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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와 장로
디도서 1:1-7
2024년11월24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오늘 주일은 추수감사 예배로 드립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하시고 의식주의 문제 등 영육간에 함께 하신 주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추수는 영육간에 건강한 사람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족 중 자녀들 자손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라면 가장 귀하고 복된 수확입니다.
내 가족이 잘 되는 것도 복이지만, 영적인 자녀들이 잘되는 것이 주님 은혜요 복이고 귀한 추수입니다.
바울 사도는 많은 영적 자녀를 길렀습니다.
대표적으로 디도와 디모데가 바울이 영적으로 낳아 기른 귀한 교역자들입니다.
디도서, 디모데 전서, 후서를 목회 서신이라 합니다.
디도는 그레데에서 목회했고, 디모데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 목회했습니다(행 17:14-15; 18:5; Thomas C. Oden, 디모데전후서,디도서, 한국장로교출판사, 2002, 27).
목회 서신은 교회를 어떻게 섬길지 상담합니다(같은책,23).
디도와 디모데는 3세대 신앙인들입니다.
1세대는 디모데 외할머니 로이스, 2세대는 그의 어머니 유니게입니다(같은책,23).
신앙이 3대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신앙이 대대로 오래 아름답게 이어지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디도를 바울은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딛 1:4)이라 불렀습니다.
디도는 바울이 전도하여 예수를 주님으로 믿은 것으로 보입니다.
디도는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교회 사역을 맡겼습니다(딛 1:5; Thomas C. Oden, 같은책, 29).
바울이 디도와 그레데를 방문한 시기가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로마 감옥에서 일정 기간 풀려났을 때로 봅니다(Donald Guthrie, Pastoral Epistles, IVP, 1984, 184).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에 남게 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레데에서 디도가 맡은 중요 임무는, 교회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고, 장로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디도서 1:5).
장로가 임직되면 미조직 교회가 조직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미조직 교회는 당회가 없고 조직 교회는 당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레데 각 도시에 세워진 장로는 주로 말씀 사역과 치리 사역을 함께 감당할 사람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의 장로 제도나 당회와 성격이 좀 달랐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4:21-23 KOERV(쉬운성경)에 보면,
[21] 두 사람(바울과 바나바)은 더베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22] 그곳에서 두 사람은 제자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속하여 믿음을 지키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어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각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운 다음,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자신들이 믿는 주께 그 장로들을 맡겼다.
바울과 바나바는 지금의 터키 지역, 루스드라, 이고니온 등에서도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 '둘로스'라 했습니다(디도서 1:1).
겸손과 자부심이 함께 담긴 표현입니다.
자기 삶을 하나님께 다 순복했다는 의미입니다.
모세(여호수아 1:2)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여호수아 24:29)도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아포스톨로스라 합니다(디도서 1:1).
사도는 '보냄받은 자'입니다.
바울이 디도나 디모데나 교회에 말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닌 그리스도의 권위를 받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메시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William Barclay, Titus, Westminster press, 1975, 227-8).
네이버 국어 사전에 의하면, 메시지, message는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주장하거나 경고하기 위하여 보내는 전언(傳言)입니다.
혹은 문예 작품이 담고 있는 교훈이나 의도입니다.
혹은 언어나 기호에 의하여 전달되는 정보 내용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 메시지는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근거합니다.
'영원하다', aionios 단어는 온 우주에서 하나님에게 적용됩니다.
기독교 복음은 지적인 신조나 도덕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William Barclay, Titus, 228).
인간이 그 생명에 들어가려면 그 내면의 '믿음'을 깨워야 합니다.
바울에게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같은책, 228).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음으로 신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전도와 교육은 나란히 가야합니다.
감정은 지식이 입혀질 때 성숙해집니다.
믿음과 지식은 삶 속에서 살아내져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믿음과 지식이 일상의 삶에서 녹아져야합니다.
우리 예수 신자 일상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가장 좋은일일 것입니다.
디도는 바울이 신뢰하는 사람이었고 소중한 조력자였습니다.
바울은 그를 믿음을 따라 된 "내 참 아들"이라 했습니다(디도서 1:4).
이고니움에서 바울이 그를 전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William Barclay, Titus, 232).
디도는 불편하고 어려울 때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잘나갈때, 편안할때는 누구나 함께 하기 쉽지만 어렵고 불편할때 같이 하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가는 길에 만나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를 의심하고 싫어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믿은지 3년 만에 게바, 즉 베드로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가서 그와 보름동안 함께 지냈습니다(갈 1:18).
바울이 예수님을 다메섹 길에서 만난 후 14년 만에 예루살렘에 갈 때, 바나바와 디도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갈 2:1).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는 사도행전 15장 1,2절에 나옵니다.
유대에서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내려 와서
예수를 믿어도 모세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주장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간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디도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디도는 헬라 사람이었습니다(갈 2:3).
디도는 굳은 일을 맡아서 잘 감당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여러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했습니다(고린도후서 11:4).
또 바울의 사도 됨을 의심했습니다(11:5).
사도는 예수님 공생애 3년 동안 함께 하거나 전파하고 치유하고 가르치는 일을 3년동안 보고 들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 고난, 십자가, 부활을 보고 들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메섹 길에서 특별히 바울을 만나셨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또한 거짓 사도들이 있었습니다(고후 11:13).
또한 고린도 교회는 육체를 따라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고후 11:18).
육체의 자랑은 가문이나 족보, 학벌, 재력, 외모 등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는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그 편지를 주고, 다른 형제와 함께 디도가 동행케 하여 보냈습니다(고후 8:16).
디도는 어려운 상황을 대면하여 잘 처리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혼돈을 질서로, 다툼을 평화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도는 사람들 간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William Barclay, Titus, 232).
예루살렘 교회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고린도 교회에서 모금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을 실무적으로 추진하고 모금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한 사람이 디도였습니다(고후 8:6,10).
바울은 디도를 자기의 '참 아들'이라 불렀습니다(디도 1:4).
자기가 전도하고 가르친 사람이 교회 안에서
쓰임받는 일꾼이 된 것을 보면 큰 기쁨을 느낍니다.
믿음의 아들 디도는 신앙의 아버지 바울 마음에 기쁨과 위로를 주었습니다(William Barclay, 233).
바울은 언제나 교회가 세워지면 장로들을 세웠습니다(행 14:23).
그레데와 제주도는 섬입니다.
제주도는 약 1,850 평방km입니다(네이버).
그레데, Crete는 그리이스 영토 인데, 8,450
평방km입니다(나무 위키).
크레타 혹은 그레데는 제주도 보다 4배반 가량, 4.56배 더 큽니다.
제주도에 여러 도시들이 있습니다.
그레데는 더 많은 도시들이 있습니다.
수백개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있었습니다(Homer, 재인용 William Barclay, 234).
크고 작은 도시들에 세워진 작은 교회들이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 바울의 원칙이었습니다(같은책, 234).
교회에서 장로는 말씀 사역과 치리 사역을 감당하는 중요한 직분입니다.
지금은 말씀 사역은 주로 목사 장로가,
치리 사역은 주로 평신도 장로가 맡습니다.
그러나 바울 당시는 장로가 말씀과 치리를 함께 감당했을 것입니다.
디도는 크레타, 그레데 섬에서 여러 도시들에 있는 지교회에 장로들을 세우는 일을 하도록, 바울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장로는 믿음 안에서 자기 가족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기독교는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밖으로 돌고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가장으로서 결함이 있습니다.
가장은 아내와 자녀들을 잘 돌보고 아껴줘야 합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 했습니다.
나를 잘 닦고 수양하는 사람이,
가족을 잘 돌보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니,
이것이 세상이 평안해지는 길입니다.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하고 아내와 자녀들과 친척들과 이웃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 장로나 직분자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방탕하고, 물질과 시간과 재능과 건강을 낭비하는 사람은 장로나 직분자 자질이 부족합니다.
너무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도 교회를 섬기기에 부적절합니다(디도서 1:5-7a; William Barclay, 235).
장로는 고집이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면 안됩니다.
또 화를 잘내는 사람은 곤란합니다.
술에 취하거나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부적절합니다.
손이나 주먹이 먼저 나가거나 고함을 지르는 사람, 욕설을 함부로 하거나 험담을 잘하는 사람도 장로가 되면 좋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방식으로 자기 이득이나 욕심을 챙기는 사람도 장로나 교회 직분에 맞지 않습니다(디도서 1:7b).
물론 자기 소신과 가치와 철학과 신앙관이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남의 말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장로나 교회 직분자로 부적절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나, 아무도 기쁘게 하지 않는 자도, 극단적인 자들이라 했습니다(William Barclay, 236).
화를 잘 내는 사람,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장로나 직분자가 되면 곤란합니다.
잠언 16:32 Koerv(쉬운성경)에,
[32] 화를 더디 내는 사람이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성읍을 정복하는 사람보다 낫다,
했습니다.
장로는 너그럽고 선한 일과 사람을 좋아하고,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고 자기를 절제하고,
기독교 가르침을 잘받고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는 교회 지체들을 건강한 가르침으로 격려하고, 신앙의 대적자들을 믿음과 신앙 지식으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디도서 1:8,9).
장로는 손님을 잘 대접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디도가 살던 시대는 여관이 부족하고 비싸고 지저분해서 민박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형제 자매들이 방문하면 언제든지 자기 집을 개방하여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William Barclay, Titus, 238).
직분자는 신중하고 사려깊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직분자는 의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리아 남편 요셉은 자기 약혼녀가 아기를 가진 것을 알았지만 화를 내거나 소문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약혼녀가 다치지 않게 끊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마리아 몸에 생긴 아기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된 것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자기 아내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아기 예수님 탄생시까지 아내 마리아와 태중의 아기를 보호하고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자기가 손해나 불이익을 당할 때 조차도 상대방을 보호하고 아끼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직분자는 각 사람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대하는 태도는 겸손해야 가능합니다.
또한 직분자는 경건해야 합니다.
또 자기 절제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자는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소망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대적자들이 있습니다.
직분자는 이들의 신앙적 잘못과 오류를 바로잡고 신앙의 바른 길, 진리로 나아 가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William Barclay, 240).
물론 권면해도 듣지 않고 자기 고집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 세 번 까지 권면하여 듣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불신자처럼 여기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18:15-17 KOERV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그 사람과 단 둘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용히 가르쳐 주어라. 만일 그 사람이 네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나 자매를 하나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 사람이 네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그래서 두세 사람이 그 형제나 자매가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의 증인이 되게 하여라.
[17] 그래도 그 사람이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라. 만일 그 사람이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그 형제나 자매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세무원처럼 여겨라.
오늘은 추수 감사 예배로 드리는 중입니다.
추수감사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추수는 가족, 자손, 친지, 이웃과 교회에서 영적인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입니다.
사람을 영육간에 잘 세우는 일이 가장 귀한 추수입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