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라는 이름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1.
이삼현 시인의 시 세계에서 가족은 작품의 토대를 이루면서 시인이 궁극적으로 품고자 하는 대상이다. 시인에게 가족은 따뜻한 이름이고, 입에 맞는 음식이며, 편안한 거주지이다. 혈육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정서이자 의미이다. 따라서 가족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깊고 크고 무겁다.
시인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주어진 인연이 아니라 부단하게 추구하는 가치이다. 천부적으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랑의 표상이다. 시인은 삶의 의지와 미래를 긍정하는 마음으로, 또 도리를 지키려는 의식으로 가족의 이름을 부른다.
시인은 가족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았음을 확인한다. 가령 시인은 아버지의 일생이 미지근하다고 만족하지 못했고, 심지어 “아홉 식구를 가난에 떨게 했”고, “하루 세끼를 돌려막기에 급급했다”(「미온」)고 원망했다. 그렇지만 입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잡아본 아버지의 손이 얼음장보다 차가운 사실에서 당신의 삶이 뜨거웠음을 알았다.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한평생 얼마나 뜨겁게 살았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울타리라고 여긴다.
시인의 가족 사랑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다는 면에서 주목된다. 인간 가치가 경제적 교환가치로 전환되어 가족도 돈으로 사고파는 세상이기에 현대성을 띠는 것이다. 시인이 부르는 가족의 이름은 자본주의 시장이 추구하는 그 어떤 이윤보다 힘이 세다. 자본의 위협도 자본의 유혹도 자본의 전술도 시인의 가족 사랑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시인은 가족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들여 자신과 동일화를 이룬다. 모순과 한계투성이인 자본주의 시장에 맞서는 공존과 연대의 얼굴로 합치는 것이다. 그것은 수월하지 않지만, 시인은 축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은 존재이기에 이 세계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2.
뽑힌 자리에 다시 돋아난 티슈는 뿌리가 없다
나 죽는다고 연락했다가 안 죽고 버티면
자식들 헛걸음시킨다고
비싼 여비와 시간만 허비한다고 우리 아버지
정작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고 달려갔을 땐 반송장이었다
삶의 불꽃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앙상하게 팬 몰골 사이로
금세 꺼질 듯 가물거려도 지푸라기 하나 건네줄 수 없다
셋째 아들 내외가 내려왔다고 들먹이는 노구를 겨우
반만 일으켜 세우니 그르렁그르렁 가래가 차오른다
그래 뱉어. 물고 있지 말고 뱉으라고
쑥쑥 뽑아 콱 막힌 입에 대주는 어머니를 노려보며
가래 대신
무어라 웅얼웅얼 남은 성깔을 뱉어낸다
돈 한 푼 못 버는 것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잘도 뽑아 쓴다고 나무라는 거라며 눈물짓는 어머니 손에
배추흰나비 날개 같은
티슈 두 장이 들려있었다
목숨값보다 더 귀한 티슈는
마지막 한 장까지
쑥쑥 뽑히는 신바람에 다시 돋아나 연명한다
―「티슈 두 장」 전문
위의 작품의 아버지는 “나 죽는다고 연락했다가 안 죽고 버티면/자식들 헛걸음시킨다”며 당신의 병환을 알리지 않았다. 그만큼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특히 “비싼 여비와 시간만 허비한다”고 말한 데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인 면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고 화자가 달려갔을 때는 이미 반송장 상태였다. “삶의 불꽃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여서 “앙상하게 팬 몰골 사이로/금세 꺼질 듯 가물거려도 지푸라기 하나 건네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휴지 한 장 함부로 쓰지 않는 아버지의 생활 태도는 여전했다. “셋째 아들 내외가 내려왔다고 들먹이는 노구를 겨우/반만 일으켜 세우니 그르렁그르렁 가래가 차”올랐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물고 있지 말고 뱉으라고” “티슈 두 장”을 “쑥쑥 뽑아 콱 막힌 입에 대주”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노려보며 “가래 대신/무어라 웅얼웅얼 남은 성깔을 뱉어”내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돈 한 푼 못 버는 것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잘도 뽑아 쓴다고 나무라는 거라며 눈물”을 지었다. 화자는 아버지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온 어머니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화자는 “어머니 손에/배추흰나비 날개 같은/티슈 두 장이 들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아버지의 얼굴이 서글펐다. 돈을 당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생애가 안쓰럽고 억울했던 것이다.
이 시집 속의 아버지는 한때 “돈 벌러 서울에 갔”었다. 그렇지만 “희끗희끗 눈 내리던 날/됫병 소주와 돼지고기 두 근을 들고 마당에 들어”선 채 “헐렁한 바짓바람을 날리며 허수아비처럼 웃고 서 있”(「낡은 편지」)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품에서 꺼낸 것은 돈다발이 아니라 객지에서 고생한 시간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귀향한 뒤 당신이 태어난 터전에서 가족을 품고 한평생 농사를 지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일곱 마지기 논에 모를 심고/이모작으로 보리 파종을 해 아홉 식구를 먹”(「아버지의 바다」)여 살린 것이다. 아버지는 식구들의 입을 책임지려고 힘든 줄도 모르고 일에 매달리다가 “갈수록 힘에 부쳐 술독에 빠”지기도 했고, “논고랑에 처박혀 잠든 주정뱅이가 되”(「언젠가는 좋은 날」)기도 했지만, 가난의 잔을 비우려고 온몸을 썼다.
아버지는 그와 같은 삶을 영위하느라고 불면증을 앓았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식구들이 “곤히 잠든 밤이면 증상은 악화”되었다. 아버지는 자고 일어나도 피곤에서 깨어나질 못했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쑤시고 아”(「뼛국」)파했다. 결국 아버지의 “잠들지 못하는 일상은 삶이 되고/가난이” 되었고, “육신을 소진시켜 늙게 했”(「숙면」)다.
식구들을 책임지느라고 단잠에 들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이란 곧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었다. “차례대로 바깥세상을 향해 떠나는 자식들을 바라보며/무엇 하나 해줄 게 없”었지만, 사랑을 결코 놓거나 줄이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발꿈치를 물어 넘어뜨릴지 모를 문턱을 베게 삼아/비몽사몽 간에 누운 근심”으로 “깨물면 아픈 열 손가락의 안부를 엿듣고 있”(「문턱」)었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당신을 많이 닮고,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당신에게 의무를 다하는 자식을 후계자로 삼은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식들 모두 잘되기를 바랐다. 어려운 형편에 주눅 들지 않고 사랑할 줄 아는 자식을 기대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갈라지고 터진 가물에 소식도 없이
어머니, 하고 장대비가 들이치면
오메, 내 아들 왔능가 반색하며
찰박찰박 빗길을 달려나오는 맨발
배고프지아 쬐끄만 지달래라 잉
빗속에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아껴둔 모종을 찾아 옮겨 심는 손길이 신명났다
묵은지를 심고 달랑무를 심고
오목조목 생선토막과 풋고추도 심고
된장국에 고봉밥을 북돋아 차려낸 밥상
한 가지밖에 가꿀 줄 모르고
거둘 줄 모르는 노모가
밥상머리에 쪼그려 앉아
꿀떡꿀떡
아들 목으로 넘어가는 단비 소리를 듣는다
하얗게 그을려 찾아드는 옛집에
아들은 가랑비 되고 노모는 보슬비 되어
서로를 촉촉이 적셔주는 밤
금세 해갈되었지만
날이 새도록 그치지 않을 비가 내린다
―「비」 전문
위의 작품에서 화자가 “갈라지고 터진 가물에 소식도 없이/어머니, 하고” 시골집에 들어서면 당신은 “오메, 내 아들 왔능가 반색하며/찰박찰박 빗길을 달려나”왔다. 그리고 “배고프지아 쬐끄만 지달래라 잉” 하고는 “빗속에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마련했다. “아껴둔 모종을 찾아 옮겨 심는 손길”처럼 신명을 내고 “묵은지를 심고 달랑무를 심고/오목조목 생선토막과 풋고추도 심고/된장국에 고봉밥을 북돋아” 밥상을 차려낸 것이었다.
이처럼 어머니는 “한 가지밖에 가꿀 줄 모르고/거둘 줄” 몰랐다. 다시 말해 “밥상머리에 쪼그려 앉아/꿀떡꿀떡/아들 목으로 넘어가는 단비 소리를” 마냥 기쁘게 듣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자식 사랑밖에 할 줄 몰랐다. 그리하여 “아들은 가랑비 되고 노모는 보슬비 되어/서로를 촉촉이 적셔”준 것이다.
이 시집 속의 어머니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왕지봉이라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저편에서 이편으로 시집와 구름댁으로 불”(「구름댁 엄마」)리며 한평생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발잔등까지 차오른 황톳빛 맨발/뒷굽이 닳아 두꺼워지는 동안/굳은살 박인 길이 생겨났”다. “그 길 따라 보리밭은 푸르러지고/밭고랑 사이에 한 끼 허기를 묻어두”(「오월」)는 삶을 영위했다.
어머니는 “이름 석 자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지만/손가락 숫자들”을 가지고 지혜롭게 가정 살림을 해냈다. 항아리에 양식을 채웠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과/육 남매 생일을” 챙겼으며, “아버지의 외상 술값도” 갚았다. 아들에게 “서울 갈 여비를 쥐어”(「손가락 숫자」)주기도 했다. 심지어 먼 길을 떠나면서도 “자꾸 뒤돌아보며/헉헉거리는 자식 입에 맛난 것 하나 넣어주”려고 “노잣돈 한 푼 흘”(「끝전」)리기도 했다.
이 시집 속의 장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 나비가 돼 찾아들면/어서 오게 이 서방/함빡 벌려 반겨주던 웃음꽃/꿀을 빨아먹었던 그 자리에 향기”(「꽃삽으로 장모님을 묻었다」)를 가득 남겼다.
3.
깜박 늦잠을 잤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다듬이질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같은 여자가
청승맞게 주름을 펴고 있었습니다
한 벌뿐인 낡은 옷
심하게 접힌 구김을 댓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내였습니다
화장대 앞에 쪼그려 앉아
반드러워질 때까지 제 얼굴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수면에 비쳐 흔들리는 풍광처럼
거울에 비친 아내가
바람 한 점 없이 물결쳤습니다
자꾸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토닥토닥
어르고 달래듯 두들겨도
다시 펴지지 않는 시름이라는 걸 압니다
맑은 뒤 흐림
꿈이었습니다
―「봄꿈」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깜박 늦잠을 잤”는데, 잠 속에서 “비몽사몽 간에 다듬이질 소리를 들었”다. “한 벌뿐인 낡은 옷/심하게 접힌 구김을 댓돌 위에 올려놓고/방망이질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본 것이다.
그런데 화자가 눈을 뜨고 다듬이질하는 어머니를 자세히 살펴보니 “청승맞게 주름을 펴고 있”는 아내였다. 아내는 “화장대 앞에 쪼그려 앉아/반드러워질 때까지 제 얼굴을 두들기고 있었”다. 화자는 “토닥토닥/어르고 달래듯 두들겨도/다시 펴지지 않는 시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내의 행동을 어리석다거나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수면에 비쳐 흔들리는 풍광처럼/거울에 비친 아내가/바람 한 점 없이 물결”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안쓰러워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내도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팔 년 개띠 아내가 쪽잠에 빠졌다
두 아들은 장가가고
퇴직한 남편은 푼돈 벌이 가고
알바까지 없어 텅 빈 날
달그락거리던 살림살이마저 접은 잠이 이슬처럼 맺혔다
수많은 몸짓으로 날아오르다가 잠시 내려앉은 먼지 같다
언제 저렇게 작아졌나
가벼워졌나
희미한 숨소리조차 견딜 수 없어 움츠린 어깨를 들먹인다
창밖엔 둥둥 떠다니고 싶은 하늘이 푸른데
비스듬히 기운 오후 두 시의 그림자를 반쯤 걸치고 누웠다
틈만 나면 거울 앞에 앉아 시들어가는 저를 추스르다가
남편의 귀가도 알지 못한 채 곯아떨어졌다
팽팽하게 부풀었을 땐 빨간색이 잘 어울렸다
흐릿한 윤곽만 남았어도 환하게 웃어 보이며 함께 날자던 풍선
둘뿐인 식탁을 위해 맛있게 지지고 볶으며
행복하자 사랑하자 했지만
우린 겨우 바람을 먹고 산다
날마다 먹고 마셔도 조금씩 빠져나가는 바람을
―「바람 풍선」 전문
위의 작품에서 아내는 “오팔 년 개띠”로 “두 아들은 장가가고/퇴직한 남편은 푼돈 벌이 가”면 아르바이트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새벽부터 뛰어도 늘 부족한 오른손을/바라보다 못해” 왼손이 되어 “벌레 잡는 알바를”(「그래서 왼손이 먼저 아프다」) 하는 것이다. 아내는 “진종일 땀 흘려 일군 소금밭”(「소금쟁이」)인 등이 온통 하얗게 될 정도로 몸을 쓴다. 그 결과 “벌레 소린지 고장 난 라디오 파열음인지/불쑥 자라난 아우성을 한쪽 귀로 새겨 듣”(「이명」)는 아픔을 겪고 있다.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지만 “이제 뜨거워지는 것조차 잊”(「한파주의보」)고 있고, 심지어 “노는 법을 잊어버”려 “알바가 없는 날 더 힘들어”(「소꿉놀이」)하는 것이다.
화자는 그 아내가 “알바까지 없어 텅 빈 날” 쪽잠에 빠진 모습을 측은하게 내려다본다. “달그락거리던 살림살이마저 접은 잠이 이슬처럼 맺”혀 있는데, 잠자는 아내는 “수많은 몸짓으로 날아오르다가 잠시 내려앉은 먼지 같다”. “코를 고는 아내의 숨소리에서/포말을 일으키며 하얗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만년설로 쌓인 아득했던 날들이 녹아 속살을 비추고/어른거림 속에 박제가 되어가는 푸른 등이 보”(「등짝」)인 적도 있었다.
화자는 “틈만 나면 거울 앞에 앉아 시들어가는 저를 추스르다가/남편의 귀가도 알지 못한 채 곯아떨어”진 아내를 내려다보며 “언제 저렇게 작아졌나/가벼워졌나” 하고 놀란다. 또한 “희미한 숨소리조차 견딜 수 없어 움츠린 어깨를 들먹”이는 모습에 안쓰러워한다. 그리하여 “비스듬히 기운 오후 두 시의 그림자를 반쯤 걸치고 누”워 있는 아내에게 미안함을 갖는다. “둘뿐인 식탁을 위해 맛있게 지지고 볶으며/행복하자 사랑하자 했지만” “겨우 바람을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흐릿한 윤곽만 남았어도 환하게 웃어 보이며 함께 날자던 풍선”이었지만, “날마다 먹고 마셔도 조금씩 빠져나가는 바람”으로 제대로 날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 속의 아내는 “파김치가 돼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얼큰하게 매운탕을 끓여 놓”(「두 마리」)고, 시상(詩想)을 적은 종이쪽지가 든 남편의 옷을 살피지 않고 세탁한 일에 “정신없이 나이를 먹은 탓이라”(「시를 읽는 여자」)고 자책한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얼굴이 얼음장처럼 창백한데도 남편이 좋아하는 “두유 크림빵 자반고등어 사과 시금치 팥 도넛”(「시린 손」)을 잔뜩 사 가지고 돌아온다. “아들 둘을 건사하랴 알바 하랴/남편 챙기랴/딱정벌레보다 더 많은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뛰어도/늘 모자라는”(「민들레 풀각시」) 생활을 하고 있다. “제 안으로 깊숙이 남편과 자식들을 껴안은/한 겹 두 겹 벗겨낼수록 작아만 가”(「양파」)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아내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본다. 생활환경이 달라 가족을 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그 마음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의 가족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아내의 사랑으로 깨닫고 있다. 아내의 가족 사랑이 얼마나 넓은지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리하여 화자는 “네모반듯한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초식 동물」) 웃는 아내 앞에서 가난에 주눅 들지 않는 사랑을 인식한다.
4
안부 전화 끝에
오냐, 고맙다는 말
짧은 통화였지만 나직한 목소리로 찬찬히
그래, 내 자식이라서 반갑다는 말
어느 하늘 아래, 서로 반짝이던 날
땅끝 멀리서 울려오던 진심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해지는 시간
꼭 들려주고 싶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돌아가셨다
홀로 남아
하나둘 손가락 다섯 개를 꼽으며
이만큼 더 살았으니 니 아부지 나이와 같아졌구나 하던 어머니
어느 날 전화를 받고
오냐, 고맙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 고맙다
가느다란 줄 끝에 달려
전해 오는 아들 목소리 하나 달게 받더니
어머니마저 금세 돌아가셨다
며칠 전
고향에 사는 큰형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동생, 고맙네 한다
축제는 끝나고
꽃눈 내리는 벚나무 아래
아름다웠던 날들이 흩날리며 속삭이는 말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오냐, 고맙다는 그 말
―「오냐, 고맙다는 말」 전문
위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화자의 “안부 전화 끝에/오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래, 내 자식이라서 반갑다는 말”이었는데, 화자는 아버지의 그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확인한 것이다. 아버지는 “꼭 들려주고 싶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작품의 어머니 역시 화자의 “어느 날 전화를 받고/오냐, 고맙다/전화해 줘서 고맙다, 고맙다”라는 인사를 했다. 화자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 또한 아버지 못지않게 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들 목소리 하나 달게 받”은 어머니 역시 세상을 떴다.
작품의 화자는 “며칠 전/고향에 사는 큰형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동생, 고맙네”라는 인사를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큰형님의 사랑도 지극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화자는 “꽃눈 내리는 벚나무 아래/아름다웠던 날들이 흩날리”는 것을 떠올렸다. 가난 속에서도 꽃핀 가족 사랑을 다시금 바라보게 된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받은 가족 사랑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김장을 끝낸 형수/잠시 졸리다며 눈 좀 붙이러 들어갔다가/다시 일어나지 못”(「오래오래」)한 일을 기록한 것이 그 모습이다.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했던 스물다섯 살 사회 초년생/두 달 치 월급을 못 받”(「새벽의 잔고」)은 아들을 위로하고, “민들레 풀씨처럼 날아와 한 식구 되어 준 베트남 신부”(「민들레와 고등어」)와 한국인 시어머니가 서로 위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하고, “주 5일제 도입과 준공영제를 실시하라며 총파업을 선언”(「긁적 타결」)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것도 그러하다. 결국 가족의 이름을 사랑으로 지키고, 키우고, 꽃피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