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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과 마포에는 장사로 돈을 모은 숨은 부자가 많이 살고있는데 비하여 남산골은 가난한 선비들이 사는 마을이다.
원래 남산골은남촌(南村)이라고도
하여 양반촌이었다.
북촌(北村)이 세도가와 권세 친척들의 마을인 것처럼 남산골은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뱅이 양반과 권세에서 멀어진 양반들이 궤딱지같이 다닥다닥 붙은 오막집에 몰려 살고있다.
말이 양반이지 상인들 보다 나을것이 조금도 없었다.
그들은 굶기를 밥먹듯하고 일년내내 혿바지 저고리에 알몸을 감추고는 양반이랍시고 점잔만 빼고 앉아있으니 가난 할 수 밖에 없었다.
양반이니 체면에 억매어 장사도 하지못하고, 양반이다 보니 하인도 거느려야 하다보니 주인은 굶어도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식사와 약주 대접을 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가난한 집에 입은 많다고 자식은 주록주록 달려있고, 자식들 글공부 시키랴 옷해 입히랴 주인들은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었다.
그날은 그러니까 중식과 막동이 배노인에게 매맞던 날보다 한달쯤 전의 일이었다.
남산골 등성이 정자나무 아래 몇사람이 모여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다.
막바지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팔월달,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선선하게 느껴져 땀을 식혀주기도 하였다.
야 이사람아 장이야!
장받아?
하고 체격이 우람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수세(守势)에 몰린 상대방이 장기 말만 뚧어지게 내려보며 입맛만 쩝쩝 다시고 있었다.
장기를 두며 말을 하는 행동거지로 봐선 양반은 아닌것 같았다.
이 사람아 포장에 마장 양수 겹장이야!
손들겠나?
응, 졌네 졌어하고 진 상대방이 힘없이 장군말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긴 쪽도 그렇게 신이난 눈치는 아니었다.
둘러 앉아 장기판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곰방대를 돌려가며 담배를 피우는데만 열중할 뿐 장기판의 승패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제기럴 뱃가죽이 등에 붙었으니
장기 둘 맛이 나야지.
장기에 진 사람이 한마디 씨부렸다.
왜 밥도 못 먹었어?
하고 한 사람이 물었다.
먹긴 먹었다네, 하지만 주인 마님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깐깐한지 아침 저녁끼니를 모두 희멀건 죽으로 때우고 있으니 따분한 심정이네.
조금만 나가면 벼가 익어 누런 황금 들판인데 양반이라고 체면만 차리고 있으니 우리같은 상것들도 배까지 골아야 하니 짜증나지.
그 말에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한 신세 이제와서 탓한들 뭣하나.
그저 시키는데로 일이나 뼈빠지게 하다가 죽을 팔자인데.
그러자 곰방대를 억척스럽게 빨고 있던 사십 가량된 중년의 송서방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양반 양반 하지만 우리보다 못한 양반들도 많다네.
에이 설마 그렇기야 하겠나?
우리 주인댁 바로 이웃인 김진사댁이 그렇다네, 내 마누라가 그 댁의 하나뿐인 여종과 친한데, 그 하녀말에 의하면 벌써 그댁에선 사흘을 두고 호박 풀대기로 죽을써서 매끼니를 떼고 있다고하네.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산골 그 많은 가난뱅이 양반중에 늙은 호박으로 멀겋게 풀데기죽을 만들어서 끼니를 있는다는 애기는 금시초문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양반이라는자가 풍성한 가을철에 굶고 앉아 있다니 양반이라고 해도 한심하다네.
왜 그집은 하인도 없나?
없어, 송장 다된 늙은 할망구 한명이 부엌일을 하고 있을뿐이야,
그런데 솥이 있어도 솥에 들어갈게없는 가난뱅이 양반이지.
그때 "어흠 어흠" 하고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크 범의 얘기를 하면 범이 온다더니, 진사가 오고있네.
하고 그들은 얼른 피우든 곰방대를감추고 허리를 굽신거렸다.
나막신을 신은 김진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들 앞으로 지나갔다.
좀이 먹은 통영갓에 몇군데 꿰멘 도포자락이 걸을때마다 스그적 스그적 거리며 바람에 날리고 있지만 도포 속에 바쳐입은 홀바지 저고리가 볼품없이 엉성하기만 하였다.
몸도 삐쩍 말은데다가 얼굴은 누리끼리하게 부황증이 생겨서 눈두덕이 붓고 쌍가풀이 졌으나, 눈빛만은 날카롭고 광채가 났다.
진사님 안녕하십니까.
진사님 안녕하십니까.
김진사는 굽실대는 그들의 얼굴을 무표정한 시선으로 흘깃 쳐다봤다.
그러나 양반의 체면으로 한마디는 해야만 했다, 아무리 지금 김진사가 기분나뿐 일이 있더라도 그들에게는 내색해선 안되는 것이다.
어흠 요즘 자네들은 한가한
모양이군 그려.
하고는 억지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과 그 이상의 대화를 나눌 것도 없다.
김진사는 어지로운 몸을 간신히 참으며 어찔어찔하며 걸어갔다.
먹은게 없으니 어지러움이 와 걸음이 갈지자 걸음이 절로 되었다.
김진사 귀에도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사님이 오늘은 약주가 과하신거 같네약주? 약주는 커녕...
그 생각을 하니 김진사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진사의 이름은 김경(金卿)이다.
그의 집 앞마당에 큰 홰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그래서 홰나무집 샌님댁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차레더 동내 상민(常民)들과 마주쳤다.
진사님 진지 잡수셨습니까?
아 자넨가, 난 배불리 먹고 술도 한잔했네, 고맙구만얼굴을 알건 모르건 상관이 없다.
양반이 지나가면 그렇게 인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먹긴 뭘먹어, 그의 배창자는 꾸르륵 거리는 걸 지나 시장끼로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모처럼 돈푼께나 구해볼까 하고 나섰던 것이 수모만 당하고 헛되이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걸 보고 술잔이나 얻어먹어 눈자위가 벌겋게 물들은 걸로 아나 보다.
어험! 어험!
김경은 괜히 위엄을 보이듯이 헛기침을하며 갈지자 걸음으로 좁은 언덕 길을 허덕이며 올라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