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항일무장투쟁사’ 바로알기, 왜 중요한가? 그건 ‘김일성항일무장투쟁사’가 북한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항일무장투쟁사가 철저히 허위 날조된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은 안에서부터 무너질 것이다”
최근 “김일성 바로알기”라는 책을 펴낸 최영재 아시아투데이 정치부장의 발언이다.
▲ 지난 2월 출간된 최영재 아시아투데이 정치부장의 '김일성 바로알기'
그는 지난 8일 역사정립연구소 주최로 서울 마포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열린 ‘한·미·일 국제세미나 -김일성과 북한정권 바로알기-’에서 발제자로 나서서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바로알기’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 지난 8일 역사정립연구소 주최로 자유경제원에서 열린 ‘한·미·일 국제세미나 -김일성과 북한정권 바로알기-’에서 최영재 부장이 발제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북한의 김일성 전기는 김일성이 태어난 것과 숨쉰 것, 죽은 것의 세 가지 사실 이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 날조”이며, ‘거대한 역사왜곡 덩어리’라고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지금 북한의 인민과 종북세력 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지식인, 진보진영, 대부분의 탈북자 등이 날조된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한국의 일부 보수진영을 제외하고는 남북한 대다수 국민들이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를 곧이곧대로 수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의 다수 역사학계도 포함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국내의 대다수 초중고 역사 교과서가 집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영재 부장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는 해방 후 성립된 남북한 정권 가운데 북한 정권이 더 정통성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진다”며 예를 들어 “탈북자들도 김일성은 옳았는데. 김정일 김정은이 잘못해서 북한이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 북한을 탈출했지만 아직도 남북한 가운데 역사적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 모든 인식들의 뿌리는 북한의 역사왜곡, 김일성항일무장투쟁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최 부장은 “이 거대한 역사왜곡의 덩어리 ‘김일성항일무장투쟁사’라는 유령은 북한 전역과 남한 사회까지도 장악하고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이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고서는 광복 70년도, 우리가 맞이할 통일시대도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구체적으로 제시한 김일성항일무장투쟁사의 날조내용은 다음과 같다.
5명의 김일성
북한 김일성(金日成)의 본명은 김성주(金聖柱)이다. 김성주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4명의 김일성의 이름과 명예와 업적을 도용한 것이다. 실제 당시 김일성으로 불렸던 인물은 ▲구한말 함경도 지역 의병장 김일성(金一成, 본명 김창희) ▲1888년생 일본 육사 기병과 김광서, 3.1운동 후 항일독립투쟁 함 ▲1901년생 김일성(金日成), 1937년 6월 보천보전투의 주역 김성주(成柱), 1937년 11월 전사 ▲1905년생 김일성(一星), 동북항일연군 제2방면 군장
투쟁경력 날조
항일 투쟁경력이라고는 전혀 내세울 것 없었던 김일성을 레닌, 모택동과 같은 공산 지도자에 비할 수 있는 무장투쟁가로 날조했다.
김일성이 14세에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를 조직했고, 1932년 안도유격대를 조직, 이 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시켜 1937년 6월 보천보전투 등 일제와 10만여 회 전투를 하고 8.15해방을 가져왔다고 한다.
▲ ‘김일성 수령이 일본 주재소를 습격한 보천보 사건의 장본인’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날조이며, 앞에서 말한 세 번째 김일성 장군의 이름과 업적을 도용한 것이다.
실제는 14세 무렵 김일성은 주마골(朱馬骨)의 휘하에서 마적질을 했고, 1931년 20살 무렵 국민부(독립운동단체) 고동뇌 소대장 일행을 참살했다. 그가 이끌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부대다. 김일성은 또 동북항일연군 부대원으로서 여러 가지의 극좌 망동을 벌였고 1940년 이후부터는 소련으로 넘어가서 특무공작 훈련을 받았다.
조상 날조
증조부 김응우를 1866년 제너럴 셔면호 사건 주동자로 위조했다. 실제 주동자는 평안감사 박규수 등이고 김응우는 조선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항일운동가, 공산주의자로 조작했다. 김형직이 3.1운동 전 평양에서 항일운동인 조선국민회 사건을 주동하다 투옥되었고, 나중에 공산주의로 전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국민회 사건은 김형직과 관련 없으며, 김형직은 반공주의자였다.
▲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정치적 조직가로 날조
조국광복회를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왜곡하여 그가 대단한 조직가인 것처럼 부풀렸다. 그러나 실제로 조국광복회는 중국공산당 동만주특위 정치비서 위극민이 정치위원 오성륜에게 지시하여 만든 것이다. 북한은 조국광복회를 전국적인 조직체인 것으로 날조했으나. 실은 국내에는 함북 갑산군에만 지부가 있었다.
사상이론가로 날조
북한은 주체사상을 김일성이 1930년대에 창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공식출판물에는 1968년 이후에나 주체사상이 등장한다. 당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후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짜맞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