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치 있는 것은 뒤에서 온다
[중앙시평]
2026. 7. 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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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지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눈앞의 시공간을 넘어 더 멀리 내다보는 눈을 가지기 때문에, 시간을 더 넓게 조망한다. 이들은 당장 눈앞에서 반짝이는 현상보다, 뒤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본질적인 흐름과 가치를 본다. 그렇기에 조급해하지 않고 고독한 기다림을 불안해하지 않는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의 축을 길게 쓰지 못한다. 오직 ‘지금, 내 눈앞’이라는 좁은 대롱에 갇힌다. 이들에게는 뒤에서 올 거대한 가치를 상상할 수 있는 지적 인내심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겉치레, 즉흥적인 수치, 집단의식 등과 같은 말초적인 현상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쉽게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충동에 휩싸인다. 뒤에서 큰 파도가 오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눈앞의 잔물결에 일희일비하며 에너지를 맥없이 탕진하곤 한다. 왜 지적이어야 하는가. 세상이 지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생각의 결과인 한, 문명 세계에서는 더 지적이어야, 더 성공하게 되어 있다. 지적일수록, 더 가치 있는 것은 뒤에서 온다는 사실을 잘 안다. 생각의 가벼움과 조급함은 지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앓는 일종의 난치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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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혐오 법으로 단죄하는 발상은
교육, 시민사회 자정능력 못믿고
강제력에 기대는 조급함의 발로
‘왜곡’ 집착하다 ‘민주’ 잃게 돼 」
교육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속도전보다는 씨앗을 심고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일에 가까워서, 시간을 길게 조망해야 한다. 기다림이 없으면, 사람이나 씨앗이나 발아가 뒤틀린다. 지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교육관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매달린다. 대표적인 것이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무분별한 선행 학습과 주입식 교육이다. 당장 얻어지는 즉각적 만족을 얻고, 거기에 중독되면, 정작 길러져야 할 지적 능력은 길러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진짜 발휘되어야 할 때, 아이는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잃고 주저앉는다. 먼저 오는 자잘한 성과가 자기 주도성이나 깊은 탐구력같이 뒤에서 올 거대하고 본질적인 성장을 짓밟아버린 셈이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이 폭력성이 극에 이르면, 자녀를 ‘유치원 의대 반’에 집어넣고 자식을 향한 자신의 정성에 스스로 감동하는 전도몽상에 빠진다. 진짜 가치 있는 지적 자산들은 언제나 오랜 기다림의 결과로 뒤에서 온다. 유년기에는 당장 시험 점수로 치환되지 않는 것들, 예를 들면, 마음껏 뛰어놀기, 엉뚱한 질문 던지기, 책 뒤적이기 등으로 내면의 토양을 길러주는 것이 좋다. 당장은 성과가 없어 보여 불안할 수 있지만, 이 교육을 믿고 기다려준 아이들은 고등 학문으로 갈수록, 그리고 사회에 나가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간다. 내면의 정체성과 지적 호기심이라는 원동력이 뒤에서 단단하게 받쳐주기 때문이다. 장 자크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아동기 교육의 핵심은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잃는 것이다”라는 아주 유명한 역설을 남겼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뒤에서 온다는 것 아니겠는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5·18 왜곡을 단죄하는 것도 눈앞에 보이는 혐오 표현, 악의적인 비방, 가짜 뉴스가 역사적 정의를 당장 무너뜨릴 것 같은 조급함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이나 시민 사회의 자정 능력이라는 느린 방법을 기다리지 못하고,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해 이를 즉각적으로 차단하고자 한다. 악행을 단죄하는 선명한 성과를 눈앞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가치 있는 것은 국가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법으로 정해주지 않고, 아무리 왜곡된 주장이 나오더라도 시민 사회 내의 치열한 토론과 성찰을 통해 결국 진실이 승리하고 거짓이 도태되는 ‘뒤에서 오는 자정 능력’이다. 역사에서도 국가가 계획을 짜고 인간을 개조하려던 공산주의의 조급한 속도전을 인간의 자율성과 시간이 주는 힘을 믿었던 민주주의의 기다림과 관용이 이겨왔다. 만약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를 법으로 제한하기 시작하면, 당장은 왜곡을 막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비판적 사유의 통로가 막히게 된다. 비판적 사유의 통로가 막혀 생각하는 능력이 배양되지 못하고, 국민의 평균 교양이 올라가는 길마저 차단되면 사회는 빠른 속도로 전체주의를 향해서 나아간다. 지금 이미 그러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의 왜곡을 당장 막으려는 것은 주입식 교육과 같이 조급한 태도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뒤에서 온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지적인 미성숙과 깊이 연관된다. 지적인 성장이 지체되어 조급함에 빠지면, 큰 것이 작아 보이고, 작은 것이 커 보이는 탓에 눈앞의 ‘왜곡’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위대한 ‘민주’를 잃는다. 결국, 민주의 성지가 민주당의 성지라는 비아냥을 듣거나, 유공자 명단을 숨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이렇게 해서 5·18이 우리 모두의 문명 자산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보이는 잔물결에 조급해하는 자는 저 거대한 깊은 바다의 흐름에 결코 닿지 못한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조금 늦게, 그러나 위대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도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 바로 성숙의 가장자리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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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ㅁ.net/v/2026071700200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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