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화원] 01
S#1. 언덕길 / 낮
어두운 화면 위로 들리는 소리.
홍도(N) : 이제 나는 한 사람에 대해 말하려 한다.
화면 밝아지면,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남자의 발이 보이고..
홍도(N) : 나는 지금 기쁘고도 고통스럽다. 그를 떠올리니 기쁘고,
S#2. 언덕 위 / 낮
남자의 발, 걸어와 멈추면..
언덕 위에 서 있는 낡은 집.
홍도(N) : 그를 잃을 것이니 고통스럽다.
S#3. 서징의 집 / 낮 / 교차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의 옆모습, 윤복이다.
조심스레 붓질을 하는 윤복의 손.
S#4. 서징의 집 앞 / 낮 / 교차
문 앞에 멈춰서는 남자의 발.
남자, 문 안쪽을 보면,
홍도(N) : 그는 나의 제자였고,
S#5. 서징의 집 / 낮 / 교차
윤복의 손길을 따라 그려지는 그림.
붓을 놓는 윤복.
홍도(N) : 나의 스승이었고,
S#6. 서징의 집 앞 / 낮 / 교차
문고리를 잡는 남자의 손,
홍도(N) : 나의 친구였고,
S#7. 서징의 집 / 낮
윤복, 그림을 보다가 인기척을 느낀 듯 고개 드는데..
홍도(N) : 그리고..
S#8. 서징의 집 / 문 밖 / 낮 / 교차
남자, 문 열고 들어서면,
S#9. 서징의 집 / 낮
방 안, 윤복이 있던 곳은 비어있고, 바닥에 그림 한 장만이 놓여있다.
남자, 방 안에 있던 그림 들어 올리는 위로,
홍도(N) : 그리고, 나의 연인이었다.
드디어 남자가 들어 올린 그림이 보인다. 신윤복의 <미인도>
그리고, 그림을 보는 홍도의 얼굴 보이고는, 화면 어두워진다.
title : [바람의 화원]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화면 밝아진다.
고봉(소리) : 준비하시고!!
S#10. 도화서 생도청 / 복도 / 낮
커다란 물동이에 담궈진 거대한 붓. 물동이 가득 먹물이 찰랑거리고...
붓 들고 있는 윤복과 효원, 팽팽하게 마주보는 가운데..
그들 앞에 생도청 복도를 따라 하얀 종이가 길게 깔려있는 모습 보인다.
그들 주위로 생도들 잔뜩 긴장한 채 모여 있고,
종이 끝에 고급 붓과 벼루가 놓여있다.
'자막: 1777년 정조 1년, 도화서‘
쨍그랑! 쨍그랑! 엽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윤복쪽, 효원쪽에 엽전이 막상막하로 쌓인 가운데, 술태가 마지막 동전 들고 망설이고 있는데..
만보 : 넌 뭘 하고 있냐?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술태 : (영복 보고) 힘은 효원이가 좋고.. 근성은 윤복이가..
고봉 : 시작한다!
술태 : 걸었어, 걸었어! (윤복쪽에 동전 던지면)
고봉 : (그 동전 소리와 함께) 출발!
소리와 함께, 윤복과 효원, 붓을 종이 위에 올리고 달려 나간다.
붓선 경쾌하게 그어지며, 한 장, 한 장 종이를 채우며 넘어가는 윤복과 효원.
윤복과 효원, 막상막하의 속도로 달려가고, 그들 옆에서 응원하며 달려가는 생도들.
생도청 복도를 따라 달리는 그들의 모습 보이며,
윤복과 효원, 서로 어깨 나란히 하고 달려가는데...
종이 끝에 이르자 윤복 앞에는 영복이, 효원 앞에는 고봉이 종이를 한 장, 한 장 이어준다.
윤복과 효원, 먹물이 줄어듦에 따라 조금씩 속도를 줄이고.. 먹선이 힘들게 이어지는 가운데, 윤복과 효원 마주본다.
효원 : 그만하지? 쥐콩만한 놈이 지금까지 온 것도 칭찬해 줄 일이니까.
윤복 : 항상 느끼는 건데, 네 놈은 말이 참으로 많다.
효원 : (끊어질 듯.. 선 이으며) 불쌍해서 봐주려고 했더니,
윤복 :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다 하고?
효원과 윤복, 거의 끊어질 듯한 선을 신중하게 이으며,
효원 : 흥. 계집애 같은 놈한테 질 것 같으면 시작도 안 했지. (아슬아슬 이어지는 먹선 보며) 한주먹도 안 되는 놈이!
윤복 : 그깟 솜방망이 주먹, 맞으면 기별이나 오겠냐?
효원 : 뭐? 이 놈 정말 맞아봐야 정신 차리겠군!
윤복 : (대꾸 대신 자신만만한 미소)
효원 : (분위기 파악 못하고) 왜? 겁나냐?
윤복 : (여유로운 표정으로 효원의 붓선 가리키면)
효원 : (시선 같이 떨어지며) ?
효원이 보면 자신의 붓선이 끊겨 있다.
효원, 윤복의 붓선 보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윤복, 식 웃고. 효원은 인상을 구긴다.
술태 : 이겼다!! 윤복이가 이겼어!!
고봉 : 어떻게 된 거냐? (효원에게) 응? 뭐가 잘못된 거 아냐?
효원 : (붓 던지고) 시끄러워.
환호하는 영복, 술태와 생도 일파들. 고봉과 다른 생도들은 실망의 소리를 지른다.
영복, 붓과 벼루를 윤복에게 가져다주면, 윤복이 붓을 들고,
윤복 : 덕분에 청나라에서 온 귀한 담비붓을 써보게 되었군. (붓 들어보이며) 잘 쓸게.
효원 :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라더니, 네깐놈한테 담비붓이 가당키나 하냐?
윤복 : 왜, 탐나냐? 형님이라 부르면 주지. 형님- 해 보거라.
효원 : 이 자식!
윤복 : 셋-, 둘-,
효원 : 야!
윤복 : 하나!
효원 : (동시) 형님!
윤복 : 아이쿠, 늦었군. (윤복 붓을 소매 속에 쏙 넣고 돌아선다) 다음에 보자.
효원 : 사실.. 그거, 아버지 몰래 가지고 나온 것이란 말이다!
윤복 :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기냐? 니가 계집애야?
하는데, 신한평이 생도들 사이로 온다.
신한평 : 또 이런 장난질을 하고 있는 것이냐? 오매불망 기다리던 외유사생에 안 가도 좋단 말이냐? 빨리빨리 준비들 못해?
생도들 : 아닙니다! / 갑니다-
신한평 : 서두르거라! 열 셀 때 까지 준비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다?
생도들 : 교수님!!
신한평 : 하나! 둘!-셋! (넷, 다섯, 이어지며)
생도들, 부산하게 생도청으로 달려가고,
S#11. 도화서 생도청 기숙동 / 몽타주 / 낮
1. 장효원의 방 - 먹통에 먹을 채우는 장효원.
2. 술태의 방 - 가방에 주먹밥을 챙겨넣고 일어서는 술태.
3. 만보의 방 - 붓통에 술을 넣는 만보. 뚜껑을 닫다가 한 입 맛을 보고 ‘크-’ 감탄을 한 후 닫아 가방에 넣고 일어선다.
4. 고봉의 방 - 가방 벌린 후 설합을 뒤집어 붓들을 한꺼번에 와르르 쓸어담고 일어서는 고봉.
S#12. 도화서 생도청 기숙동 / 윤복과 영복의 방 / 낮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가운데, 방바닥에 투두둑 떨어지는 하얀 천 뭉치.
그리고, 돌아앉은 윤복의 뒷모습이 보인다. 천을 집어드는 윤복의 손.
윤복, 능숙하게 천의한 쪽 끝을 입에 물고 천을 감아간다.
윤복의 매끈한 등에 감기는 하얀 천.
천 끝을 꽉 조여 묶은 후 설합을 여는 윤복. 설합 깊숙한 곳에 손을 넣어 벼루를 꺼낸다.
벼루 뚜껑을 열면, 그 곳에 있는 거울.
윤복, 거울에 자신의 앞태, 뒷태를 비춰본 후, 숨을 들이마시고 끈을 더 꽉 조여 묶는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붓을 보퉁이에 능숙하게 챙겨넣은 후, 화구통을 어깨에 단정히 매고 나가는 윤복.
S#13. 도화서 마당 / 이미지 / 낮
가느다란 붓에 묻혀지는 푸른 안료.
거대한 그림의 부분인 듯, 작은 부분에 푸른 비늘을 칠하는 손놀림 보이고,
붓 건네주는 손 보이면,
붓을 건네받고 다른 붓을 건네주는 분주한 손놀림 보인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경건하게 무릎꿇고 앉아 붓질을 하는 도화서 자비대령화원들과,
그들 옆에 둘, 셋씩 모여앉아 붓을 건네주고, 먹을 갈고, 안료를 준비하는 화원들의 모습 보이는 가운데,
화면 점점 빠져나가면, 도화서 마당에 놓인 커다란 용그림 보인다.
웅장한 용 그림이 화면을 가득 메운 위로,
장벽수(소리) : 수종화사는 모두 어디 가고 자네가 일을 맡고 있는가?
이인문 : (벌떡 일어나 허리 깊이 숙이며) 별제 어르신 오셨습니까!
화원들, 그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이고, 별제(주; 도화서 최고 책임자) 장벽수, 도화서 마당에 들어선다.
자비대령화원들은 미동도 않고 그림 그리고 있다.
장벽수 : 왜 생도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느냐?
이인문 : 예. 금일이 춘계 외유사생(주; 야외에서 자유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수업) 일이 아닙니까?
장벽수 : (혀 차는 소리로, 끊으며) 외유사생? 왕실의 용상을 그리는 중요한 날에 외유사생이라니,
도대체가 정신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인문 : 그것이... 일재(주; 신한평의 호) 어르신께서.. 매년 하는 것이니 규정대로 해야 한다고..
장벽수 : 이 요령없는 인사! 내 이 인사를...
자비대령화원1 : (나직이) 왕실의 그림을 그리는데 어찌 이리 시끄러운가!
장벽수 : (허리 숙이며) 실례했습니다.
자비대령화원1 : 기우제에 쓰일 용상이라 욕된 기운이 감돌면 큰일나네.
장벽수, 인상 구기며 돌아서면,
S#14. 도성 일각 / 길
생도들, 화구가 든 봇짐을 등에 맨 채 도성 일각에 모여 있다.
신한평 : 금일은 기우제를 올리는 신령스런 날이라서 온 나라가 자중해야 한다.
허나 지난 겨울 내내 봄이 오길 기다린 네 놈들의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그렇지?
생도들 : 감사합니다. 스승님!
생도들 사이의 윤복, 한 쪽 눈을 감고 붓으로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선을 따라 그리면,
그 위로 붓선이 물에 젖듯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신한평 : (흐뭇하게) 그래,.. 그래, 내 책임지고 외유사생을 시키는 것이니, 너희들 모두 왕실의 화사를 맡을 도화서 생도라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여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생도들 : 예!!
신한평 : 하여, (하다가 어느 한쪽으로 시선 따라가는데)
생도들도 일제히 신한평의 시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장홍과 몰이꾼들이 앞장서는 가운데 들어서는 말 위의 기생들, 고운 빛깔의 옷을 입고 웃음을 흘리며 자태를 뽐내며 지나가는데...
그 중, 정향도 끼어있다.
생도들과 신한평, 그 쪽 보는데..
고봉 : 아이구.. 조것들.. 살랑살랑거리는 것이.. (몸 떨며) 어느 기방에 있는 기생들이지? 저 노란 저고리 입은 년 좀 봐봐, 응?
장효원 : (피식) 안목하고는.. 저 중에선 (턱으로 정향 가리키며) 저 년이 머리다. 모르겠느냐?
술태 : (붉은 치마 입은 기생 보며) 고 년 참.. 덕이 넘치는구나..
윤복 : 덕? 무슨 덕?
술태 : 이, (손으로 가슴 모양 만들며) 육덕도 덕이니, 그렇게 치면 저 년이야 말로 군자가 아니더냐?
윤복 : 아이구, 그러셔? 양반은 기생년한테도 문자를 들먹이더냐?
만보 : (혀 차며) 너희들은 아직 여자를 알려면 한- 참 멀었구나.
윤복 : 만보형님은? (기생들 가리키며) 어떤 년이오?
만보 : 만가지 꽃이 피어도 향기는 다 다른 법이다. 이 년은 이 년 대로, 저 년은 저 년 대로 다- 쓸모가 다른 법이지.
문제는 어떻게 다루느냐, 그것 아니겠느냐?
윤복 : 형님은 그래, 몇 명이나 다뤄봤기에 또 그 소리십니까?
만보 : (손가락 꼽는데)
술태 : 넌? 넌 누구냐?
윤복 : (정향 보며) 글쎄...
영복 : (윤복 보고)
생도들, 저마다 수군거리는데,
신한평 : 네 이놈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느..
기생1 : (슬쩍 신한평 보고 웃음 흘리면)
신한평 : (기생1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 떠오르며) 하이고..
기생2 : (모자에 두른 천이 생도들 쪽으로 날리자 휙- 돌아보고 웃으면)
생도들 : 오---
S#15. 도성일각2
장홍과 몰이꾼들이 위압적 표정으로 걸어가고
말 위의 기생들, 저잣거리 사람들 내려다보며 생도들 모여 있는 앞을 지나가는데..
계월 : 이년들! 어디서 웃음을 흘리고 있느냐? 내 허락 없인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기생2 : (입 다물며, 삐죽삐죽) 꽃이 나비를 보고 어찌 그냥 지나간답니까? 아니 그렇니?
정향 : ..그게 나빈지 나방일지.
기생2 : (정향 흘기고)
계월 : 정향이 네 년은 한양땅이 설을테니, 각별히 새겨듣거라. 알겠느냐?
정향 : 네. 어머니.
기생들 지나가는 모습 보는 생도들, 몇몇은 소리 지르는데,
정향, 윤복과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 잠시 서로를 보는데...
S#16. 도성 일각
신한평 : 이놈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냐!
정향을 태운 말이 앞으로 지나간다.
기생들 멀어지고, 정향의 뒷태를 보는 윤복.
신한평 : (정색하고) 내, 생도 시절에는, 여인을 코앞에 두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거늘..
그저-, 어찌하면 화사를 익히고 수련할지, 어떻게 더 정진할지, 오-직 그 생각 뿐이었거늘! 내 너희같은 망종들을 뭐하러
이 춘정 넘치는 산천에 데리고 나왔는지.. 쯧쯧.. 그만들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 그럴까?
생도들 : 아닙니다! / 보지 않겠습니다! / 일재 어르신! / 스승님!
신한평 : 해가 지기 전까지 화사를 마치고 이곳에 모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생도들 : 예!!
생도들, 신이 나서 삼삼오오 뛰어가고, 몇 몇은 기생들 꽁무니 따라간다.
신한평, 그들 보고 혀 끌끌 차고 보면, 윤복이와 영복이가 앞에 서 있다.
윤복 : (인사하며) 다녀오겠습니다.
신한평 : 그래. 금일은 외유사생이니까, 쉰다고 생각하고 편안-히 그리다 오거라. 알겠지?
윤복 : 예. (가고)
영복 : (인사하며) 아버지,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신한평 : 네가 잘 챙기거라. 저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알고 있지? 장차 어진화사(주; 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를 수행하고
자비대령화원(주; 규장각에 속한 왕의 직속 화원)이 되어 우리 고령신씨 가문을 빛내줄 아이다.
영복 : 언질하지 않으셔도 뼛속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아버지.
신한평 : 그래. 내 너를 믿지. 암. 믿고말고.
영복, 윤복을 따라간다.
걱정과 감동이 섞인 눈으로 그들 보는 신한평.
S#17. 양반가 대문 앞 / 낮
양반가 대문 앞에 멈춰서는 가마.
가마 옆의 여종 하나가 불안한 듯 좌우를 살피고는 가마꾼에게 눈짓을 하자,
가마꾼이 가마를 내려놓는다.
가마문이 열리고 얼굴을 쓰개치마로 가린 여자가 가마에서 내려 문 안으로 들어선다. 여염집 아낙의 차림새다.
여자가 들어가자 가마꾼들, 가마를 지고 사라지고..
여종은 좌우를 살핀 후 안으로 들어간다.
S#18. 양반댁 / 안채 / 낮
쓰개치마 쓴 여자(정순왕후)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양반댁 부인이 나와 곱게 인사를 한다.
정순왕후 : (쓰개치마 쓴 채) 와 계시는가?
부인 :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인 앞장서면, 정순왕후 따라가고, 여종은 문 앞에 남는다.
S#19. 양반댁 / 안채
정순왕후 방에 들어서면, 송낙을 쓰고 앉아있는 남자의 옆모습이 보인다.
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으로 앉는 정순왕후.
정순왕후 : ... 춘색이 만연한데, 그간 어찌 걸음을 아니하셨습니까?
남자 : 부질없는 마음, 이리저리 방황하다 이제야 왔습니다.
정순왕후 : ...연통도 닿지 않고 기약도 없는 약속인데 어찌 이리 기다려지는지.. 내 마음 알 길이 없어 괴롭고 힘이 듭니다.
남자 : 이리 오시오.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니...
남자, 발을 들어올리고,
정순왕후, 남자쪽으로 쓰러지자 툭! 떨어지는 송낙..
S#20. 양반가 골목 / 낮-줄친 부분 삭제
담장 옆에 핀 꽃에 나비가 앉는데.. 윤복이 앞으로 오자 나비 나풀나풀 날아간다.
윤복, 불만 가득한 얼굴로 걷다가 돌아보고,
윤복 : 어디까지 따라올 거요?
하면, 뒤에 영복이 서 있다.
영복 : (둘러보며) 무얼 그리려구?
윤복 : 글쎄, 무얼 그리건. 나는 나, 형님은 형님! 따루 삽시다, 따루.
영복 : 아우야, 가족이 어찌 따로 사느냐-
윤복 : 아무튼, (영복의 등을 돌려놓고) 형님은 저리로 가고, 나는 이리로.
영복 : (등 떠밀려 돌아서면서도 고개는 윤복이 쪽으로 돌리려 애쓰는데)
윤복 : (영복의 머리통 잡고) 저리로! 셋 하면 가는 겁니다. 하나, 둘,
윤복과 영복, 서로 등을 댄 채 출발자세 취하고..
윤복 : 셋!
윤복, 냅다 뛰는데..
영복이 뛰어가는 척 하다 뒤를 보면.. 윤복이 없다.
영복, 주변을 둘러보다가
영복 : 해 지기 전까지 끝마쳐야 한다!
영복 사라지면 담장 위에서 빼꼼 나타나는 윤복.
S#21. 담장 위 / 낮
윤복, 담장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영복이 간 것을 확인한 후 고개 들자, 대갓댁 안마당이 눈앞에 보인다.
윤복의 눈에 양반댁 안채가 눈에 들어오고.. 수줍은 듯 뒷짐을 지고 선 한 여인 발견한다.
여종과 함께 서 있는 여인의 모습 보는 윤복.
윤복의 시야를 가린 여종이 사라지자, 모습을 드러내는 여인의 모습.
마당 안에 고즈넉이 서 있는 그 여인의 모습을 보자 화첩을 펴드는 윤복. 붓끝을 혀로 적신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날렵한 붓 선을 따라 여인의 옆모습 그려지고..
S#22. 담장 근처 / 낮
정순왕후, 송낙을 든 채 고목 뿌리를 톡톡 차다가 미소 지으며 고개 돌리는데,
([바람의 화원]1권 19페이지, 신윤복의 [기다림]과 같은 장면)
여종이 뜰로 들어선다.
여종 : 준비가 되었습니다.
정순왕후 : (고개 돌리며) 가자.
정순왕후 고개 돌리는데, 담장 위에 납작 엎드린 사람의 옷자락이 보인다.
정순왕후 : 저것이 무엇이냐?
여종 : 무엇 말씀이십니까?
정순왕후 : 저기 저것 말이다.
여종 : (고개 뻗어 보는데)
윤복 : (시선 마주쳐 놀라고) !
여종 : 아니.. 웬 놈이냐! 여봐라!!
담장 위에 웅크려 있던 윤복, 얼른 아래로 뛰어내리고,
그 순간, 정순왕후의 시야에 들어오는 윤복의 종이와 붓!!
윤복 도망가는데, 문 밖에 있던 가마꾼들이 달려와 윤복 쫓는다.
S#23. 담장 밖 / 낮
윤복, 담장 이쪽에 떨어져서 무릎 만지고 있는데,
가마꾼들(소리) : 잡아라!!
윤복, 얼른 종이 챙겨들고 일어난다.
S#24. 골목 / 낮
윤복, 화첩을 든 채 마구 달리고, 뒤로 머슴들이 따라온다.
윤복, 달리다 얼른 모퉁이를 돌고,
머슴들, 윤복이 돌아든 모퉁이로 달려온다.
윤복, 거의 바닥에 미끄러지듯 하며 모퉁이를 돌고,
덩치 큰 머슴들, 모퉁이 돌다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질 뻔 하며 계속 쫓는데..
S#25. 골목 끝 / 낮
뒤를 보면서 마구 달려 골목을 빠져나오는 윤복. 윤복 눈 앞에 뻥뚫린 저잣거리 보인다.
윤복, 잠시 눈 앞을 둘러보는데,
머슴1(소리) : 저 놈 잡아라!!!
윤복 : 아니, (숨 고르며) 어디까지 따라오려구!
윤복, 둘러보다 저잣거리 상점거리로 달려간다.
S#26. 저잣거리 / 낮
사람들 헤치며 상점 사이를 달려가는 윤복.
윤복 뒤로 쫓아오는 사람들 보이고, 윤복, 포목점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S#27. 포목점 / 낮 - 줄친 부분 삭제
윤복, 포목점 안에 숨어서 밖을 보면, 머슴들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 보인다.
윤복, 한숨 돌리는데,
정향(소리) : 그만 일어나시지요.
윤복 보면, 아리따운 자태의 여인이 천을 펼쳐놓고 서 있다. 정향이다.
윤복, 순간 정향이 사려던 천 자락 끝을 밟고 있음을 발견하고 발을 뗀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어나며, 천을 들어 툭툭 털어 내민다.
윤복 : 향기가 있어 왔더니 꽃이 있군.
정향 : (치맛자락 착! 감으며) 꽃을 함부로 밟는 나비가 어디 있답니까?
윤복 : (정향 고운 옆모습 보며) 아리따운 꽃에는 응당 나비가 앉는 법!
정향 : (윤복 안 본 채) 아무나 앉으라 있는 꽃이 아닙니다.
윤복 : 허, 꽃이 나비를 저어하는 경우가, 당췌,
하는데, 머슴들, 또 포목점 앞으로 와 두리번거리는 모습 보인다.
윤복이 얼른 좌판 아래 숨는다.
정향, 숨어서 파리처럼 손 비비고 입에 손가락 대는 윤복 보고 픽- 웃는다.
정향이 그 사람들에게 손짓 하려고 손드는데,
윤복이 얼른 정향의 소맷부리를 잡아당긴다.
정향, 윤복 보면.. 윤복이 고개 젓는데... 정향, 윤복 보다가..
정향 : 이보오- 여기 보시오-
윤복 : (벌떡 일어서며) 이런, 미친!
윤복, 포목점 진열대에 머리 맞으며 일어나 보면...가게 앞, 머슴들 있던 자리에 아무도 없다.
윤복, 정향 보면, 정향, 모른 척 옷감 고르고.. 계월과 기생1, 2가 들어온다.
두 사람 보는 계월.
윤복 : (머리 만지며) 가시만 가득하니 꽃이 아니라 독이로구나- (뒷짐 지고) 어허-
윤복 좌우 살피고 사라지면,
정향, 천 만지다 고개 들면,
S#28. 계곡 근처 언덕 / 낮
곳곳에 모여 앉은 도화서 생도들.
장효원, 산수화(계곡 그림)를 그리고 있고, 옆에 앉은 꼬봉도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윤복, 생도들 모여앉은 곳으로 와 영복 옆에 앉는다.
영복이 그리는 그림 보는 윤복. 영복, 그림 감추면,
영복 : 다 마쳤느냐?
윤복 : (손가락으로 머리 가리키며) 여기.
영복, 윤복 보다가 그림 다시 그리고,
신한평은 생도들 사이 다니며,
신한평 : 어서어서 마무리를 하거라! 날이 짧다!
생도들 : (여기저기서) 예-
S#29. 기우제터 천막 안 / 낮 -
제관 : 준비가 되었습니다.
정조 : 가자.
정조 일어서면, 음악소리 들려온다.
S#30. 기우제터 / 낮
악공들의 음악소리 이어지며 용그림 커다랗게 펼쳐져있고,
정조, 절을 한다.
정조가 절을 하고 일어나자 옆 제관이 정조에게 버들가지를 건네준다.
버들가지 받는 정조, 용 그림 앞으로 나간다.
제관, 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정조 옆에 서면,
정조가 버들가지를 들어 물그릇에 담궜다가 용 그림 위에 물을 뿌린다.
물을 뿌린 후 물러서서 절을 하는 정조.
뒤로 물러나자 제관이 향을 쥐어준다. 향에 불을 붙여 들고 서는 정조.
정조 뒤로 백관들이 엎드려 있고, 그들 중에 김귀주(정순왕후의 오빠)와 조영승(정순왕후의 외숙)도 보인다.
정조와 가까운 곳에 홍국영도 보인다.
정조의 옆에 선 제관, 제문을 들고 서있다.
제관 : 하늘과 땅에 아룁니다. 백성과 임금이 경계하고 정진하여 바라오니
풍백 우사 운사께서 강림하여 백성들에게 단비를 내려주시옵소서.
백관들 : 단비를 내려주시옵소서!
정조, 향을 제관에게 건네주면 제관이 향을 꼽는다.
경건하게 절하는 정조. 정조를 따라 백관들도 함께 절을 한다.
cut to
정조가 물을 뿌린 용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앞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양 옆으로 금군이 서슬이 퍼렇게 서있다.
그 모습이 뒤로 보이는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 정조, 제관들 앞에 서 있다.
정조 : 이렛동안 용상을 놓고 비가 오기를 기다린 연후에 기우제를 마치도록 하겠으니,
그 때 까지 몸과 마음을 삼가며 경건하게 하라!
백관들 : 예!
S#31. 궁 일각 / 낮
김상궁(소리) : 도착하였습니다.
가마 열리고, 쓰개치마 쓴 정순왕후가 내려서면,
김상궁이 옆에 서서 주변을 살피며 궐 안으로 들어간다.
S#32. 왕대비전 / 낮
정순왕후 팔 벌리고 돌아서 있고, 상궁들이 정순왕후의 화려한 옷을 한 겹 한 겹 입혀주고 있다.
화려한 옷이 한 겹 한 겹 입혀지고, 고급 향낭으로 귓 뒤를 두드리고 입술을 바르고,
볼에 진주가루를 바르는 격조 있는 치장이 끝난 후...
박나인, 정순왕후의 머리에 떨잠을 꽂는데, 그때 들어서는 김상궁.
정순왕후, 김상궁 보자 박나인을 뿌리치며,
정순왕후 : 어찌 되었느냐?!
김상궁 : (고개 숙이며) 알아보고 있사오나.. 은밀히 하여야 하기에 조금 지체가,
정순왕후 : (탁상 치며) 그러다 늦어서 놓치기라도 하면, 그 때는 어쩔 것인가! 곧 주상이 저녁 인사를 올 터인데!
김상궁 : 망극하옵니다. 알아보고 있사오니 곧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마마.
정순왕후 : 온 나라가 가뭄으로 들끓는 이 때, 게다가 기우제를 지내는 날에 은밀한 나들이를 하였으니,
만일 이를 주상이 알기라도 하면 어찌한단 말이냐..
김상궁 : 마마..
정순왕후 : 그 자가 무엇을 그렸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S#33. 도화서 / 식당 / 저녁
생도들, 밥 먹고 있는데, 윤복이 들어와 영복 옆에 앉는다.
옆에는 술태와 만보 앉아있다. 국밥을 먹는 윤복.
술태 : 넌? 무얼 그렸느냐?
윤복 : 봄이 왔으니 꽃을 그렸지.
만보 : 남자놈이 꽃은... 남자라면, 적어도 고사관수도(주; 노인이 물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는 그려야지.
그렇지 않느냐?
윤복 : 외유사생은 그린 사람 이름도 쓰지 않는데, 뭘 그리건 무슨 상관이오?
만보 : 젖내 나는 소리 하고 있군. 뭘 그리건 상관이 없긴, 그건 외유사생이 뭔질 모르는 소리지. 암.
영복 : 외유사생이야, 춘절을 맞아 녹양방초 속에서 자유롭게 그리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오, 만보형님?
만보 : 어이구, 여기 또 순진한 서생 한 분 계시군. 외유사생이란 말이다, 자유롭게 그리라- 해놓고는 뒤로는 망종들을 솎아내는
것이란 말이다. 위에선 말이다, 우리가 뭘 하는지 다- 보고 있다. 다- 보고 있어.
윤복 : 정말이오?
술태 : 누가 무엇을 그린 줄 안 단말이오? 그리다 말고 그냥 내버렸는데..
영복 : 잘못 내면,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오?
술태 : 설마...!
만보 : 암, 문제가 되지. 잘못되면, 그림 한 장에 모가지까지 날아가는 것이, 이 도화서란 곳이지.
생도들 : ....
만보 : 왜, 눙인 것 같으냐? 이것들이, 지엄한 도화서를 어찌 보고.. 내, 생도 밥 십년을 그냥 먹은 줄 아느냐?
생도들 : (술렁이는데...)
고봉 : (들어오며) 이 형님, 또 그러시네.
생도들 : (고봉 보면)
고봉 : 아, 작년에도 아무 일 없었고, 재작년에도 아무 일 없었는데, 올 해 무슨 일이 있겠소?
만보 : (헛기침하며) 어, 어허..!
고봉 : 왜, 할 말 없으시지? 아이구, 형님도, 순진한 애들한테 식겁할 소릴 잘도 하시는구려!
생도들 : 뭐요/ 눙은 눙처럼 치셔야지 이 형님!/ 난 또... / 하하하../
윤복 : (생도들과 함께 웃다가 떨떠름한 표정이 된다.)
S#34. 정순왕후의 처소 전경/ 저녁
상궁(소리) : 주상전하 납시오!
S#35. 정순왕후의 처소 / 저녁
쪼르르- 따라지는 차. 김상궁, 차를 따르고 물러서면,
정조, 차를 마시고 빙긋 웃으며 정순왕후 본다.
정조 : 할마마마께선 금일 무엇을 하며 보내셨사옵니까?
정순왕후 : 별다른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정조 : 춘색이 만연하니 할마마마의 처소에도 봄기운이 도는 듯하여 여쭈어 본 것입니다.
정순왕후 : 주상께서 이 할미를 희롱하십니까.
정조 : 하하.. 그럴리가요. 소손은 금일 목면산에 올라 기우제를 드렸사옵니다.
정순왕후 : 주상께서 그리 신경을 쓰시니, 어서 비가 와야 할텐데. 이 할미도 온 나라가 타들어가 여간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닙니다.
정조 : (정순왕후 보며) 그러십니까? 그것 참 힘이 되는 말씀이십니다.
정순왕후 : (정조 보며) 그렇다마다요.
정조 : (정순왕후 보다가) 헌데..
정순왕후 : (긴장하고 보면)
김상궁: (옆에 앉아있다 긴장해서 정조 보고)
정조 : (소매에서 선추(주; 부채 끝에 다는 장식)용 나침반 꺼내 정순왕후 앞에 놓으며) 이것을 보시지요.
정순왕후 : (차 마시다 정조가 내민 것 보고) 이것이 무엇입니까?
정조 : 선추용 나침반이라 하옵니다. 청국에서 선물로 보내온 것이지요.
정순왕후 : 나침반이요?
정조 : 예. (선추용 나침반 들어 보이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향방(=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옵니다.
신통하고 귀한 것을 보니 마마가 생각나, 이리(=이렇게) 가지고 왔습니다.
정순왕후 : 향방을 알려준다...
정순왕후 나침반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바늘이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정조, 정순왕후를 본다.
S#36. 정순왕후 처소 앞 / 밤
정조 : 그럼 쉬시지요 마마.
정순왕후 : (웃으며) 살펴 가시지요.
정조 사라지면, 정순왕후, 여유있는 웃음 삭- 감추고 돌아서면, 김상궁 다가온다.
정순왕후 : 누구라 하더냐?
김상궁 : (은밀히) 예. 복색으로 알아본 즉, 도화서의 생도라 하옵니다.
정순왕후 : (김상궁 보며) 도화서? 금일 도화서에서 그린 그림을 모두 가져오라 이르라! 당장!
김상궁 : 예 마마.
정순왕후, 매서운 눈으로 어딘가를 본다.
S#37. 도화서 / 밤
도화서 전경 보인다.
장벽수(소리) : 야심한 시각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입니까!!
S#38. 도화서 / 생도청 교수실 / 밤
금군 1, 2가 추상같이 서있고, 상궁들은 도화서 작업실의 그림들을 뒤진다.
장벽수, 상궁들을 막으려 다가가자 금군1, 2가 장벽수를 가로막는다.
장벽수 : 어찌된 연유인지 묻지 않습니까?
김상궁 : (그림 뒤지며) 금일 도화서에서 그린 그림을 모두 가져오라는 왕대비전의 명령이다.
(상궁들에게) 뭣들하는가! 서두르지 않고!
상궁2 : 다 챙겼습니다.
김상궁 : 가자.
상궁들 그림뭉치 들고 빠져나가면,
장벽수 : 도화서를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가 아닌가!!
금군1, 2, 장벽수 가로막았다가 놓아주고 가면,
장벽수, 엉망이 된 작업실을 둘러보는데..
김덕성, 급하게 들어오다 작업실 꼴 보고 놀라며,
김덕성 :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장벽수 : 내 이런 사태를 야기한 자가 누구인지, 가만두지 않겠네!!
장벽수, 주먹 쥔 손 부들부들 떤다.
S#39. 정순왕후 처소 / 밤
정순왕후, 책상에 앉아 그림을 마구 넘기다가 한 장을 꺼내든다.
김상궁, 정순왕후가 본 그림을 챙기다가, 한 장을 들고 있는 정순왕후 본다.
정순왕후, 들고 있던 그림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주먹으로 쾅! 치며,
정순왕후 : 이 자를 찾아내어라!! 당장!!
화면 가득 보이는 신윤복의 그림, [기다림]
S#40. 도화서 생도청 교육장 / 낮
예조판서(소리) : 어찌 이런 춘화가 도화서 생도청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S#41. 도화서 / 경륜당(=화원회의실) / 낮
예조판서가 중앙에 있고, 신한평 옆으로 자비대령화원들이, 장벽수 옆으로 김덕성을 비롯한 원로들이 보인다.
예조판서 : 도화서 제조 팔 년 만에, (그림 흔들며) 이렇게 보란듯이 여인을 그린 꼴은, 내, 보다보다 처음 보네! 장별제. 말해보게.
이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장벽수 : 그림 한가운데 여인을 버젓이 그리다니, 게다가 치마 근처를 고목둥치 하며... 음란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김덕성 : 보기에도 망측하기 짝이 없습니다.
원로들 : 그렇군/ 그렇지
예조판서 : 이 생도를 당장 데려오게.
장벽수 : 허나, 생도들의 그림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예조판서 : 무엇이라?
장벽수 : 그것이, 정식 화원이 되기 전에는 낙관을 찍는 것도, 이름을 적어 넣는 것도 금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예조판서 : 아니, 이 화사를 지도한 교수가 보았을 것 아닌가? 누구인가?
신한평 : 그것이...
예조판서 : 자네인가?
신한평 : 예.. 허나, 이, 외유사생이라 하는 것은, 워낙에, 이.. 엄격한 격식에 치여 지내는 생도들에게 숨통을 트여주려고,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주제로 그리는 그림인지라...
예조판서 : 그럼, 알아낼 방도가 없다는 말인가?!!
신한평 : ...그렇습니다.
예조판서 : 하! (테이블에 그림 턱! 놓고) 갈수록 태산이군..대비마마께서 당장 데리고 오라 이르셨는데,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화원들 : .....
장벽수 : (신한평에게) 이게 다 자네가 외유사생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생긴 일이네.
기우제에 쓸 용상을 그리는, 그- 신령스런 날에... 어쩌자고 외유사생을 나갔는가?!
신한평 : 아이쿠, 도화서가 생긴 이래 매 년 봄마다 해 왔었던 것을, 왜 금년에만 문제 삼는지 도대체 모르겠군요.
장벽수 : 이렇게 춘화를 그리도록 내버려두었으니 하는 말 아닌가!?
신한평 : 춘화? 춘화라... 이것이 왜 춘화입니까? 춘화란 것은,
이, (허리춤에 손 올리고 흔들며) 이런 것이 나와야 춘화 아닙니까? 예?
김덕성 : 저, 저!!
예조판서 : 그럼 어찌할 것인가!! 삼가고 또 삼가야 할 기우제 기간에 춘화를 그렸다고, 왕대비전에서 노발대발 난리가 났는걸!
자네가 왕대비마마께 한 번 그렇게 말 해 볼텐가? 이것은 춘화가 아니라고?
장벽수 : (신한평에게) 이는 도화서의 기강을 흔드는 일이네.
신한평 : 허나, 그림 한 장 아닌가.
예조판서 : 그만들 하시게!! 내 왕대비전에 이 사태를 알릴 테니, 그 동안 추국을 하건, 생도들을 몽땅 몽둥이질을 하건 간에,
이 그림을 그린 생도를 찾아내게!
예조판서 벌떡 일어나 나가면,
장벽수 : (신한평에게) 그러게 도화서에 국으로 있을 것이지, 왜 외유사생을 데리고 가 이 사단을 만드는가!
내일까지 그 생도를 찾아 내 방으로 오게. 결자해지! 알겠는가?
신한평 : (장벽수 보고)
S#42. 도화서 작업장 / 낮 - 삭제
화원들, 거대한 의궤반차도를 펴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고,
옆에는 생도들이 먹을 갈고 물감을 개며 수종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린다.
생도들과 화원들 보면,
이인문 : 생도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교육장으로 모이거라!
생도들 : (술렁이고)
술태 : 무슨 일이지?
윤복, 영복 : (술태 보고)
이인문 : 뭣들하느냐? 어서 나오라는데?
생도들 일어서고,
S#43. 도화서 마당 전경 / 낮
꽃잎 날리는 평화로운 도화서 마당 전경.
생도청 교육장쪽 보이고... ‘퍽!’ 소리 들린다.
S#44. 도화서 생도청 / 교육장 / 낮
생도들, 교육장에 엎드려 있고, 이인문, 매를 들고 생도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때리고 지나가는 가운데,
신한평이 그림을 들고 생도들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생도들, 엎드린 채 다리 떨고...
신한평 : 내 겨우내-내 갇혀지낸 너희들 숨통을 좀 틔워주려고 무리해서 행한 외유사생인데,
(그림 흔들며) 어찌 이런 불경스런 그림을 그려냈단 말이냐? (생도1 옆 지나다가) 너냐?
생도1 : (고개 젓고)
신한평 : 그럼, (장효원에게) 너냐?
장효원 : 그럴 리가 있습니까?
신한평 : 네 이놈들! 정녕 끝까지 발설치 않을테냐?
신한평, 서슬 퍼렇게 지나가다가 괜시리 고봉 엉덩이 한 대 치고 가는데,
고봉 : 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신한평 : (고봉 슥 보고) 네 놈은 필선이 조잡하니 깜냥도 안 되고.
생도들 : (벌 선 채 픽- 웃고)
신한평 : 누구냐! 지금 웃은 놈이!!
신한평, 윤복 옆을 지나는데,
윤복 : 저, 드릴 말씀이..
신한평 : (윤복 보지도 않고 지나가며) 네 이놈들!! 아직도 솔직히 말 할 생각이 안들었느냐!!!
고봉 : (벌 선 채 다리 벌벌 떨며) 이거, 이러다 내일모레 계월옥에도 못 가게 되는 거 아냐?
장효원 : (작게) 도대체 누구냐.. 누구야!
고봉 : (작게) 글쎄, 난 아니라니까-
신한평 : (생도들에게 큰 소리) 한 놈씩 내 방으로 오거라!
S#45. 도화서 / 신한평의 방 / 낮 - 몽타주
신한평, 정면을 보고 있고,
신한평 : 솔직히 말해 보거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응? 나도 네 나이때는 여자만 보면 속이 후끈해서 잠도 오지 않고,..
그랬는 걸? 너지?
1. 장효원, 짜증나는 얼굴로 신한평을 보고 있다.
장효원 :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그림을 그릴 리가 있습니까?
신한평 : 그놈, 참, 말본새 하곤.. 넌 어찌 갈수록 네 아버지냐? (문 밖 향해) 다음!
2. 술태, 쭈뼛거리며,
술태 : 전요, 솔직히요,
신한평 : (눈 반짝이며) 그래.
술태 : 여자가요, 무섭거든요, 제대로요, 쳐다보지도요, 못해요,..
신한평 : 한심한 것.. 다음!
3. 고봉, 짜증나는 얼굴로 고개 돌렸다 신한평 보며,
고봉 : 어르신!
신한평 : 그래, 얘기해 보거라.
고봉 : 아니, 아까는 저보고 깜냥도 안된다시면서요?
신한평 : 그래, 네 놈은 깜냥이 안되지.. 다음!
4. 만보, 만면에 웃음 띠고 신한평 보며,
만보 : 아시다시피, 저는 처도 있고, 나이도 있고, 그간 여자도 수없이 품어 보았고, 솔직히 이런 그림을 보면, 이.. 어지간해서는
회가 동하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춘화라 하면, 적어도, 이.. (한 손으로 다른 손 덮으며 음란한 모양 만들려는데..)
신한평 : 됐다. 나가 보거라. 다음!
S#46. 도화서 / 신한평의 방 / 낮
윤복, 신한평을 보고 있고, 신한평은 곰방대를 뻑뻑 빨며 밖을 보고 있다.
신한평 옆에는 이인문이 서책을 놓고 기록하고 있다.
윤복 : 아버지, 그 그림은..
신한평 : 그래! 누가 그렸을 것 같으냐? 응?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느냐?
윤복 : (신한평 보고)
신한평 : (윤복 보다가, 뭔가 알아챈 듯) 그래!
윤복 : (긴장해서 한평 보면)
신한평 : 술태지? 그래, 그 놈이 겉으로는 양반입네- 하고 점잖을 빼고 있어도, 이, 발육이 좋아. 그런 놈이 뒤로는 호박씨를 까게
마련이거든? 그지? 그런 것 같지?
윤복 : 술태는 아닙니다.
신한평 : 그럼,... 만본가? 그 놈이 나이도 많고, 본 게 많아. 그렇지?
이인문 : (서책 기록하다 신한평 보고) 만보형님은 말만 그리 하지, 배포가 작아 그런 그림은 못 그립니다. 어르신.
신한평 : 그래? 그럼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 맹랑한 놈이..
윤복 : ... 아버지.. 그것이..
신한평 : .. 그린 자는 있는데 그렸다는 자는 없다.. (담배 빨며) 내, 말은 안했다만,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다.
왕대비전에서 꺼낸 문제니 그냥 넘어가긴 힘들 게야. 암.
윤복 : 대비.. 전이요?
신한평 : 뭐, 네가 겁먹을 것은 없다. 그림을 그린 자만 찾으면 도화서도 다시 잠잠해 질 테니, 넌 괘념치 말고 단오절에 있을
화원 시험에 정진하도록 하여라. 알겠지? 나가 보거라.
윤복 : (신한평 보며) 예..
신한평 : (이인문에게) 다음은 누구지?
윤복, 불안한 표정으로 신한평 본다.
S#47. 도화서 / 세면장 / 저녁
생도들, 세면장에서 붓을 씻고 있는데, 윤복이 붓 들고 와 영복 옆에 앉아 붓 씻고..
장효원 : (윤복에게) 너네 아버지 어떻게 된 것 아니냐?
윤복 : (효원 보면)
장효원 : 그린 놈이 누구건간에, 물어본다고 ‘네-’하겠냐? 그 그림이 무슨 문제라도 된 모양인데, 어떤 바보가 ‘제가 그렸습니다’
그러겠냐고? 괜시리 시간만 잡아먹고, 매질만 실컷 하고.. (고봉에게) 안그러냐?
고봉 : 그렇지그렇지, 누가 ‘니에-’하겠냐? 혼이 나도 단단히 날 것이 뻔한데. 그렇지?
윤복 : (멍하니 붓 빠는 손 멈추고 있으면)
영복 : 괜찮으냐?
윤복 : 형.
영복 : 응?
S#48. 도화서 / 생도청 기숙동 / 윤복과 영복의 방 / 밤
영복, 이불을 펴고 있고, 윤복도 자기 이불을 정돈하다가,
윤복 : 형이 보기에도 그 그림이 그리 잘못된 그림같아?
영복 : (이불 펴며) 이상하지.
윤복 : 뭐가 그리 이상하오?
영복 : 생도청에 들어온지 3년이 되었지만, 여인을 그린 것은 처음 본다.
윤복 : 여인을 그린 것이 그리 이상한 것이오? 난 그것이 더 이상하오.
영복 : 무엇이?
윤복 : 아니, 남정네들은 모였다 하면 여인 이야기만 하고, 길가다가 여인이 지나가면 여인을 보느라,
물고 있는 곰방대가 떨어져도 모르는데,.. 어찌 화폭에 담는 것만 아니된다 하지? 이상하지 않소?
영복 : 그건..
윤복 : (눈 반짝이며 영복 보면)
영복 : (눈 피하고, 이불 괜히 털며) 여인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 아니겠냐?
윤복 : 마음에는 담아도 되고, 화폭엔 안된다? (영복 보고) 형님도 있소? 마음에 담은 여인이?
영복 : 뭐? (이불 덮으며) 쉰소리 말고 잠이나 자거라.
윤복 : 어? 있으시오? 형님! (이불 걷어내려 하며) 누구요? 응?
영복 : (이불 덮어쓰고 버티며) 있긴 뭘 있다고 그러느냐?
윤복 : 하긴, 형님같은 쑥맥이,.. 마음에 둔 여인이 있을 리가 없지. (벌렁 누워 이불 덮고) 잘 자오.
영복 : (윤복 보고) 잘 자거라.
영복, 등잔불을 끈다.
S#49. 정순왕후의 처소 / 밤
정순왕후, 책상 내리친다.
정순왕후 : 무엇이라? 그 생도를 모른다?
김상궁 : 예.
정순왕후 : 도화서 생도가 백 명이더냐, 천명이더냐! 겨우 몇 십 명 중에서 그 자를 못 찾아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말이다!
김상궁 : 송구하옵니다.
정순왕후 : 기우제 초일에 일어난 일이니, 기우제가 끝날 때 까지 범인을 못 찾으면 책임자를 엄중히 문책 하겠다 일러라.
알겠느냐?
김상궁 : 예 마마.
S#50. 도화서 / 화원 회의실 / 밤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에 장벽수와 신한평, 원로들 둘러앉아있고, 가운데 자리에는 예조판서가 앉아있다.
화면 가득 보이는 신윤복의 그림, [기다림]
원로들, 심란한 표정으로 보고 있고,
예조판서 : 기우제가 끝나는 엿새 후, 그 때 까지 찾아내라는 엄명이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신한평 : .. 이 이상 더 들쑤셔 놓으면 어린 생도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끝까지 함구하고 넘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면 그 생도를 알아내지 못할 것이고... 하면.. 혹 생도들 전원을 불러올려 문초를 할지도 ..
다 해야 겨우 스무명 아닙니까? 그리하면..
예조판서 : 그리하면 뭔가?
신한평 : 생도들이 온전치 못할 텐데...
원로들 : ....
김덕성 : ..혹, 그 자라면...이 일을 해결할 지도...
장벽수 : (연적 만지며) 누구 말입니까?
김덕성 : 지금 묘향산에 쫓겨가 있는...
장벽수 : 묘향산.. (연적 만지던 손 멈추고)
S#51. 도화서 / 홍도의 방 / 밤 - 회상
그림을 그리는 홍도. 창 밖으로 번개가 번쩍인다.
그림 그리며 번쩍이는 홍도의 눈빛 보이며,
김덕성(소리) : 그 자는 붓질만 보고도 그림을 그린 자를 알아내는 귀신같은 눈을 가졌습니다.
홍도, 힘차게 붓 내리긋는 위로, ‘쾅!’소리 들린다.
S#52. 도화서 / 화원회의실 / 밤
장벽수 : (연적 쾅! 놓으며) 안됩니다. 주상전하의 총애를 등에 업고 우아래도 구분 못하고 까불어대는 그런 자를
다시 도화서에 들이다니요!
신한평 : 그럼요! 단원, 그 자는 안되죠, 아니됩니다. 도화서의 법도를 조금치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돌아온다면,
어린 생도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안되죠, 안되.
김덕성 : 그렇지만, 그 자가 아니면 생도들을 추국해야 하는데, 그리하면 생도들의 몸이..
장벽수 : 됐습니다. 그래도 그 자는 안됩니다!!
김덕성 : 허나...
예조판서 : 한심한 인사들 같으니...이 생도를 잡아내지 못하면 (장벽수 보며) 자네 뿐 아니라 내 목까지 날아갈지도 모르네!!!
그런데도 한가하게 그런 소리나 하고 있겠는가?
장벽수 : ....
예조판서 : 자네들이 못하겠으면 나라도 추국을 지시하겠으니 그리 알게!
S#53. 정조의 집무실 / 밤
정조, 집무실에 앉아 보고서를 보고있고, 앞에는 홍국영이 읍하고 있다.
정조 : (집무서 보고) 이것은 무엇인가? 왜 도화서에 내금위 군사들이 갔었는가?
홍국영 : (정조가 내민 집무서 보고) 왕대비전에서 내린 언교이옵니다.
정조 : 왕대비전?
S#54. 후원 / 낮
정조와 정순왕후, 후원을 거닐고 있다.
정조가 준 선추, 정순왕후가 들고 있는 부채 끝에 매달려 있다.
정조 : 마마 무슨일이옵니까?
정순왕후 : 나라에 비가 오지 않아 온 백성이 자중하여야 할 때, 왕실의 일을 기록하는 도화서에서 춘화가 나오다니요?
있어서는 아니될 일이 지요.
정조 :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마마는 어떤 내력으로 도화서 생도의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까?
정순왕후 : 주상께서는 지금 이 할미를 문초하는 것입니까?
정조 : 문초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하하..
정순왕후 : 이 일은 엄하게 다뤄야 합니다. 이 할미가 하늘을 노하게 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어 처단할 것이니
아무 염려 마시지요. 그것이 정사를 돌보느라 힘든 주상께 이 할미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정조 : 소손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하여, 이 일에 꼭 맞는 자를 부르려 합니다.
정순왕후 : 꼭 맞는 자라니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정조 : 단원 말입니다. 단원 김홍도.
정순왕후 : 단원.. 김홍도? 그 자는...!
정조 : 약관의 나이에 어진화사를 수행한, 하늘이 내린 화공이지요. 세손시절 소손의 방에 있던 책가도 병풍도 단원의 그림입니다.
마마께서 볼때마다 탐내던 그..
정순왕후 : ..허나..
정조 : (빙긋) 그 자라면 능히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순왕후 : ... (불편한 얼굴로 정조 보고)
S#55.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낮
장벽수, 골똘히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면 창밖으로 도화서 연못이 보인다.
김덕성이 차를 마시다 장벽수 본다.
장벽수 : 그 자는 반드시 도화서에 분란을 일으킬 것이네.
김덕성 : 그 생도만 찾으라 이르고 돌려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장벽수 : (손으로 관자놀이 누르며) 고령신씨, 인동장씨 , 양천허씨, 안동김씨,.. 도화서에서 잔뼈가 굵은 가문에서는
망둥이가 나온 적이 없네. 허나, 단원은 달라. 그런 근본도 없는 자는.. 도화서에 두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김덕성 : 연유가 그것뿐입니까?
장벽수 : 무슨 말인가?
김덕성 : 그것만으로는 단원을 왜 그리 저어하는지 모르겠어 하는 말입니다. 정녕 그 것 뿐입니까?
장벽수 : (김덕성 보다가) 그럼 무엇인가? 다른 연유라도 있다는 말인가?
김덕성 : (의심스런 눈빛을 조심스레 보내는데)
S#56. 도화서 / 신한평의 방 / 낮
책상에 앉아 손가락 달각거리다가,
신한평 : 단원이 온다...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왔다갔다하며) 그 자는 모를 거야... 암... 알 수 없을 거야...
신한평, 초조한 얼굴로 창 밖을 보고..
S#57. 이인문의 집 / 낮
아담한 초가집. 이인문, 집으로 들어와 툇마루에 앉아 신 벗으면,
부엌에서 앞치마 두른 이정숙이 손 닦으며 나온다.
정숙 : 오라버니 오셨어요?
이인문 : (신 벗어 손으로 가지런히 모아두며) 건넌방에 무얼 넣어두었지?
정숙 : 건넌방이요? 메주도 널어두었고, 뒤주도 들여놓았고, 또, 무얼 두었더라..
이인문 : 비워두거라. 단원이 돌아오면 잠시 머물게.
정숙 : (손 꼽다가 놀라며) 예? 단원? 단원이요?
인문, 평상에 앉아 버선 벗는데, 정숙 달려와서,
정숙 : 오라버니! 단원 오라버니가 한양에 오시는 것인가요?
인문 : (버선 접어놓고 발 만지며) 그리 속을 내비쳐서 어떤 남정네가 마음을 움직이겠느냐.. 쯧쯧..
정숙 : 진짜 돌아오시는군요!
인문 : 그리 좋으냐?
정숙 : (부엌으로 가며) 오라버니도 참..
S#58. 궐 일각 / 낮
정조, 편전으로 향하고, 홍국영이 뒤를 따른다.
정조 : 이렇게 해서.. 드디어 김홍도를 불러들이게 되는군. (홍국영 보고) 금군을 보냈는가?
홍국영 : 예. 늦어도 익일 새벽에는 당도할 것입니다.
정조 : (걸으며 혼잣말) 홍도가 온다...
S#59. 묘향산 숲 속 / 낮
우거진 숲 속. 넝쿨이 얽힌 사이로 머리 하나가 슥 올라온다.
헝클어진 머리, 검댕이 칠해진 얼굴, 동물 가죽으로 만든 화구통을 둘러맨..
마치 사냥꾼같기도 하고, 야인같기도 한 모습의.. 홍도!
‘자막 ; 평안도 묘향산’
주변을 슥 둘러보는데, 홍도 앞으로 슥 지나가는 그림자.
홍도,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고 그리로 가면...
S#60. 묘향산 숲 속 / 일각 / 낮
소나무 아래 자리 잡고 앉는 호랑이의 뒷태.
홍도, 얼른 화구통에서 화선지와 붓을 꺼내들고 호랑이를 스케치하는데...
홍도(소리) : 범.. 군자라 불리는 짐승.. 과연 군자라 불릴 위용이다...
홍도, 그림 그리는데, 홍도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홍도 보면, 호랑이가 홍도를 빤히 보고 있다.
홍도, 그대로 멈춰서 호랑이 보는데...
호랑이가 슬금슬금 홍도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하고,
홍도, 조금씩 뒷걸음질치다가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호랑이, 홍도의 뒤를 쫓아 달리고..
S#61. 묘향산 숲 속 / 다른 쪽 / 낮
홍도, 미친듯이 달려가면, 홍도 뒤로 달려드는 호랑이.
홍도, 나무둥치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호랑이는 그 위로 뛰어넘는데...
S#62. 묘향산 / 절벽 / 낮
홍도, 수풀을 뚫고 나오면,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다.
홍도, 돌아가려고 뒤돌면, 홍도 뒤로 슬슬 걸어나오는 호랑이 보이고..
홍도, 절벽 끝에 서서 호랑이와 빤히 마주보는데,...
호랑이의 털이 바람에 살랑, 날린다. 그 순간,
호랑이가 홍도쪽으로 도약을 하고, 홍도도 절벽 아래로 뛰는데..
S#63. 묘향산 / 절벽 아래 / 낮
절벽 아래, 계곡 물 속으로 떨어지는 안경.
뒤이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홍도 보이고,
절벽 위에서 포효하는 호랑이, 아래쪽을 보다가 숲 속으로 사라진다.
허우적거리는 홍도 앞에 길다란 작대기가 보이고,
홍도, 그 작대기를 잡고 작대기 끝을 보면, 평양관원 하나와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금군 둘이 물가에 서있다.
관원 : 범이래 다 잡았시오?
홍도 : 잡았디! (머리 가리키며) 요기. (금군들 가리키며) 뉘기?
관원 : 한양서 단원이래 찾아왔디!
홍도 : 한양?
금군1 : 단원 김홍도가 맞습니까?
홍도 : 기런디?
금군2 : (두루마리 펼치며) 어명이오! 화원 김홍도는 당장 도화서로 복귀하라는 어명이오!
홍도 : (물 속에서 막대기 잡은 채) 어명?
S#64. 산길 / 낮
홍도와 금군1, 2 외로 난 산길을 따라 걷는데,
금군1 : 얼마만이오? 한양은.
홍도 : 글쎄.. 한양은 어떻소? 그간 많이 변했소?
금군1 : 예전같진 않겠지요.
홍도 : ....
S#65. 저잣거리 / 낮
왁자한 저잣거리 풍경 보이고, 엿장수 젓가락 소리, 포목점에서 흥정을 하는 기생과 아낙들의 웃음소리,
봄기운 물씬 넘치는 저잣거리 풍경 보며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홍도.
‘자막 : 한양’
금군1, 2 홍도의 옆에서 걷고, 홍도, 저잣거리 풍경 보며 걷는데,
홍도 : 많이 변했는걸? 많이 변했어. 이거, 눈이 네 개라도 부족하겠는걸?
금군1 : 출출한데, (주막쪽 가리키며) 국밥 한 그릇 먹고 가는게 어떻소?
홍도 : 아, 먼저들 시작하시오. 내, 눈이 영 불편해 애체(주; 안경의 옛 이름) 하나 골라 갈테니.
금군1 : 그러시오.
금군2 ; 빨리 오시오.
금군1, 2 멀어지면, 홍도, 유유자적 저잣거리를 걷고,
S#66. 저잣거리 / 배첩장(= 표구사) / 낮
윤복, 종이뭉치를 배첩장 박씨에게 넘겨주면,
박씨 : 족자용으로? 전부?
윤복 : 예.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박씨 : (손가락 짚어보다가) 두 식경?
윤복 : (고개 저으며) 한 식경.
박씨 : 대충 하면 그리 되고. 일재 어르신은 귀신같이 알아보실 텐데..
윤복 : 알았으니, 어서 시작하십시오.
박씨 : 새로 들어온 그림들 찬찬히 보고 계시게. 단원 그림도 들어왔으니.
윤복 : 예? 단원 김홍도? 그 그림이 들어왔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박씨 : (안쪽으로 가며) 밖에 나가 보시오. 참, 그것은 임자가 있는 그림이니, 조심해서 보시오!!
윤복, 이미 밖으로 나가고 있다.
S#67. 저잣거리 / 배첩장 외부2 / 낮
홍도, 안경집을 휘두르며 저잣거리를 걷다가 걸음 멈춘다.
배첩장쪽 보는 홍도... 한 그림에 시선 멈춘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취생도])-
홍도, 그 쪽으로 발걸음 떼는데..
S#68. 저잣거리 / 배첩장 외부 / 낮
윤복, 배첩장 밖으로 나오는데, 홍도도 배첩장 쪽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 한 그림을 보더니 동시에 손을 뻗는데.. ‘단원’낙관이 찍힌 그림.
윤복 : 놓으시지요.
홍도 : 허허.. 젊은 친구가 방자하군. 장유유서 모르는가?
윤복 : 이 그림은 내가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그림이니, 먼저 좀 보겠습니다!
홍도 : 이 놈, 구경하는데 순서가 있더냐? 내가 먼저 집었다.
윤복 : (그림 당기며) 양보하시지요.
홍도 : (당기며) 어허, 이 친구..
두 사람 팽팽하게 마주보는 가운데, 직! 소리 들린다.
박씨 : 아니, (놀라 달려나와 찢어진 그림 보며) 아니, 이 귀한 것을!! 어쩔 것이오? (그림 들고) 어쩔 것이오!!
금일 저녁에 찾아가기로 한 그림인데, 이를 어쩔 것이오!! 이미 값도 치루고 간 그림을, 내, 살-짝 보라고 잠시 내놓았더니!!
윤복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홍도쪽 보고, 작게) 뭐하시오? (손 비비는 시늉하며, 박씨쪽 가리키면)
홍도 :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윤복 보고)
윤복 : (속 타는데)
박씨 : 아이고, 이게 얼마짜린데.. 난 죽었소, 망했소, 아이고..
홍도 : 대체 그 그림이 얼마나 하는데 그러오?
박씨 : 보다시피, (‘단원’낙관 찍힌 부분 흔들며) 이게 그 유명한 단원의 그림이란 말이오, 단원!
자그마치, (손가락 세 개 펴며) 삼백냥짜리란 말이오.
윤복 : 사, 삼백냥이요? (홍도 보면)
홍도 : (그림 뺏어들고) 이것이, 그렇게나 된단 말이오?
박씨 : (다시 뺏어들고) 단원이라 하지 않았소? 어쩔 것이오? 물어낼 것이오?
홍도 : (그림 보며) 단원이라..
윤복 : 그려드리겠소.
홍도 : (윤복 보면)
윤복 : 내, 똑같이 그려 드리겠소.
박씨 : 이런 정신나간 인사! 조선 최고의 화원이 그린 그림을, 자네같은 얼치기가 어찌 똑같이 그린단 말이오?
윤복 : (주변 뒤져 종이 가져오고, 소매에서 지필묵 황급히 꺼내며) 잠깐! 기다려 보시오!!
홍도 : 그림을... 그릴 줄 아시오?
cut to
하얀 종이에 붓이 들어와 선을 긋는다.
윤복, 붓질하면.. 홍도, 윤복의 붓질 본다.
슥슥- 거침없이 그어지는 붓선 따라 그림의 형태가 갖추어져 가고, 한껏 집중한 윤복의 눈이 반짝인다.
홍도, 윤복 보다가,
홍도 : 그, 필선이 다르지 않소?
윤복 : ...(붓 들어 선 내리그으면)
홍도 : 저런, 소나무를 그릴 때는 갈필을 써야지. 붓에서 물기를 빼고, 한 번에 빨리! (보며) 더 빨리-
윤복 : (선 더 그으면)
홍도 : 조금 더, 힘있게!
윤복 : (붓 들고) 거 좀! 모르면 가만 계시오.
윤복, 붓질 하려 하면,
홍도 : (윤복이 붓 잡은 손을 쥐고) 이건 갈필인데. 붓이 이렇게 젖어서야 쓰나 (붓에 묻은 먹을 손으로 짜내 바닥에 툭 털며)
이정도는 되야 갈필이지. 소나무는, 갈필로, (종이에 붓 내리찍으며) 이렇게! 단번에, 멈추지 말고.
윤복 : (손 쳐내며) 모르는 소리! 단원의 그림은 (자기가 그린 선 가리키며) 이렇게, 흐르는 듯한 맛이 있어야 단원이란 말이오.
알아듣겠소?
홍도 : 오호.. 그렇소?
윤복 : 그렇소. 이렇게 갈필을 할 때도 기운이 생동하는 것이 느껴져야, 그것이 단원의 그림이란 말이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러니, 얌전히 계시오.
홍도 : 이야, 이거, 영 얼치기는 아닌가보네. 단원을 잘 아는가보군?
윤복 : 것 참! 시끄럽소. 아오, 아주 잘 아오!
홍도 : 어찌 잘 알지?
윤복 : (상종 않겠다는 듯 고개 젓고, 붓질)
홍도 : (윤복의 필선 보며) 화사(=그림 그리는 일)는 어디서 배웠소?
윤복 : 식경 안에 마쳐야 하니 제발 조용히 좀 계시오.
하는데, 금군1, 2가 홍도 양 옆에 선다. 홍도 보면,
금군2 : 아니, 애체 사러 간 사람이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홍도 : 벌써 다 드셨는가? 저런, 난 출출한데...
금군2 : 시간이 없으니 그냥 가십시다.
홍도 : 그럼 가 볼까?
윤복 : 아니, 지금 어딜 가시오? 반쪽은 그 쪽 책임인데.. 백오십냥 놓고 가시오!!
홍도 : 이 몸은 나랏일로 좀 바빠서.. (금군1, 2에게) 개자구!
윤복 : (그림 그리며) 아니, 저 사람!! 이보시오, 그냥 가면 어떡하오! (일어서며) 이, 똑같이 그리지 못하면 물어내야 하는데,
백오십냥을 놓고 가야 할 것 아니오!!
홍도 : (멀어지며) 괜티않아! 녈씸히 그리라우!
금군들과 홍도 사라지고,
S#69. 도화서 앞 / 낮
금군1, 2와 홍도 도화서 앞에 서 있다.
홍도 : (금군에게) 수고들 하셨군.
금군1 : 들어가 보시지요.
홍도 : 그래, 그래야지..
금군1,2 가면, 홍도, 도화서 문을 민다. 끼이- 열리며 보이는 도화서 풍경.
홍도, 문틈으로 보이는 도화서 풍경을 잠시 바라보며
홍도 : (도화서에게 이야기 하듯 선선히) 오랜만이다...
S#70. 도화서 마당 / 낮-수정
홍도, 도화서 마당에 들어서면, 잔디밭 펼쳐진 도화서 전경 보인다.
마당 가운데 서서 생도청, 작업장, 강연장, 연못 곳곳을 둘러보는 홍도.
곳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생도들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리며,
그 자리에 젊은 홍도, 젊은 서징, 젊은 이인문이 장난을 치며 걸어가다 사라지는 모습 보이고, 홍도 미소 짓는데,
이인문 : 여보게! 단원!!
이인문, 서책 들고 지나가다 홍도 보고 오면,
이인문 : (홍도의 어깨 덥썩 잡으며) 단원, 이 사람!! 어떻게 지냈는가? 응? 몸은 괜찮고?
홍도 : 잘 지냈는가?
이인문 : 자네가 온다는 전갈을 듣고 정숙이가 기다리고 있네. 일단, 오늘은 우리집에 가서 푹 쉬고,
홍도 : 이보게, 천천히 하게. 먼저 별제 어르신부터 뵈어야지.
S#71.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낮-줄친 부분 삭제
장벽수의 방, 홍도가 들어서면, 장벽수 책상에 앉아 홍도를 보고 있다.
홍도, 책상에 놓인 그림 보고 있다. 신윤복의 [기다림].
홍도 : 그간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장벽수 : 자네도 좋아졌군.
홍도 : 좋아졌다 뿐입니까? 다시 태어난 거나 진배없지요? 어르신 덕에 팔자에도 없는 호랑이 구경을 다 하였으니..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할지, 허허..
장벽수 : 자네라면 능히 해 내리라 믿고 있었네.
홍도 : (의자에 앉으며, 장벽수 보고) 어련하시겠습니까?
장벽수 : (홍도 보고) 당연한 것 아닌가?
홍도 : ...이제 회포는 대충 푼 것 같은데, 본론을 말씀해 주시죠. 주상전하께서 갑작스레 저를 도화서로 불러들인
연유가 무엇입니까?
장벽수 : 역시 자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테이블에 그림 올려놓고) 이번 외유사생에서 생도 중 한 명이 그린 그림일세.
이 춘화를 그린 범인을 찾아내라 자네를 부른 것이네.
홍도 : (무관심하게 그림 슥 들어올리다가, 점점 정색을 하고 그림을 들여다보며 숨 죽이고) 이것이 진정 어린 생도의
그림이란 말입니까?
그림을 들고 한동안 말없이 보다가 눈을 감는 홍도.
장벽수, 고고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말없이 홍도 보는데, 홍도가 눈을 번쩍 뜬다.
장벽수 : 무엇이 보이는가?
홍도 : ...(그림 보고) 이것은 어린 생도의 깜냥을 뛰어넘는 그림입니다.
장벽수 : 어째서 그런가?
홍도 : 구도가 배포있으며, 발상이 독특합니다. (신나서, 그림을 장벽수 앞에 놓으며) 보십시오.
홍도의 설명에 따라, 그림 속 여인에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고개 돌린 얼굴에 ‘?’표시가 되는 위로,
홍도(소리) : 한가운데 우뚝 선 여인(여인에 동그라미 그려지며)이 그림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좌우로 뻗친 담장('v'표시)과
고목('v'표시)은, 더할 수 없이 안정적이면서도, 움직이는 듯 한 운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앞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린 것('v'표시)은 보이지 않는 저 깊숙한 곳 까지 유추하게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수작입니다.
홍도,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장벽수 보면, 찜찜한 얼굴로 홍도 보는 장벽수.
장벽수 : 자네 지금, 정신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 여인의 발치에 뿌리박은 고목을 보고도 모르겠나?
게다가, 이 여인이 손에 든 것이 무엇인가? 송낙 아닌가? 정분을 맺고 내뺀 중놈이 빠뜨린 송낙을 들고
여염의 아낙네가 안절부절하는 광경일세. 이 그림은 영락없는 춘화네.
홍도 : 춘화다... 이 그림이 춘화다.. (그림 보고) 그럼, 어찌되는 것입니까? 이 생도는.
장벽수 : 도화서에서 분란을 일으킨 자가 어찌 되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홍도 : ...허면, 장파형(주 : 손을 망치로 내리쳐 불구로 만드는 형벌)에라도 처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장벽수 : 그것이 도화서다. 그림 한 장에 손목 뿐 아니라 목이 달아나기도 한다는 것. 알고 있지 않는가?
홍도 : ...여전하시군요.
장벽수 : 못 하겠으면 그만두게. 당장에 서안을 써서 돌려보내줄 테니. (설합에서 종이 꺼내고 붓걸이에서 붓 꺼내며)
어찌하겠는가?
홍도 : ....(그림 보고)
장벽수, 붓에 먹 묻히는데,
홍도 : (그림 보며) 언제까지입니까?
장벽수 : (붓 놓고, 손가락 일곱 개 보이며) 닷새. 닷새 후 기우제가 끝날 때, 그 때까지 이 그림을 그린 생도를 찾아내게.
홍도 : (장벽수 보면)
음악소리 들리고,
S#72. 김조년의 집 전경 / 저녁
고급스런 김조년의 집 전경이 이는데.. 음악소리 이어진다.
S#73. 김조년의 집 / 사랑채 / 저녁
사랑채 앞 마당에 4인조 여악공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가운데,
대청에 앉아있는 사람들, 장벽수, 조영승, 김귀주, 그리고 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린 김조년 보인다.
사람들 앞에는 술과 안주가 차려진 조그만 각 상이 놓이는 가운데,
일동, 앞에 놓인 선물 보고 있다. 귀한 벼루와 먹, 시전지, 산호 등 화려한 선물.
김귀주 : (선물들 들었다 놨다 만지며) 하여, 단원이 오게 되었으니..(붉은 산호 만지며) 이것은 청국에서도 구하기 힘들다는
천연 적산호 아닌가?
김조년 : 역시 안목이 높으십니다.
김귀주 : 하하. 이 사람..
장벽수 : 단원이 왔으니, 혹 10년 전 일에 대해서 캐내지 않을지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려던 것 아닙니까?
김귀주 : (여전히 산호 보며) 그렇지. 조심하자구.
장벽수 : 이번 일이 끝나면 그 자를 다시는 보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도를 찾자는 상의를 드리자는 것인데..(김조년 고깝게 보고)
김귀주 : (산호 이리저리 돌려보고, 다른 선물 집어들어 보며) 그래, 찾아야지.
김조년 : (웃으며) 이것은 우상대감께 드리고 싶습니다. 받아주시지요.
조영승 : 무엇인가? 풀어보게.
장벽수, 김조년에게 그림 받아서 두루마리 풀면,
[사시군방(주 : 사계절의 꽃들)]이라고 써놓은 그림 보인다.
조영승 : ‘사시군방’이라.. 허나.. 글 읽는 선비의 집에 꽃이 무언가? 사양하겠네. (김조년에게 그림 건네면)
김조년 : (장벽수에게) 사시군방은 말 그대로 풀자면 ‘사계절의 꽃들’이 맞지요. 그러나,
그림을 펼쳐 장벽수에게 들게 하면, 장벽수, 어쩔 수 없이 한 쪽 들고,
김조년 : 이 그림은 꽃의 향기를 돌려서 표현하기 위해 그려진 것입니다.
조영승, 김귀주 : (김조년 보면)
김조년 :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별제.
장벽수 : 그걸 누가 모르는가!
김조년 : 그러니 꽃을 그려 향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원래 향기는 군자의 인품을 뜻합니다.
이 그림을 옆에 두고 있는 것은 일 년 내내 인품높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격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
(조영승 보며) 글 읽는 선비께 드리는 선물로 제격인 것이지요. (말아서 내밀며) 그래도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조영승 : (김조년 보다가) 뜻이 그러하다면, 받아두도록 하지.
김조년 : 감사합니다. 드시지요.
김조년, 사람들에게 술 권하고 자기도 한 잔 마시는데..
포목점 주인(이하 ‘포목점’)이 마당에 들어서고, 종들은 막으며 실랑이하는 모습 보인다.
포목점 : 여보게 조팔이!! 우리 지전 좀 살려주게!! 조팔이!! 안들리는가!!
김조년 : 허, 저 사람.. (주위 둘러보며 미소) 잠시 계시지요.
S#74. 김조년의 집 / 광 / 밤
김조년, 종놈이 양쪽에서 잡고 있는 포목점에게 주먹을 날리고 물러서면,
피떡이 된 포목점 보이고,
포목점 : 조팔이, 왜 이러는가? 자네, 광통교 시절을 잊었는가? 우리 포목점 좀 살려주게! 우리 집사람이,
(하며 김조년에게 달려가는데)
설청 : (접힌 부채 뻗어 포목점의 목젖을 순식간에 강타하면)
포목점 : (숨이 턱 막혀 허리 숙이고)
김조년 : (뒷짐 진 채 뒤도 안돌아보고 가며) 허허, 조팔이라니.. 사람 참..
김조년, 사랑채 쪽으로 가면,
설청, 종놈들 보며 눈짓 한다. 몽둥이 들고 포목점을 향해 다가가는 종놈들.
S#75. 김조년의 집 / 사랑채 / 밤
김조년, 빙긋 웃으며 조용히 들어오며,
김조년 : 재밌는 이야기들 나누셨습니까?
조영승 : 단원 그 자가 춘화를 그린 생도를 찾아낸 연후에, 그 때가 적시야. 그 때 어찌할지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게.
내 예판에게도 언질을 할 테니.
장벽수 : 예. 그리 하겠습니다.
김귀주 : 헌데, 도대체 단원 그 자는 어찌 갑작스레 한양에 올 수 있었단 말입니까?
장벽수 : 주상전하께서 불러들이셨습니다.
김귀주 : 주상전하께서?? 친히 말인가?
S#76. 정조의 처소 / 낮-수정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보이고, 정조가 그 그림 보고 있다.
홍도는 바닥에 엎드려 있다.
정조 : 과연.. 터럭 한 올까지도 살아 있는 듯 생동하는군. (그림 내려놓고) 지금껏 묘향산에 범을 보러 가 살아 온 자가 없었는데,
자네는 살아왔을 뿐 아니라 범 역시 이렇게 산 채로 가지고 왔군.
홍도 : 범.. 범이라.. 하두 봐서 이제 집사람 같습니다.
정조 : 하하. 혼인도 안 한 총각이 눙치는 품새하곤! 여전하군, 여전해. 자네의 그림을 다시 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유쾌해 지는걸.
홍도 : 주상전하께서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만인지상이 되어서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보고 듣는 것에 목말라하시니 말입니다.
정조 : 자네가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지. (홍도 보며 미소) 참, 도화서에서 생긴 일은 들었겠지?
홍도 : 예 전하.
정조 : 그래. 할마마마께서 저리 노하시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고... 홍도 자네라면,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홍도 : 글쎄요.. 어떤 생도인지, 화원도 되기 전에 주상전하의 입에 오르내리다니, 거, 보통내기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정조 : 하하. 그리 볼 수도 있겠군 그래. (홍도 보고 웃다가) 어쨌거나, 자네가 무사히 돌아와 준 것이 중요한 거지.
(홍도의 손 잡고) 살아줘서 정말 다행이야.
홍도 : (손 잡힌 채, 정조 보면) ....
S#78. 김조년의 집 / 사랑채 / 낮
김조년, 보검을 천으로 닦으며 빙긋 웃는데,
김조년의 사랑채 끝에 단단하게 서 있는 여자 무사 설청이 조년을 본다.
김조년 : 단원이 돌아왔다...
설청 : 그 자가 누구입니까?
김조년 : 누구냐고? 별당 옆에 짓고 있는 사화서를 보았느냐?
설청 : 예.
김조년 : 장차 그 곳에 들일 화원이지. 내 소장품 중 최고의 물건이 될 것이다.
김조년, 다시 칼 닦으며 빙긋 웃는다.
S#79. 도화서 / 홍도의 방 / 낮
홍도, 방에 들어와 문을 닫는다. 책상을 쓸어보는 홍도.
홍도, 책상을 옆으로 밀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바닥을 손가락으로 만지는 홍도. 끝에서부터 하나, 둘, 셋, 네 번째 마루에 이르러 손을 멈춘다.
마룻장이 열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그림을 꺼내는 홍도.
그림을 가만히 펼치는 홍도(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끝이 나긋나긋 닳아 둘둘 말린 종이그림. ‘얼굴없는 초상화’)
홍도 : (그림 보며) 오래 기다렸군...
S#80. 생도청 기숙동 / 세면장 / 낮
세면장에서 붓을 씻고, 등목을 하고, 세수를 하는 생도들 보인다.
생도들, 둘, 셋씩 모여 수군거린다.
그들 사이, 붓을 씻고 있는 영복과 윤복이 보인다.
만보 : 너희들, 새로 오신 스승님 얘기 들었냐?
술태 : 단원 선생님?
윤복 : 단원? 단원 김홍도 선생이 오신다고?
만보 : 그래. 약관의 나이에 어진화사까지 수행한 도화서 최고의 화원이었는데,
10년 전에..묘향산으로 쫓겨가서 미쳐버렸다고 하더라.
윤복 : 단원 스승님이? 그럴 리가.
만보 : 이런 순진한 놈들. 옛날에, (은밀히) 별제로 있던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친구도 칼에 찔려 죽었는데,
그 때 미쳐서 날뛰다가 뭐, 자기 눈을 찔렀다고 하나? 장벽수 별제 어르신을 죽이려고 했다나?
장효원 : 그게,
생도들 : (효원 보면)
장효원 : 사실 친구랑 스승을 죽인 것이... 단원선생님이라는 말도 있다...
윤복 : 말도 안되는 소리.
장효원 : 왜, 내가 없는 말이라도 지어낸 것 같으냐?
만보 : 여보게 생도장, 그래도 그건 좀 지나친 면이 있네.
술태 : 그래.
장효원 : 하여간,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윤복 : (장효원 보며)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도 있지.
장효원 : (윤복 보는 채) 고봉아.
고봉 : 응?
장효원 : 가자. 늦겠다.
고봉 : 그럴까? 그래, 가자!
장효원과 고봉 가면,
영복 : 우리도 가자.
무신이 앞장서고 윤복과 영복이 같이 가는데, 윤복이 멈춰선다.
영복 : 왜?
윤복 : 먼저 가시오.
영복 : 어딜 가게?
윤복 : (작게) 측간엘 좀 다녀오게.
영복 : (둘러보고) 다녀오거라.
윤복 멀어지고,
S#81. 도화서 / 측간 앞 / 낮
화장실 앞에서 주변 둘러보는 윤복. 아무도 없는 것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S#82. 도화서 / 측간 / 낮
화장실 내부, 겹겹이 입은 옷을 내리고, 복대를 풀고, 앉으며,
더할 수 없이 편한 얼굴로 한숨을 푹- 쉬는 윤복.
윤복 : 살 것 같다-.
S#83. 도화서 마당으로 가는 뒷길(측간 앞에서 이어지는) / 낮
화장실에서 나와 긴장 풀어진 얼굴로 흥얼거리며 걷는 윤복.
아무도 없는 마당에서 옷고름 휘휘 돌리고 흥얼거리며 가는데,
홍도(소리) : 어이!
윤복, 못 듣고 계속 가면,
홍도 : 어이, 갈필!!
윤복, 화들짝 놀라 돌아보면, 커다란 병풍을 옆에 기대놓고 웃고 있는 홍도 보인다.
홍도 : 측간에서 금덩이라도 주웠느냐?
윤복 : 아, 그,... 저, 저잣거리!! 이보시오, 이 보오! 어쩔 것이오? 그림은 같이 찢어놓고, 혼자 내빼면 어쩌란 말이오?
내 그 날 얼마나 고생한 줄 아시오? (손 내밀며) 그림값 백오십냥 내놓으시오. 어서.
홍도 : 이 놈이? 네놈은, 아무 잘못이 없고?
윤복 : 그래서 죽어라 그려주고 왔잖소! 어서 내놓으시라니까.
홍도 : 단원의 그림을 찢어 놓았으면, 먼저 단원에게 사죄를 해야지.
윤복 : 글쎄, 그건 댁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보아하니 지니고 있는 돈도 없는 모양인데, 말 섞기도 피곤하니 가시오.
금일은 단원 김홍도 스승님께서 도화서에 처음 오시는 날이니, 괜한 소리 말고 어서 나가시오.
홍도 : 그래? 그럼 어디, (윤복에게 병풍 건네며) 단원 스승님 수업에 들어가 볼까?
윤복 : (커다란 병풍 떠안고) 이, 이보시오!
홍도 : 뭐하느냐? 어서 오지 않고? 단원 스승님 수업에 늦겠다!
윤복 : (병풍 들고 어쩔줄 모르며) 이보시오! 보아하니, 단원 스승님 좀 만나볼까- 해서 왔나본데,
아무나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오. 어서 나가시오!
홍도 : (흥얼흥얼 앞서 가면)
윤복 : (병풍 들고 낑낑 따라가며) 아니, 저 사람이!! 어서 나가라는데도!
S#84. 도화서 마당 / 생도청 교육장 앞 / 낮
홍도, 생도청쪽으로 향하면,
마치 병풍만 걸어오는 듯 자그만 윤복이 병풍을 앞세우고 따라오다 고개 삐죽 내민다.
윤복 : 여보오!! 그 쪽으로 가면 어떡하오? 저 쪽으로 가야 밖으로 나가는 것인데!
홍도 : (가다가 돌아서서) 거, 참, 귀아프게 무얼 그리 쫑알대느냐? 어서 오지 않고.
윤복 : (병풍 놓고) 아, 그 쪽으로 가면 안된다니까 그러시네!
홍도 : 어! 그 병풍! 잘 들고 오너라! 수업에 쓸 거니까.
윤복 : 글쎄, 어서 가시라니까...(하다가) 수업? 수업이라니?
하는데, 화원들이 생도청 앞 복도를 줄지어 지나다 멈춰선다.
화원2 : (허리 숙이며) 아니, 단원 선생님 아니십니까!
화원1 : 단원 스승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홍도 : 이녀석들, 목소리 큰 건 여전하군.
윤복 : (놀라 눈 커지고, 병풍 놓으며) 다,... 단원??!! 단원 김홍도?
홍도 : 어? 어? 병풍! 병풍!
마치 윤복을 덮칠 듯 병풍이 스르르 넘어오고,
윤복, 저도 모르게 고개 돌리는데, 홍도, 재빨리 달려간다.
윤복과 병풍, 홍도쪽으로 스르르... 넘어지는 순간,
홍도, 재빨리 병풍을 발로 밀어놓고, 팔로는 윤복을 잡고,..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키스신처럼 안은 채 서로를 바라보는 윤복과 홍도의 얼굴에서,
- 1부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