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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인은 우리가 다 아는 ‘방랑시인 김삿갓’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동안 제가 이 소설에 대한 평론들 – 솔직히 평론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평론가’라는 인간들은 문학비평의 기본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긴 합니다 – 을 좀 읽어보니 대략 2가지 정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먼저, ‘김삿갓이 자신의 조부 김익순의 과거를 알고 과거시험장에서 그런 글을 썼는가 아니면 모르고 썼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는가’의 질문과, 다음으로는 김삿갓이 중국 모방 일변도의 시를 우리의 모습으로 바꾸었다는 내용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설을 보면서 이문열이 ‘빨갱이의 자식’으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제가 다녔던 직장의 상사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권XX’ 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 회사를 다닐 때 한 부서에 7년 정도를 있었는데, 그 부서에서 3년 이상 부장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와는 아주 잘 알죠. 제가 다른 부서에 가고 나서도 늘 같이 시간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지방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실제로 이 사람의 친구들은 강남 학원계를 완전히 석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겉으로만 보면 전혀 대책이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술을 마시고, 외주업체에서 용돈 받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무슨 놈의 술집마담은 그렇게 많이 아는지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가 그렇게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도 아니었는데, 이 사람은 돈 필요하면 친구들에게 얘기해서 학원에서 입시설명회를 개최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거기 가서 엄마들 상대로 1시간 정도 썰을 풀어 버리면 그 학원 매출이 껑충 뛰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인생에는 감춰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유복자였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죽은게 아니라 아버지가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조선노동당의 전라북도 XX군 군당 위원장이었습니다. 군당 위원장까지 하다가 전황이 불리해지자 북으로 간 것입니다.
그 이후 이 사람의 인생은 꼬였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학교에 취업하고 나서 몇달만 지나면 이 사람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밝혀졌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여자교장이 직접 부르더니 ‘내 남편이 전쟁 때 인민군에게 총 맞아 죽고 아직 내가 혼자 사는데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과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겠냐?’ 라고 하면서 해고를 통보한 적이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신 것이야 아니겠지만, 이 사람은 허구헌날 술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이 사람이 뭔가 일을 하면 그 퀄리티는 다른 사람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었고, 윗사람들은 이 사람을 미워하다가도 무슨 기획서 하나 써내면 그걸 보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자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술 너무 많이 마시다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이문열로 돌아와서, 이문열은 이 소설 ‘시인’에서 ‘조상의 업보를 자기가 짊어져야 하는 불쌍한 지식인’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문열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문열의 머리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고,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족쇄는 이문열을 영원히 옭아매고 있었기에 이문열은 정말 힘든 세월을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인’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이 겪어야 했던 심적 고통으로 대변된 것입니다.
글 쓰다 보니 완전히 이문열 홍보글이 되어 버렸네요. 이제 이문열은 이 정도만 하고 다른 작가, 박인환으로 가겠습니다. 박인환에 대해 모르시던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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