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락의 발람 초청[민 22장]
[내용개요]
본장은 모압 왕 발락이 궤계로써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려고 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이 모압 병지에 도착했을 때, 모압 왕 발락은 이방의 복술가 발람을 초청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다(1-6절). 발람은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심으로 거절했으나, 예물을 탐내 억지로 하나님의 허락을 얻고 발락에게로 향하였다(7-20절). 그러나 도중에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 발람의 탐욕을 책망하고 당신이 주시는 말씀만 이르도록 명하셨다(21-41절) .
[강 해]
본장에서 25장에 이르기까지는 이스라엘이 모압 평원에서 요단을 건너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시험을 받아 크게 실패하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단을 눈앞에 두고 긴장을 푼 이스라엘은 생각지도 못하게 음행의 유혹을 받고 범죄 하여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본문은 그 서론격으로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 이방 술사 발락을 초청하는 장면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함
1)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발락
요단 동편의 막강한 아모리 두 족속들을 물리친 이스라엘은 승승장구 모압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압 왕 발락은 매우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스라엘을 막을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군사 된 우리 성도들은 모든 세상 불신자들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의 담대한 군사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군 대열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면, 이보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없을 것입니다. 성도는 대장 되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담대함을 얻어야 합니다.
a. 아보리 두 족속(민21:26,33)
b. 담대하라(수1:9)
2) 술사 발람의 도움을 요청함
이스라엘 백성의 위용에 큰 두려움을 느낀 발락은 메소보다미아 술사 발람의 도움을 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마 당시 발람은 국제적으로 널리 그 명성이 자자한 뛰어난 마술사였던 듯합니다. 아무튼 발락은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그 동안 행해 온 전통적 방법, 즉 술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는 어리석음을 여지없이 드러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문제를 이렇게 어리석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미신을 이용하여, 술사의 도움으로, 아니면 인간적 힘과 지혜로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두 하나같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a. 술사의 도움을 구함(삼상28:8)
b. 하나님을 의지(시37:5)
3) 많은 재물을 발람에게 보냄
발락은 발람에게 사절단을 보내면서 많은 재물을 딸려 보냈습니다. 발람이 행여 초청을 거절했다가도 자신이 보낸 많은 재물을 보면 다시 마음이 돌아서서 초청에 응하리라는 계산에서였습니다. 이렇게 발락은 인생의 위급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참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자는 틀림없이 돈의 노예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분은 우리 주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재물은 순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르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a. 문제의 근본적 해결자인 주님(마11:28)
b. 돈을 의지하지 말라(딤전6:10)
2. 발람이 발락의 초대에 응함
1) 발람이 1차 초청을 거절함
발람은 발락이 보낸 사신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신들로부터 발락의 초대를 전달받았습니다. 그날 밤 발람은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발람에게 발락의 초대에 응하지 말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발람은 발락의 초대를 거절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려던 발락의 1차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여러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하여 택한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a. 보호하시는 하나님(시18:2)
b. 꿈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니님(창37:5)
2) 발람이 재물을 보고 초청에 응함
발람을 초대하는 데 실패한 발락은 더 높은 귀족과 더 많은 재물들을 보내 2차로 발람을 초대하였습니다. 이에 마음이 크게 끌린 발람은 마음속에 모압행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죄에 미혹된 발람을 더 이상 제재하지 않으시고, 그 행위대로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리하여 발람은 결국 모압 사신들과 함께 모압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재물에 미혹된 발람의 이런 어리석은 모습은, 오늘날 마치 돈을 위해 살고, 돈을 위해 죽는, 돈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인생들을 연상시키는 듯합니다.
a. 돈 때문에 믿음을 버린 유다(마27:3,5)
b.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들(행8:18-20)
3. 나귀에게 꾸지람을 듣는 발람
1) 하나님의 사자를 발견한 나귀
발람을 등에 태운 나귀는 모압으로 향하던 도중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길을 가로막는 것을 덜고는 급히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귀를 때리며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돈에 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말 못하는 미물보다 영안이 더 닫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물질과 명예에 눈이 먼 자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a. 어두워진 눈을 치료하라(계3:18)
b. 영적으로 눈먼 자(사1:3)
2) 입을 열어 발람을 꾸짖는 나귀
발람의 계속되는 매질을 참다 못한 나귀는 이제 입을 열어 발람을 공박하며, 그의 매질을 부당하다 호소하였습니다. 그렇게도 자만하며, 당대의 최고 술사로 자랑하던 발람이 이제는 짐승으로부터 꾸지람을 받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허탄한 길을 행하는 자는 오히려 하나님이 창조하신 미물보다도 더 못한 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a.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라(사1:19)
b. 자연 만물에서 인생을 배우라(시37:2)
3) 끝내 모압에 당도하는 발람
이렇게 나귀를 통해 발람의 모압행을 막았지만, 발람은 원래의 뜻을 버리지 않고 끝내 모압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와 재물을 획득하려 하였습니다. 이런 발람의 허탄한 인생 여정은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는 결국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모압의 편을 들어 이스라엘론 바알브올 사건에 빠지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는 훗날 비느하스가 미디안을 정복할 때 미디안 방백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의 최후가 이러하다 하겠습니다.
a. 발람의 죽음(민31:8)
b.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의 결과(히2:2)
결론
발람은 자신의 그릇된 고집을 버리지 않고 끝끝내 모압행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차례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만, 끝까지 범죄할 경우 그대로 내버려두사 자기의 그릇된 길을 가게 하시고, 그 죄악으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단어해설]
2절. 발락. '약탈자'를 뜻하며 모세 당시의 한 모압 왕.
5절. 발람.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를 의미하며 유명한 점술가.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는 저주를 하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음.
41절. 바알의 산당. 가나안에서 성행한 우상의 이름. 땅의 비옥을 담당하는 신이었음.
[신학주제]
이방 복술가 발람. 발람은 이방인으로 유브라데 강변의 브돌에 거주한 직업적인 복술가였다. 그래서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주술적인 방법을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방인 복술가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넘어 전세계에 미침을 의미한다.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멜기세덱 이라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있었듯이(참조, 창14:18) 하나님의 구원은 인류 전체에 열려 있고, 이방의 점술가들까지도 구원 계획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발람은 하나님 주권의 세계성과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영적교훈]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발락의 부탁을 받은 발람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심에도 발락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결국 도중에 나귀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깨닫게 된다. 이처럼 재물과 명예에 눈이 멀게 되면 인간은 올바른 이성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게 됨을 교훈해 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