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눈썹
이차옥
친정어머니를 모셔보기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난해 여름에 아버지를 사별하신 후 혼자 지내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바람에 마음 쓰일 대로 그렇게 하시도록 했지만 혼자서 생활하신다는 게 영 어설프게 보였다.
휑하니 텅 빈 안방! 머잖아 당신도 아버지처럼 세상을 뜰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이미 체득하신 것이었을까. 인생을 달관하신 듯 우선 식사량과 횟수가 줄었다. 허전해하실 거라고 믿었던 것과는 달리, 어머니는 여전히 기품 있게 조용하셨다. 다만 식사를 거르시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입에 밥 넣기가 면구스러울 때가 많았다.
며칠 만에 어머니에게 가서 반찬거리를 챙기고, 옷가지를 세탁하거나 청소까지 하는 날엔 하룻밤 자고 오기도 했다. 그럴 땐 우리 집 베란다엔 널브러진 세탁물이 나를 기다린다.
그나마 가까이서 살고 있는 여동생부부가 네팔에 있는 안나푸르나 산 등반을 하는 20여 일 동안은 도저히 어머니를 혼자 두기가 마음이 쓰였다. 쉽사리 응낙을 않으시는 깊은 영문도 외면하고 애원을 하다시피 모셔왔다.
딴 방에 혼자 계시게 할 일이 안돼서 모녀가 한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낯선 곳에서의 몸 가누기가 어둔해 더욱 자상하게 돌봐드려야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첫날 밤 딸을 깨우기가 미안하셨나 보다. 긴급사태가 벌어졌다. 안방에 딸린 화장실을 불도 켜지 않은 채, 들어가시다 캄캄한 욕실에서 좌우로 넘어지셨다. 오른쪽가슴을 세게 부딪쳐 아픔을 호소하신다.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은 어이없는 일로 첫날부터 어긋나 정신을 더 바짝 차리라는 신호 같았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갈빗대에 실금이 가서 약 처방을 받았다.
일주일간 병원으로 모셔가서 꾸준히 치료해 드렸더니 차츰 나아지는 기미가 보였다. 연세 드신 분들은 익숙했던 생활환경과 습관을 무시하거나 계실 곳이 일정하지 않으면 불안정하여 큰일이 일어나고야 만다는 점을 실감했다. 여기가 화장실이고, 저기가 현관이며, 어디가 방과 마루인가를 여러 번 일러드렸는데도 낯선 집 구조에 며칠간은 묻고 또 되물으셨다.
일주일 후 어머니를 사우나탕에 모셔가려다가 아직은 이른 것 같아서 집 목욕탕에 물을 그득 받아 수온을 적당하게 했는데도 뜨겁다 하셨다. 노인들은 약간의 찬물과 약간의 더운 물도 민감한 반응이셨다. 몸이 귀찮다시며 손사래를 치시는 어머니를 조용히 달래어 함께 욕실에 들었다.
수건을 몸에 대고 따뜻한 물을 조금씩 끼얹었다. 처음에는 뜨거워하시더니 이내 시원하다며 물속에 잠긴다. 아기 다루듯 미끄러질까 고이고이 붙들고 비누를 묻혀 거품을 낸 수건으로 살금살금 온몸을 부드럽게 밀었다. 이 세상 모든 딸들은 어머니와 목욕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데 내가 모처럼 그 행복을 맛보고 있다.
어머니의 등을 밀어본지가 까마득한 옛날 같기만 하다. 나는 몸을 씻겨드리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 자그마한 체구는 나를 낳아 젖을 물리고 내 몸, 내 머리, 내 손발을 깨끗이 씻기고 토닥거려주시며 무척 행복하셨겠지? 내 볼과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도 싹싹 빗겨주셨겠지.’ 나와 가장 가까운 분신에서 내가 받은 만큼의 은혜를 지금 되갚는다. 은회색 빛 머리도 빗겨드려야지. 아끼던 크림을 듬뿍 찍어서 어머니의 아직도 고운 볼과 손등, 젖가슴에 차례로 문질렀다. 육십이 넘은 내가 미수이신 어머니를 애무하는 게 얼마만의 일인가. 욕실의 훈훈한 온기조차 두 사람을 감싸 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손거울을 보며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가장 자신 있는 화장은 까맣게 그리는 반달눈썹이다. 돋보기안경을 걸치지 않은 맨눈으로 참하게 잘도 그리시는 어머니의 반달눈썹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머리도 검고 얼굴에 주름살도 별로 없어 아직도 고와요.”
어머니가 불쑥 한 마디 던지셨다.
“너는 딸이 없어 어떡할래?"
아들만 셋 둔 딸의 장래가 퍽 걱정되시는가 보다.
예쁜 몸단장을 마쳐서 시원하신지 어머니는 낮잠에 곤히 드셨다. 잠든 어머니 얼굴은 가장 온화하고 평화로웠다. 뜻밖의 화장실 일이 마음 아파 가만히 그 가슴에 두 손바닥을 댔다. 여자들은 시집을 가면 친정을 떠남으로 서서히 모녀간의 정이 멀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나의 어머니는 시집가는 딸들에겐 왜 그리 냉정하셨던지! 친정생각보다 시집에 더 충실하길 신신당부하신 뜻을 안다. 여섯 명의 딸들이 시집가서 이혼 없이 사는 게 고맙다 말씀하시는 어머니시다.
깊어가는 가을을 따라 길옆 가로수엔 갈색빛깔 단풍이 한창이었다. 호수공원으로 유입될 물을 깨끗이 저류하는 곳인 샘터공원 청평 못 근처 솔밭에도, 숲길에도, 아름다운 빛깔로 치장한 단풍이 햇빛에 반짝이다 흩날렸다.
한적한 공원에서 티브이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움직이지 말아달라는 스텝들의 부탁을 받고, 잠시 숨죽이며 나의 팔짱을 끼고 지켜보시던 어머니.
“저게 뭐여?" 그 소리에 여러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 그만 NG가 났다.
이곳 솔밭공원엔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기대어 서있고, 솔밭 사이에 즐비하게 늘어 서있는 단풍 든 나무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에 알록달록 거렸다. 매일 오후의 햇살 속에서 모녀가 손잡고 삼사십 분 간 산책을 간다. 삼천 원에 밀감 한 봉지를 사서 공원벤치에 앉아 먹는 맛은 더 달콤새콤했다.
어머니는 여름 동안 강한 햇볕과 태풍. 장맛비 등등 온갖 재해를 고스란히 이기고 대승한 자연인가. 이 가을의 낙엽훈장처럼 화려하며 고고한 천성이 곱게 물들여진 단풍과 같다. 말없이 벤치에 앉아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모녀간의 잔정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하늘에 대고 이야기하니 까칠한 가을솔바람이 아는 체 윙크한다.
그사이 어머니는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들고 계셨다. 한 모금 태우시려나 보다. 매사를 과하지 않게 조절을 잘하시는 편이지만 몸에 나쁘다는 담배만큼은 마음에서 털어 내지 못하셨나 보다. 담배가 떨어진 날엔 길가에 버린 꽁초에도 애착을 보이는 어머니에게 가슴에 담긴 응어리를 푸시라고 틈나는 대로 사다 드렸다. 못 피워서 애태우는 것보다 담배라도 태우시는 게 건강에 더 좋을 듯해서였다.
입동 추위를 차리는 지 찬바람이 몹시 분다. 엄마의 옷깃 속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까봐 껴안았더니 ‘너 때문에 행복하다’ 는 표정을 지으신다.
어머니를 더 모시고 싶지만 집을 그리워하시는 마음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예쁘게 반달눈썹도 그리셨다. 출근하는 사위에게 오늘 집에 간다는 말을 꺼낼 양으로 서두시는데 계시라며 붙들 수가 없다.
친정집에 여장을 푸신 어머니는 겨우 열사흘 간 비워뒀던 집안을 휘둘러보시더니 잠시 우울해 하신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직도 계실 줄 알고 그래서 무척 오고 싶었는데 사는 게 모두 그래."
울먹이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도 가슴이 착잡해졌다. 그토록 집을 떠나지 않겠다던 연유를 이제 알게 되다니! 칠십 여생을 같이 사신만큼의 무게로 남겨진 어머니의 쓸쓸함이 내 맘에 이슬비되어 내렸다.
첫 수필집 <솔밭에 내린 비> 에 실린 글
첫댓글 공감.......또 공감입니다. 어머니가 계셔도 맘이 아프고 .......떠나시면.또 그렇게 맘이 아프고......고운 일상의 글에 머물다 갑니다. 건강하세요.^^
안녕하세요? 별 쏟아지다 님. 강원도에서 보는 별은 더 클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청정지역이기에.... 어머니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며 안식처이지요. 누구나 품고 사랑하는 '어머니' 세 글자만 봐도 맘이 설레입니다. 고운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오기님의 어머님사랑을 감동있게 읽었습니다. 이 참에 나도 작고하신지 오래된 어머님을 생각해 봅니다,,감사합니다.
올디님. 안녕하세요? 어머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기에 언제나 그리운 대상이지요. 고운 댓글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며칠전에 외국사는 여동생과 통화를하다가 돌아가신 어미니 얘기가 나와 엉엉 울었답니다 오늘 아침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어머님 생각으로 노심초사하시는 맘씨고운 따님을 곁에 두신 자당님도 복많은 어르신인것 같습니다 두분 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다향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고운 댓글을 주신 다향님을 뵈니 이제 안심이 됩니다. 많이 회복되신 것 같아서..... 어머니 얘기엔 늘 눈물이 따르지요. 그리움도 따르고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문집발간에 참여하신 모습이 아름다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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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 에버그린님. 안녕하세요? 한번도 뵙지 못해 보고 싶어요. 12월 전체 정모 땐 꼭 오시기 바랍니다. 문집발간에 투고하신 님의 글에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필방에도 에버그린님의 고운 새 글이 올라오길 저는 학수고대하겠습니다. 진심어린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다정한 모녀간의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연로하신 부모님 일주일에 두 세번 찾아 뵙는데도 잘해 드리지 못했는데 님의 글을 읽고 많이 반성해 봅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한 고운 글 감사드립니다.
서향님 닉명이 예쁘시네요.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가 됩니다. 자주 가서 뵙는 것이 그 후회를 덜하게 하지요. 서향님의 부모님 사랑을 존경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서향님도 좋은 글 올려 주세요.
"따오기" 님의 글을 읽으며 돌아가신 어머님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딸이 없어 어떻게 하느냐는 말씀처럼 저는 아들이라서 그런지 "따오기"님과 같이 자상한 보살핌을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되시면 무조건 몸이 고단하니 움직이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님이 뭔가를 하실려고 하면 계속 말리기만 했던 기억 밖에 없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나이를 드실수록 많이 움직이셔야 건강하시다는 생각을 그때는 왜 못했었는지... 막내 아들이 어머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나 하는 회한만 남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도라님의 다정다감하신 댓글은 늘 용기와 기쁨을 주십니다. 딸 보다 아들은 속이 깊어요. 자상하게 표현을 못해 그렇지 마음만은 딸아이 못잖아요. 아들 셋이 있어도 딸 부럽지 않답니다. 딸 노릇하는 아들이 있기에.... 노부모님께 효도는 말동무해 드리고 하시는 일에 널리 이해와 칭찬을 해드리면 된답니다. 어르신들도 아이들처럼 칭찬 받기를 좋아하셔요. 막내는 어머님 마음엔 언제나 귀여운 모습일테죠. 사랑 많이 받으셨겠어요. 도라님 건필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따오기님의 어머님과 깊은 정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뜻 합니다 저의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사람들이 생존해 계실때 잘해야지 생활이 나지면 효도해야지 하면 그때는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효도 많이 하시기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비너스님 그간 안녕하세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늘 가슴을 적시지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은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답니다. 고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 올라와 있었네요. 어머니와 다정한 한 때를 보내며 잔잔한 정을 나누신 님의 마음이 아름답네요. 저도 어머니를 모시고 산답니다. 잘 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만 그래도 모자라는 점이 있을까 많이 신경을 쓰고 있어요. 공감을 느끼며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여사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시니 효심이 지극하십니다. 해도 해도 모자라는 것 같은 그 마음 이해가 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운 댓글 감사합니다.
정말 효녀이십니다.아니 효녀라기 보다는 좋은 딸 입니다.어머니를 그리워하는것은 사람 본연의 모습중에 하나겠지만 실제로 그 그리움을 잔잔한 정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많지않을것같습니다.그래서 훌륭한 딸 이라고 생각합니다.잘 읽었읍니다.
바다물결님 부끄러운 글 읽으시고 고운 댓글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좋은 업으로 만나면 좋은 사이인데 악업으로 만나면 부모가 자식 속을, 자식이 부모 속을 썩이지요. 다행이 저의 모녀 간은 선업으로 만났나 봐요. 늘 편안하고 행복하세요.
반달 눈섭에 어머님을 그리셨군요 ... 텅빈 집에 들어서시는 어머님의 아픈 마음 이해 합니다. 감동적인 글 솜씨에 부러움 안고 갑니다 .좋은 저녁 되시기를 .....
꽃구름님 안녕하세요? 님의 텅빈 마음 저도 이해합니다. 대구 경북방에서 활동 열심히 하시기에 댓글 달아드렸어요. 수필방에 자주 오셔서 문우의 정 나누자구요. 꽃구름님의 글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따오기님 글에 취해 감동먹었소 뿅갔소 늘 행복하소서^*^
닉이 참 재미있습니다. 뿅샘님. 저도 뿅가겠습니다. ㅎㅎㅎ 매일 좋은 날 되시고 건강과 행복 누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을 읽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
미솔님 안녕하세요? 카페 문집 발간에 좋은 글을 내 주셔서 대단히 고마왔습니다. 님이 계시기에 수필방도 잘 되고 있답니다. 새글 한 편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주신책 잘 읽겟습니다 ...~~
ㅎㅎㅎ 드디어 날개가 수필방까지 날아 오셨네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 드린 책 끝까지 다 읽어 보기요. ^*^ 날개님. 내 소원 한 가지 들어 주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잘 쓴 글 한편 수필방에 올려 주세요. 수필방 회원들이 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