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언약 (창 12:1-9)
사람들의 죄로 인해 부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홍수심판으로 노아 가족 외의 모든 사람을 멸하시고 다시 세상을 시작하셨지만 인간의 죄악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이에 하나님은 새로운 재창조, 즉 의인의 후손들을 세상의 복이 되게 하는 역사를 시작하셨다.
모든 족속을 위한 복이 되리라(1~3절)
바벨탑 사건 이후, 사람들은 수많은 민족으로 나뉘어 흩어졌고 여전히 죄의 길을 따랐다. 하나님은 그 많은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람을 선택하셨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적절치 않은 선택 같아 보인다(1절). 왜냐하면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불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그 이름을 크게 하겠다고 선언하신다(2절).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거나 세상을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 한사람을 선택하심으로써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3절). 아브람의 편이 되면 곧 하나님의 편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가능성 없어 보이는 자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말씀을 따라가다(4~6절)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황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는 75세에 하란을 떠났다(4절). 아들 없이 죽은 형제 하란의 아들 롯을 데리고 새로운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는데 도전한 것이다(5절). 그는 아들이 없었기에 큰 세력을 지니지도 못했고, 가나안 땅이 임자 없는 땅이 아니었기에 쉽게 들어가 정착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기 상황이나 주위 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듯, 모든 소유와 종들을 이끌고 가나안의 세겜 땅으로 들어갔다(5~6절).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간 것이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 위대한 일을 감당한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이나 지식, 또는 재물이나 높은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7~9절)
말씀에 순종한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7절). 그러나 아브람 앞에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가 세겜 땅에 제단은ㆍ 쌓고서(7b절) 곧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또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그곳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8절). 아브람은 거기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남방으로 이동했다(9절). '남방'(네게브)은 '남쪽'이라는 의미와 함께 '광야'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스라엘 남쪽 지역이 광야지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브람은 좋은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꾸 열악한 지역으로 밀려나갔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지만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께 한결같이 신실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그의 편이 되어주신다.
겨자씨 한 알을 심는 것은 그야말로 작고,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듯이 크게 성장한다. 아브람이 말씀에 순종해 가나안을 향해 떠났듯이, 우리도 자신의 사정이나 주위환경에 매몰되지 말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함으로 한알의 겨자씨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순종으로 하나님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