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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모음 스크랩 순교자 가정이 지하에서 드리는 성탄예배!
아니마민 추천 0 조회 5 09.12.08 16: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순교자 가정이 지하에서 드리는 성탄예배!

 

 

북한은 해방 전부터 복음이 왕성했던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이 황무하여 폐허로 가득해 장송곡이 울려 퍼지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7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어둠 가운데 감추었던 믿음의 빛을 드러내셨습니다. 순교의 피를 뿌리며 5대째 믿음을 지켜오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그 성도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성도들이 오늘도 주님을 예배합니다. 성도들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도 주님을 예배하고자 합니다.

 

내래 네 살에 강을 건넜었는데...

 

70년이 지나 이곳에 다시 오다니... 그 때도 차가운 겨울이었는데...”
진선(가명) 할머니는 일제시대 할아버지를 따라 부모님과 함께 고향인 평안북도 선천군을 떠나던 때를 떠올리며 독백처럼 읊조리더니 조용하게 말을 이어가셨다.

 

“중국에서 아들과 함께 목회를 하셨던 할아버지는 해방되기 직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이했지요. 중국에서 목사의 신분으로 돌아온 아버지도 12월에 평안북도 00군에서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맡아 담임했던 교회는 00군에서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3년이 지났을 때 ‘김진명(가명)목사는 반동이니까 잡아들여라’는 비밀전문이 중앙으로부터 왔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평양시내로 피신해 3개월 동안 계셨어요. 그 때 마침 신탁통치로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에 의해 정치전면에 나서서 혁명을 이끌던 김일성과 뜻을 같이했던 강양욱 목사를 만나 회유를 권유받았습니다.”

 

연로하심에도 말을 낮추지 않으시고 계속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가 그 말에 응하지 않으니까 강양욱은 ‘당신 일주일에 토요일 주일 이틀은 교회 일을 보더라도 5일은 정치하는 일에 봉사해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아버지가 단호하게 거절했는데도 강양욱은 계속해 조직활동을 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로 이주를 하였고 그 곳에서 김익두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김목사님은 아버지에게 남산교회를 담임하도록 하였고 시무하던 중 1950년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잠깐 숨을 돌리시며 어두운 얼굴로 계속 말씀을 하셨다.
“이 때 해방 후 북한을 집권한 공산당에 의해 많은 괴로움과 시달림을 당했던 성도들이 대거 남한으로의 피난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공산군에 잡혀 신의주로 압송이 되어 감옥에 갇히셨습니다. 곧이어 어머니도 잡혀 가셨습니다.”

 

쪼글쪼글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은 눈에 고인 눈물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 순간 만큼은 할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어머니가 감옥에 끌려가 힘들었던 소녀로 앉아 계셨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여쭙자 입술이 바르르 떨리더니 주루룩  눈물을 흘리셨다.

 

붙잡혀간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는 5개월 동안 감옥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어머니를 보았을 때 정말 끔찍했습니다. 얼마나 고문을 심하게 받았는지 열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다 빠지고 오른 손의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이 한 마디씩 잘려 나가 있었습니다. 매일 거꾸로 매달아서 물을 먹이고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인으로 지킬 것은 지키고, 말할 것은 하고, 하지 말 것은 안했던 어머니가 당당한 대장부 같아 자랑스러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도 많이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계속 말씀을 이어 가셨다. 
“아버지는 7개월 동안 조사를 받은 후에 재판을 받아 10년형을 받고 당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가셨습니다. 그 당시에 평안북도 창성군 대위동에 금광이 있었는데 거기 있는 정치범 교화소에 가셨습니다. 저는 어려서 갈 수 없었고 어머니가 한 달에 한번 씩 면회를 가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이송되어 더 이상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석방된 후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는 아버지 소식마저 들을 수 없게 되자 앓아 누우셨습니다. 어린 저는 3명의 동생을 돌보아야 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저희 4남매를 불러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선아! 너에게 얘기해 줄 것이 있단다.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유언을 하시는 어머니는 힘을 다해 나의 손을 붙잡으셨습니다.
‘네 아버지가 잡혀갈 때 함께 붙잡혔던 청년이 있었는데 혹시 그 청년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그가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찾아갔었단다.

 

이미 집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냥 돌아오는 것이 허전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되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문을 열어보고 기절할 뻔 했단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수염까지 기른데다 얼굴이 허연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고 있더구나. 그 사람이 바로 네 아버지가 잡혀 갈 때 같이 끌려간 청년이었어. 그 사람에게서 정치범 교화소에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게 되었단다.’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힘을 모아 청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청년이 들려준 아버지의 순교

 

‘교화소에 잡혀 온 150여명의 사람들 중에는 몸이 아파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고 고문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댄다. 아버지는 전문적인 의학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공부해 진맥도 잘하고 한방처방도 잘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감옥 안에서도 고통당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복음도 전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아버지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많은 사람들이 치유함을 받았댄다. 마침 교화소를 관리하는 관리계장이 죽을병에 걸려 힘들어 하자 사람들이 그를 아버지에게 데려왔댄다. 관리계장의 진맥을 본 아버지는 그에 맞는 약초처방을 하고 기도해 주었댄다.

 

그런데 관리계장이 완쾌되는 기적이 일어났고, 뿐만 아니라 성품이 온화하고 매사에 사랑으로 주위 사람들을 돌보는 아버지를 보고 감동을 받은 관리계장은 ‘이렇게 좋은 사람을 어떻게 교화소에 둘수 있겠는가? 김목사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교화소의 수감자들과 함께 아버지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그 탄원서를 받아든 재판장이 수감자들을 다 모아놓고  아버지를 재판장에 세우고 심문하였다고 한다.

 

‘김진명, 네가 아직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그것만 대답하면 석방해 주겠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주셨는데 내가 어떻게 혼자 살아남기 위해 그분을 배반하고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담대한 신앙고백을 듣고 난 재판장은 ‘너는 더 이상 석방의 여지가 없다. 이후로는 말할 이유도 없다.’라고 판결을 내리고 그 즉시 독방에 가두라고 했단다.
아버지가 독방에 갇히고 얼마 되지 않아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미군과 함께 북으로 밀고 올라오면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반공호 속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하였단다.

 

그러다 공산당들이 후퇴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소지품과 짐을 챙기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평소와 같이 사람들은 반공호에 들어갔고 공산당들은 자동 소총으로 150명 전원을 사살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 가운데 그 청년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집에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14살인 나에게 들려주시던 어머니는 갑자기 손을 힘없이 ‘툭!’하고 바닥에 떨어 뜨리셨습니다.
‘엄마! 엄마! 왜 이래요. 엄마~ 엄마 눈 떠봐~~~’
나는 그때 엄마의 몸을 흔들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우리 엄마는 43세의 젊은 나이였는데 4남매 곁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그때의 아픔이 섬세히 나타나 있었고 그 순간들을 잊지 않고 계셨다.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성경이야기

 

시간이 흘렀습니다.
“할머니 옛말 해주쇼!”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부자와 거지 나사로 얘기 해주쇼”
오늘도 할머니는 손자들의 등살에 옛말을 시작합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나라의 어느 마을에 부자인 나사로와 거지가 살고 있었단다.
재산이 많은 부자는 매일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것도 배불리 먹고 살았지. 그런데 큰 집에서 사는 부자네 대문 곁에는 언제나 배가 고픈 거지 나사로가 먹을 것을 얻으려고 앉아 있었단다. 그러나 부자는 배고픈 나사로에게 먹고 남은 찌꺼기만을 조금씩 주면서 ‘야, 임마! 너는 언제까지 우리 집에서 구걸할거야?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테니 그리 알앗!’하면서 구박을 하고 못살게 굴었단다.

배가 많이 고팠던 거지 나사로는 결국 죽었는데 얼마 후 부자도 죽게 되었단다.

 

부자는 죽어서 유황불이 펄펄 끓는 지옥으로 갔단다. 지옥에서 괴로워하던 부자는 자기 집 대문 곁에서 구걸하던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서 예수님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부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자기도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단다. 너무 목이 타니까 그런 거지 나사로에게 시켜서 물 한모금만 마시게 해달라고 사정하니까 천국과 지옥은 너무 큰 골짜기가 있어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단다.”
“할머니 정말 재미있슴다. 또 다른 옛말을 해주쇼!”
손을 잡고 보채는 손자들에게 할머니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살아오면서 신앙을 지켜온 세월이 꿈만 같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힘들었는데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는 지옥과 같은 북한에서 하루 하루 살아온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사의 딸이기에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핍박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결혼했는데 목사의 딸이라는 이유로 10년이 넘게 쫓겨나 혼자 살아야 하는 힘들고 고달픈 생활이었습니다.

 

그속에서도 목숨을 다해 순교하면서까지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세월을 견디고 난 뒤 다시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자식들을 키우며 믿음을 심어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제는 그 자식들이 낳은 손자 손녀들이 어릴 때부터 성경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성경이야기를 듣기 원하는 믿음의 아이들로 자라가고 있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순교하신 아버지가 주고 가신 큰 선물을 기념하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북한성도의 성탄절

 

할머니께 북한에서 지내는 성탄절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니 작년까지 지내온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너희들 모두 할아버지 생일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와야 한다.”
“아~ 참! 어머니, 12월 25일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올해는 할아버지 생신을 어떻게 보낼까요?”
“올해는 예배를 드리고 믿음을 지키다 죽으신 할아버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해주려고 생각중이야...”
진선할머니는 매년 아버지의 생일을 12월 25일로 바꾸어 성탄절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의 사랑을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전하였단다. 가족들과 예배를 마친 후에 이웃들에게 성탄절을 기념하여 준비한 선물을 주면서 “아버지 생신을 기념해 준비한 것입니다.”라며 작은 선물을 준비해 주었다고 한다. 먹을 것도 나눠주고, 중국에서 보내온 옷가지들도 정리해 선물로 주었단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전해주는 말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진짜 공산주의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산주의 할머니’
이것은 바로 사람들이 부르는 할머니의 별명이라고 한다.

 

금년 성탄절에도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사랑을 나눌 것이라고 한다.
‘오늘도 어두운 북한 땅에서 예수의 빛으로 반짝이는 믿음의 빛을 반짝이는 보화인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성도들이 더욱 찬란하게 반짝일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필요한 사랑의 손길을 펴서 저들의 불꽃이 더욱 타오를 수 있도록 불쏘시개를 지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은 70년이 지난 지금 감추인 보화들을 우리 앞에 드러내고 계십니다.

 

모퉁이돌 선교회에 오셔서 북한 성도들을 위해, 작은 도움이나마 주셨으면 합니다...

(홈페이지 접속 후, 맨위 오른쪽 "선교참여" 클릭!)

 

모퉁이돌 선교회 홈페이지 : http://www.cornerston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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