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장례를 치른 지가 2년이 되었어요”라고 말하면서 마릴린은 흐느껴 울었다. 로버트 슐러 박사는 그녀의 남편이 죽기 전에는 그녀가 얼마나 활동적으로 클럽 활동을 하였는지 기억한다. 남편의 장례식 동안에도 그녀는 너무나 크고 강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 여인과 목사님을 남기고 조객들이 모두 가버린 후 교회당 안은 엄숙한 순간처럼 정적이 흘렀다. 그 긴장이 풀어진 순간 그녀는 차디찬 시체 위에 쓰러져 통곡하였다. “오 여보, 당신에게 화를 내고 밤에 혼자 내버려 두었던 일, 정말 미안해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어요. 용서해 주세요. 제발.” 그녀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으로 흐느껴 울었다. 벌써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녀는 자기 자신을 정죄하고 있었다. “자매님, 자신을 용서해 주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로버트 슐러 박사는 그녀의 상담에 응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가 반문했다. 나는 그녀가 자기 남편의 관위에 엎드려 고백한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하였나요?” “슬픔 안에는 언제나 죄의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매님께서는 슬픔을 달래었습니다. 이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어리석은 짓이지요. 파괴의 채찍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정죄하고 증오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십시오. 다시 생기를 가지십시오!” 기도의 권능이 제 힘을 발휘하였다. 그녀의 죄의식은 없어지고 그녀는 다시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고 활동적인 일꾼이 되었다.
당신이 지은 죄로 인한 죄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히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길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십자가 보혈로 임한 평화 본문 : 골1:20
인류에게 참 평화는 어떻게 왔습니까? 평화의 통로는 어떻게 하여 열린 것입니까? 이 명제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온 것이며, 그가 이룩한 평화는 땅의 평화 뿐만 아니라 땅의 것들과 하늘의 것들이 함께 누리는 평화이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우주적 평화이고 본질적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은 이 평화에 대해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탄생과 평화의 소식(눅2:14)
1)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후, 제사장에 의해 선민으로서 명맥을 유지해 오던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사명은 거의 소멸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탐욕과 위선과 독선으로 타락하게 됨으로써 초래된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때를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때였습니다(갈4:4). 그것은 구속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새로운 전개이고, 인류의 구원을 더 이상 지체하실 수가 없으셔서 가장 결정적인 처방을 내리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행위였던 것입니다(요3:16;요일4:10).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평화에 대한 계획이고 인류를 향한 평화의 위대한 선포였습니다.
2) 하늘에 영광, 땅에 평화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고 노래했습니다. 독생자의 오심은 바로 전인류에게 선포된 평화의 소식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인류의 삶 속에서 진정한 평화의 노력이 시작되었고, 평화의 개념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는 데서 오는 평화로서 먼저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다음에 자신 안에서의 평화, 그리고 이웃과의 평화와 자연과의 평화가 이루어 지도록 하는 본질적인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그것은 평화의 왕(사9:6)의 탄생이며, 죄악으로 혼돈하고 탐욕으로 분쟁하는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평화 선언이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대속과 평화의 기반(엡2:13-19)
1)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가 어떻게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그가 인류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의 속죄양으로(요1:29)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세상에 평화가 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골1:20). 즉 그의 대속의 은혜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의 평화를 가능케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의 피가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원수된 것을 폐하고 화평으로 하나를 만들었으며(엡2:11-15), 이 세상의 온 인류를 그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신 것입니다(엡2:16-19).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화목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창3:14-19). 따라서 인간의 속죄는 하나님과 화해뿐 아니라 자연과 화해도 가져 옴으로 우주적 평화의 기반을 마련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 그것은 세상에 평화를 창조하는 위대한 권능입니다.
2) 버림 받음으로써 얻어낸 인류의 평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주적 평화를 창조해냈다는 구속사적 의미는 그가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 고통 속에서 그것을 얻어냈다는 데에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하고 외친 그의 마지막 절규가 그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 버림받은 자의 절규 속에 인류의 모든 증오와 탐욕과 오만과 편견의 독소를 제거하는 신비로운 권능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를 대신해 버림받는 그 위대한 사랑을 통하여 그는 이 평화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얻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영원한 평화의 기반을 이 세상에 구축한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그리스도의 고난 평화의 기반을 이 세상에 구축한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다가오는 것입니다.
3. 성도-그 영원한 평화의 사도들(암5:24)
1) 평화의 사도로 소명된 성도들 그리스도는 그의 산상수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6)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평화의 사도로 소명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나 화평을 도모하는 자이어야 한다는 이 말씀은 또한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자녀들인 성도들을 평화의 사신으로 온 세상에 파송하셨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를 구원시킨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것은 성도로 하여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에서 거짓의 아비(요8:44)로서 참소하는 자(계12:10)이며, 살인자(요8:44)이며, 대적하는 자(살후2:4)이고, 의의 원수(행13:10)이며, 다툼을 일으키며(약3:14,15), 전쟁을 도발하는 자(계16:14)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사단의 세력을 이기고 이 세상에서 평화를 창조해 내는 사명자로 소명되고 파송받은 자라는 사실을 재인식하여야 합니다.
2) 평화의 창조자로서의 성도 탐욕과 악의와 오만은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을 가져왔습니다. 이때까지 이 지구상에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국가나 사회 또는 정치적 제도는 없습니다. 성도는 정의가 힘 있는 자와 가진 자의 논리를 대변하고, 공법이 억눌린 자들을 외면하는 삶의 정황 속에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성도가 평화의 사신으로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려면 피 흘리고 버림 받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 희생과 헌신 없이 평화는 어디에도 이룩되지 않습니다. 참된 평화는 피 흘리고 버림 받는 십자가 아래서 피어나는 사랑의 금자탑입니다.
결론 위에서 살펴본 대로 평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왔고, 성도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거룩한 평화의 사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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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평화로운 은혜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