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4일
일본 나고야 세게 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19세의
미국 청년 글랜 군은 중공선수단 주장인 장군(莊君)과
잡담을 하다가 진주(眞珠)양식장 구경을 같이 가게 된다.
그 이튼 날 글랜 군이 T샤츠 하나를 선물로 주자 장군은
손수건 한 장으로 반례(反禮)를 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에 불과하다.
헌데 그 T셔츠가 계기가 되어 중공이 미국 선수단 14명을
중공에 초청한다고 공식발표한 것은 그 사흘 후인
4월7일이었다.
이렇게 하찮은 선물이 씨앗이 되어 닉슨 대통령이 중공에 가고 국교가 수립됐으며
그로서 국제정세를 일변 시켰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로부터12년 후인 1983년 5월5일
중국민항소속 여객기 한 대가 기장과 승무원9명 승객을
96명을 태우고 휴전선을 넘어 중부전선 00기지에 불시착
승객 중 탁장인등 6명이 비행기를 납치 하였던 것이다.
그때 납치당한 중공 민간 여객기가 우리나라에 불시착.
경직되었던 황해(黃海)의 기류가 부산하게 움직였고
납치자의 처분이나 기체의 처분, 그리고 부상자,
탑승자의 송환 등은 국제법이나 국제관례대로 더도 덜도 말고
의연하게 처리되었지만 골치 아픈 일 뒤치다꺼리만 하고 얻는 것이 멋인가 생각게 된다.
이를 태면 춘천(春川) 시민이 탑승자들에게 만들어 나누어 먹인 왕만두 값이 생각난다.
아침 점심 굶은 데다 가 공포의 사경(死境)을 벗어난 뒤
엄습해오는 굶주림 끝에 이국(異國)음식도 아닌 저희들 음식인
따끈따끈한 왕만두를 들었을 때의 감희가 어찌
T셔츠 나부랭이와 비길 수 있겠는가.
춘천의 왕만두!
그것 자체는 하찮을지 모르지만 .
그런저런 인간적인 것들이 매체가 되어 .
1992년 8뤌24일 한국과 중공은 수교를 맺게 된 다.
약 9년 만에 춘천의 왕만두 값을 받은 셈이다.
역사란 하찮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근간 춘천(春川) 소양강댐 라이딩 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라이딩을 하면서 도착지까지 위와 같은 내용을 생각하며 돌아왔다.
오늘이 바로 한국과 중국 수교 25주년 이 되는 날이라
감회가 새로 읍지만 근간 사드 문제로 두 나라 사이가
어찌 왕만두를 괜히 먹였나!
하는 씁쓸한 생각에 나에 생각 몇 자를 적어봤다.
첫댓글 춘천에 닭갈비와 막국수만 명물인지알았는데
왕만두도 명물에 속하나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중국인 승객을위해 춘천 시민단체에서
중국인 입맛에 맞는음식을 하다보니
만두로 정한듯 합니다.~^^
왕만두에
그런사연까지 있는줄은 몰랐습니다
해박하신 마당쇠님의 왕만두에 얽힌 역사적인 고찰! 감사합니다
과찬 이십니다.
오늘도 행복 하십시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땡큐~베리~감사~아가리도고치고~쐐새
다음에 보자구여~~
금정족발
시간만 내시면 사드립니다
매번 고맙습니다
@대우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맛난 족발 먹을날
기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