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전설' 애플 창업주 Steve Jobs 타계
▲ 스티브 잡스 사망 직후 애플사가 홈페이지 메인에 올린 사진
...1980년대 PC(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애플2' 컴퓨터, 매킨토시 컴퓨터, 세계인들의 음악감상 방식을 바꿔놓은 아이팟, 단순히 음성만 주고받는 기기였던 휴대폰의 개념을 ‘손안의 PC’로 변화시킨 아이폰, 책상에 앉지 않고도 편안하게 컴퓨팅을 즐길 수 있게 만든 아이패드….
이 모든 것을 창조했던 ‘미국 IT산업의 상징’,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전 애플 CEO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애플은 5일(미국 현지시각) 공식 발표했다. 애플은 “스티브의 영명함과 열정, 에너지가 멈추지 않는 혁신의 원천이 됐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풍부해지고 향상됐다. 스티브로 인해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창업한 워즈니악과 애플의 경쟁사인 구글의 CEO를 역임한 에릭 슈미트는 잡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 시대 최고의 CEO”라고 칭송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오랜 친구였던 잡스가 자주 사용했던 표현인 '미치도록 훌륭하다'(insanely great)라는 말을 사용하며 "그와 함께 일해 미치도록 대단한 영광이었다"고 애도했다.
- IT업계 ‘상상력’을 잃었다 -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 “미국은 토머스 에디슨,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기억될 천재를 잃었다”. 엔더리그룹의 IT전문가 로브 엔더리 - “토머스 왓슨 주니어가 사임했을 때의 IBM이나 월트디즈니가 사라진 디즈니, 빌 게이츠가 없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기업들은 대부분 그동안 갖고 있던 ‘마법’도 함께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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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1955년 2월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입양기관을 거쳐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로 입양됐다. 잡스의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생모 조앤 심슨은 위스콘신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났으나 심슨 가족이 잔달리가 시리아 태생의 아랍인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해 미혼모인 상태로 잡스를 낳았다. 생모인 조앤 심슨은 입양 당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잡스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저하다가 "스티브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야 입양을 허락했다.
잡스는 명문 리드대학에 입학했으나 6개월 만에 중퇴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중퇴 이유에 대해 "부모님들이 비싼 학비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훗날 고백했다. 그는 대학을 중퇴한 후 배운 서체교육이 이후 맥컴퓨터의 서체에 응용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1975년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있는 입양부모의 집 창고에서 최초의 애플 I 컴퓨터를 조립했고, 1976년 애플을 창업해 1977년 세계 최초의 PC(개인용 컴퓨터)’로 통하는 애플 II(컬러 그래픽이 가능한 세련된 베이지색 외관에 모니터, 키보드를 갖춘)를 내놓아 대히트, 1980년대 초까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50%를 휩쓸었다. 1984년에는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탑재한 매킨토시를 선보여 컴퓨터 사용환경에 일대 혁신을 불러오는 등, ‘컴퓨터=IBM’이란 공식을 깨뜨리며 돌풍을 일으켰고, 그는 승승장구했다.
▲“평생 설탕물만 팔거요?”= 1983년 애플의 주식공개 후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라는 주주들의 요구를 받은 잡스는 펩시콜라를 코카콜라의 호적수로 키워낸 존 스컬리 당시 펩시 부사장을 데려오기로 하고 직접 그를 만나러 갔다. 당시만 해도 부침이 심한 실리콘밸리의 고만고만한 유망주 중 하나였던 애플의 ‘러브콜’에 떨떠름해하던 스컬리에게 잡스는 단 한마디만 남긴 뒤 발걸음을 돌렸다.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저와 함께 세상을 바꾸시겠습니까?” 결국 며칠 후 스컬리는 애플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그러나 1985년, 그는 자신이 영입했던 펩시 CEO 출신 존 스컬리와 마찰을 빚은 끝에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나는 망신을 당한다. 잡스는 이후 넥스트 컴퓨터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루카스필름의 컴퓨터그래픽 사업부문(현재 픽사)을 사들였다. 오늘날 업계에서는 잡스가 이 시기에 ‘콘텐츠의 중요성’을 절감했으며, 그 결과 누구나 손쉽게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를 구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아이폰·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의 압도적인 경쟁력은 기기 자체가 아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수십만개의 콘텐츠 풀(pool)에서 나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적자와 파산 위기에 몰린 애플의 CEO로 귀환한 잡스는 그간의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했다. 2001년 아이팟(MP3플레이어), 이어 아이튠스(음악프로그램) 등을 내놓으면서 소니 워크맨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2007년에는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에 스마트폰 혁명을 불러왔다. 이어 2010년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선보이면서 휴대폰에 이어 PC시장의 판을 뒤흔들어놨다. 하지만 왕성한 활동에도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바로 ‘건강’이었다. 지난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에는 간 이식 수술대에 오르면서 회사를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올 1월에는 무기한 병가에 들어갔다. CEO 사퇴까지 7개월 동안 아이패드2 발표회와 애플의 신사옥 계획발표, 세계개발자대회 등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분명히 건강악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5일, 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잡스의 유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스티브가 오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로렌과 3자녀가 있으며, 로렌과의 결혼에 앞선 전처와의 사이에도 딸이 하나 있다. 1976년 APPLE I을 설계한 전자공학의 천재 Steve Wozniak(L)과 뛰어난 통찰력의 천재 사업가 Steve Jobs가 애플을 창업했다. 위 왼쪽부터 1977년, 1984년, 1998년. 아래 왼쪽부터 2008년, 2010년, 2011년6월의 모습. Steve Jobs speaks in London during the launch of the European iTunes online music store, June 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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