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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심부자극수술(DBS)에 관한 문경애씨의 글입니다. 파킨슨의 끝은 어떻게 될까...항상 두려워하면서도 궁금해하고, 먼 남의 이야기만 같은 수술... 이 글은 수술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고, 수술의 효과에 관해 문경애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혹시 프린트해서 읽을 분들을 위해 파일로도 첨부해 놓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글은 작가 문경애씨의 허락을 받고 글을 올립니다. *** 어느 사이보그의 진술*** 들어가면서 내 몸속에는 전자기기가 정착되어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SF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인조인간이나 액션영화에 나오는 슈퍼맨처럼 초능력을 가진 인간인 뜻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내 몸속의 그 인공 전자기기로 인해서 나는 이른바 사이보그가 된 셈이다. 사이보그(Cyborg)란 생물학적인 몸의 기능 일부를 대신해주는 기계장치를 몸속에 장착한 인간을 일컫는 말로 알고 있다. 나는 25년 동안이나 오랜 병고에 시달려왔다. 그 병으로 生의 벼랑 끝까지 갔다가 내 몸에 전자 기계장치를 장착하는 대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나는 이제 날마다 새로운 희망으로 하루를 맞는다.'오늘은 무엇을 하고, 또 어디로 가야지' 하고 속으로 혼자 궁리를 하고 다짐도 해본다. 남이 들으면 아주 하찮은 일일지 모르지만, 내겐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집안 청소를 하고, 마당을 쓸고, 화분 갈이를 하고, 시장을 가고, 은행도 가고, 또 친구집도 가고..., 생각해 보면 이전과는 얼마나 달라진 나의 일상들인가!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나는 집을 나서서 거리를 걷는다. 내가 다시 살아나서 이렇게 혼자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 덕분이다. 이제 내가 다시 그들에게 그것을 되돌려 줄 수 있기 위해서라도 새로 얻은 나의 삶을 알차고 보람되게 꾸려가야겠다. 이렇게 눈부신 5월의 아침, 내 생애 55번째로 맞이하는 이 봄이 새로운 감동과 희망으로 내게 다가온다. 생의 벼랑 끝 2004년 하반기, 내 병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이제 지속적인 근육의 수축으로 인한 운동장애인 이상근긴장증으로 목과 심장과 위장 등, 온갖 신체 기관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내 병은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이다. 이 병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의 한 종류로서 도파민이라는 일종의 뇌 호르몬의 부족으로 발생한다는데, 아직도 그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한다. 병의 증상으로는 안정시 손발이 떨리는 진전(震顫),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서동증(徐動症), 근육이나 얼굴표정의 경직, 보행장애 그리고 자세의 불균형 등이다. ㅈ;금까지는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며, 다만 약의 복용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이란다. 이 병은 금방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다. 그래서 오랫동안 병을 앓게 되는데, 병의 초기에는 마도파나 시네메트CR 같은 치료약으로 정상인과 거의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상태가 나빠져서 보행 및 언어에도 지장이 생기며, 나중에는 바깥출입도 어렵게 된다. 이 병은 주로 노년에 발생한다지만 나의 경우는 일찍부터 찾아왔다. 당시 내 나이는 불과 29세, 내가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이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79년에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처음 받았고, 그 후로 25년간을 이 병과 싸워왔다. 그래서 내 인생은 참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처음에는 약물복용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으나 갈수록 병은 더 악화되었고, 몸은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 입원과 퇴원을 여러번 반복하다가 1999년 부산 동아대병원에 다시 입원하여 마도파에서 시네메트CR로약을 바꾼 후 조금 나아지는 듯 했는데,4년이 지나면서부터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근래에 와서는 몸에 힘이 떨어지면 아예 움직이지를 못했고, 약물을 오랬동안 복용해온 탓인지 이상운동도 심하게 나타났으며, 내부 장기에는 이상근긴장증이 일어나는것 같았다. 어떤 날은 입이 마비되어 몇 시간동안이나 말을 할 수 없었고, 어떤 날은 목이 조여와서 호흡곤란이 오고. 또 어떤 날은 심장이 조여와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상태가 반년이 넘게 계속되자 모두 지치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지쳐 모든 것을 포기 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족 누군들 지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26년째 접어든 지난 2005년부터는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감이 들었다. 가슴이 심하게 조여오기 시작하면 맥박마저 천천히 뛰다가 멈추는 것 같았으며, 호흡이 끊기는 듯 하여 실신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기에 이러렀다. 나는 모든것을 하나 하나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 삶이 여기까지라면 이제 삶에 대한 더 이상의 미련도 접고, 그것을 받아드릴 수 밖에 없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희망의 불씨, 뇌심부 자극술 2005년 2월 16일은 동아대병원 신경과 교수에게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날이다. 내가 최근의 여러 증상과 함께 특히 심장이 조여오는 증세를 설명하자 옆에 있던 남편이 상태가 이러니 심장검사를 받아 봐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심장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 문경애씨는 수술을 받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다. "신경과에 입원을 해서 며칠간 검사를 받고, 수술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장소를 옮겨 부산백병원 신경외과에 다시 입원해서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사는 수술에 대한 안내 책자를 건네주면서, 생각해 보시고 결심이 서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그 수술법은 뇌심부 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이란 것이었다. 그것은 파킨슨병 증상과 관계되어 있는 뇌에 미세한 전기자극을 흘려보내어 그 부위의 신경신호를 변경시켜 비정상적인 뇌 신호를 근본적으로 차단시킴으로써 정상인 동작과 기능들이 되돌아오게 하는 치료법이다. 이 수술을 통해 전극선 자극발생기 영장선이 몸 안에 이식된다. 수술과정은 처음 국소 마취 하에 4개의 전극을 가지는 절연선인 전극선을 5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버홀(Burr hole)이라고 머리외 절개선을 통해 이식한다. 그리고 전신마취 하에 귀 뒤쪽을 절개하여 전극선을 자극발생기로 연결하는 연장선을 삽입하고, 자극발생기는 쇄골 아래쪽을 절개하여 이식되는 순서로 진행된다. 자극발생기는 인공심장 박동기와 유사한 기기로 작은 배터리와 파킨슨병 증상을 조절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칩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니까 몸속에 인공기기를 정착시키고 그것을 전기자극기로 조절함으로써 마비된 신체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수술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의논을 했지만,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삶의 벼랑 끝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고 의사선생님과 의논하여 입원 날짜를 3월 8일로 잡았다. 수술을 받다 2005년 3월 8일, 입원하고 다음날부터 뇌파검사, CT촬영, 간단한 신경정신과의 검사 등이 이어졌다. 11일 오후부터는 지금껏 매일 복용하던 약을 전부 끊었다. 13일, 밤늦게 그 전날 미리 예약해둔 부산백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14일 오전10시, 금식으로 인해 음식은 물론 약까지도 복용하지 못했으므로 몸은 완전 마비상태였다. 수술을 위해 머리를 전부 깍고,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프레임을 쓰고, 정확한 병소를 알아내기 위해 MRI 사진을 찍었다. 병실에 돌아오니 병문안 온 친구 정심이가 내 머리 깍은 모습이 동자승 같다고 놀렸다. 여승도 아니고 동자승이라니, 이렇게 병고에 시달려온 내 모습이 동자승 같이 될 수 있다면야 앞으로 병이 나아도 계속 각은 머리로 있어야 말하고 함께 웃었다. 11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2단계로 진행되었는데, 먼저 머리의 국소마취상태에서 전극선을 삽입하기 위해 나의 두피를 걷어내었다. 국소마취 상태라 의식이 깨어있던 나는 두피를 걷어낼 때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의사는 내게 긴장을 풀라고 달랬지만, 떨리는 가슴을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머리에 전극선 삽입이 끝나자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오른쪽 몸의 반응은 왼쪽 전극선으로, 왼쪽 몸의 반응은 오른쪽 전극선으로 손과 발의 반응들을 살피고 물어 두 전극선의 적당한 전류의 세기를 찾아낸 뒤 마무리를 하고, 두피 부분을 깁기 시작했다. 그 때 테스트가 너무 길었던지 마취가 풀리기 시작했으니, 그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이제는 전신 마취를 하여 전극선에 이어질 연장선과 자극발생기를 내 몸 속에 이식할 차례였다. 전신마취와 동시에 그 이후론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한참 후 마취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남편을 비롯하여 몇몇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나는 9시간을 수술실에 있던 것이다. 자극발생기를 넣은 쇄골 및 가슴 부분이 무척 아팠다. 3월16일, 수술후 3일 동안을 시네메트CR은 물론 보조약도 복용치 않았다. 금식 대문이었다. 정신이 자구 혼미해지면서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오후 늦게 의사선생님이 와서 이제 식사도하고 약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식사를 조금하고 약도 먹은 후 거짓말처럼 다시 깨어났다. 21일, 담당의사가 회진을 왔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살펴보더니 "이제 실을 뽑아도 되겠습니다. 내일 퇴원을 하도록 하세요."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칼과 집계로 실을 뽑아내었다. 상처는 잘 아물었다 의사선생님은 친절하게 여러가지를 가르쳐주고 또 여러가지 질문도 했다. 김무성 선생님, 그는 전문의사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환자에 대한 친절과 배려에 있어서도 남다른 분이었다. 그는 나의 새로운 삶의 시작에 큰 은혜를 주신 분이다. 새 삶을 얻다 23일 오전,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29일은 수술 받은 부산백병원에 가는 날이다. 수술로 인한 머리와 가슴 부위의 상처 아문 것을 보이기 위해서다. 수술 때문에 깍아버린 머리에 가발을 쓰고 화장을 했다. 몸에 이상운동이 좀 있긴 했지만 전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밖을 나서니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우리집 대문밖 성당의 담장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눈부시게 피어있었다. 의사는 상처가 잘 아물었으니, 이제 부산백병원에는 그만 와도 된다고 말했다. 31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11시까지 계속 집안일을 했더니, 조금 피곤하여 누웠다. 그러다가 오후에 다시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골목을 쓰는 등 꽤 오래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가 상당히 길었다. 아니 여유롭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 그런 것 같다. 4월6일, 아침부터 날씨가 궂다. 동아대병원은 2시까지 가게 되어 있으나 오전 내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서성거리고 있다. 수술 이후 오늘까지 조금 담담하던 내 마음이 정작 오늘이 되니 자꾸 초조해지고 일말의 불안감마저 떨칠 수 없다. 그 긴 세월동안 나를 괴롭히던 증상들이 과연 없어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병원에서의 프로그래밍은 처음부터 아주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전류를 아주 낮게 흘린 후 조금씩 그 세기를 올려가니, 힘 또한 조금씩 살아났다. 그래서 시네메트CR을 복용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상태까지 전류의 세기를 올려 흘렸다. 그러면서 손과 발의 움직임도 살펴보고, 또 병원 복도를 걸어갔다 오기를 여러번 되풀이하여 전류를 변화시키는 시험을 했다. 그러나 수술시 시험자극을 할 때 처럼 명쾌하지는 않아 그대의 상태를 이야기했더니, 의사선생님은 몸속에 자극발생기를 심어넣어 그것을 켜면 상태가 호전되기는 해도 병은 계속 진행되므로 처음부터 너무 좋은 상태로 전류를 올려두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병의 진행으로 더 나빠질 상태를 대비하여 여분을 두어야 하니, 조금 불편해도 견디라고 말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프로그래밍이 끝나자 의사선생님은 2주일 후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녁식사 때는 낮에 한 프로그래밍으로 많이 지쳐서 그런지 밥맛이 전혀 없고, 밥알이 모래알 같았다. 그 후로도 2주일 간격으로 병원에 계속 다녔다. 그때마다 자극발생기의 전류를 조금씩 조절하여 내게 적합한 상태로 조절해 나갔다. 몸이 자극발생기에 적응되기 위해서는 보통 6개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후 6개월쯤 지난 뒤에 입원하여 여러가지 검사도 다시 받고 자극발생기의 상태도 재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7개월째 되는 10월 중순에 나는 동아대병원에 다시 입원하여 자극발생기를 재조절 했다. 그리고 이제 주 치료제인 시네메트CR을 끊고, 보조제인 팔로델과 PK멜즈정, 알프람정(불안,우울치료제),웰부트린서방정, 이렇게 4가지 약물만 복용하면서 3일쯤 더 상태를 관찰한 뒤 퇴원을 하게해 주었다. 그 후로 나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때때로 어떤 자극이 느껴지면 아직도 잘 놀라기는 하지만, 이제 시네메티CR 대신에 보조약들만 복용해도 괜찮아졌다. 그리고 심장이 조여오는 등의 여러가지 증상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별 탈이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2005년12월31일 딸을 결혼시키게 되었는데, 혼사에 다른 크고 작은 일들을 맡아하느라고 상당히 애를 많이 썼지만, 그런데로 무사히 큰일을 치룰 수 있어 스스로가 대견했다. 뇌심부자극술로 몸속에 심어넣은 자극발생기는 7개월간의 적응기간을 거쳐 마침내 몸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내 몸 또한 그것을 잘 받아들인 모양이다. 마치면서 수술로 내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들, 자질구레한 집안일에서부터 딸을 시집보내는 큰일에 이르기까지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러한 일들을 나도 이제 큰 어려움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면 눈물겹도록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에게 재생(再生)을 가져다주신 여러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린다. 25년간의 오랜 병고와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한 단계까지 갔다가 다시 되살아난 나를 두고 주위의 사람들은 기적이라고들 한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사실 그것은 기적이라 할만 하다. 그러나 그 기적은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기적을 가져다준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 의학의 놀라운 힘이다. 파킨슨병으로 인해 25년간의 병고를 겪으면서 생의 벼랑 끝까지 갔다가 뇌심부자극술이라는 새로 개발된 수술을 받고 나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 수술을 통해 내 몸 속에는 인공기기가 장착되었다. 다음으로는 병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대응방법이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보면 치료방법에 대한 별별 소개도 많고, 온갖 유혹을 다 겪기 마련이다. 한방에서부터 여러가지 민간요법과 심지어 미신적이고 종교적인 신통술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나는 그동안 그런 유혹들에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발병하기 전까지 중학교에서 6년 동안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봉직을 했다. 내 병이 그런 식으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병원과 전문의사를 신뢰하며 그들의 처방에 따라왔다. 마지막으로 나를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사랑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가족, 특히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나를 지탱시켜 준 힘이었고, 그들과 다른 많은 이들로부터 내가 받은 사랑 또한 큰 힘이 아니었던가 싶다. 사랑이야 말로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글 / 문경애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3동 |
첫댓글 어쩌면 파-우들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을 미리 경험한 것 같은 두려움과 안도감이 교차 하네요. 그렇게 되기 전에 속히 좋은 치료약이나 더 간단한 수술법이 빨리 개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절실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9년간의 치열항 역사군요! 또한 인간 문경애 선생님의 인간승리입니다. 저는 아직 11년차이니 희망을 갖어도 되겠네요. 문선생님의 고군분투에 힘찬박수를 보내며 우리 다시 한번 화이팅 합시다.
정말 기적이로군요,기적이라는것,이때 쓰는단어 기적아닌가요?모두들 수술하시어 그리 성공이보장된다면 얼마나좋갰읍니까? 희망적이며 또한 파병을 잘보는의사님들이 지방도 같으다는것을 증명해낸것이라 더욱 반갑습니다.유혹이 됩니다,
25년간의 눈물나는 투병생활~~! 잘 견뎌내시고 수술결과가 좋으셔서 새 삶을 영위 하실 수 있게됨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좋은일만 있으시길 빕니다 .
정말 장하세요. 누군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또 누군가 한 사람으로부터라도 진실한 사랑을 받는 사람은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문경애님과 주변 모든 가족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아름답고 평안한 삶을 누리기시길 기도할게요.
문경애씨의 "사랑은 기적을 부르고 라는" 라는 제6회 투병문학에서 최우수 뽑힌 글이였답니다 . 그녀의 27년 간의 파병 투병생활을 실제로의 경헙담 을 감동깊게 쓰셨어요 . 파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이죠 투병생활을 읽어보면서 공감대가 너무 커서 저도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답 니다 . 사실 이책은 지난번 분당 모임에서 주마등씨께서 저에게 주시면서 읽을 분이 계시면 돌려가면서 보면좋겠다고 했었습니다. ,3진옥씨 혹시 주소를 알여 주시면 책을 부쳐드리겠습니다.. 그다음은 보실분이 게시면 돌려 주시던지 하시구요 책은 저에게 다시돌려 주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졍말~정말~어렵고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파킨슨병이 아닐수 없는데도 불구하구 저~멀리~떠나보내고 기적을 일으킨 문경애씨께 멀리서나마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내고 싶으네여!정말,,,,추카!축하!드려여!이제부터는 아름다운 날들로만 언제나 화이팅!! 홧팅!!!!하세요,~~^^~~^^**^^~~
수술을 받는 모든 분들에게 이 문경애씨와 같은 일만 일어난다면 좋겠어요. 이라한 일들이 이 분을 둘러싼 모든 분들이 힘을 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 말대로 사랑이 기적을 만들었군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축히합니다 ^-^ 새삶을 찾는 문경애님 더욱 건강 다지시길...
작년 겨울쯤이었죠? 동아일보에 실려있던 문경애씨의 건강해뵈던 모습 거실에 신문을 펼쳐놓고 그위에 화분갈이를 하던 모습이었던거 같습니다 그걸 보면서 아~~~차라리 수술하는게 났지않을까 생각과 지금보다 더 심해지면 저런 방법으로 편해질수 있겠구나 하는 한가지 희망으로 그리고 파킨슨병 머 그리 힘든것도 아니네 하는 희망도 가졌었지요 지금도 건강한 모습이라 생각해보며 우리에게도 기적같은일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을거란 꿈과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땐 책을 읽어볼 생각을 못했던거 같습니다 신문으로 충분히 파악했다 여겼기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오랜시간을 투병해온 문경애씨의 투병기가 궁금해져 어제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답니다.
엄마의 치료를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자극술을 생각하며, 두렵고 망막했는데 이글을 읽고나니 희망이 생깁니다. 또 수술을 하시지 않고도 나을수 있는 좋은 치료약이 개발되길 또한번 바라게 되네요..도움되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25년동안에 고난과 역경속에서 긴투병을 이겨내시고 현대의학의 놀라운 힘과 사랑의 힘으로 승리하신 문선생님의 수기가 많은파~우분들과 저에게 희망을 안겨주셔서 감사드리며 지금예후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정말로 감동이엇습니다 우리파병 아푼사람들에 희망이 보이네요.. 며칠전에 tv탁터스에서도 수술과정을 보았는데 너무무섭고 두렵긴합니다..그래도 조금씩 희망이 보이니 힘내야 하겠지요...글 올려주신분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 께서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뇌심부 자극수술을 하였습니다 윗글 내용과 너무나 비슷함을 느낌니다 저희 어머니께서수술 하기 전에는 모든것을 포기 상태였습니다 어머님은 어머님데로 가족은 가족데로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 이었습니다 수술후 지금은 기계를 조정 하고 있는 단계지만 많이 호전되어 혼자서 운동도 하시고 간단한 집안일도 하고 계십니다 집안에 다시금 웃음이 피어 나고 있습니다 파병 환우님 희망을 가지십시요
축학드림니다 그동안 고생하며 살아온 날들이 격어보지 안은사람은 상상조차 하였겠습니까 그렇지만 으료기슬의 발달로 드듸어 회망을 찿으셨네요 지금 병마와 싸우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회망을 주시는 글을 올려주신 문경애님의 앞날에 더욱 건강하셔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