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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치의 꿈
강추애 (동화작가)
이리 꼬불, 저리 꼬불, 꼬불꼬불 좁은길의 끝, 깊은 땅 속 개미동굴의 노랑색 대문에 알림판이 걸렸습니다.
거기에는 '출입금지'라고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대문을 지키고 선 병정개미의 날카로운 두 눈은 어떤 침입자도 용서할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무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출입이 금지된 동굴 속. 그곳 아늑한 곳에는 몸집이 크고 아름다운 여왕개미가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조차 성가신 알들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빨리 나오너라. "
여왕개미의 마음은 조마조마 조급했지만 덥고 지루한 그 시간을 잘 견디어 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작고 하얀 알들이 스스로 꿈틀거렸고 금이 갔으며 그 속에서 하얀 개미새끼가 꼬물꼬물 기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새끼개미들은 실날같은 다리를 떨며 여왕개미에게 엉겨붙었습니다.
그동안 새끼들의 하얀 몸은 까맣게 변했습니다.
여왕개미는 엎치락덮치락 다투어 달라붙는 그들의 머리며 이마며 어깨를 부드럽고 재빠른 손길로 어루만져 주며 감격했습니다.
"모두 튼튼하고 귀엽구나.내 너희들에게 제각기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지만......"
그녀는 한숨을 푸욱 쉬었습니다.
저렇게 셀 수도 없을만큼 무수히 깨어나는 새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엄청나게 복잡한 일거리였고 또 제대로 기억도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왕개미는 가장 늦게 깨어나 그녀에게 걱정을 가장 많이 끼친 막내에게만 이름을 지어 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여왕 개미의 고민 끝에 막내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막치.
막치라고 이름이 붙여진 막내개미는 처음 디뎌보는 흙 위에서 떨고 비틀거리다 간신히 버티고 섰습니다.
"막치!"
여왕개미는 막치를 불러 놓고 즐겁게 웃었습니다.
여왕개미의 유쾌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걸음마를 익히는 새끼개미들은 이름을 가진 막치를 부러워했습니다.
막치의 슬픔은 여름날 아침, 초록색 난 잎사귀에 맺혀있는 맑은 이슬방울을 본 후부터였습니다.
처음엔 그가, 주변의 다른 누구인 줄 알고 까닥 목인사를 건넸지요.
"안녕. "
그러나 이슬방울 속에서 인사하고 웃고 찡그리며 짝짝 손뼉치는 그의 모든 행동을 어김없이 정확하게 따라하는 그가 곧 막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높은산 어깨에 앉은 해님이 따뜻한 햇살을 내리쏘아 이슬방울을 녹여버린 뒤였습니다.
막치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제발, 이슬 속의 그가 제발 제모습이 아니기를 원했지만 어찌할 수 없이 확실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막치는 실망했던 것입니다.
온통 까맣고, 그것을 바라보는 반들거리는 두 눈,뽀족한 입, 거기에다 더욱 기막힌 일은 두 개의 다른 길쭉한 동그라미를 빌려다 붙여놓은 듯한 허리와, 그것을 고인돌처럼 가로로
받치고 있는 가엾도록 볼품없는 가느다란 두 다리였습니다.
막치는 기분이 상해서 안고 뒹굴던 참외씨 한 알을 내동댕이치고 풀섶에 누워버렸습니다.
하늘 가운데 흰구름이 한가로이 놀고 있습니다.
아카시아숲 사이로 노란 나비떼가 지나갑니다.
칡넝쿨 사이에 비단거물울 짜놓고 유유히 거니는 거미가 보입니다.
패랭이꽃 그늘에선 녹두색 여치가 졸고 있었으며. 산새는 포롱포롱 종종 나뭇가지 사이에서 넓이뛰기를 합니다.
두 눈부신 제각기의 몸매로 근사하고 행복하게 보입니다.
"나만 이 모양이야. "
막치는 솟구치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돌아누웠습니다.
"난, 바보였어. 내 꼴도 모른 채, 오직 여왕님을 위해서 밤낮없이 땅을 파고 먹이만 날랐어."
막치의 작은 가슴은 울분으로 뜨거워졌습니다.
"이젠, 그 비좁고 칙칙하고 어두운 동굴로 돌아가지 않을 테야. 그런 곳에 살아서 내 꼴이 이렇게 된 거야. 난, 지금부터 향기로운 숲에서 신나게 자유롭게 살아갈 거야. "
새로운 각오와 부푼 희망은 막치를 벌떡 일으켜 세웠고, 막치는 바쁘게 풀섶을 빠져 나왔습니다.
막치가 없어진 것을 안 여왕개미는 동굴 속의 병정개미와 일개미를 모두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막치가 보이지 않는구나. 막치가 길을 잃어 버리 지는 않았을 것이니 사고가 틀림없다.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서 우리들의 막내를 꼭 찾아야 한다. 착하고 부지런한 그애가 낯선 곳에서 고생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러니 빨리 막치를 찾아 오너라."
"네!"
일개미와 병정개미들의 우렁찬 대답이 여왕개미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 가라 앉혔습니다.
개미들은 줄줄이 떼를 지어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막치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것은 말로만 듣던 꽃뱀이었습니다.
막치의 티끌만한 몸에 비하면 무지무지하게 굵고 길었으며, 기름을 바른 듯 반질거렸습니다.
막치의 앞을 지나 가는 그는 또 어름처럼 차가왔으며,산딸기 밭에서 또아리를 튼채로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청개구리 한 마리를 냉큼 집어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워라. "
소름이 끼치는,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마침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어서 퍽 다행이었습니다. 여차했으면 청개구리마냥 꽃뱀의 뱃 속으로 들어가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꽃뱀의 눈을 피해서 살금살금 뒷걸음을 치던 막치는 돌뿌리에 걸려 그만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악! "
막치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이구, 아파라! "
숨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꽃뱀에게 먹히는 것보다는 아픈 게 낫다."
막치가 시퍼렇게 멍든 다리와 어깨를 주무르며 끙끙대고 있는데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막치는 꿈결같이 아련한 노랫소리와 가까워지기 위해 아픈 다리를 절뚝절뚝 힘겹게 옮겼습니다.
노랫소리는 쇠뜨기숲에서 들려 오고 있었고 쓰르라미 자매의 합창이었습니다. 맑아서 듣기 좋은 긴 노래가 끝났을 때 막치는 박수를 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훌륭해요. 대단해요. 정말 잘 했어요."
"뭘요. 우린 그냥 심심해서 노래나 불렀던 것이지요."
날개가 길쭉한 쓰러라미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고,
"당신도 불러 봐요."
작은 얼굴에 보조개가 패인 쓰르라미는 다짜고짜 막치의 노래를 청했습니다.
"전, 노래를 못 해요."
"어머, 그렇군요. 가엾어라. 이처럼 즐거운 노래를 못하다니. 그대신 일은 잘 하시지요?"
길쭉한 날개는 다정하게 위로하며 덧붙였습니다.
"일은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지요. 그만큼 보람도 클 것입니다."
"아니예요."
막치는 도리질을 하며 빠르게 말을 이었습니다.
"일은 피곤하고, 짜증나고, 땀냄새가 납니다."
막치는 우울한 얼굴로 돌아섰습니다.
가느다란 두 다리를 절뚝이며 쇠뜨기숲을 빠져 나가는 막치에게 쓰르라미 자매는 손을 흔들며 배웅했습니다.
막치는 배가 고팠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허기져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무엇이든 먹어야지하며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막치의 발 끝에 빵조각이 채였습니다.
그것은 오늘 한낮에 산동네 아이들이 꼴베러 왔다가 먹고 흘린 마른빵 부스러기였습니다.
막치는 허겁지겁 빵조각을 뜯어 먹었습니다.
어찌나 급히 먹었던지 빵이 목에 걸린 막치는 캑캑! 사례까지 들어서 숨통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향나무 아래의 옹달샘물이 그리도 달고 시원한 지를 막치는 오늘 처음 깨달았습니다.
몹시 지쳤고, 배도 불러 나른해진 막치가 바위 아래서 잠이 들었는 데, 꿈 속의 막치는 붕붕 벌처럼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사방은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막치는 검은 나무 숲에서 움직이는 별 하나를 보았습니다.
막치는 놀랍게 그것을 지켜 보았는 데, 별은 막치의 곁으로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아, 별님! 별님은 날아 다니기까지 하는 군요. 그 말로만 들었던 별똥별이신가요?"
막치가 벅찬 기쁨으로 외쳤을 때!
별은 호호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습니다.
"아니예요. 제가 무슨 별이겠어요. 전, 반디랍니다."
반디는 상냥하게 대꾸하며 꽁무니의 푸른별을 움직여 더 반짝거리게 했습니다.
"어쨌든 놀라워요. 전, 별이란 하늘 천정에만 박혀있는 줄 아니까요."
"웬걸요.어디, 별에 비기겠어요?"
그러나 막치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고, 그런 막치 위를 자랑스럽게 맴돌던 반디는
"안녕, 저 조금 바쁘거든요. 갈대 숲 사이에서 친구랑 만나기로 했어요,"
반디는 인사말을 남기고 멀리 사라졌습니다.
반디가 사라진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막치는 다시금 북바쳐 오르는 슬픔을 견디지 못 하고 무릎에 얼굴을 파뭍고 흐느꼈습니다.
"역시 난, 아무 것도 아니야. 없는 것만 못해."
막치의 슬픈 흐느낌은 오이풀 밑에서 곤히 잠자던 무당벌레를 깨웠습니다.
"시끄러워. 개미새끼가 밤중에 왜 그래?"
단잠을 설친 무당벌레는 꽤나 투덜댔습니다. 하지만 막치는 그에게 매달렸습니다.
"가르쳐 주세요.반디는 어째서 저토록 빛나는 별을 달 수 있는 지요. 저는 그런 별을 달 수 없을까요?. 저도 별을 달고 싶어요."
무당은 졸리운 눈을 껌벅거리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거야. 죄다 태어난 대로, 생겨먹은 대로 살아가니까 말이지."
이렇게 말한 무당은 아옹! 하품까지 하며 오이풀 밑으로 들어 가다말고 막치를 뒤돌아보며 선심쓰듯 내뱉었습니다.
"혹시나 모르지.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고, 배추벌레가 호랑나비가 되듯, 너에게도 등불이 달릴 지 누가 아니?"
빈정거리며 내뱉는 무당의 말에 막치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말은 저도 하겠어요. 저도 새까만 개미 이전엔 하얀 개미였고, 하얀개미 이전엔 하얀 알맹이었어요."
막치는 바락바락 소리를 내질렀고, 무당벌레는 빠른 몸짓으로 오이풀 아래로 쏘옥 들어 가 버렸습니다.
막치는 풀섶에 엎드린 채 울부짖었습니다.
"싫어요. 이 시커먼 껍데기. 허리, 눈, 다리.다 싫어요!"
웅덩이에 비친 달그림자를 즐기던 풍뎅이가 막치를 딱하게 여겼습니다.
"날이 밝으면 연못에 나가서 한 번 씻어봐. 물은 꽃가루도 씻어 주고, 흙탕물도 씻어 주고, 꽃물도 빼 주니까."
풍뎅이는 막치가 여태까지 만난 어떤 누구보다도 친절해서 막치는 울음을 거두고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동쪽하늘이 밝아지자 막치는 서둘러 연못가에 갔던 것입니다.
풀잎 하나를 따서 물에 적신 막치는 정성껏 몸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수련 잎사귀 위에서 놀던 소금쟁이가 말을 걸었습니다.
"잔치에 가나요?"
"아니예요. 내 몸에 물든 이 검은색을 씻어 없애려고 해요."
"아, 그렇군요. 저도 본 적 있어요. 물은 초록색 이끼도 만들지만 그 이끼를 금새 벗겨내기도 했어요."
소금쟁이의 말은 막치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손놀림을 더 빠르게 했습니다.
그런 막치를 물끄러미 구경하던 소금쟁이는
"그럼, 열심히 잘 해 보세요,"
격려를 던지고 폴짝 물장구를 치며 수련줄기 사이를 시원하게 헤엄쳐 나갔습니다.
한나절은 참 빨리 지나갔습니다.
막치의 몸은 씻고 닦아낼수록 더더욱 까맣게 반들거렸습니다.
거기에다 종일내내 손질한 탓으로 온몸이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지쳐버린 막치는 풀잎을 찢으며 소리쳤습니다.
"안 돼, 도무지 안 돼!"
실망과 슬픔 속에 밤을 지샌 막치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작정 앞만 보고 걷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정확하고 분주한 움직임. 검은띠의 행렬. 오, 그것은 친구들이었습니다.
막치는 반가워서 하마터면 친구들 앞으로 뛰쳐나갈뻔 했습니다.
그랬지만 막치는 반가운 마음을 애써 참으며, 행여 그들의 눈에 띌세라 납작하게 엎드리며 중얼거렸습니다.
"너희들은 바보야. 날고, 노래하고 ,헤엄치는 게 어떤 것인 지도 모르지. 더구나 반디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을 때까지 일만 하는 거야. 그 좁고 컴컴한 동굴을 최고로 생각하면서 말이지. 난, 아니야. 너희들과는 달라. 난,많은 것을 보고 느꼈거든. 난,언젠가는 너희들을 찾아 간다. 놀라운 모습으로. 그때 만나자. 잘 가."
막치는 친구들의 행렬이 꼬리를 감출 때까지 지켜 보며 그들을 한없이 가엾게 여겼습니다.
막치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온갖 소문을 다 들었습니다.
"세상에 어디 안 되는 일이 있겠어요. 하늘소 선생을 찾아가 봐요.아주 용하답니다. 낫기 어려운 병도 그이 손만 닿으면 거짓말같이 낫는대요.병 뿐인가요. 부러진 사마귀의 다리도 말짱하게 고쳤고, 왕벌이 쏜 독침도 단숨에 뽑아내었대요."
땅 속에서 칠 년 만에 외출한 매미가 뽕나무 밭에서 속삭인 하늘소 선생의 소문은 막치의 귀를 가장 솔깃하게 했습니다.
막치는 길을 묻고, 들길을 지나 하늘소선생을 찾아 갔습니다.
어렵게 만난 하늘소 선생 앞에서 막치는 무릎을 꿇고 애원했습니다.
"제 검은 몸은 지긋지긋해요. 여치의 녹두색 몸이나, 귀뚜라미의 갈색 같은 몸을 갖고 싶어요.그게 어려우면 풀종달이나 방울벌레처럼 노래나 시원하게 부를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것도 쉽지 않으면 벌처럼 꿀주머니라도 하나 꿰어찼으면 좋겠어요. 좌우지간 저를 좀 다르게 만들어 주세요. 전 지금의 제 모양으로는 살고싶지도 않아요. 저 좀 살려 주세요."
막치의 간절한 소원을 끝까지 안타깝게 다 들은 하늘소선생은 콧잔등에 내려앉은 안경을 치켜 올리고 쩝쩝 입맛을 다시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겠네. 자네 마음을 알겠네. 한 번 해 봄세."
하늘소 선생의 말은 막치의 마음을 마구 부풀게 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요? 여치? 풀종다리? 왕벌?"
막치는 성급하게 재촉했습니다.
"날개를 달아 보세."
"날개를요?"
"응. 갓 죽은 어린 나비의 날개를 보관해 둔 게 있지."
"아, 선생님! 꼭 그렇게 해 주세요.꿈만 같애요."
막치는 기쁨에 넘쳐 주루루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대신!"
그 대신, 하고 하늘소선생은 막치에게 많은 일을 요구했습니다.
"내가 즐겨 먹는 함박꽃 속의 꿀샘을 청소해 줘. 또, 요사이는 하루살이들이 설쳐대어 아주 성가시다.그것들을 피해 쉴 수 있는 지하실을 하나 넓게 파주면 좋겠어."
"네. 선생님 지금 곧 시작하겠습니다.어렵지 않은 일이예요."
그랬지만 하늘소 선생이 요구한 일은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숨이 컥컥 막힐만큼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치는 이를 앙다물고 일을 해 내었는 데, 일이 끝났을 때는 코스모스가 한창 피는 가을이었습니다.
하늘소 선생은 막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빈틈없는 준비를 했습니다.
썩지않겠끔 소금물에 담가둔 노란 날개와 비단실, 바늘과 가위,솜과 붕대가 갖춰지고 막치는 박달나무 침대에 누웠습니다.
하늘소 선생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매우 조심스럽게 막치의 겨드랑이에 날개를 붙이고 꿰매기 시작했습니다.
바늘이 겨드랑이의 살집을 파고들 때마다 막치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입이 딱딱 벌어지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막치는 나는 지금 날개를 단다하고 이를 악물며 참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이젠 됐네."
그러나 하늘소 선생의 목소리를 막치는 듣지 못했습니다.
막치는 마지막 바느질에 매듭을 짓기도 전에 기절하고 말았으니까요.
노란 날개의 소금물이 마르고 꿰맨 자리가 아물었을 때, 막치는 벅찬 기쁨에 들떠 아침밥도 먹지 않고 등나무 줄기로 기어 올라 갔습니다.
보다 높게, 보다 멀리. 첫날개짓을 위해서 막치는 들숨 날숨을 가다듬었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 거야. 자, 날아보자. 멀리. 하낫, 두울, 세엣!"
막치는 하늘 속으로 몸을 날리며 두 팔과 두 날개를 힘차게 뻗었습니다.
그랬으나!
"아악!"
막치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졌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촉촉히 젖어드는 밤이슬에 막치는 정신을 되찿고 있었지만 몸이 부숴진 듯한 아픔에 그대로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습니다.
달님은 나뭇가지에 앉아 막치를 내려다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달님과 함께 앉아 있던 부엉이는 웃음을 참지 않았습니다.껄껄걸.
막치는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는데. 노란 날개가 달린 검은 몸뚱이는 천근만근 무겁기조차 했습니다.
막치의 날개는 숲 속 친구들에게 피에로 처럼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으며 웃음거리였고 골칫거리로 거추장스럽기만 해습니다. 바람개비가된 날개는 막치를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게 했고 작은 바람에도 멀찌기 아무 곳에나 밀어 붙였으니까요.
"이따위 날개, 필요없어."
막치는 절망하며 하늘소 선생을 찾아가 이번에는 날개를 떼달라고 졸랐습니다.
"자네두, 참. 변덕장이로군."
하늘소 선생은 족집게로 비단실을 뽑아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날개를 떼어낸 막치는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강변으로 갔습니다.
강변의 미루나무 아래는 사마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막치의 겨드랑이를 보고 걱정했습니다.
" 아프게 보여요. 벌떼에게 쏘였나요? 가시에 찔렸나요? "
"아니, 둘 다 아니예요.이 구멍은요
막치는 사마귀에게 바늘구멍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마귀는 막치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고, 그의 얘기가 끝이 났을 때는 그림붓을 놓으며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대단한 용기예요. 난, 지금까지 개미들이란 꿈도 꾸지 않고, 희망도 품지 않고 일만 하는 줄 알았는 데, 막치님은 그렇지 않군요. 자, 내가 도와 드리지요. 새옷을 입혀 드리겠습니다."
사마귀는 막치를 미루나무에 기대어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막치의 몸에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일곱색깔 무지개를 그렸습니다.
그것은 흡사 산마을 아이들이 까치설날에 입는 때때옷과 같았습니다.
막치는 강물에 비친 제모습이 마음에 썩 들었습니다.
"안녕, 땀이 안 나게 조심조심 움직이세요."
사마귀의 배웅을 받으며 막치는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가을 소풍을 떠나는 메뚜기 형제가 막치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어디에 사시는 분이신가요?"
"처음 뵙지만 정말 멋지시군요."
메뚜기 형제의 칭송에 막치는 참으로 오랜만에 으쓱 기분이 좋았습니다.
막치는 메뚜기 형제에게 자신의 모습을 더 오래 보여 주기 위해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메뚜기 형제와 거리가 멀어지자 막치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보다 많은 산새와 곤충들과 하루살이들에게 자기의 멋진 모습을 빨리 보여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마귀의 충고도 잊어 버리고 뜀박질을 시작했습니다.
땀이 솟아났습니다.
땀은 무지개를 지우며 흘러내렸습니다.
무심코 땀을 닦던 막치가 소스라쳤습니다.
무지개의 얼룩을 본 것입니다.
막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옹달샘 바위틈에서 둥근집을 짊어진 달팽이 아저씨가 나타났습니다.
"저런, 누가 장난을 쳤구나."
"아니예요."
막치는 울면서 무지개 얘기를 하며 사마귀를 이야기했고, 하늘소선생을 얘기하며 날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울먹이며 말하는 막치의 딱한 여행은 지루하게 길었지만 달팽이아저씨는 끝까지 잘 들어 주었습니다.
"막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거란다.자, 저기 흐르는 물로 얼룩진 몸을 씻자."
막치는 지저분하게 얼룩진 몸을 씻었습니다.
검고 반들거리는 막치의 몸이 이내 드러나자 막치는 혼자 싱겁게 웃었습니다.
작은 몸뚱이에 가혹한 짓을 저지른 기억이 새삼 우스꽝스러웠던 것입니다.
달팽이 아저씨는 달팽이 지붕위에 막치를 앉혔습니다.
"나랑 산책을 떠나자. 가을 바람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달팽이 아저씨는 이끼 낀 바위 위를 조심스럽게 배로 밀며 미끌어지듯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지붕 위에서 잠자코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막치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물었습니다.
"무겁지 않으세요?집을 짊어 지고 다니면 힘들고 귀찮을 텐데요."
"아니다. 조금도 무겁지 않다. 보기보다 편하지. 어디를 가든 집 찾아 갈 걱정은 안 하니 말이지?"
"그렇군요."
해님이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주홍색으로 물들었고, 숲과 계곡도 단풍으로 붉은색이었습니다.
초록색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막치는 참 긴 시간을 헤매고 다녔군요.
막치는 동굴 속의 여왕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울 적셨습니다.
"어쩜, 그들은 나를 까맣게 잊어 버렸는 지도 몰라. "
막치는 불현 듯 그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달팽이아저씨가 말했습니다.
"곧, 첫눈이 내릴 것이고 바람은 여행을 할 수 없을만큼 차가워 진다. 그러기 전에 너도 서둘러 집으로 가라."
'네. 아저씨,"
막치는 목이 메어 간신히 대답했습니다.
막치는 동굴로 돌아왔습니다.
여왕개미는 돌아온 막치를 위해 큰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친구들은 막치를 에워 싸고 많은 질문을 한꺼번에 던졌습니다.
"어디에 있었니?"
"우리는 떼지어 다니며 널 찾았었어."
"여왕님은 때때로 눈물을 흘리셨지."
막치는 살맛을 느꼈습니다.
아! 이토록 편안하고 따뜻한 것을 등지고 살았다니!
막치는 폭신한 짚풀 위에 여행에 지친 몸을 던지며 크게 외쳤습니다.
"난, 지금 어떤 말도 하기 싫어. 다만 이곳이 최고이며 지금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것 외는 몰라!"
막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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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막치의 꿈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아름다운 글향에 흠뻑 빠져 봅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