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jHxhlLV9xc?si=mW3fn1BjY_vFfHlh
1829년 멘델스존은 징 아카데미(합창 연구단체로서 합창곡을 연구하거나, 관현악의 반주가 붙은 대합창의 공연을 목적으로 1791년 독일의 파시(Karl Friedrich Christian Fasch)가 베를린에서 창립)의 연주회에서 바흐의 <마테 수난곡>을 처음으로 재현, 지휘함으로써 잊혀졌던 바흐를 19세기에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 곡은 멘델스존이 12살이던 어린 나이에 베를린 국립도서관에서 악보를 입수하게 되면서 시작되는데, 그는 이 악보를 입수한 이후 꾸준한 공부를 통하여 8년 만에 초연을 하게 된 것이다. 바흐가 라이프치히 시대인 1729년 4월 15일 聖금요일에 이 곡을 초연한 이후, 정확히 100년 만에 멘델스존에 의해서 마테수난곡이 다시 부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마테 수난곡>은 멘델스존이 아니면 영원히 우리에게 잊혀진 곡이었을지도 모른다.
https://youtu.be/1YtHotXNBLs?si=B0PQwk7J8uqDOUDy
( Mendelssohn - A Midsummer Night's Dream 'Wedding March')
이 해 5월에는 지도를 받은 바 있는 스승 모셀레스(Ignaz Moscheles 1794-1870)의 권유로 런던에 건너가 자신의 교향곡 제1번을 지휘하였으며, 오르간 연주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 런던의 시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멘델스존은 런던을 자주 방문하게 되며, 그것을 계기로 스코틀랜드도 여행하게 되어 훗날 <핑갈의 동굴>을 쓰게 된다. 이 해의 작품으로는 현악사중주 제1번과 3곡의 카프리치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탄테 변주곡 등을 발표한다.
광의의 미학적 세계를 피아노로 표현한 <무언가>
https://youtu.be/pXvkp8x_eCE?si=KwRN-l3cw1y51WpI
( Mendelssohn - Songs without Words / Romances sans Paroles (reference recording: Danielle Laval)
1830년에는 멘델스존의 가장 뛰어난 업적인 <무언가 제1집 작품 19>이 만들어진다. 이 작업은 멘델스존이 만든 하나의 음악 형식으로서, 가사라는 한정된 언어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표현을 구하는 점에 그 음악적 특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로는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광의의 미학적 세계를 피아노라는 악기의 소리를 빌려서 표현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식은 슈베르트의 <악흥의 한 때>나 쇼팽의 <야상곡> 등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낭만 시대의 작곡가들이 즐겨 만들었던 음악 형식과 방법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멘델스존의 <무언가>는 바로 그의 음악적 사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형식이며, 언어를 빌려 표현하는 음악보다 섬세하게 그 사상을 포착하였을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언어 없이도 그 속에 주옥 같은 시어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무언가>는 평생을 통해 지속되고 있는데, 제1집이 1830년에서 1832년까지, 제2집이 1833년부터 34년까지 완성되고, 제3집은 1836년부터 1837년까지, 제4집은 1839년부터 1841년까지, 제5집은 1842년부터 1844년까지, 제6집은 1844년부터 1845년까지, 제7집부터 작곡시기는 같지만 출판된 시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 1850년 이후에 출판되므로 전8집 48곡과 1837년경 작곡된 것으로 알려진 유작 <작품 109>이 발견되므로 총 49곡이 출판 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그의 무언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가곡처럼 그가 평생을 통해 꾸준히 이루어낸 필생의 작업인 것이다.
https://youtu.be/HzeqWDZr4q4?si=-gByaEa3XhEIHAeo
( Mendelssohn - Piano Concertos Nos.1 & 2 / Remastered (Century's rec.: Rudolf Serkin, Eugene Ormandy)
1831년에는 피아노협주곡 제1번이 만들어진다. 기록에 의하면 1831년 10월 6일자 멘델스존의 편지에 ‘새로운 g단조 협주곡’ 이라는 글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0월 17일 뮌헨에서 초연이 이루어지는데 자신의 피아노로 초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협주곡은 또한 가는 곳마다 찬사를 받았는데, 초연 다음해인 1832년 런던 연주는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다. 그는 이때의 기분을 편지로 남기고 있는데, “내 생애 동안 이렇게 성공한 적은 없었습니다. 관중들은 대단히 흥분하였으며 감격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습니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 로맨틱한 피아노협주곡 제1번은 단조로 썼지만 단조에 나타나는 비극적인 느낌은 없고, 반듯하고 균형 잡힌 낭만적 선율이 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어 멘델스존 특유의 부드러움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1837년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진 또 한 곡의 피아노협주곡(제2번 d단조)이 있지만, 이 곡은 비교적 즐겨 연주되지 않는다.
https://youtu.be/GMRhmDh_fHM?si=coOLi27WNyY9K1oH
( Mendelssohn-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 올가 파르초멘코- 바이올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상임지휘자
1834년 멘델스존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뒤셀도르프 시의 악장으로 임명된다. 연주와 지휘에 바빠서인지 이 해에는 몇 곡의 피아노 소품 외에는 눈 여겨 볼 만한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해인 1835년에는 드디어 멘델스존의 음악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그는 여기서 종신 지휘자로 선임된다. 게반트하우스는 1743년 라이프치히의 부유한 상인들이 12명의 연주자들을 모아 연주를 시작한 것이 모체다. 이들 부유한 상인들은 모두 직물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로 ‘게반트하우스’란 이름은 독일어로 직물회관이란 뜻이다. 이 단체는 1781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관현악단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초기에는 악장(지휘자)제로 요한 아담 힐러(1728-1804)를 초대 악장으로 헤르텔, 슈히트, 폴렌츠 등이 이어갔으며, 1835년 멘델스존이 들어오면서 상임 지휘자 제도를 갖추고 근대적 성격의 오케스트라가 된다. 따라서 멘델스존은 이 오케스트라의 최초의 상임지휘자인 셈이다. 멘델스존은 이미 20세에 <징 아카데미>를 통해 초연을 한 바 있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이 오케스트라를 통하여 다시 해석, 지휘함으로써 그 진가를 세상에 알렸고,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을 초연하였으며,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은 물론 자신의 대부분의 작품들도 이 오케스트라를 통하여 세상에 알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오케스트라는 멘델스존 이후의 모든 지휘자들도 당시의 새로운 음악을 이곳을 통해 알렸으며, 리스트, 베를리오즈, 바그너, 브람스, 차이콥스키, 생상,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유명한 작곡가들도 이곳에서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동시에 지휘대에 서기도 한다.
글쓴이 : 베토벤( 클래식 사랑방)
첫댓글
https://youtu.be/B_GKh4FY398?si=xoNg3YLNRzElg2r9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reference record.: Itzhak Perlman, Bernard Hait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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