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청 주재 외교단들과 신년 인사를 나누는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교황, 교황청 주재 외교단 신년연설 “핵무기 위협… 자유 안에서 함께 평화를 이룹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9일 교황청 주재 외교단을 대상으로 한 신년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무의미한 전쟁을 즉각 중지”하고 이란에서 집행되고 있는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길 거듭 강조하는 한편 “완전한 군축”을 호소했다. “핵 위협 아래 우리 모두는 패배자입니다.” 교황은 여성의 권익 신장을 강조하고 낙태 반대 입장을 재천명했다. 또 브라질의 상황을 비롯해 “양극화”로 긴장이 악화되고 있는 다른 지역들도 우려한다고 말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주재 외교단을 대상으로 한 신년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죽음과 파괴의 흔적”이 폭격, 굶주림, 추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남기고 있다고 한탄했다. 아울러 브라질을 비롯해 페루와 아이티에서 지속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긴장 상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폭력사태, 이란의 사형제 문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교육 배제 문제도 잊지 않고 지적했다. 또한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리아와 지뢰로 인해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간 예멘의 비극, 아프리카의 테러리즘, 남부 코카서스의 분쟁, 레바논의 사회·경제·정치 위기, 지중해를 공동묘지로 만든 이주 현상의 비극 등도 언급했다.
제3차 세계대전
교황은 전통적으로 교황청 주재 외교단을 대상으로 한 긴 신년연설을 통해 오늘날 다섯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긴장의 조각들을 한데 모았다. 여기서 나타나는 그림은 바로 “제3차 세계대전”이다. “분쟁은 지구상의 특정 지역에만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지만 실제로는 본질적으로 모든 지역에 관련돼 있습니다.”
악화일로의 민주주의
교황은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 우리가 함께 평화를 이루는 한편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여러 국가에서 악화일로에 있는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인간 제도의 온갖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가능케 하는 자유의 폭”도 함께 회복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페루와 아이티를 비롯해 최근 제도권을 공격한 브라질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러한 양극화가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긴장과 폭력 형태”로 이끈다고 덧붙였다.
“언제나 당파적 논리를 극복하고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중국과의 합의
교황은 새해에 “분열과 전쟁이 고조되는 세계에서 평화를 위한 호소가 되길 기원”하는 한편,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에 애도의 메시지를 전한 외교단에게 감사를 표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아울러 교황청과 중국의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 시한 연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러한 협력 관계가 가톨릭 교회와 중국인의 삶의 선익을 위해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에게 연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핵 위협 아래 모두가 패배자”
교황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문에 핵전쟁의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을 당시에 쓰여진 성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가 올해 반포 6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화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멸망에 한 걸음 다가갔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도 핵 위협이 도사리고 있으며 세계는 다시금 공포와 고뇌에 빠져 있습니다.” 교황은 “핵무기 보유는 비도덕적”이라며, 성 요한 23세 교황이 언급한 바와 같이 때때로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한 사건이 전쟁을 일어나게 한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기”(「지상의 평화」, 111항 참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핵 위협 아래 우리 모두는 패배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황은 이란 핵 협정에 관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을 특별히 우려하며 “더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즉각적인 대책을 희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교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며 “포격과 폭력행위, 굶주림과 추위로 목숨을 앗아가는” 민간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규탄했다.
“오늘 저는 에너지 분야와 식량 생산 분야, 특히 아프리카와 중동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유럽을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무의미한 전쟁을 즉각 종식시킬 것을 다시금 호소하는 바입니다.”
교황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안드리이 유라시와 그의 아내에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란의 사형제도
교황은 갈등의 또 다른 무대도 잊지 않았다. 특별히 여성 존엄에 대한 더 큰 존중을 요구하는 시위 이후 사형을 계속 집행하고 있는 이란을 지목했다. 이란은 불과 며칠 전에도 사형을 집행했다.
“사형은 국가 정의를 위한다는 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사형은 범죄 억지력이 없고, 희생자에게 정의를 가져다 주지도 않으며, 오직 복수에 대한 갈망만 부채질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형제가 인간 존엄성과 불가침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용인될 수 없으며 세계 모든 국가의 입법에서 사형제를 폐지할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이 회심할 수 있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두 국가 해법
교황은 여전히 빈곤과 제재로 고통받는 시리아로 눈길을 돌렸다. “시리아의 재건은 헌법 개혁을 포함해 필요한 개혁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아울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폭력 증가로 희생자가 속출하고 “완전한 상호 불신”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려를 표했다. 교황은 예루살렘의 현상 유지가 보장되고 존중되기를 요청하는 동시에 교황청이 이미 표명한 입장을 되풀이하며 확실한 기대를 표했다.
“이스라엘 당국과 팔레스타인 당국이 국제법과 유엔의 모든 관련 결의안에 따라 두 국가 해법을 모든 측면에서 이행하기 위해 직접 대화할 용기와 결심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에게 연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아프리카, 코카서스, 중동의 비극
교황은 이달 말 “평화의 순례자”로 순방할 콩고민주공화국의 상황을 언급하고 콩고 동부 지역의 폭력사태가 끝나길 희망했다. 아울러 남수단 국민의 평화를 위한 외침에 함께했다. 그런 다음 “군인 및 민간인 포로의 석방”을 호소하면서 남부 코카서스의 “휴전”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교황은 예멘과 관련해 휴전에도 불구하고 지뢰로 발생한 민간인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한편, 에티오피아와 관련해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강화하도록 촉구했다. 아울러 부르키나파소, 말리, 나이지리아의 국민이 겪고 있는 비극과 수단, 말리, 차드, 기니, 부르키나파소에서 진행 중인 과도기 과정이 “국민의 정당한 열망을 존중하며” 이어지길 희망했다. “2년 동안 폭력, 고통, 죽음을 목격한” 미얀마를 위한 호소는 고통스러웠다. 한반도에 대해서는 “그토록 바라던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완전한 군축
교황은 “모든 분쟁은 갈수록 새롭고 훨씬 더 정교한 무기 생산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는 때때로 무기라는 힘의 균형에 기반하지 않고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정당화된다”고 한탄했다.
“죽음의 도구가 난무하는 곳에서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방식을 무너뜨리고 완전한 군축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2등 시민”으로 여겨지는 여성을 존중하십시오
교황은 “평화의 실을 다시 짜기” 위해 진리, 정의, 자유, 연대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초대했다. 특히 모든 인간은 “육신 전체,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통해”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오늘날에도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2등 시민”으로 간주되거나 “폭력과 학대의 대상이 되고, 공부하고 일하고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하며 의료 서비스는 물론 음식까지 거부”당하는 여성을 생각했다.
“여성은 사회생활에 고유하게 이바지할 수 있으며 평화의 첫 번째 동맹이 될 수 있습니다.”
낙태 반대
평화는 또한 생명 보호를 필요로 한다. 교황은 오늘날 “지나칠 정도로 자주 자궁에서부터 낙태할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위험에 빠진 많은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존재, 다른 인간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가 무력하고 따라서 방어할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교황은 “가장 취약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불행하게도 병자, 장애인, 노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버리는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의의 남녀, 특히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했다.
삶에 대한 두려움
교황은 오늘날 삶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이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교황은 이탈리아의 경우 “출산율이 위험할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두려움은 무지와 편견에서 나와 쉽사리 갈등으로 번진다”고 덧붙였다.
교육, 두려움의 해독제
두려움의 해독제는 교육이다. “교육은 항상 인간에 대한 새롭고 혼란스러운 전망을 피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타고난 신체구조에 대한 온전한 존중을 요구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처럼 국민의 일부가 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교황은 교육 문제와 관련해 각국에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교육을 위한 공적 자금과 군비 지출 사이의 당황스럽고 불균형적인 관계를 뒤집을 수 있는 용기를 되찾길 바랍니다!”
종교 자유
교황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종교의 자유가 보편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인이 소수가 아닌 나라에서도 발생한다.
“단순히 예배의 자유로 환원될 수 없는 종교의 자유는 존엄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 중 하나입니다. 정부는 이 권리를 보호하고 모든 이가 공동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공적 영역과 자신의 직업 수행에 있어서도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할 기회를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황은 지난 2019년 아부다비에서 서명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상기하면서, 실제로 종교가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 간의 대화와 만남을 위한 효과적인 기회”가 된다고 단언했다.
다자주의
대화와 더불어 분열된 세계에 필요한 것은 정의, 곧 구체적으로 말해 다자주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분명히 드러낸 것처럼 다자주의도 위기에 처해 있다. “다자간 외교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기구들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 기구들이 모든 이의 필요와 민감성을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더 큰 비중을 두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메커니즘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력을 결집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관건입니다.”
이념적 식민화와 획일적 사고방식
교황은 “협력을 통해 큰 선을 이룰 수 있다”며 “빈곤 감소, 이주민 지원, 기후변화와의 싸움, 핵 군축 촉진” 등을 목표로 하는 “칭송할 만한 이니셔티브”를 사례로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양한 국제포럼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하려고 시도함으로써 대화를 가로막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교황은 “‘진보’를 표방하며 특정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협함을 조장하는 이념적 전체주의로 점점 더 빠져들 위험이 있다”며 “하지만 사실은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인류 전체의 퇴행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과거에 이런 것들을 “이념적 식민화의 형태”로 정의한 바 있다. 교황은 그런 부류가 “경제적 원조 제공과 그러한 이념의 수용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들이 “권력 관계”를 설정하면서 국제기구 내의 논의를 좌절시키게 한다고 지적했다.
식민화 주제와 관련해 교황은 토착민들이 살아온 극적인 삶도 언급했다. 교황은 지난해 7월 캐나다 사도 순방에서 이 같은 비극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폐쇄적인 태도와 논의를 서로 거부하려는 태도는 더 많은 분열을 부추길 뿐입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 함께한 교황
이주민 돕기
끝으로 교황은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배운 바와 같이 “아무도 혼자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연대의 길, 공동 연대의 길로 초대했다. “우리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각자의 행동은 결국 모든 이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교황은 이주 문제를 위해 더 크고 더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이주 문제는 “무작위로 진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교황은 지중해만 봐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들의 부서진 삶은 우리 문명의 난파선을 상징합니다.”
교황은 “이주 및 망명에 관한 새로운 협정을 시급히 승인하고 법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그래야 유럽에서 이주민을 환대하고, 동반하고, 증진하고, 통합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의 존엄과 공동의 집을 위한 노력
교황은 “노동과 기업의 존엄을 회복하고, 노동자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모든 형태의 착취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후변화와 관련해 파키스탄을 사례로 들며 우리 공동의 집(지구)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웃은 싸워야 할 적이 아닙니다
교황은 “평화를 구축하려면 영토의 범위 및 방위 능력에 손실을 주는 행위를 금지해야 하고 다른 국가의 자유와 안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억압과 침략의 문화가 모든 공동체에 만연하지 않을 때, 이웃을 싸워야 할 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환대하고 맞아들여야 할 형제자매로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