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3, 1-7 니코데모와 이야기하시다
1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 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성찰
자신의 지위와 예수에 대한 끌림을 저울질하다
예수에게는 어디를 가든지
기꺼이 따르려는 충실하고 선한 친구들과
그분을 없애버리고 싶어 안달하는 가혹한 적들뿐만 아니라,
그분께 매료되었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수많은 동조자들이 있었다.
부자 청년은
예수를 사랑했으나
그분을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니코데모는
예수를 존경했으나
동료들의 지지를 잃을까봐 두려워했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동조자들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점점 더 깨우치고 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이 그룹에 가장 가까이 끌리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친구들이 비록 나를 예수에게로 더 가까이 이끌어주지 않을 때에도
그들을 붙잡고 싶어 한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나 자신의 독립을 고수하고 싶어 하며
비록 그 독립이란 것이 나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지 않을 때에도 거기에 매달린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동료 교수들의 존경을 잃고 싶지 않다.
비록 그들의 존경이 나를 영적으로 성숙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들의 인정에 연연해한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저술계획, 여행계획, 강의계획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비록 이런 일들이 자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보다
나의 영광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거기에 매달린다.
그러므로 나는 니코데모와 같다.
밤에 나타나고, 동료들에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전한 것들만 말하며,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몰약과 알로에를 무덤에 가져감으로써
죄책감을 표현했던 니코데모와 닮았다.
니코데모는 동료들인 바리사이들에게 말했다.
요한 7,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말들은 조심스러운 말들이다.
예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 말들은 그들식 대로 말해진다.
즉 “당신들이 예수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다 해도,
당신들의 품위를 잃지 말고 당신 자신들의 규칙을 따르라” 는 뜻을 담고 있다.
니코데모는 예수를 구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했지만,
친구들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요한 7,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니코데모의 개인적 직업적 정체성이 공격을 받고 있다.
아주 낯익은 장면이다.
나도 교회위원회와 여러 모임에서 니코데모처럼 말한 적이 수없이 많다.
예수에 대한 내 사랑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친구들이 질문의 또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영리한 지적을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보통 내가 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거나
진정으로 전문적인 접근에 방해가 되는 감상적인 애착을 갖고 있다고 응수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사고의 힘을 갖고 있어서 나로 하여금 침묵을 강요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말하고 거부를 무시해버리지 못하도록 나를 가로막는 것은 두려움이다
니코데모는 나의 모든 주의를 끌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바리사이로 머물면서도 예수를 따를 수 있을까?
너무 늦게 무덤으로 비싼 향료를 가져간 것 때문에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새벽으로 가는 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