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날카로운 직선보다는 온화한 직선, 일방적인 한방향의 직선보다는 포용적 곡선, 생성과 소멸을 포괄하면서 순환적 역동성을 주는 아래 그림이 더 좋게 다가오네요.
올해 봄에 있었던 단색화전에 출품됐던 이우환 선생의 1976년작, 1974년작 그림입니다. 사진이 선명치 못해 좀 아쉽지만, 참고 삼아 올려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우환(1936- )은 1968년부터 시작된 모노하(物派)의 실천과 이론의 선구자로서, 그 당시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71년 일본에서 출판된 이우환의 미술평론집『만남을 찾아서』는 우리나라에『만남의 현상학 서론』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당시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우환의 이념은 비록 그 방법론은 다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미학의 근저를 이루며, 그의 예술은 '만남'의 현상에서 다의적인 접근과 시도로 일관되어 왔다.
작가가 1973년에 시작한 <점으로부터> 연작은 이내 <선으로부터> 연작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의 회화의 모태라 할 '점'과 '선'이 어떻게 그의 회화의 기본적 어휘가 되었을까?
그는 "내가 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며 그 당시 떠돌이 환쟁이가 우리 집에 놀러와 그 사람으로부터 서예와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우주 만물은 점에서 시작하여 점으로 돌아간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동양의 전통 조형 수단인 서예와 그림에 눈을 뜬 그가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택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우환의 작품을 특징짓고 있는 것은 명쾌한 논리성과 그 못지않게 명쾌한 개념이다. 그는 그가 그리려고 하는 그림에 대한 명확한 관념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찍히는 점 하나하나가 그 관념의 구체적인 표현이 된다.
<점으로부터>(1976)는 이러한 그의 회화적 완성의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필선이나 운필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점'과 '선'의 바탕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그의 회화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의 감정의 표출이라든가 화필의 움직임은 '시간의 리듬'이라고도 할 정연한 지속성을 만나면서 정적과 흐름을 동시에 보여준다. 처음에 짙게 찍힌 필치는 일정한 리듬에 따라 차츰 희미해지며 끝내 사라지고 그것은 이내 되풀이 된다. 또한 시원하게 밑으로 내려오는 획은 스스로 소멸하듯 자취를 감춘다.
이 작품은 작가연구와 한국 현대미술의 원전을 보여주는 미술사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그린다'는 행위성의 등장을 예고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작가의 초기작으로 희소성이 매우 높다.
※자료: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