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0KYapyRhjqM?si=K2jjSHK4I9S4GNVd
( Beethoven-String Quartet No.1 in F major op.18-1)
이른바 베토벤 마니아들은 17개의 현악 4중주 작품번호(Opus)를 모두 외우고 있다. 그 숫자들은 18, 59, 74, 96, 127, 130, 131, 132, 135 그리고 다시 약간 앞으로 가서 133으로 끝난다. 그 개수를 세어보면 17개가 아니다. 왜냐하면 작품번호 18에는 6개의 작품이 들어 있고, 59에는 3개의 작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숫자들을 애써 외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베토벤 현악 4중주라는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당신의 지적 욕망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외워지게 될 테니까. 물론 숫자는 의미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을 안내해주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우선 18이라는 숫자는 베토벤 ‘초기’ 현악 4중주 6개의 작품번호(Op.18)다. 현악 4중주를 입문하는 학생들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곡들이지만 당신은 아마도 특별한 것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얼핏 들어보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즉 고전파 현악 4중주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과 동시대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베토벤 특유의 ‘혁신적 감각’을 여기서도 조금은 엿볼 수 있다는 것.
간략하게 각 작품을 연주해본 느낌을 달아보겠다. 주관적일 수도 있으나 곡 해설이나 분석이 아닌 순수한 느낌을 말해주고 싶다.
Quartetto Italiano - Beethoven, Complete String Quartets
Quartetto Italiano
Paolo Borciano, violin
Elisa Pegreffi, violin
Piero Farulli, viola
Franco Rossi, cello
1967-1975 Swiss
No.6(Op.18-6) ‘멜랑코리아’ 4악장이 매우 슬픈 ‘멜랑코리아’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곡이다. 왜 이 작품까지를 초기라고 부를까? 절대 어렸을 때 작곡한 곡들이라서가 아니다. 이 6곡 이후, 러시아의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의뢰받은 7번을 작곡하기까지 긴 세월의 공백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며 스타일이 크게 변하기 시작한다.
No.7(Op.59-1) ‘라주모프스키 1번’ 매우 어렵고, 매우 길고, 매우 파격적인(2악장) 곡. 연주자가 베토벤을 가볍게 여기고 이 곡을 건드렸다간 큰코다치기 쉽다.
https://youtu.be/ehjc3ZOQBxk?si=WbLmXL-uWP0MuxIf
( Beethoven-String Quartet No.7 in F major op.59-1 "Rasumovsky")
처음에는 중기가 가장 좋다. 초기처럼 단순하지도 않고 후기처럼 어렵지도 않으며 나름대로 재밌고 베토벤의 혁신적 기법이 톡톡 튀기 때문이다. 이제 걸작 중의 걸작 ‘후기’로 들어가 보자.
9번 교향곡만을 듣고 베토벤이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것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경지를 느껴보지 못한 경우인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9번 교향곡 이후에 작곡된 6개의 현악 4중주 때문이다. 선배 작곡가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던 바그너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과 6개의 후기 현악 4중주만큼은 인정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후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베토벤을 위대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것이 베토벤의 작품인가를 의심하기도 하며, 더욱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17번인 ‘대푸가’는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음악에 익숙해진 20세기 음악인들까지 그 난해함에 놀란다. 아기를 위한 태교음악을 찾는 사람이나 차분한 클래식 음악을 즐겨보려는 사람에게는 절대 권하지 말아야 하는 곡이다. 하지만 이런 파괴적인 곡만 있는 것이 아니다.
13번의 ‘카바티나’ 악장은 현악 4중주 중에 가장 매력적안 악장이며, 14번의 스케르초는 너무 재밌다 못해 폭소를 터뜨리는 부분도 있다. 15번의 일명 ‘감사의 노래’라고 불리는 매우 느린 악장이 있는데, 합창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함께 베토벤의 대표작으로 꼽는 사람도 많다. 믿겨지는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No.12(Op.127) 아주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찬 낭만 현악 4중주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곡이다. 하지만 다른 곡들의 위대함에 좀 눌리는 듯하다.
String Quartet No.12 in Eb major, Op.127
1. Maestoso - Allegro
2. Adagio, ma non troppo e molto cantabile - Andante con moto - Adagio molto espressivo - Tempo I
3. Scherzo. Vivace
4. Allegro - Allegro comodo
No.13(Op.130) 6악장짜리 곡인데 ‘사랑스런 4중주’로 불릴 만큼 전체적으로 예쁜 곡이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5악장 카바티나는 정말 소름이 끼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 악장이 충격적이고도 이상한 ‘대 푸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판업자와의 피할 수 없는 마찰로 인하여 좀 더 가벼운 악장으로 다시 쓰여졌으며 대푸가는 17번으로 독립했다. 그래서 CD를 사면 보통 13번과 ‘대 푸가’가 함께 들어 있다.
No.15(Op.132) ‘병이 나은 자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라는 긴 제목의 3악장은 길이도 무려 20분으로 길다. 이 곡을 이어폰을 꽂고 듣고 있으면 눈이 멍해지면서 허공을 응시하게 되고 눈썹이 찡긋해지면서 돌아온 날들을 생각하게 된다. 또 마지막 악장은 원래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위해 작곡되었던 곡으로 그에 버금가는 감동이 있다.
심원한 경지를 보여주는 12번부터 16번에 이르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 다섯 곡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15번이다. 선율이 쉽게 귀에 와 닿고 서정적인 부분이 많으며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 곡은 12번, 13번과 함께 러시아의 귀족 갈리친 공작을 위하여 작곡한 것으로 1825년의 작품이다.
곡은 모두 5악장인데 3악장 몰토 아다지오에는 ‘병에서 회복한 자가 하느님에게 감사하는 성스러운 노래’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2악장까지 완성한 후에 병으로 작업을 중단했던 베토벤이 그 병을 극복한 다음 3악장부터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착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에서 회복한 베토벤의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이 절실하게 토로된 감동적인 음악이다. 인생을 깨달은 자기 내성적인 관조가 잘 표현된 이곡에 대하여 로맹 롤랑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 그의 인간성이 가장 깊이 스며 있는 작품이다.”
No.16(Op.135) 베토벤의 너무나도 심오하며(?) 해석 불가능한 질문과 답변이 있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 한다.” 바로 이 곡의 4악장이 이 유명한 문구가 적힌 멜로디로 시작한다. 베토벤 자신의 작품세계에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소문처럼 가정부에게 밀린 월급을 줄까 말까에 대한 결정이었을까?
No.17(Op.133) ‘대 푸가’ 이 괴상하고 시끄럽고 난해한 곡은 앞서 말했듯이 13번의 마지막 악장이었다. 한 개의 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가 무려 15분이 넘는다. 시작부터 연주자들의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5분 연속 포르티시모!! 이곳을 통과하면 이번에는 3분짜리 피아니시모를 연주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음악 사상 유래 없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돌진하는데…. 스트라빈스키가 이 곡을 “영원히 현대적인 곡”이라고 했을 만큼 충격적인 기법들로 가득한 이 거대한 곡에 대해서는 후에 별도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들, 이것의 위대성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아직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정리 : 라라와복래 글쓴이 : 라라와복래
https://youtu.be/mWW7vuSBqvM?si=5VL7aVS2EO_mYNTg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op.135 | 아마데우스 콰르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