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일상
사월 중순 토요일이다. 거리 벚꽃이 저문 가지는 연초록 잎이 돋는다. 느티나무와 메타스퀘이아도 연두색이 엷게 물들어 간다. 주중은 대산 들녘으로 나가는 단순한 동선의 반복이지만 주말은 근교 야산으로 오르는 산행이 내 격에 어울리는 발걸음이다. 초봄에 피어난 야생화 탐방도 거의 끝물이고 이제 숲으로 들어 한 마리 산짐승처럼 산나물을 채집해 일용할 찬으로 삼는 일이다.
어제는 대산 들녘 들길을 걸으면서 길섶에 잎을 펼친 머위와 감나무 묘목을 심어둔 밭뙈기에 자라는 가시상추를 제법 잘랐더랬다. 자연에서 구하는 친환경 채소였다. 우리 집에서도 봄나물이 간당간당 모자랄 듯했지만 불룩한 봉지는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 사는 꽃대감 친구에게 모두 안겼다. 나는 주말에 산행을 나서면 산나물은 얼마든지 더 마련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아침 식후 등산 차림으로 빈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가니 밀양댁 안 씨 할머니는 꽃밭을 돌보고 주변 보도를 빗자루로 말끔히 쓸었다. 친구는 남향 언덕에 자라는 매발톱꽃을 폰 카메라로 영상에 담고 있었다. 제철을 맞아 피어난 꽃을 유튜브에 소개하는 방송 소재를 마련하는 중이다. 간밤에 올려둔 옥매 영상은 다수 시청자가 열람해 구독했다.
친구와 할머니에게 아침 인사가 오간 후 나는 나대로 일과 수행을 위해 버스 정류소로 나가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을 탔다. 명곡교차로를 지난 원이대로는 급행버스 운행 체계를 위한 도로 공사로 차량 운행이 지체되었다. 지난해 봄부터 시공하던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정류소를 중앙분리대로 옮기고 조경은 마쳐놓고 노면을 재포장하는 중인데 차선만 그어지면 완공될 듯했다.
타고 간 차는 소답동에서 내려 7번 마을버스로 바꿔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간 남산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남해고속도로가 걸쳐 지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용전마을 동구에서 산기슭으로 향했다. 전에는 단감과수원 외는 밭작물을 가꾸던 농지에 철골로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지어 무엇에 쓸까 궁금했는데 다육이 농장이었다. 요즘에는 반려 식물도 수요가 늘어 공급을 위한 경작이었다.
양봉업자가 둔 벌통 단지를 지나니 민자로 건설된 구룡터널 요금소가 나왔다. 굴다리 통로를 지나서 등산로가 없는 숲으로 들어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를 밟으며 잡목을 헤쳐 비탈로 올라갔다. 산 중턱에 이르자 송전탑을 세우려고 중장비가 지나면서 훼손된 숲을 복원한 곳이 나왔다. 구룡산은 아카시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오리나무를 비롯해 소나무도 섞여 자라는 혼효림 숲이었다.
숲속에서 부엽토를 양분 삼아 자라는 참취를 찾아 뜯었다. 바디나물도 군데군데 잎을 펼쳐 자랐다. 아직은 풀이 무성해진 때가 아니라 참취와 바디나물은 산짐승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각시붓꽃이 자라는 곁에 참취나 바디나물은 멱이 잘린 것도 보였는데 고라니나 노루가 시식한 흔적이었다. 숲속 주인은 녀석들일 테니 그들이 먼저 뜯어 먹은 후 내가 뜯게 되어 마음이 편했다.
산자락을 얼마만큼 올라서자 누군가 앞선 선행 주자가 두릅 순을 따 간 흔적이 보였다. 이삭처럼 남겨진 두릅 순은 억세 나물 가치를 잃어 그냥 두었다. 대신 보드라운 애기원추리와 계곡 물가에 자라는 머위 잎을 따 보탰다. 산등선을 넘어간 골짜기는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려 양손을 짚고 엎드려 석간수를 들이켰더니 갈증이 사라졌다. 가져간 삶은 고구마를 꺼내 먹었다.
골짜기를 빠져나간 너럭바위에 그간 뜯어 모은 산나물을 펼쳐 검불과 꼬투리를 가려 정리했다. 산짐승이 뜯어 먹은 후 내가 채집한 취나물과 바디나물은 넉넉한 양은 아닐지라도 며칠 먹을 찬으로 삼을 수 있을 듯했다. 마을로 내려가 시내로 들어가는 차편으로 집 근처에 닿았다. 동네 제과점을 지나다가 간식 삼으라 캔디를 챙겨준 고마움에 산나물을 몇 줌 건네고 집으로 왔다. 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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