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삶-10. 이순신 장군이 일기를 쓴 이유
“불안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연을 하다 보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히 기업의 임원들이나 정부의 고위 공직자와 같은 공동체의 리더들은 조직원들의 불안이 있는 그대로 느껴질 때마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를 지경이라고 한다. 사실은 조직원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실제보다 몇 배로 크게 느낄 것이다. 불안이란 감정 자체가 직선적으로 증가하는 게 아니라 지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열 명의 조직원을 다스리는 리더는 한 사람이 갖는 불안의 10배 20배를 느끼고, 백 명의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는 200배 300배의 불안을 느낀다.
초등학생 시절 반장 한번 해 본 독자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소풍 전날 그 떨리던 마음을! ‘내일 어떻게 하면 우리 반 친구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이 고민과 걱정이 얼마나 컸는지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힘들게 새벽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린아이도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리더의 자리란 외롭고 불안한 것이다.
리더가 불안한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나 많은 리더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오르신 많은 분들이 스스로 불안이란 감정을 외면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정이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직면하고 인정해 주지 않은 감정은 전혀 엉뚱한 상황에서 폭발하게 마련이다. 마치 풍선에 바람을 조금씩 빼내지 않으면 작은 바늘의 건드림에도 뻥 하고 터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리더에게도 분명히 감정이 있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의 팔로워에게 보이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역사적 사례를 보더라도 지도자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표현해도 되는 부정적 감정’과 ‘표현해서는 안 되는 부정적 감정’을 구분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표현해도 되는 부정적 감정은 ‘슬픔’이다. 때에 따라서 리더의 슬픔은 조직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많은 장수들이 전장에서 병사를 잃고 슬피 울며 통곡했다. 그가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모습을 지켜본 병사들은 마음이 움직여 끝까지 성실하게 싸움에 임하곤 했다. 오히려 아무리 잔혹한 일을 당해도 슬퍼하지 않았던 지도자들은 강한 비난과 함께 민중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리더도 나와 같은 사람이며 공동체가 느끼는 고통에 함께하고 있다는 경험, 즉 동질성을 느끼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 리더가 절대 표현해서는 안 되는 부정적 감정은 바로 ‘불안’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리더를 함께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다섯 살배기 아이들도 이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5세 정도의 아이들에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사진을 보여 주고 누가 당선될 것인지 물어보는 심리 실험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여론조사 결과보다 더 정확한 확률로 당선인을 지목했다. 물론 질문을 어린아이의 수준에 맞게 바꿔야 한다. 아이들은 국회의원이나 선거, 당선 같은 개념을 모를 테니 말이다. 실험을 진행하는 학자는 이런 말로 바꿔 물었다.
“누가 선장으로 있는 배에 타고 싶니?”
아이들이 뽑은 사람은 유능하거나 잘생긴 인상의 후보자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만들어 내는 얼굴은 빠르게 제외하고, 편안하고 신뢰감 있는 인상의 후보자를 골랐던 것이다. 사람의 심리가 이렇다. 불안한 리더가 이끄는 공동체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진다.
불안한 선장이 모는 배는 위험하다. 리더의 작은 불안은 모두에게 급속도로 전염되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심리적 무기력을 선택하거나 자포자기하기 십상이며,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기적인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거대한 불안을 대놓고 표현하지도 못한 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한단 말인가. 작든 크든 공동체의 리더들이 외로움과 힘듦을 호소할 때, 나는 종종 역사 속의 한 인물을 소환하곤 한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제아무리 큰 위기를 앞둔 외로운 리더라고 할지언정 감히 이분에게 비할 수 있을까. 지난 천 년간 인간으로서 가장 고독하고 큰 불안을 온몸으로 받아 온 위인일 것이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이순신 장군은 글을 썼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 그의 저서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이 벌어진 7년간, 약 2539일의 기록이 담겨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권수만 해도 일곱 권이고, 연구에 따르면 한 권이 누락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한 사람이 남긴 기록치고는 꽤나 방대한 양이다. 게다가 담담하고 솔직하게 당시의 번민을 기술한 내용은 후세 사람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고독한 장수가 남긴 일기는 우리가 거대한 불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려 주는 것 같다.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불안할 때 종이를 꺼내 글을 쓰라고 권하곤 한다. 말은 언제나 글보다 빠르다. 게다가 마음이 급할수록 말은 더 빨라진다. 불안이란 녀석은 스피드에 편승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사람을 달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하지 않는가. 무슨 일이든 천천히 하면 불안이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글은 말에 비해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작업이다. 행동의 스피드가 줄어들면 생각의 속도도 조절이 된다. ‘어떻게 하지?’ ‘그 다음엔 어쩌지?’ ‘나 이제 뭘 해야 하지?’ 일파만파 머릿속에서 확장되는 생각의 확장과 감정의 전염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머릿속에서 제어가 될 것이다.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 미증유의 팬데믹 사태가 아니더라도 우린 늘 크고 작은 불안에 시달린다. 앞서 얘기했듯 현대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1년에 52주나 ‘월요병’이라는 질병에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사원들만 출근을 싫어하는 게 아니고 학생들만 학교 가기 싫은 게 아니다. 윗사람들도 일요일 밤이 싫다. 나의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교수들이 얼마나 개강을 싫어하는지. 심지어 내 동료 중 한 사람은 “교수가 강의만 안 하면 참 좋은 직업이야.”라는 망언을 일삼기도 했다. 어쨌든 애나 어른이나 무엇을 앞두고 있을 때가 더 힘들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불안하고 아픈 이유가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심리적인 고통을 멈추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종이와 펜을 꺼내 내가 해야 할 행동을 적는 것이다. 아주 작고 구체적일수록 도움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구체적인 시스템은 숫자다. 1번, 2번, 3번, 4번 번호를 붙여 보자. 그것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월요일 아침은 아주 구체적으로 변화할 테니 말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불안은 당연하다. 그러나 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고, 이것을 이용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인간의 심리는 다루기 쉽다. 어떻게 하느냐는 결국 나의 몫이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ㄱ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1장 ‘감정에 집중하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