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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희 기자 / 사진 서경리 기자 다른기사 보기
행복 천재란 어떤 사람인가요.
“행복에 대한 자기 나름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에요.”
“인간은 모두 이론가다. 우리는 각자의 이론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굿 라이프》 속 문장에 진하게 밑줄을 그었어요. 행복에 관한 자신만의 이론이나 기준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양한 사람과 접촉을 늘리는 게 필요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어봐야 뭐가 좋고 안 좋은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야 삶의 다양한 양태를 알게 돼요. 그만큼 행복한 삶에 대한 선택지도 넓어지죠.”
책이나 영화 같은 간접 체험도 도움이 되겠어요.
“그럼요. 책이나 영화, 드라마도 굉장히 좋은 소스가 될 수 있죠. 여행도 중요한 체험입니다. 다른 문화권에 가면 얼마나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지 알게 되잖아요. 자신에게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느끼면 불행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저 나라에 가서 저런 삶을 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훨씬 적극적으로 살게 되죠.”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하는군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고 필요하죠. 자신의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구별해내려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봐야 해요. 그런데 진짜 의미는 외부에서 발견할 때가 많아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통찰은 외부에서 옵니다.”
행복하려면 시간과 공간, 사람의 변화를 주라는 조언도 새로웠습니다.
“심리학의 ‘마음 심(心)’ 자 때문에 생기는 오해를 말해야겠군요. 일본에서 ‘물리(physical)’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심리(psychology)’라고 번역을 한 건데, ‘심(心)’이라고 하니까 내면에 대한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심리학은 인간 행동을 주로 연구하거든요. 심리라는 개념에는 물론 마음가짐도 들어가지만, 우리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옆에 있는 사람이에요. 누구를 만나는가가 중요하죠. 또 어떤 공간에서, 언제 하는지도 빼놓을 수 없고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행복해지는 건 아주 단순한 비결이에요. 하지만 이런 걸 전부 무시하면서 나쁜 환경에서도 마음 잘 먹는 것을 강조하고, 나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견뎌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행복이 너무 어려운 거죠.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공간을 바꾸고, 사람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쉬운 길을 두고 너무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 것 같아요.”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 아니군요.
“그렇죠. 마음가짐을 아무리 바꾸려 해도 안되니 자기 비하를 하기 쉬워요. 더 불행한 상태로 몰아갈 확률이 크고요. 보통 우리 선택지에는 마음 바꾸는 것만 있고 공간과 사람을 바꾸는 것은 없어요.”
둘 중에서 굳이 우열을 둔다면요.
“저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관점이 안 먹혀요. 동양사상과 맞물리면서 의지의 문제, 태도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바람직한 사회는 내가 굳은 결심을 안 하고 그냥 살아도 행복한 사회잖아요. 환경이 아름답게 잘 보전돼 있고, 범죄 없고, 학교가 민주적이고, 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면 행복하겠죠. 외부 환경이 엉망인데 마음만 잘 먹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꼭 한국 축구 같아요.”
학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코로나 이후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이 급증했더군요.
“아이들 불안지수가 많이 높아졌어요. 전 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 중심으로 완벽지상주의가 강해지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완벽지상주의의 첫 번째 증상이 불안이거든요. ‘내가 지금 엄마의 기대대로, 사회 기준에 부합하면서 잘하고 있나’ 식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해요. 불안해질 수밖에요. 사후 상담은 응급 처방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자식을 불안하게 하는 부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겠어요?
“첫째,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믿으세요.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탄력적이고 강한 존재입니다.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못 갔다고 부모의 걱정만큼 불행을 느끼거나 좌절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우연을 만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거든요. 아이들에게 내재된 놀라운 능력을 믿으십시오. 둘째, 아이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바라보세요. 아이의 인생은 아이 인생이고, 부모의 인생은 부모 인생입니다. 물론 부모로서 지원하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은 해주되, 아이와 나의 인생은 별개라는 인식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숨기려 하지도 않는 태도도 필요해요.”
교수님도 두 아이의 아버지죠.
“저는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운동과 긍정적인 마음가짐. 체력이 좋으면 그 에너지가 마음으로 오기 때문에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어요. 공부 습관은 없어도 운동 습관을 잘 들이면 평생 잘 살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마음은 인생을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바탕이 됩니다. 다행히 두 아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면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삶에 지친 이들에게 흔히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위로를 건네곤 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는지요.
“(한참 뜸 들이다) 글쎄요. 질문 자체가 좀 위험해요. ‘행복’ 대신 다른 말을 넣어보죠. 뭐가 어울릴까요?”
음… 사랑?
“우리는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지, 꼭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닐 수 있어요. 저 자리에 무슨 말을 넣어도 저항을 느낍니다. 종의 차원이라면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는 맥락의 답변이 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사랑’이나 ‘행복’은 그걸 위한 수단이 될 거예요. 결국 이 문장은 진화론적으로도 안 맞고, 한 개인의 삶으로 봐도 맞지 않아요. 불필요한 논쟁을 낳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는 어떤가요. 부자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데, 이에 대한 연구 결과도 궁금합니다.
“일반화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걸 전제로 말해볼게요. 돈이 많으면 물론 좋은 점이 많죠. 이 부분은 대체로 알고 있으니 여기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돈이 지나치게 많으면 삶에 위험 요소가 생깁니다. 우선 ‘나 혼자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누군가와 함께 일하다가 안 맞으면 ‘꼭 당신이 아니어도 돼’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을 대체 가능한 존재로 보는 거죠.”
부자의 덫이군요.
“또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면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에 둔감해져요. 기대 수준이 높다 보니 이 정도의 케이크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거죠. 돈이 행복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건 맞지만,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지난해 창업한 ‘굿라이프랩’에 대해 여쭙니다. 행복연구센터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한데, 어떤 마음으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교수 창업의 길을 걷게 됐나요.
“하하. 그러니까 말입니다. 기존 연구소에서 하는 행복교육 프로젝트를 기업이나 개인으로 확대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행복은 개인뿐 아니라 회사의 퍼포먼스와 밀접합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면 좋은 성과를 못 내는 것처럼, 회사원의 마음 상태는 아웃풋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요. 저는 행복을 ‘멘탈 컨디션’으로 정의하는데요,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야 집중이 잘되고, 사람들의 말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고, 이해심과 관용이 커집니다. 반대로 마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냉소적이 되면서 고객과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커지죠. 일은 일이고, 행복은 행복이라는 도식을 깨야 해요. 행복은 노력의 대상이자 투자 대상이라고 인식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입니다.”
행복이 투자 대상이라는 걸 입증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요.
“우리 랩에서 행복 검진도구 ‘마음충전소 베터리(betterly)’를 만들었어요.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다섯 가지 영역(심리·사회·신체·경제·커리어)으로 나누고 그중 무엇이 많고 적은지를 측정한 후 총평을 해줍니다. 지난해 이 도구를 가지고 임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그중 점수도 높으면서 각 영역에서 긍정성이 괜찮은 세 분이 있었는데, 두 분은 연말 인사에서 사장이 됐어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회사에서 인정받고 일도 잘합니다.”
교수와 사업가는 다른 자질을 요구하지요. 스타트업 CEO로서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날 것 같습니다만.
“초보 CEO로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교수이자 학자로만 지내다 보니 사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어요. 스스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오만했다고 느낍니다. 그동안은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 등 동질 집단 속에서 큰 갈등 없이 지냈는데, 사업을 해보니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아요. 심리학자로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면을 잘 몰랐구나 싶기도 하고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요. 서울대생 300명을 대상으로 무려 50년에 걸친 ‘행복종단연구’. 그 결과를 보려면 장수해야겠습니다(웃음). 지금 시점에서 슬쩍 중간평가를 한다면요.
“시작한 지 10년 조금 넘었는데, 대상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막 사회로 진출한 단계입니다. 이 사람들이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까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죠. 앞으로 5년 후에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미리 김을 좀 빼자면, 결과가 되게 평범합니다. 하버드대에서 80년 이상 행복종단연구를 하고 있잖아요. 시간도, 돈도 많이 투입했는데, 결과를 보면 뻔합니다. 행복이라는 게 그래요. 원칙을 지키면서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마 드라마틱한 결과는 안 나올 겁니다.”
행복연구센터 내부를 나무로 꾸민 이유를 알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행복이란 환상적인 핑크빛이나 보랏빛보다 옅은 갈색에 가까운 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깜짝 놀랄 만한 좋은 일이 팡팡 터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기보다 일상에 스민 기분 좋은 느낌. 돌아와 최인철 교수의 《아주 보통의 행복》을 다시 읽어본다. 너무 평범한 문구라 스치듯 읽었던 부분이 매직아이처럼 입체로 도드라져 보이며 새롭게 읽힌다.
“나는 보통주의자가 되었다. 드라마 같은 행복, 예외적인 행복, 미스터리한 행복의 비법을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 진정한 행복은 아주 보통의 행복이다. (중략)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다. 딱 그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최인철 교수가 말하는 ‘품격 있는 삶’
1.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삶
2. 여행의 가치를 아는 삶
3. 인생의 맞바람과 뒷바람을 모두 아는 삶
4. 냉소적이지 않는 삶
5. 질투하지 않는 삶
6.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7.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삶
8. 가정이 아름다운 삶
9.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
10.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