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계 박인로 선생 유적지 문학기행
▶ 주 최 : (사) 노계박인로기념 사업회
▶ 일 시 : 2021. 10. 01. 08:00 – 17:30
▶ 탐방지 : 옥산서원, 입암서원, 임고서원
가을이 익어가는 10월 1일, 노계 박인로 선생 유적지 문학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노계 박인로기념 사업회에서 2021년 10월 강좌 <노계 박인로 선생 인문학 강좌 및 유적지 탐방> 1차로 옥산서원, 독락당, 입암서원을 문학기행하고 오는 스케줄이었다. 마침 이 재단에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知人 조형제 이사님으로부터 참가 제의가 있었고 나 또한 가까운 고장의 큰 인물에 대하여 좀 알아 볼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나 하는 의무감에서 참가하였다.
오늘 방문한 중 옥산서원과 독락당, 임고서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입암서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어, 이번 기회에 이런 문학기행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분야로 넓혀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합류했다. 법원 앞에 모여 단체로 가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버스 앞에 붙은 안내판만 보고 탔다. 타서 보니 전부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단체로 참가하는 것 같았고, 개별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나 혼자라 약간 머쓱했다.
버스를 타고 잠시 기다리니 이사님이 와서 같이 동행하게 되었지만, 나머지 분들은 대구대학교 평생교육원 노인대학 학생회 22명이 단체로 참가하였다. 아직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라 조심스러웠지만 대부분 백신 2차까지 접종한 70대 이상이라 다소 안심을 하고 조용히 갔다. 버스 안에서 노인대학 회장님의 간단한 소개와 참여 동기에 대한 안내만 있었고, 행사주최측은 옥산서원에서 합류하기로 한 것만 알고 떠났다.
먼저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이 설립한 사립학교로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지식인을 양성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모셨던 곳으로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이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시대 첫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 중 절반이 넘는 5곳이 대구ㆍ경북지역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경주 옥산서원이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님을 모신 서원으로 경주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9개 서원중 하나로 꽤나 많이 알려진 곳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이후 관람객이 50%나 증가할 정도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고 했다. 나도 경주에 근무하면서 문화답사에 관심이 많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저 눈요기로만 하고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자세한 안내나 설명은 듣지 못했다.
옥산서원에 도착하니 주최 측과 서원관계자님이 나와서 간단한 인사 후, 사당참배와 옥산서원 내력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을 들었다. 오늘의 기행테마는 노계 박인로 선생님이 다녀간 글을 남긴 유적지를 탐방하는 코스라 서원 자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 개략적인 소개만 안내받았지만 몇 가지 배운 사실이 있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는 사액서원에만 가능하고, 나머지 대부분 현판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라는 사실과 옥산서원의 편액은 2개로, 조선 선조 때 아계(鵝溪) 이산해가 쓴 첫 번째 편액은 안쪽에 걸려 있고, 현재 바깥에 걸려있는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말년 글씨라는 사실과, 무변루(無邊樓)의 누각과 구인당(求仁堂) 당호, 역락문(亦樂門)의 글씨는 한호 한석봉의 글씨라는 것이다. 그전에 몇 번 보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보았지만 세삼 알고 보니 새롭게 보여 다시 한 번 곰곰이 살펴보게 되었다.
서원 옆에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하는 곳이란 뜻이 새겨진 洗心臺에는 작은 폭포와 용소가 어우러져 큰 나무 그늘과 함께 마음을 달랠 좋은 곳이라 선비들이 즐기기에는 아주 좋은 명소라는 것을 느끼는 장소였다. 아쉽지만 발을 담그고 逍遙遊를 즐겨보지 못하고 다음 기행지인 회재 이언적 선생님이 살았던 독락당 의 계정으로 걸어 올라갔다.
溪停은 독락당의 별당으로 자계천 물가의 관어대라는 반석위에 서 있는 정자로 자연과의 조화가 절묘해서 한국정자의 본보기로 꼽힌다고 소개되어 있다. 溪停이란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고 정자 좌우에 회재 선생님이 심었다는 주엽나무가 드리워져 있어 운치가 멋져 여기서 잠시 쉬면서 노계 박인로 선생님과의 연관 설명을 들었다. 노계 박인로 선생님이 이곳을 방문하여 회재 선생님을 추모하면서 쓴 <독락당>이란 가사를 쓴 곳이기 때문이다.
독락당은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경상도 경주에 돌아와서 거처한 곳으로, 노계는 늘그막에 조선전기 대표적인 도학자인 회재가 성리학을 수양했던 공간을 직접 탐방하고 그 감회를 가사로 지은 곳이라 실감이 났다. 독락당 옆 자계천을 흐르는 계정에 앉아 나도 잠시 시인이 되어 한 시 한편 끈적거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 없이 그저 맑고 조용한 계곡으로 흐르는 물과 큰 나무에 드리워진 멋진 정자에 앉아 쉬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설 뿐이었다.
<독락당>이란 가사는 노계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장편으로 전문 123절에 255구로 중국역사적과 비겨가며 도학의 맥과 공부하는 과정과 교훈을 담은 가사로 크게 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단락에는 늘그막에 독락당을 찾은 감회를 읊고, 2단락에서는 독락당 주변 경치를 찾아다니며 이언적의 모습을 회상하고, 3단락에서는 이언적의 풍채와 덕행을 추앙하고 그리워하고 4단락에서는 이언적의 유훈을 길이 받들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재단에서 준 자료로 원문을 읽어보니 고어체로 잘 모르겠고 또한 대부분 내용도 중국 역사와 인물들을 비유한 글이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옛날로 거슬러 올라 유추해본다면 충분히 성리학 분야에서 높으신 회재 이언적 선생님의 사상과 덕행을 높이 숭상하고 또 옥사서원 주위의 자연경관을 둘러보고 가사를 쓸 수밖에 없는 선생님의 학문적 위상과 자연에 대한 정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공감을 가져볼 좋은 기회였다.
원래는 입안서원 앞 노계 시비 공원에서 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으나 날씨가 덥고 계획보다 시간이 약간 지체되어 독락당 앞 마을정자에 앉아 각자 준비해 점심으로 해결하고 다음코스인 입암서원으로 갔다. 옥산서원에서 멀지 않는 곳인 죽장면 입암리 소재의 서원으로 立巖이란 순우리말로 선바위란 뜻의 선바위 마을에 있는 서원이다.
나도 포항과 영덕 방면으로 많은 다녀보았지만 이 방면으로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그런지 죽장면으로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입암서원은 여헌 장현광을 중심으로 동봉 권극립·우헌 정사상·윤암 손우남·수암 정사진 등을 기리고 있는 서원으로 장현광은 사후 영의정을 제수 받을 정도로 학문의 깊이가 뛰어났으며 입암기를 남겼다.
여헌 선생님이 1597년에 지은 ‘입암기’에서 입암을 중심으로 빼어난 경치 28곳에 이름을 짓고 세속과 떠난 평화로운 세계, 평화와 자유가 넘치는 이상향의 세계를 노래한 글이다. 그 후손들이 최근 입암 28경 이야기 안내표지와 둘레길 코스를 개발해 놓았으나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안내표지는 때가 끼여 알 수 없을 정도고, 노계시비가 세워진 공원에는 캠핑족들이 노는 장소로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선바위 옆 일제당은 1600년에 건축되어 여헌 장현광, 동봉 권극립, 수암 정사진, 우헌 정사상, 윤암 손우남 등이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며 1629년에는 노계 박인로 선생이 방문하여 <입암가 29수>와 <입암별곡>을 남기기도 하였다고 하나, 접근이 어렵고 관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문화재란 사람이 방문하고 관리되어야 보존되는 것이지 가만히 둔다고 관리되는 것이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간이 된다면 노계 박인로 선생님의 연작 시조작품으로 입암28경의 절경을 노래한 하나하나를 찾아 확인해보고 그때의 감흥을 느껴보면 좋으려면 그저 선생님이 거쳐 갔다는 흔적만 확인하고 돌아섰다. 시조의 내용으로는 우뚝 솟은 입암의 모습을 보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태도와 모습에 대해 말하며 곧게 서서 기대지 않고 시속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 늘 변함이 없는 태도를 바위를 통해 깨닫고자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다음은 노계 박인로 선생님과 특별한 관련은 없으나 영천에서 3先賢의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님을 모신 임고서원으로 갔다. 자주 지나다니면서 잠깐 구경은 했지만 제대로 된 해설을 곁들인 답사는 처음이었다. 마침 코로나 상황으로 해설사 2명으로부터 두 그룹으로 나눠 간단한 해설과 안내를 받았다. 고려말기의 정치가이자 대학자였던 東方理學之祖로 추앙받고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는 사원으로 소수서원이 이어 두 번째의 사액서원이라고 한다.
참고로 영천의 대표 호국역사인물 3인이 있다. 3선현(先賢)이라 불리는 동방 성리학의 큰 스승이자 호국역사 인물인 ‘포은 정몽주’, 고려 말 화약을 발명한 과학자이자 무인인 ‘최무선 장군’, 예술가이자 무장이었던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박인로 선생’으로 유적지는 임고서원(임고면)· 최무선과학관(금호읍)· 노계문학관(북안면)에 있다.
임고서원은 간단한 해설과 함께 둘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포은 생가를 직접 방문해보고 오늘의 문학기행을 마치게 되었다. 비록 주최는 (사)노계 박인로 기념 사업회에서 했지만 문화관광부, 경상북도, 영천시가 문화관광 진흥책의 일환으로 지원받아 오늘 행사에 참여하였지만 유익하고 알찬 문학기행이였다. 아무리 빠르게 변화한다고 하지만 인간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정신적 가치나 문화유산은 쉽게 바꿀 수도 없기에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정신문화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본다.
비록 인터넷과 세계화 시대지만 우리의 가치와 문화를 우리가 소중히 간직하고 지켜나간다면 조상의 얼을 빛내고 후손들에게도 빛나는 역사와 가치가 전수될 것이다. 이런 문학기행을 통해서라도 우리들의 선조들의 훌륭한 사상과 철학 내지 문학적 가치에 대하여 공부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관심도 꾸준히 증가한다면 선진문화국가로 이어져 갈 것이다.
오늘 노계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옥산서원과 독락당, 입암서원, 그리고 덤으로 임고서원을 다녀왔다. 비록 시대와 장소는 다를지언정 선생님이 다녀간 흔적과 정신을 이어받아, 그분이 남기고 간 사상과 실천정신을 높이 받들어 더 나은 미래와 후손들의 삶을 위해 앞으로도 많은 활동과 참여를 약속해본다.
첫댓글 이 상일 선생님! 가입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50대 후반님, 울 문지회 회원님들의 평균 연령대가 70대-80대 연령층 인데 신선한 50대 의 "이 상일" 선생님께서 문화재 방면에 따른 글 발을 올려 주심에 감사함을 -먼저 올립니다. 여기 윗 글에 올려진 9곳의 書院은 UNESCO CULTURAL HERITAGE 세계유산 에 등재 된 곳이라서 - 의미 있게 讀 독 했습니다. 각각의 서원에서는 '어떤 유학자님을 모시는 사당인가를 '검색해서 알아냈습니다.
영주-소수서원 - 주세붕(안향 초상화 모십)/안동 도산서원-이황,병산서원-유성룡/경주 옥산서원-이 언적/달성 도동서원-김굉필/함양 남계서원-정여창/정읍 무성서원-최치원제향/장성 필암(붓바위)서원-김 인후 /논산 돈암서원-김장생 /9곳의 서원이 세계문화재 유산으로 등재 됨을을 확인 했습니다. 이 상일 선생님!... 앞으로도 문화재에 관한 자료는 많이 올려주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