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 안산 성포리 갯마을서 태어났다 ▷ 저술가 이충렬씨 김홍도 전기에서 밝혀 “`단원‘은 안산 성포리 산중 박달나무 숲”/ 단원 김홍도(1745~1806?)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있을까. 한국 전통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에 대해 한국인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많다. 본, 'Netizen Photo News' 는 가입 필요없이 손님께서도 연결에 넣어두고 날마다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 있음) '한국 네티즌본부' ◇ 진경산수화와 풍속도, 인물화, 궁중기록화 등 모든 그림 장르에서 능숙했던 단원은 후대에 가장 조선적인 천재화가로 일컬어진다. 겸재 정선과 더불어 조선후기 회화사를 대표하는 양대 거장으로 꼽기도 했다. <△ 사진:> 풍류를 사랑하고 즐긴 김홍도의 예술가적 자화상으로 일컬어지는 <월하취생도>
○··· 하지만, 태어난 고향과 주요 명작들을 그리게 된 내력, 숨질 때의 정황과 정확한 몰년, 그리고 `단원‘이라는 저 유명한 호의 연원까지도 안개에 싸여있어 삶의 여러 부분들이 논란거리로 남아있다.단원의 생애에 얽힌 여러 의문에 대해 기존 학계의 논의에는 없거나 드물었던 새 사료들과 새 해석을 담은 저술이 나왔다.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과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전기를 써서 유명해진 저술가 겸 컬렉터 이충렬씨의 신간 <천년의 화가 김홍도>(메디치)다. 단원의 60년 삶에 걸친 연대기를 대중적 필체로 추적, 정리한 이 전기물에서 저자 이씨는 몇가지 눈길 끄는 ‘단원의 새로운 발견’을 들고나왔다.단원의 고향은 안산설, 서울설이 엇갈리다가, 최근들어 안산 출생이 정설로 자리잡았으나, 구체적인 탄생 장소는 알지 못했던 상황이다.
◇ 표암 강세황과 여주이씨 문인들이 안산 성포리 노적봉 아래 박달나무숲 단원에서 노닐며 읊은 시들을 모은 문집이다. 표지에 찍힌 낙관글자인 `성고(聲皐)’는 문인 이재덕의 아호이자 옛 지도에 성포리를 뜻하는 지명으로 나오는데, 김홍도의 출생지와 단원이란 유명한 호의 연원을 캐는 단서가 된다.가장 눈길을 끄는 발견은 단원이 태어난 곳을 경기도 안산 성포리 갯가 마을이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한 부분이다. △ 사진: 단원아집표지.
○··· 저자는 김홍도가 연령대에 따라 순차적으로 쓴 `서호(西湖), 단원(檀園)’, 단구(丹丘 또는 丹邱)란 아호가 모두 안산의 성포리 부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고증하면서 안산 노적봉 아래 성포리 일대 갯가를 출생지로 비정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고 기술한다.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출생지를 아호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실제로, 김홍도가 맨 처음 사용한 아호는 도화서에 들어간지 사년쯤 되던 해 정한 `서호(西湖)‘였는데, 안산 성포리 앞바다의 별칭이었다.
. 이런 사실은 역시 이 지역 출신이던 실학자 성호 이익이 성포 서쪽 앞바다를 서호로 칭해 부른 시가인 `석민부(고민을 푸는 노래)’의 구절을 통해 확인된다고 책에서는 밝혀놓았다김홍도의 유명한 호인 `단원(檀園)’을 성포리에 있는 명산인 노적봉 기슭에 있는 박달나무 숲이었다고 사실상 단정한 것도 처음 내놓는 논쟁적인 해석이다. 학계에서는 `단원‘이란 호의 유래에 대해 단원이 공부한 중국 화보(습작교과서) <개자원화전>을 간행한 명나라 화가 이장형의 호를 끌어다 쓴 것이란 견해를 정설로 간주해왔다. 단원의 스승이던 표암 강세황이 1787년 그에게 내려준 <단원기(단원 아호에 대한 글)>에서 “내가 생각하건데, 단원은 명나라 이장형의 호이다”라고 적으면서 (단원이) 이장형의 그림 경지를 사모해 이장형의 호를 자기 호로 삼았다고 추정하는 대목이 보이기 때문이다.
△ 사진: 김홍도의 1780년작 <단원도>. 그림의 배경을 기존 학계는 서울 한강변 금성산 아래로 추정했으나, 이충렬씨는 단원의 신작 전기에서 인왕산 계곡의 백악동천이라는 견해를 새롭게 밝혀놓았다.
○···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표암 자신의 추측을 말한 것이지, 김홍도가 `단원’이라는 호를 지은 이유를 직접 말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김홍도가 `단원‘이란 아호를 지은 배경은 성포리 뒷산 노적봉기슭에 스승 강세황이 여주 이씨 문중 사람들과 시회를 했던 박달나무 숲 `단원’ 이 있었던데서 기인했다는 이야기다. 그 `단원‘에서 스승이 젊은 시절 벌인 풍류아회의 경지를 그리워해 단원이란 호를 즐겨 쓰게됐다는 것이다.책에서는 그 근거로 1753년 가을 표암 강세황이 안산 노적봉 근처에 살던 여주 이씨 가문의 문인들(주로 성호 이익의 조카들이다)과 단원에 모여 읊었던 시를 모은 시집 <단원아집>의 실물 표지와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단원아집>표지에 찍힌 낙관글자인 `성고(聲皐)’가 바로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성고‘는 여주이씨 문중 사람 이재덕의 아호로, 이 시집에 살린 다른 문인 이창환의 시 안에 `성고’에서 고상한 모임(시회)가 열렸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19세기초 나온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1872년 안산 지방지도를 확인한 결과 두 지도에서 성포리를 ‘성고’와 ‘성곶표’로 표기한 대목이 발견된다. 또다른 지역 문인 이경환의 시에는 상고 부근에 늘어선 박달나무 숲이 단원이라는 구체적인 묘사도 등장한다. 저자는 성고 부근에 집이있던 지방 문인 이헌환의 <의추재기>를 뒤져, 집 오른편에 단구가 있다는 기록도 찾아냈다.
.즉 단원은 성포리 박달나무 숲이고 단구는 단원 부근의 언덕이며, 이 장소들에 대한 남다른 감회를 지니고 있던 김홍도가 자기의 호로 오랫동안 즐겨 사용했다는 게 결론이다.아울러 저자는 김홍도의 주요 작품중 하나인 1780년작 <단원도>에 나오는 단원의 한양 집 위치가 학계의 통설인 서울 마포구 성산동 금성산 한강변이 아니라, 인왕산 옆 백운동천 계곡이었다는 점을 밝혔다. (...) 1776년 울산의 목장에서 말을 다루는 관리인 감목관으로 파견된 사실과 당대 현지의 행적도 처음 찾아내 공개했다. .
◇ 1805년 12월 단원이 아들 김양기에게 쓴 인생의 마지막 편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으로 온전한 편지글 이미지는 이씨의 저술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초서체로 쓴 편지글은 힘겹게 쓴 기색이 역력하다.
○··· 그때 관리로서 목장과 인근 바다의 동정을 살피고 가축에 피해를 미친 산속의 호랑이를 사냥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김홍도 풍속도에 나오는 말 편자 박는 모습이나 물 자맥질 그림, 호랑이그림의 모티브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저자는 당대 양반 및 중인의 문집, 시대상을 그린 당대 소설, 단원의 화풍과 조선 후기 사회를 설명하는 최신 연구 자료를 대조하면서 단원의 삶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던 부분에 대해 새로운 `팩트‘와 분석을 추가했다. 미술사가인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은 “타계한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2005)이 단원의 일대기를 연구하면서 기본적인 뼈대를 세웠다면, 이충렬씨의 전기는 여기에 좀더 구체적인 살을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사료 발굴과 사실 관계 고증이란 측면에서 학계 연구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3D3Dnuge@hani.co.kr"> 3Dnuge@hani.co.kr"> 3Dnuge@hani.co.kr"> nuge@hani.co.kr, 도판·사진 메디치미디어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