이는 속
확 뒤집는다고 왈칵 쏟아지는 시간 아니다
요리조리 뒤집어도 모래는 한 알씩
결국은 공허를 용납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쌓이는 시간의 입자들이 갇혀
저만한 우주 안에서
저만한 낮은 음역을
저만하게 낮도록 두지 못한 채
저만의 속도로 공간을 파내고
저만한 크기로 메워야 하는
모래 한 알만 한 가치의 질긴 노역은
아무리 엿 보아도
오르내리며 화약 냄새를 고루 바르고 있는 음모다
쉽게 뒤집히고 가볍게 쏟아지는
저도 영문을 모른다는 시늉으로 살금살금
가는 모래바람을 압축하며
그 음역
쉴 새 없이 뒤집어야 유지되는 무한의 크기
생각은 생각을 파먹다 갉아버린 높낮이
저를 풀어놓은 곳에 저를 모으고
마지막 한 알의 존재가 다시 정상을 점하는 순간
조종간은 다시
유한의 한계를 넘기 위해 저를 가라앉히지만
단 한 번의 예리한 파음(破音)을 꿈꾸는 음모를
우리는 품는 것이다
공백의 탈출은 음역에서 이루어져
저마다 제 크기만 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까
웹진 『시인광장』 2023년 9월호 발표
김미희 시인
2005년 《미주문학》으로 등단. 시집 『눈물을 수선하다』(2016)『자오선을 지날 때는 몸살을 앓는다』(2019) 출간. 『눈물을 수선하다』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편운문학상, 2016년 윤동주서시해외작가상, 2017년 성호문학상 본상. 현재 계간 『시마』에 『미희와 선하의 시와 사진』, 신문 KTN에 시와 수필 연재 중.
[출처] 모래시계 - 김미희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9월호 신작시 ㅣ2023년 9월호ㅣ 2023, September ㅡ 통호 173호 ㅣ Vol 173|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