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해마다 이맘때면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와
손꼽아 헤아리던 음력(陰曆)1월1일 설날이 동심이되어 그립습니다
과거 초등학교 입학전후 시절 어릴 적 설날의 기억은~
저희 부모님은 제 고향 작은 산 동내(30여호 동내이름도 뫼골)에서
40여 년간 작은 방앗간을 농사일과 함께 운영하시었습니다.
아버님은 동리 청년들과 설날 댓새 전 방아를 방앗간에서 마을 한가운데
마당에 옮겨 떡방아를 설치해놓으시고 흙 마당에 볏짚 두껍게 깔고
그동안 동리사람이 삯 방아를 찌었다는 보답으로 명절 떡 짖는 일 모두 꽁짜였습니다
집집마다 어젯밤 담 구워놓은 떡쌀을 건져 아침 일찍 눈가루처럼 곱게 빠아 주시면
가마솥에 시루를 걸고 뜨거운 김 칙칙 푹푹 솟아나도록 불을 때고
우리 아버님은 정미기 끝에는 가운데 둥근 가래떡 크기의 구멍 낸 참나물 깍아
망치로 단단히 틀어막고도 모자라 철사로 묶곤 하셨습니다
집집마다 가마솥 위 시루를 걸어 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시루를 머리에 이고 오시면
아버님과 청년들이 받아 정미기위에 쏟아 붓고 미리 깎아 노신 굵은 방망이로
뜨거운 떡밥을 쑤셔 넣으시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겁고 긴 떡가래가 밀고나와 찬물 가득한 큰 양푼에 잠깁니다,
동리 아즘리 들은 각자 갓 건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가래떡을
머리에 이고 가시고 아이들은 김나는 떡을 쫓아가
설날 즈음에 만들어 놓은 조청을 찍어 집마다 가족이 모여 쫄깃하고 따끈한 떡을
꿀맛나게 입맛 다시며 먹던 추억의 입맛이 지금도 입가에 서리게합니다.
별 먹 거리가 없던 그 시절이라선지,
그때의 조청 찍은 따스하고 쫄깃한 그 떡 맛은 지금도 군침 돌게 합니다.
아마도 일 년 중 설날 전에 먹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 맛일 겁니다!
그리고 5일마다 서는 천안장날 설날 전전 즈음엔 대목장이라 불리우고,
어른들은 소잔등 길마 좌우에 각 한 가마씩 쌀2가마를 동여 맨 채
앞서가는 소를 쫓아 꼬불꼬불 산길 걸어20리(약8km)에는 소도 목말라한다는
이름 하여 "소갈미고개" 라는 가파른 산 고갯길도 있고, 약 두 시간을 넘게 걸어야
천안 장에 도착할 수 있고 그곳에 쌀을 내다 팔아 설빔을 구입하니
각처 시골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목장에 가장 많이 모여듭니다.
아버지와 소 발길 쫓아가는 내 어린발걸음은 20리임에도 어찌나 가벼웠던지
앞서 뛰어가 기다리고 또 뛰어 앞서가다 기다리고 하던
기억이 지금도 잔 상되어 눈앞에 선하답니다!
아마도 그때의 시골 산길에서 작은 행복이 가슴깊이 소중이 간직되어~
이맘때면 옛 생각에 입가에 미소 짖곤 한답니다!
산모퉁일 돌아 천안 시내가 멀리서 보일 때 쯤이면
이마에 맺힌 땀방울도 먼 길에 지친 발걸음도 까맣게 잊은 채
그토록 보고팠던 힘찬 길고긴 기차다~!!!
멀리 흰 연기 세차게 뿜어 올리며 칙칙 푹푹 힘찬 증기기관차 연기와 기차소리가~
어찌나 반갑고 웅장한 신비 롬이었던지~!
아! 저기가 천안 도시구나!
마치 머나먼 사막 길에서 오아시스에 다가가는 기분이 아마도 이런 기분이 아닐런지?~
멀리 지나가는 기차의 칸수를 세어 꼭 기억해 두었다가 우리 산골마을 산 넘어 초등학교서
몇 칸짜리 힘찬 길고긴 검은 기차를 보았다고 팔 벌려 자랑거리로 머리에 담곤 한 기억이 난답니다.
천안장터에 도착하면 아버님이 단골로 거래하시는 싸전에 소잔등 길마에 싣고 온 쌀 두가마를
부려 돈으로 환전하시고. 힘이 들어 잔등에 땀이 흠뻑 난 누렁 소는 싸전 앞에 말뚝에 매어 놓으시곤, 물 한 동이 떠다가 먹이는 것이 누렁이 식사는 전부였던 안타까움입니다,
사방에서 특히 설대목장을 보러 나온 시골사람들로 벅적이는 혼잡한 장터에서 나를 잊을까봐
바위 같은 거친 손으로 손을 잡으시곤 우선 실발 가계에 들려 다 달아 떨어진
거먹 고무신을 벗기곤 기차표 새 거먹 고무신을 신어보게 하곤 앞코부위를 눌러 보시며
앞으로 발이 클 거를 예상해서 헐렁헐렁한 거먹 고무신을 사주셔도
무조건 잘 맞는다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고,
옆엔 예뿐 남색 운동화도 있으나 감히 저것 사달라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었던
기억 또한 어릴 적부터 맘 내키는 대로 말하지 못하고 참음과 과묵함이 지금도 랍니다.
그다음은 옷가게에 들리어 설빔으로 때가 안탄다며 검은색계통의 잠바와
바지 그리고 두꺼운 속내복 양말까지 헐렁한 크기로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형과 동생들의 설빔도 내 키를 기준삼아 모두 헐렁한 것으로 함께 사시면서도
정작 부모님의 설빔은 구입하시는 것을 본적조차 없이 늘 혜진 옷만 기워 입으셨답니다!
한 바퀴 돌아보아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날 때쯤 대개는 장터 길가에
천막촌처럼 임시막사의 재빼기너머 먹자골목엔 무쇠 솥걸고 솥뚜껑을 열적마다
뭉게구름처럼 김이 하늘 높이 솟구치는 맛내나는, 포장집이 즐비한 돼지머리 국밥집에 들리신 답니다 두 그릇시키어 맛있게 드시던 아버님과의 장보기완, 달리
어머님이 장보실 때 쫓아가면 늘 국밥을 한 그릇만 시키어 당신께선 저 먹는걸 보고 기다리시다
거의 다 먹은 빈 뚝배기에 국물 좀 조금 더 달라 하시어 그를 마시어 허기짐을 달래시던,
어머님! 그땐 어머님의 허기짐은 생각지 않고 내 배만 생각했기에
당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오직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기에 희생하시다
하늘나라에 가신 엄마의 모습에서 지금도 이맘때면 뜨겁게 눈시울이 적셔옵니다!
돌아오는 길엔 새 꺼먹 고무신든 누런 종이봉투를 손에 들고 조아서 뛰어가다간 길가 이름모를 무덤의 잔디밭에,잠시쉬어 갈 때면 얼른 새신을 꺼내어 신어보곤 하던 작은 행복도 생생이 기억이 난답니다!
설날 전날 저녁엔 우리집 작은 부엌이 우리형제들의 목욕탕입니다 소죽 쑤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
어머니는 우리형제들 차례로 불러 큰 고무통에 뜨거운 물 담아 목욕을 시켜주셨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농사철 농사일에, 농한기엔 삭방아일에 명절엔 떡 방앗간 일에
설날엔 차례 상 준비에, 아들딸4남매를 돌아가며 물을 데워 목욕 시키셨으니!
어머님의 지치신 몸은 얼마나 고생스러우셨을까~!~?
수세미처럼 엄마의 거친 손길이 지금도 내 잔등에 남아있는데
어머님은 하늘나라에 계시니 내 잔등에 남은 어머님 손길에 해마다 이맘때면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크고 거친 설빔 옷과 거먹고무신, 돼지머리국밥 마저 한 그릇만 시키어 당신께선,
내가먹고 남은 것을 드시곤 마지막으로 국물만을 얻어 드시던 어머님!
수세미처럼 거칠던 어머님의 등 밀어주시던 손길지금도 몹시도 몹시도 그립습니다!
두메산골 동리이름도 뫼골(산골)인 고향에서 이루어졌던 어릴 적 설빔모습이언만,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시느라 당신은 매미 껍질 되어 메마르셨던 그 모습 그리며
60 이 넘어 지금에야 풍요로움 뒤에 숨겨진 부모님생각에
이맘때면 늘 가슴 뜨거이 눈앞이 흐려진답니다~!!!
018.2.14일 옛 어릴 적 설날을 그리며~!
첫댓글 글 잘보고갑닏. 2 0 1 8 년 무술년의 새해
"무"리하게 하시지 않아도 "술"술 풀리시는 한 해 되세요!
설민님 감사합니다~!!
해마다 설 날이면 과거의 어머님 슬하가 몹시도 그리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