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의 최후는 아무래도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맞아죽었다는 그 기록!
이 기록은 충분히 가능한 범위가 아닌가요?
왕건이 난을 일으켰을 때 왕공이 이미 차지하였으니 나는 끝났다 뭐 이런 소리를 했다는데 이건 당연히 말이 안된다고 해도..
도망가는 도중에 백성들에게 맞아죽었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게 아닌가 싶네요..
궁예가 전제주의적인 정치를 했고 백성들에게 반감을 샀으니까요..
물론 훔쳐먹었다는 기록은 그 왜곡의 정도가 심하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첫댓글 전제정치는 백성들과는 무관한 사안입니다. 힘있는 신하들과 호족들에 민감한 사안이죠. 궁예가 폭군이라서 당연히 쫒겨나야 한다라는 식으로 고려왕조는 역사를 왜곡했슴이 분명합니다.
배가 고프면 남의 밭에서 곡식도 비벼 먹을 수 있는것 아니겠어요. 훔쳐먹었다는 표현 자체가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 같거든요. 쿠테타가 발생하자. 측근인사들과 대궐을 빠져 나와서 야산에 웅거해 있다가 배가 고파 밭에 내려왔다가 폭도들에 의해서 어이없게 죽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네요.
근데 철원지역의 전설에 의하면 궁예는 왕건의 군사와 싸웠다고 합니다..전설이기에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록 그대로를 믿기에는 최후가 너무 초라한 듯합니다..최소 자결은 해야..
궁예도 비운의 군주인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