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육)에 屬(속)한 사람과 靈(영)에 屬(속)한 사람을 分別(분별)하는 方法(방법)을 아는가?(고전 2:14~16)
◾副題目(부제목) : 대부분 (육)에 屬(속)한 사람이지만 모르는 것이 問題(문제)라는 것을 아는가?
"육(肉)에 속(屬)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聖靈)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靈的)으로라야 분변(分辨)함이니라. 신령(神靈)한 자(者)는 모든 것을 판단(判斷)하나, 자기(自己)는 아무에게도 판단(判斷)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主)의 마음을 알아서, 주(主)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說敎大指(설교대지)
1. 육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2. 육에 속한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3.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4.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의 차이 7가지
5. 가정에서 나타나는 육과 영
6. 영에 속한 사람도 싸움을 경험한다
7. 가장 중요한 질문
8. 복음의 핵심은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전에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한다
* 序論(서론) 및 背景(배경)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 우리는 사람을 볼 때에, 무엇을 보는가?돈이 많은가 적은가? 학식이 있는가 없는가? 성공을 했는가? 실패했는가? 교회에 오래 다녔는가? 직분이 있는가? 없는가? 를 본다.
✔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구별한다. “육에 속한 사람인가? 영에 속한 사람인가? 를 보시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2장 14절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라고 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라고 했다.
✔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다 영에 속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주 예배를 드린다고, 자동적으로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반드시 영에 속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직분이 있다고, 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인 사람이 아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전에, 나 자신을 말씀 앞에 세워야 한다. 나는 육에 속한 사람인가? 나는 영에 속한 사람인가? 이 질문이 바로, 오늘 설교의 핵심 주제이다.
설교의 중심 구조 : 타락한 인간 → 성령의 중생 → 그리스도와의 연합 → 성화 → 성령의 열매 → 하나님께 영광이다.
✔ 이러한 설교는, 개혁주의의 전적 타락과, 중생과, 칭의와, 성화와, 성도의 견인이다. 청교도의 자기성찰과, 회개와, 거룩과, 경건과, 하나님 앞에서의 삶(Coram Deo)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 것이다.
1. 육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1) 육에 속한 사람은 단순히 몸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 여기서 “육”이라는 말은, 단순히 인간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리킬 때에 사용한다.
즉, 육에 속한 사람 = 하나님이 없이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술집에 가고, 욕하고, 방탕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아주 점잖은 사람도, 육에 속할 수 있다. 교양이 있는 사람도, 육에 속할 수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육에 속할 수 있다. 심지어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도, 육에 속할 수 있다.
(2) 육에 속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다
✔ 육에 속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다.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 내가 싫으면 나쁜 것이다. 내가 손해를 보면 잘못된 것이다. 나를 인정해 주면 좋은 사람이다. 나를 무시하면 나쁜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육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의 사람이다.
어는 한 사람이, 자기 마음 속에 왕좌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왕좌에, 누가 앉아 있는가?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셨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왕좌에 앉으려고 하시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 예수님!! 왕이 되십시오. 그런데 왕의 자리에는, 제가 계속해서 앉아 있겠다고 했다. 이는 바로, 육에 속한 사람이다.
✔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그렇게 한다. 예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요. 그러나 내 인생의 결정권은 제가 갖겠습니다. 돈은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자녀 문제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부부 문제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사업은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내 명예도 제가 지키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에 속한 사람의 신앙이다.
2. 육에 속한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라고 했다.
왜 그러한가? 성령님께서 주시는 진리를,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패배를 상징한다.
✔ 그러나 성도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구원이다. 세상 사람에게 회개는 무엇인가? 자존심을 버리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성도에게, 회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은혜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용서는 손해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용서가 은혜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나에게 한 만큼, 나도 그대로 갚겠다고 한다.
그러나 복음은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용서하셨으니, 너도 용서하라” 라고 했다.
개혁주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은 스스로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여기서 개혁주의 신학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가르친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교육이 부족이 아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죄의 문제이다.
✔ 개혁주의에서는 인간의 타락을, 매우 심각하게 본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다.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다. 성령님을 통한 중생(regeneration)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고 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순서이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살리신 것이다.
성령님께서 죽은 영혼을 살리신 것이다.
그 결과 육에 속했던 사람들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자랑이 될 수 없다. 에베소서 2장 8절~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라고 했다.
✔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구원론의 중요한 핵심이다.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은혜이다.
3.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고린도 전서 2장 15절에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라고 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 영에 속한 사람은,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영에 속한 사람은, 죄를 죄로 인정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1) 영에 속한 사람은 말씀 앞에서 자신을 판단한다
육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판단한다.
✔ 육적인 사람은, 저 사람은 왜 저래? 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 제 안에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라고 묻는다.
✔ 육적인 사람은, 교회와 목자가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 제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는다.
육적인 사람은, 목자가 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라고 원망을 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 제가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이, 너무나 큰 것은 아닙니까? 라고 묻는다.
✔ 청교도의 관점으로 보면, 참된 신앙은 마음의 변화로 나타난다. 청교도들은 외적인 종교생활보다, 마음의 거룩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 청교도의 경건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보다는, 나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가?" 이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있을 수 있다. 기도를 하면서도, 마음은 돈에 있을 수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마음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할 수 있다.
봉사를 하면서도, 인정을 받기를 원할 수 있다. 선교를 하면서도, 과시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마음의 동기를 살핀 것이다.
✔ 두 사람이 헌금을 드렸다. 두 사람이 똑같이 10만 원을 헌금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두 사람 모두다 똑같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보시는 것이다.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가 헌금 많이 했다고 알아주겠지.
그러자 다른 사람은, 이렇게 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 헌금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 두 사람 모두다, 외형은 같았다. 그러나 마음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하나님은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4.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의 차이 7가지
(1) 기준
육 : 내가 기준이다.
영 :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다.
(2) 영광
육 : 내가 영광을 받기를 원한다.
영 :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한다.
(3) 죄
육 : 죄를 변명한다.
영 : 죄를 회개한다.
(4) 사람
육 : 사람을 이용한다.
영 : 사람을 섬긴다.
(5) 고난
육 : 고난을 원망한다.
영 :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6) 돈
육 : 돈이 나의 주인이다.
영 : 돈을 하나님의 청지기로 관리한다.
(7) 죽음
육 : 죽음을 두려워한다.
영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소망한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육신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가 나열되어 있다. 바울은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하고 있다.
육체의 일에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등이 있다.
반면에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열매이다. 나무는 열매로 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도,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자신을 살펴볼 수 있다.
5. 가정에서 나타나는 육과 영
✔ 교회에서는 누구나, 천사처럼 행동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우리의 가정이다. 교회에서는 "할렐루야!" 를 외친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왜 이렇게 했어?” 라고 말한다.
교회에서는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징에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들게 상처를 준다. 그러므로 신앙의 진짜 시험장은, 바로 우리의 가정이다.
✔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내가 화가 났을 때에, 어떻게 행동을 하는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 여기에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드러난다.
6. 영에 속한 사람도 싸움을 경험한다
✔ 여기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영에 속한 사람에게는, 갈등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성도의 마음 속에서도, 육과 성령의 싸움이 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라고 했다.
따라서 “나는 화를 냈으니, 나는 육적인 사람이다” 라고, 단순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 중요한 것은, 죄를 지은 다음에 어디로 가느냐이다. 육적인 사람은 죄를 숨긴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육적인 사람은 변명을 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회개를 한다. 육적인 사람은 남을 탓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7. 가장 중요한 질문
✔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신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가?
(1) 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더 믿고 있지는 않는가?
(2) 나는 하나님보다, 돈과 성공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3) 나는 다른 사람의 죄는 잘 보면서, 나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는가?
(4)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5) 나는 죄를 지었을 때에, 지체하지 않고 회개를 하는가?
(6) 나는 용서를 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있는가?
(7) 나의 일상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8. 복음의 핵심은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전에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를 듣고서, “나는 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고,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복음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라” 라고 말씀을 하신다.
✔ 우리가 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자기 수양이 아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변화시킨다.
✔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칭의 → 성화 → 영화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님의 역사로 점점 거룩해져 가고 있다.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영화롭게 된다.
* 結論(결론) 및 敵用(적용)
나의 왕좌를 누구에게 드릴 것인가? 왕의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가? 내가 앉아 있지 않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가?
육에 속한 사람은 말한다. 내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말한다.
“예수님!! 예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말한다는 것을 아는가?
육에 속한 사람은, “내가 무엇을 얻습니까?” 라고 묻는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는 것을 아는가?
육에 속한 사람은, “누가 나를 인정해 줍니까?” 라고 묻는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십니까?” 라고 묻는다는 것을 아는가?
육에 속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 산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을 아는가?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나는 육의 생각을 따라 살았던 때가 많았다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내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웠습니다. 내 자존심을 십자가보다 높였습니다. 사람의 인정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용서를 받았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성령님!! 나를 새롭게 하옵소서. 내 마음의 왕좌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내 생각보다 말씀을 앞세우게 하시고, 내 감정보다 복음을 앞세우게 하시고, 내 자존심보다 십자가를 앞세우게 하시고, 내 욕심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앞세워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나의 남은 생애가, 육체를 따라서 사는 삶이 아니라, 성령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뜻에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춘다는 것을 아는가?
🔯 자발적인 선교 후원금은, 메콩강 5개 나라의 신학교와, 60여 곳의 산족교회와, 산족교회 성도들과, 국내외 목회자들과, 평신도들과, 현재 카톡으로 말씀을 받고 있는, 모든 구독자들의 말씀 선교 사역에 귀하게 사용되고 있다.
▪Nadulbok Ch Professor and Missionary.
▪Ph.D. in Homiletics.
▪Doctor of Missiology.
▪︎Ph.D. in Biblical Studies.
▪︎Honorary Doctor of Education.
▪Thailand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Lao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Myanmar'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rofessors.
▪︎Cambodia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Dean.
▪︎President of Jilin Theological Seminary, China.
▪︎President of Thailand Bible Semin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