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방에 들어가겠습니다"
천국과도 같은 달콤한 순간을 끝마치게 만든 자는 공교롭게도 싱클레어라는 녀석이었다. 유난히 작은키에 딸기처럼 납작한 코, 매섭도록 강한 눈에는 여지없이 심술궂은 장난기가 흐르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짖굿은 장난을 치던 어린시절, 비록 하인신분의 녀석이었지만 나랑은 화려한 콤비였고 마치 친구와 같은 사이였다. 함께 농가의 닭을 훔치다 구정물에 빠져 오물을 뒤집어 쓴 적도 있었으며 영주인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같이 벌을 받았던 추억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었다. 비록 사람됨이 경박하고 가벼웠지만 서로 사심없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친구였던 것이다.
"앗! 저는 아무 것도 못 봤습니다. 아마도 바쁜 일이신 것 같은데 마저 마무리 짓고 나오시죠
ㅎㅎㅎ"
녀석은 짓궂게도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상황이 상황인만큼 당황했고 카트린의 얼굴 역시 마치 홍당무와 같이 붉어졌다.
"싱클레어! 우린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어, 여기 있는 카트린은 잠시 문병을 왔을 뿐이야"
난 싱클레어 앞에서 큰 소리를 쳤지만 내 목소리가 떨렸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들통이 났다.
"도련님! 그것은 이상한 짓이 아니에요, 그것은 큐피트의 선물이자 마땅히 축복받아야 되는 자연스러운 행위일 뿐입니다 ㅎㅎㅎ"
카트린은 싱클레어의 얄궂은 농담을 듣자 더 이상 참지 못한 듯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가린 체 바로 방을 뛰쳐 나가버렸다. 마치 한마리의 사슴이 사냥꾼에게 도망가는 것처럼.....
".....아!......카트린, 가지마!"
나는 방에서 뛰쳐 나가는 그녀를 제지하지 못했다. 만약 그녀가 그냥 있었다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으리라, 나는 그녀를 나가게 만든 녀석에게 원망하 듯 투털댔다.
"싱클레어! 너란 녀석은 정말 내 인생에 도움이 안된단 말이야, 평소에는 잘 안나타다, 꼭 이럴때 나타나 초를 치곤 하지......"
"이런 제가 장난이 좀 심했나 보죠?, 난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인데......근데 카트린 아가씨는 언제봐도 아름답네요, 마치 천사를 보는 것 같아요, 만약에 내가 도련님이라 해도 아가씨에게 홀딱 반했을 거에요."
"싱클레어! 자꾸 날 놀리다가는 주인을 모독한 죄로 네 엉덩이를 때려줄 것이다! 그나저나 내방엔 왜 왔냐? 나랑 농담하려고 일부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고"
문득 녀석이 여기 온 이유가 궁금했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영주님께서 도련님이 깨어나거든 바로 중앙 첨탑안에 있는 영주집무실로 오라고 전하랬어요. 아마 삼일이면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죠."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저도 영문은 잘 모르겠어요, 무슨 중요한 일인 것 같이 보이던데....."
"..........흠.........."
"그런데 집무실에 아버지 혼자 계시든?"
"아니요 보들랭 아저씨와 ......처음보는 신부님이 있었는데 이름이 던컨이라던가?... 아니 딩컨이라던가? 하여간 무섭고 험상궂게 생긴자더군요"
"뭐 던컨신부가 우리 성에 왔다고?"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던컨신부는 도미니크회의의 촉망받는 신부이자, 교황청 직속기관에서 파견된 신부로 북프랑스 지방의 여러 교구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는데 그가 하는 일은 주로 귀족 자제들을 선별하여 십자군 원정에 참가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귀족자제들 치고 이 일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가 지금 우리 성에 왔다면 이유는 명백하다.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나는 십자군 원정에 곧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도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나 분명한 점은 난 이 기회를 이용해 카트린과의 혼인,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것이 안된다면 약혼이라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교도에 대한 원정은 길어야 3년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곧 카트린과의 행복한 삶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 삶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기회를 이용해 아버지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하나뿐인 아들이 나가는데 그것조차도 들어주지 못하신다면 그런자를 어찌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안했다. 마치 사악한 운명이 스스로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냉혹한 것처럼 어떤 불길한 운명이 나를 마구마구 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최악의 상황 역시 대비해야 한다. 갑자기 난 스스로에게 냉정해야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 넌 비록 하인 신분이지만 나에겐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은 친구지......."
그 동안 별 표정이 없었던 싱클레어가 나의 심각한 표정을 보더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히 물었다.
"도련님 안색이 왜 그래요? 요즘 이상하게 도련님답지 않던데....."
"말을 하자면 좀 길어. 그리고 나 역시 짜증나는 문제라서.....대신 내 부탁 한가지만 들어준다고 약속해........."
호기심이 유달리 많고 궁금함을 보면 무조건 캐내야 직성이 풀리던 싱클레어였지만 내 얼굴이 하도 우울하게 보였기 때문에 더 이상 묻기를 반복하지 않았다.
"네 그러죠, 저에게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요?"
"너에겐 아주 쉬운 일이야, 만약 네가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카트린에게 직접 말해 줬을텐데....."
"...................."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눈치빠른 싱클레어는 내 심정을 금방 이해했다.
"역시 아가씨 문제로군요........근데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난 아버지를 만나서 그녀와의 혼인을 허락받을 거야, 약혼이 허락되면 너무나 좋은 일이겠지, 그러나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일의 경우도 생각해봐야 해, 그래서 난 그녀에게 장미와 백합을 표시로 우리의 혼인에 대한 성패를 알리고 싶어......만약 신의 도움으로 약혼이 허락된다면 넌 장미를 그녀에게........만약 악마의 저주로 실패한다면 백합을 그녀에게 전해줘,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되던간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는 것을 빠트리면 안돼.....너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것뿐이야 다만 내가 말한 것에 대해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제대로 실행해야 해 할 수 있겠지?
"심각하군요, 그런데 완고하신 영주님이 귀족출신도 아닌 아가씨와의 혼인을 허락할까요? 물
론 아가씨가 영주님이 가장 아끼시는 보들랭 집사님의 딸이긴 하시지만..."
" 네 말대로 보들랭 아저씨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지 아버지랑은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고..., 어렸을 때 나에겐 검술을 가르쳐 주던 스승이기도 했지...내가 아버지 다음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고르라면 당연히 보들랭 아저씨라고 할 수밖에....."
그러나 보들랭은 공교롭게도 개종한 유태인 출신이었다. 지금이나 당시나 유태인은 마치 이단 혹은 악마와 동등한 취급을 당했으나 나는 유태인에게 그리 심한 편견은 없었다. 만약 유태인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편견으로 대했다면 유태인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카트린과의 사랑 역시 편견에 장애받은 체 만들어 질수도. 만들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역시 반유태주의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보들랭을 믿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을 정하고 있었다. 사실 아버지 역시 보들랭 이 재주가 좋고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이 망정이지, 그것도 아니었다면 유태인인 그를 그처럼 중용하고 신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쨋든 보들랭 아저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룬다. 지금 난 영주집무실로 당장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프로데티와 비너스가 도련님을 축복할 거에요"
집무실로 향하는 나에게 싱클레어 녀석이 응원을 했다. 나는 뒤를 돌아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폈다,
계속......
첫댓글 은자 피에르의 십자군이 출병 했을때,피에르의 십자군이 독일로 가는 삽질 덕분에 독일에 거주하던 유태인들 상당수가 학살 당했죠.나중에는 페스트로 인해 박해 받고....제가 만약 자크리에게 조언 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이렇게 말할 겁니다.[자크리!!얼른 동침해!!일을 저지르고 보는거야!!](퍽!!)
유태인..... 잘사는 놈들은 나쁜놈이였죠. 말하자면 악덕 기업자
보들랭을 유태인으로 설정한 것은 다만 극의 자극효과를 높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선 전 유태인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나 감정이 없음을 밝힙니다.^^
중세에도 잘사는 유태인이 존재할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 귀족빼고
유태인들은 대부분 게토에서, 혹은 추방을 당했으나 기독교사회가 죄악시 했던 고리대금업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대부업등에 종사하여 알부자로써 성공한 경우가 꿰 많았던거로 알고 있습니다. 왕과 영주는 영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나 군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많은 지배층들이 유태인에게 돈을 빌
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왕이나 봉건영주 중 몇몇은 재정수완이 좋았던 유태인들에게 재정관리를 맞겼던 경우도 많았구요(궁정유태인), 신성로마제국을 당시를 배경으로 독일에서 유행했던 소설 중에 "유태인 오펜하이머,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는데 당시 궁정유태인의 파워가 상당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이
는 자본주의제도의 유래가 최초로 이자라는 개념을 도입했던 유태인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하더군요, 사실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과 농노의 노동력으로만 의지했던 원시적인 봉건적 사회속에서도 유태인들은 마치 한 시대에 앞서가는 듯 초기형태의 금융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었으니 그런말도 나올만 하겠지요.
으음....게토는 2차세계대전때 시행된 행정제도로 알고 있었는데....크흠....
멋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
그리고 "게토"라는 단어 자체는 중세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이때는 주로 "유태인 공동체 사회"를 가리키는 단어였죠. (그러니까 차이나 타운 같은 개념) 그런데 제2차 대전 때 나치들이 유태인들을 잡아넣은 강제수용소를 게토라고 부르면서, 게토라는 단어는 완전히 유태인 강제수용소의 명칭이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