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생들에게는 분명히 생사가 있습니다.
나면 늙어서 그래가지고 병들어 죽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생사고라고 하는 것인데,
그 ‘생사고’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자성을 미해가지고
있는 중생에게만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지
해탈도를 증득한 부처님,
깨달은 분에게는 생사라고 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혹 이 말씀을 잘못 알아들으며는
그럼 도인은, 또는 부처님은 아프지도 않고 병도 안 나고 죽지도 않겠구나.
그렇다며는
왜 부처님은 팔십 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으며,
역대조사들은 왜 앓다가 돌아가신 분이 계시며, 이절에 조실스님은 왜 삼 년전에 돌아가셨던가.
그 말과 ’생사가 없다‘라는 말과는 말이 맞지(안 맞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이 들어가신 분도 계실는지 모르지마는,
부처님이라고 해서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몸띵이를,
육체를 가지고 계신 이상 생로병사는 있는 것입니다.
다맛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 그것이 생로병사입니다.
부처님 자신에 있어서는
본래 이 세상에 나오신 바도 없고,늙으신 바도 없고,
병드신 바도 없고, 돌아가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생 눈으로 볼 때 그것이 생로병사로 보일
뿐이지 부처님 자신에 있어서는 대해탈도요 대열반이요 적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며는
중생심 속에서 중생심으로 대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밥 먹고, 옷 입고, 썽내고, 웃고, 울고 할 줄 아는 그놈!
우리가 잠시도, 단 일분 동안도 우리의 몸에서
떨어질 수 없는, 떨어져본 적이 없는 우리의 주인공
나에 마음자리
그놈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곳에 그놈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으로 부터서 십리 백리 수천리밖에로 떨어져가고 없는 것을 찾으러 나간다고 허며는
그것은 어려운 일이지마는,
눈 한번 깜짝할 사이도 여읠 수가 없고
언제나 나와 같이 있는 그놈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물견을 찾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주머니 속에 손만 넣면 영락없이
그 속에 그것이 들어있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왜 그렇게 가깝고 잠시도 우리의 몸에서 떠나본 적이없는 그놈을 왜 우리는 보지 못합니까?
왜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까?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쉬웁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그놈을 마냥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놈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무슨 물견이든지 너무 가까우면 우리는 보지를 못합니다.
너무 가까우면 우리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너무 가까우며는 보고, 보고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자기 눈이 쌍까풀이 되았다,
눈이 가느스름하다, 눈이 동그랗다, 눈이 빨갛다,
또는 눈이 고리눈이다, 각기 천 사람 만 사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눈이 다 다르고, 다른데, 그 자기의 눈 모습이
어떻게 생겼다고 허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한 번도 자기의 눈을 본 적이 없건마는
자기의 눈이 어떻게 생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의 눈을 참으로 본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눈에 그림자만을 보고 눈이 어떻게 생겼다고 헌 것을 알고계실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눈을 영원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울이나 물이나 반짝반짝한 철판 같은 것을
빌려서 거기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 자기의 눈이 어떻게 생겼다 하는 것을 짐작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눈은 우리의 눈을 가지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어. 그림자, 거울 그런 것을 통해서 눈이 어떻게 생겼다고
허는 것을 짐작을 허고 있을 뿐입니다.
왜 눈이 눈을 보지 못하느냐?
너무 가깝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 몸으로부터 잠시도 떠날 사이가, 떠날 때가 없이
노상 우리의 몸에 있건마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그놈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보지 못한 그놈을 보도록 허는 방법, 볼 수 있는 방법이 참선법입니다.
그놈을 보아야 내가 나에 주인, 나에 마음자리를 보아
깨달라야 비로소 영원히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해탈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 하나를 깨달라 놓아야
우리가 인생으로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모르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허며는
아무리 돈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되건,
말을 세계에서 제일 잘하건, 지위와 명예가 세계에서
제일 높건, 힘이 항우장사보다도 더 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머지안해서 생로병사의 생사윤회를 면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 주인공
이 몸띵이를 끌고 다니는 운전수
그놈을 깨달라 알아야, 참선을 해가지고
그놈을 바로 깨달라야 이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대도를 성취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너무도 가깝기 때문에 알 수 없을 뿐이지
어려워서 못 보는 것은 아닙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