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 년 추석 소회
박래여
2022. 9. 8일 아이들이 도착했다. 이제 시댁은 비었다. 시아버님이 떠난 자리가 넓다. 언젠가 마무리 될 것이라 여겼지만 너무 쉽게 끝나버린 느낌이다. 그동안 두 어른 때문에 안달복달하던 것들이 일시에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아주버님이 제사를 가져갔다. 추석 제사는 지낼 필요가 없다하니 서울 큰댁에 갈 필요도 없다. 그래도 아이들이 명절 음식을 준비했다.
추석날 대구 삼촌네 식구가 온단다. 갑자기 갈 곳이 없다는 동서의 전화가 가슴을 울린다. 아이들이 주문한 추석 선물이 속속 도착했다. 딸은 전복과 생새우를 시키고, 아들은 해창 막걸리와 한우 쇠고기 꽃 갈비, 한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시켰다. 튀김할 것도 챙겨왔다. 두 애가 추석준비를 다 하니 나는 조기와 나물 몇 가지만 했다.
추석날 동서네 가족이 왔다. 전복죽을 끓이고 튀김과 나물을 담아 시어머님을 뵈러 갔다. 시어머님은 여전하셨다. 시아버님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치매가 더 진행 되지도 않고 잘 드신단다. 현상유지만 해도 고마운 거다. 동서 가족과 우리 가족을 다 알아보신다. 표정은 밝지만 말을 못하시니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다. 추석날 면회객이 많아 겨우 십 분 뵙고 왔다.
동서 가족과 추석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손자 둘을 둔 동서 네는 다복하다. 추석 전날이 동서 회갑이었다. 내가 차린 점심을 대접할 수 있어 다행이다. 동서 부부도 시댁에 올 일이 없으니 부부만 추석을 맞이했단다. 회갑 날은 미역국 안 먹는다고 애들과 나가서 외식했단다. 미역국을 끓이고 조기를 굽고 나물반찬에 여러 가지 튀김은 고전적인 생일 밥상이다.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어 좋았다.
동서 네를 보내고 우리도 출발했다. 아들의 학부모가 마련해줬다는 부산 해운데 전망 좋은 호텔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엄마 아버지 삼십 육 년 만에 추석 날 여행 떠나기 처음이네요. 기분이 어때요?’ 딸이 물었다. 시집 온 이래 명절은 고단하고 힘들었다. 명절 대목부터 대가족 삼시세끼 챙길 준비와 손님맞이 준비로 편하게 다리 뻗을 틈도 없었다. 식구들 모두 왔다 떠나고 나서야 친정 나들이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친정 부모님 살아계실 때였다. 친정 부모님이 팔십 초반에 저승 드신 후에는 명절날은 시댁 출퇴근으로 마무리 지었다.
오죽하면 두 애가 엄마를 도와 줄 정도로 자랐을 때는 ‘엄마, 언제쯤 우리식구 끼리만 명절 보낼 수 있을까?’ 투정부릴 정도였다. 두 어른이 오래 사신덕에 우리 부부도 노인이 되었고 지병에 시달렸다. 지난해까지 그런 과정을 겪어왔다. 명절 음식은 두 아이들이 와서 했다. 시댁에서 명절음식 하던 것을 이태는 우리 집에서 만들어 시댁으로 날랐었다. 대가족 이삼일 먹는 고전적인 음식은 내가 했지만 특별 식은 동서가 준비해 왔었다. 명절나기 쉽지 않았다. 돈도 많이 들고 힘도 들었다. 시어머님이 자리보전한 지난 3년 대구 동서가 많이 도와주었다.
지난 8월 26일 시아버님께서 소천 하셨다. 요양병원에서 넉 달은 우리에게도 참 힘든 시기였다. 요구사항도 많으셨고 집에 오시고 싶어 했다. 계속적인 수혈을 하면서도 건강해지길 바라셨다. 노인의 마지막이 힘들 줄 알았지만 참 쉽게 가셨다. 중환자실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떠나셨다. 허망했다. 노인이 인삼을 장복하면 명이 빨리 안 떨어져 본인도 자식도 힘들다 했지만 시아버님은 너무 쉽게 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온 가족이 모였다 헤어진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두 아이 덕에 정신없이 보낸 명절이기도 하다. 밤바다를 거닐며 사람들 물결에 휩쓸려 화려한 도심을 거닐었고, 소문난 맛집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봤다. 명절 연휴가 대목인 사람들, 가족과 나들이를 나와 외식을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도심의 바닷가, 밤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파도타기를 하며 마음껏 젊음을 누리는 사람들도 봤다.
다시 집이다. 끼니마다 두 애가 차려내는 특별 식으로 포만감에 허덕였다. 행복이 별 거 아니라고 하던가.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보내는 추석 연휴가 내겐 행복이다. 며느리 자리에 묶여 살았던 세월이 끝났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명절 뒤끝이면 늘 시댁뒤처리와 병치레 하는 두 노인을 돌봐야 했다. 우리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도 없이 아이들이 떠나곤 했었다. 앞으로는 우리 가족만의 추석이 길어지지 않을까. 이젠 우리가 노인이 되어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
2022. 9. 13일에 아들이 가고, 9. 15일에 딸이 갔다. 시아버님 세 번째 49잿날이었다. 절에 가서 재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고 집에 왔다. 집안이 텅 빈 것 같다. 농부와 마주앉은 밥상머리가 허전하다. 명절 일주일 사이 기름진 음식 덕에 살이 올랐다. ‘난 왜 먹는 게 모두 살로 갈까. 당신은 나보다 잘 먹는데도 살이 더 빠진 얼굴이네. 이건 참 불공평하다. 당신과 내 체질을 바꿀 수는 없을까?’ 툴툴거리자 빙긋 웃는 농부의 얼굴에도 나이티가 선명하다. 갑자기 우리 부부가 폭삭 늙어버린 것 같다.
앞으로 몇 번의 추석과 설을 보내게 될까. 우리 차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