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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의 대구 반야월초•청구중•청구고 동기로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승현(22,부산)은 “(박)주영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워낙 골 넣는 기술이 뛰어났다. 많은 골을 넣는데 상대 수비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2003년 청구고는 한 선수에 의존하는 팀은 아니었다. 당시 팀 주위에서는 한 선수를 주목하기 보다는 청구고에 좋은 선수가 많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설명했다.
변병주 감독이 이끌던 2003년 청구고는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전국고교추계연맹전에서 준우승, 금강대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문화관광부장관기에서 박주영은 12골을 터뜨리며 득점상을 받았다. 그러나 대회 최우수선수상은 7골을 기록한 이승현의 몫이었다.
변감독은 “2003년 청구고에서 (박)주영이와 (이)승현이는 쌍벽을 이뤘다고 보는 게 맞다. 주영이와 승현이는 프로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도 골을 넣을 정도로 그때부터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당시 우리 팀에는 지난해 전북에서 뛴 한제광과 경남의 공격수 정경호도 있었다. 성남 김동현은 주영이와 승현이의 1년 선배가 된다. 특정 선수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 모두가 조금씩 힘을 보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감독은 청구고 사령탑으로 있을 때 투톱과 스리톱을 연계해 활용했다. 2002년 금강대기에서 우승할 때에는 졸업반인 김동현과 2학년 이승현이 투톱을 이뤘다. 박주영은 2선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경기가 많았다. 스리톱을 세울 때는 김동현이 가운데 서고 박주영과 이승현이 각각 좌우 측면에 배치됐다. 김동현이 졸업한 2003년에는 박주영과 이승현의 투톱으로 나섰다. 박주영을 2선 공격수로 활용하고자 했던 변감독은 정경호와 이승현의 뒷선에 박주영을 세운 경기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반야월초등학교에서 뛰던 이승현과 박주영을 스카우트해 청구중으로 데려왔고 이후 청구고로 진학시킨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박경훈 감독은 “(이)승현이와 (박)주영이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달랐다. 승현이가 주영이의 그늘에 가려 조금은 섭섭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둘 사이에 그런 감정은 털끝만큼도 없다는 걸 알았다. 둘은 절친한 친구사이다. 초•중•고 동기이기 이전에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낸 동네친구 사이”라고 말했다.
이승현은 “지난해 (박)주영이가 기대만큼 못한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본 주영이는 여전히 잘하고 있었다. 기대가 워낙 커서 실망도 컸기 때문인지 내가 다 안타까울 정도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현은 “(박주영과는)고등학교 때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였다. 주영이의 득점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에 나는 욕심 안 부리고 크로스나 돌파에 신경 썼다. 2003년 4월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문화관광부장관기 결승전에서 협성고와 맞섰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주영이가 2골을 넣어서 우리팀이 2-1로 이겼다. 이날 선제골이 주영이와 나의 작품이었다. 난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뒤 마땅히 패스할 공간이 없어 다시 돌아 나왔고 때마침 주영이가 가운데로 파고들며 나를 쳐다봤다. 지체없이 주영이의 발끝에 패스를 찔러줬고 주영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골을 터뜨렸다. 그 대회에서 주영이가 득점왕이 됐고 내가 MVP로 뽑혔다”고 설명했다.
SPORTS2.0 제 37호(발행일 02월 05일) 기사
김덕중 기자
첫댓글 박주영 고교시절에 청구고와 시합이 있는 상대팀감독들은 전날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수비수들을 4~5명까지 붙여도 막을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그냥 무조건 반칙으로 끊으라고 지시했는데 그래도 막을수가 없었다고 함;;...'문제의 청구고10번' '전설의 청구고10번'으로 불렸었다고 함 ㄷㄷ
문제의, 전설의ㅋㅋㅋ
으흐흐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