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피 순을 따러
사월 둘째 수요일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오늘 이후 거리가 조용해져 좋을 듯하다. 나는 정치권에는 관심이 없어 방송은 아예 보질 않고 신문은 인터넷으로만 봐 세상 돌아가는 사정은 어두운 편이다. 집으로 왔을지도 모를 후보자와 투표소 안내가 있었을 법도 한데 눈에 띈 자료를 본 바 없다. 그러함에도 지난 주말 사전 투표에 참여해 국민으로서 소중한 권리는 행사했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 어제 본포 강가로 나가 학포에서 반월 습지를 다녀온 생활 속 글과 함께 보리가 팬 들녘 풍경을 시조로 남겼다. “그 시절 끼니마다 거뭇한 꽁보리밥 / 신중년 나잇살에 아련한 추억으로 / 가끔씩 별식 삼아서 나물 비벼 먹는다 // 찾는 이 드문지라 경작지 줄게 마련 / 근교로 산책 걸음 청보리 들판 보니 / 어릴 적 호드기 불던 지난날이 그립다” ‘청보리 향수’
아침 식후는 산책이 아닌 산행을 나섰다. 봄철 산행에서 주어진 과제인 산나물 채집을 염두에 둔 동선이다. 이제 야생으로 자라는 두릅이나 엄나무 순은 거의 저물어 간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거나 응달에 남겨진 두릅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테다. 우리 지역에선 두릅에 이어 참취와 다래 순을 채집하는 편인데 나는 야생으로 자라는 오가피 군락지도 안다.
엊그제 주말 이틀 천주산은 진달래 축제가 열려 외지에서도 찾아온 상춘객이 발 디딜 틈도 없을 만치 빼곡했다. 천주암 아래와 외감 들녘 일대는 그들이 타고 온 차들이 농로 갓길까지 길게 줄을 이었더랬다. 아마 오늘도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진달래꽃을 보러 천주산을 오를 이들이 다수일 듯하다. 내가 오가피 순을 채집하는 장소가 천주산이 서북으로 뻗친 꼭뒤 그윽한 골짜기다.
산행객이 오르내리는 등산로 길섶에는 산나물을 기대할 수 없다. 내가 찾아갈 천주산 꼭뒤는 산세가 험하고 숲이 무성해 일반인은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산악지대다. 소계동에서 안성고개를 넘거나 합성동에서 제2 금강산 골짜기로 들어가 호연봉 지맥을 따라가면 된다. 아니면 천주암이나 달천계곡으로 들어 함안 경계 고개에서 길고 긴 임도를 따라 산정으로 가는 건너편이다.
발품을 파는 산행으로는 무리가 따를 듯해 산정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마산역 동마산병원 앞으로 나가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온 버스로 갈아탔다. 서마산에서 호계 아파트단지를 거쳐 칠원 읍내에서 유원을 둘러 무기마을로 왔다. 거기는 우리 집안과 본관이 다른 상주 주씨 집성촌인데 ‘무기연당’은 조선 중기 이인좌 난을 평정한 주재성 고택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다.
돈담마을까지 타고 간 한 아낙이 내린 후 나는 종점 산정마을까지 갔다. 마을 안길에서 골짜기로 드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천주산 꼭뒤 오가피나무 군락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길섶 야생복숭아나무는 연분홍 꽃이 저무는 때였다. 골짜기 건너편은 천주산이 예곡으로 이어진 호연봉 능선이 바라보였다. 산자락 활엽수는 연두색으로 물들면서 군데군데 산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임도를 따라가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 밀림을 연상하는 숲을 헤쳐 가니 바닥에는 제비꽃이 보였다. 노루귀꽃은 저물고 노루 귀처럼 생긴 잎사귀를 펼쳐 자랐다. 얼레지꽃도 저물고 얼룩덜룩한 잎을 펼쳤다. 오가피 자생지에 닿아 배낭을 벗어두고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여린 순을 따 모았다. 채집에 2시간 남짓 걸려 배낭은 물론 보조 가방에까지 채웠다.
오가피 순이 든 배낭을 정리해 산정마을로 되돌아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루 두세 차례 다니는 차편이라 운행 시간을 잘 기억해 두어야 했다. 합성동에서 집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타고 와 동네 제과점에 한 봉지 보냈다. 가끔 내게 간식이 되는 캔디를 후원한 사례를 해야 했다. 꽃대감은 운동 중이라 꽃밭에 두고 이웃도 부재중이라 우편함에 두고 왔더니 배낭이 가벼워졌다. 2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