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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J438 원문보기 글쓴이: 그럴듯해
1 장 외 출
참으로 맑고 고운 가을이다.
여름이 물러가고 난 뒤의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다.
서유경은 집안일을 하다 정원의 맑고 푸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넓은 집안에는 자신만이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을 보이려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집안은 고즈녘 하다.
아들은 군 입대로 집을 떠나 있었고 하나뿐인 딸아이는 얼마 전에 결혼을 해서
남편과 유학을 떠나고 없었기 때문이다.
서유경은 딸이 쓰던 방으로 들어간다.
아직 딸이 쓰던 방은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었다.
이곳에서 신혼살림을 하는 것 같으면 욕심 많은 딸아이가 자신의 물건들을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아직도 방은 딸아이가 쓰던 그대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지수야!..."
서유경은 가만히 딸의 이름을 불러본다.
남 유달리 딸과의 사이가 돈독했던 모녀 사이였다.
문득 문득 딸이 보고파지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는 그녀였다.
서유경의 두 눈에는 어느 사이에 이슬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진다.
그때 대문의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집안의 정적을 깬다.
서유경은 눈물을 손으로 훔치면서 현관 곁에 있는 인터폰을 들고 방문객을 확인한다.
"누구세요?"
"나야...민영이..."
"뭐?...
조민영?"
서유경은 반가운 마음에 대문의 잠금 쇠를 풀고는 현관을 나선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조민영의 모습은 화사하다.
"민영아!
네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우리 집엔 웬일이니?“
서유경은 조민영의 출현이 몹시도 반가웠다.
간단하게 과일과 차를 준비해서 두 여인은 마주 앉는다.
"네 딸아이는 유학을 잘 떠났니?"
"응!
일주일전에 사위와 출발을 했어!"
"많이 보고 싶겠다."
"어휴!
말도 마라...
이렇게 보고 싶고 그리울 줄 알았다면 보내지 않는 건데.."
서유경은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유경아!
이렇게 집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려니 지루하지?"
"그래!
딸아이가 있을 때는 전혀 모르고 지냈는데 지금은 하루가 너무나 지루하다."
"그럴 거야!
이제 망설이지 말고 너도 우리 모임에 들어 올 거지?"
"그래!
허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서유경은 수락을 하면서도 망설인다.
조민영과는 대학 동창이다.
성격이 매우 활달하고 활동하기를 좋아하는 조민영은 작지만 알찬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 동창들을 찾아다니면서 찬조금을 모으기도 하고 회원들을 모집하기도 하면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매우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워낙 활동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인 조민영이었다.
그런 조민영이 서유경에게 가끔씩 나타나서 찬조금보다는 회원이 되기를 수 없이 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한 서유경은 집안 살림을 핑게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서유경은 자신의 활동보다는 가족들의 안위가 우선인 가정주부였다.
어떤 일이든 자신보다는 가족이 우선 되어야 마음이 편한 그녀였다.
남편을 믿고 기대면서 자식들을 남보다 더 가르치고 기르는 것만이
그녀의 삶의 전부였고 삶의 목표였던 것이다.
"유경아!
이번 주말에 시간이 있지?"
"응!"
"주말에 우리 모임이 있으니 나올 수 있지?"
"헌데 내가 뭘 아는 것이 있어야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모두 여자들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 주부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거든!
더구나 너같이 살림을 알뜰하게 살아온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야!"
"하여간 너는 대단한 사람이다."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데 그런 말을 하지 마!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다 똑같이 늙어 가는데 어떻게 모른 척 할 수가 있겠어?"
"그래!
네 말대로 내 힘이라도 필요한 곳이 있다면 아끼지 않을게!"
"아마 친구들이 너를 끌어낸 것을 알면 놀라 거다. 후후후.."
"미안하다!
지금까지 너무 내 생활에만 안주하면서 살아와서..."
조민영은 한참을 머물면서 서유경의 무료함을 메워준다.
조민영이 돌아가고 나자 집안은 다시 무서운 정적에 묻혀 버린다.
서유경은 다시 자신의 마음을 굳힌다.
이대로는 자신이 나태 되고 자꾸만 퇴보될 것만 같은 기분 이였다.
이제는 자신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들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거의 없어져 버리고 있다.
남편과 외식은커녕 저녁 한 끼도 마주 앉아서 먹어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남편의 직급이 승진이 될수록 남편의 얼굴을 대하기가 더 힘들어졌던 것이다.
대 기업의 상무로 승진을 하고 나서 남편은 사장직을 바라본다.
허지만 아직까지 남편은 상무자리에서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남편은 더 회사업무에 매달리면서 회사에 충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여보!
아무리 회사일이 바쁘다 해도 한번쯤은 일찍 들어올 수는 없어요?"
서유경이 견디다 못해 한마디 한다.
"당신이 조금 더 참아 주었으면 하오!
지금 내가 가정을 생각하고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소."
남편은 더 이상의 말도 할 수가 없도록 못을 박는다.
아이들이 모두 있을 때는 그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이 군에 입대를 하고 이제는 딸아이마저 떠나보내고 난 뒤에
하루 종일 혼자만의 시간들이 너무도 무료하고 지쳐간다.
남편에게 매달려 볼 엄두도 내지를 못하고 그저 매일을 무료한 생활을 하던 서유경이다.
그런 서유경에게 조민영의 권유는 매혹 이였던 것이다.
자신도 남을 위해서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갑자기 서유경은 마음이 바빠진다.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지낸 그녀는 반반한 외출복조차 갖추고 있지를 못했다.
딸아이가 입던 옷들을 입고 지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입고 살아왔던 생각이 든 것이다.
서유경은 자신의 옷장을 열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역시 자신의 옷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옷장 안에는 모두 남편의 의상들 뿐이다.
서유경은 딸아이의 방으로 간다.
딸이 입다가 두고 간 옷들을 이리저리 헤쳐 본다.
외출복으로는 어울릴만한 옷들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서유경의 입에선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휴!
내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지?...
서유경은 집을 나선다.
자신을 위해 외출복을 사려고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흔하디흔한 헨드폰도 없었고 자가용도 없다.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자신이 그런 것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신경을 쓰지를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언제나 간혹 외출을 할 때마다 교통편을 이용하는 그녀였다.
지하철은 어디든지 정확한 시간에 갈수 있는 아주 편리한 교통편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는 서유경이다.
그러나 서유경은 택시를 잡아탄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서 돈을 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서유경은 커다란 백화점 앞에 택시를 내린다.
백화점은 사람들로 상당히 번잡스럽다.
거의 백화점을 이용하지 않는 서유경은 우선 백화점안의 화려한 물건들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것에 주눅이 드는 느낌이 온다.
그녀는 숙녀복코너가 3층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긴다.
그녀의 눈에는 너무나 많은 의상들이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어느 매장 한곳을 정하지 못하고 백화점 안을 맴돌기만 한다.
딸아이가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럴 때 딸아이와 함께 온다면 둘이 서로 재잘거리며 쇼핑을 할 것이다.
혼자라는 것이 자신을 너무 작고 초라하게 만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한 매장에 있는 의상이 눈에 들어온다.
"어서 오십시요."
점원이 상냥하게 유경을 반긴다.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네!
마음 놓고 천천히 구경 하십시요."
점원은 이내 다른 손님들을 향해서 떠난다.
서유경은 의상을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의상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본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가의 액수였다.
서유경은 슬그머니 매장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모든 매장의 의상들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고가의 액수들을 꼬리표처럼 달고 있는 것이다.
"휴!"
서유경은 도저히 이 고가의 의상을 구입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아직 한 번도 이런 고가의 의상을 입어본적이 없는 그녀였다.
서유경은 아무것도 구입하지 못하고 백화점을 나온다.
그저 보통의 가정주부로 살아온 그녀로서는 거액을 들여서 자신의 의상을 구입한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동네 입구에 있는 중저가의 의상실로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두어 명의 손님이 있을 뿐이다.
"우선 구경 좀 해도 되지요?"
"그럼요!
이쪽이 신제품들이랍니다."
서유경은 우선 의상에 꼬리표처럼 달고 있는 가격표를 확인한다.
그래도 백화점에 있는 의상에 비해서 반값도 되지 않는 액수였다.
다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비로소 그녀는 의상을 고른다.
"사모님!
이 의상은 어떠신지요?
금년 가을은 이 색상이 유행을 하는 것입니다."
친절한 종업원이 가르치는 것은 파스톨 계통의 색상이다.
무난하게 보이는 투피스 정장이였다.
"한번 입어 보시지요!
사모님께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럴까요?..."
"그럼요!
피부도 아주 고우시고 몸매도 어쩌면 이렇게 날씬하신지 아주 잘 어울릴 것만 같아요."
서유경은 많은 망설임 끝에 옷을 입어본다.
너무나 잘 맞는다.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실까?“
점원의 감탄하는 소리가 유경의 귀를 간지럽힌다.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럼요!
다른 손님들께 여쭈어 보세요.
사모님께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손을 보아야 할 곳도 한군데도 없이 이렇게 잘 맞을까?"
서유경은 자신이 보아도 잘 맞는 것 같다.
중저가의 의상이지만 너무도 잘 맞는다.
"그럼 이걸로 할까?...."
다른 의상들에도 눈길을 보내 보았지만 그래도 이의상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의상을 구입한다.
백화점의 고가의 좋은 의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역시 비싼 의상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거액을 지불하기는 처음인 것만 같다.
평범한 보통의 가정주부로서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었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챙기는 그런 평범한 여인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고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면서
남편 안에서 아무런 불평 없이 살아온 아주 평범한 아줌마로서 살아온 세월이다.
이제 서유경은 자신이 오십을 넘긴 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어느 세월에 자신은 벌써 오십의 나이를 먹었던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삶이 후회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커다란 근심도 없고 별다른 풍파도 없이 무난하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남편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지만 또한 남편에게 불만을 가져보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정해준 혼처였다.
사랑을 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고 중매로 만나서 서로의 조건에 맞추어서 결혼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남편과 아기자기한 애정표현을 해 본 기억은 없으나
그렇다고 서로 불만을 말한 기억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다.
서유경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너무나 재미없이 세상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는데
새삼스럽게 너무나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서유경은 덩그라니 빈집에 혼자 앉자서 이런 저런 생각들에 빠진다.
아주 오래 오래 이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누리려고 새 집을 지은 지가 벌써 십 여 년이 넘은 세월이다.
결혼을 하면서 구옥인 이집을 시댁에서 물려받았다.
집은 구옥이지 이 터에다 멋진 이층집과 넓은 정원을 가꾸면서 사는 것이 서유경의 꿈이었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시작하면서 그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온 것이다.
남편이 승진을 할수록 남편의 봉급은 올랐지만 더 아끼고 절약을 하면서 이 집을 지은 것이다.
수없이 설계도를 수정을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서 지은 집이었다.
이 집에서 가족들과 오손 도손 단란한 행복을 맛보면서 자신의 노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서
그녀 나름대로 꿈에 부풀었던 집이였다.
이렇게 자신이 혼자서 남겨져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도 않았다.
자식들이 성장을 하면 당연히 부모의 곁을 떠난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서유경은 집안을 돌아보면서 긴 한숨을 내 쉰다.
"이제부터는 나도 내 시간을 즐길 방법을 찾아야겠어!"
2 장 모 임
서유경은 모임에 나갈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었다.
내일 휴일이지만 분명히 남편을 또 출근을 할 것이다.
남편의 휴일이 언제였는지 기억에도 없다.
언제부터인지 남편은 주말도 휴일도 없이 모든 것을 회사의 일에만 묻혀 지낸다.
저녁을 혼자서 일찍 먹고 난 서유경은 할일이 없어 TV에 눈을 고정 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TV에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머릿속에 들어와서 남는 것이 없다.
생각은 온통 내일 있을 모임에 대한 것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남편이 일찍 귀가를 한다.
"당신이 이 시간에 어떤 일로 귀가를 해요?"
"왜?
난 이 시간에 집에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인가?"
남편 최정우는 미안해하면서도 말은 불쑥 나온다.
"저녁은요?"
"아직 안 먹었지"
서유경은 부리나케 저녁을 준비한다.
남편을 위해서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귀찮다는 생각보다 남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즐거웠다.
"이렇게 당신 저녁상을 준비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에 없군요."
"미안하오!
당신에게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가정에만 안주 할 수가 없으니
당신이 조금만 더 이해를 해 주면 좋겠소!"
"아무리 그래도 당신을 회사에 빼앗긴 기분은 어쩔 수가 없어요."
최정우는 대답 대신에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모처럼 남편과의 단란한 저녁시간을 보내는 서유경은 잠시 행복한 생각에 잠긴다.
과일과 차를 마시면서도 마음이 행복해져온다.
"이렇게 당신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니까 정말 좋으네요."
"그건 나도 그렇소!
여보!
우리 오랜만에 일찍 침실에 듭시다."
"벌써요?"
그러면서도 서유경은 가느다란 기대를 가지면서 침실인 안방으로 들어선다.
남편과 부부생활을 한지도 꾀나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편의 은근한 손길을 기다린다.
그들은 모처럼 오랜만에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면서 사랑의 행위를 나눈다.
그러나 최정우의 사랑의 행위는 이내 끝나버리고 만다.
그리곤 최정우는 이내 깊은 잠속에 골아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서유경은 어이없이 그저 남편의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고 깊은 한숨을 쉰다.
모처럼 남편과의 달콤한 시간들을 기대를 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침대를 내려와서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기의 물을 틀어놓고 아직도 식지 않은
자신의 몸에 찬물을 맞고 있다.
이제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선 그녀의 육체는 아직 식지않는 정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벌써 시들해진 육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혼 초부터도 남편은 성생활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였다.
어쩌다 남편의 의무로서 마지못해서 한다는 그런 식의 성생활이었다.
뜨겁게 아내를 애무하지도 않았고 간절하게 아내의 육체를 탐해 본적도 없다.
때때로 서유경은 그런 남편의 태도에 실망을 하기도 했으나
그런 것을 내 놓고 불평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다스리곤 했던 것이다.
다음날 최정우는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는 집을 나선다.
"오늘은 매우 늦을 것 같소!"
"알았어요!
나도 오늘 저녁에는 동창들 모임에 나갈 계획이에요."
"당신이 동창회엘 나간다고?"
신을 신던 최정우는 허리를 펴고 아내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아내는 동창회에 나간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동창회에도 나가고 운동도 하러 다니고 할 거에요."
"아주 좋은 생각이요!
나도 당신이 집에만 따분하게 있는 것을 원치 않소!
마음 놓고 놀다 오도록 하오!"
최정우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아내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혼자서 집에 있는 아내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아내가 외출을 한다면 자신의 마음이 조금을 편해질 것이다.
아내에게도 아내 나름대로의 시간을 즐길 수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이다.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내가 때론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이젠 아이들도 모두 집을 떠나 있고 하루 종일 아내 혼자 있는 시간들이다.
아내의 그러한 정성이 고맙기도 하지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었던 것이다.
서유경은 외출할 준비를 서두른다.
며칠 전에 구입한 옷을 꺼내놓고 나니 마땅한 구두가 없다.
아니, 없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는 그 흔한 패물 한 가지 가져본 적이 없다.
결혼할 때 받은 알이 커다란 산호반지와 금가락지 이외엔 다른 보석들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것들도 언제 해 보았는지 장롱 깊숙이 넣어놓고는 꺼내 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결혼 패물들은 꺼내 보았지만 빨간 산호 알이 너무나 촌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휴!
손가락에 끼고 나갈 반지도 없으니.."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흔하디흔한 다이어 반지도 없다.
서유경은 치장을 마치고 맨손으로 그대로 집을 나선다.
차라리 그러는 편이 마음에 편했던 그녀다.
시계도 반지도 목걸이도 아무것도 그녀의 몸에 치장한 것이라곤 없다.
지하철을 향해서 계단을 내려가던 서유경은 잠시 발길을 멈춘다.
어디를 가든 지하철을 타던지 버스를 이용하던 그녀는 다시 계단을 올라와서 택시를 잡는다.
마침 빈 택시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아끼고 아꼈던 것인가.<br>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서 조금의 사치를 한다고 해서 안 될 일이 무엇이던가....
택시는 그녀가 제시한 최 고급의 일류 호텔 정문 앞에 그녀를 내려준다.
호텔은 으리으리하다.
자신의 모습을 훝어 보면서 그만 기가 죽어 버리는 서유경이다.
커다란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어디가 어딘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서유경은 호텔 프런트로 가서 양식부를 묻는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요."
호텔의 웨이터는 친절하게도 그녀를 양식부 까지 안내를 한다.
서유경은 웨이터를 따라서 조심조심 걸어간다.
평소에 이런 곳에 와 보지 않았던 그녀로서는 벌써 위축감부터 드는 것이다.
"여기 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예약자 명함을 말씀하시면 안내를 받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서유경은 돌아서는 웨이터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선다.
"어서 오십시요! 예약은 되셨는지요?"
"네!
아마 조민영이라고..."
"아!
네...저를 따라 오십시요."
또 다시 서유경은 안내를 받고 뒤를 따른다.
실내는 상당히 넓은 홀과 룸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입니다.
웨이터는 룸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준다.
안에는 여자들의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는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안으로 들어서는 서유경을 조민영이 제일 먼저 보고는 반색을 하면서 반겨준다.
"유경아! 어서 와!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서유경은 조민영의 반기는 모습에 조금 긴장된 마음을 푼다.
"내가 늦은 거니?"
"아니야!
아주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어!"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한 친구가 다가온다.
"어머? 이게 누구야?
서유경 아니니?"
서유경은 그 친구를 바라본다.
"한기숙? 오랜만이다."
한기숙이었다.
그녀의 차림새는 너무나 세련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아주 대단하신 서유경이 우리 모임엘 들겠다니 세상이 변한 모양이지?"
한기숙은 처음부터 빈정댄다.
"기숙아! 무슨 말이 그러니?"
조민영은 그런 한기숙의 말을 중도에서 잘라 버리고 서유경을 자리로 안내를 한다.
"오늘부터 이제 서유경도 우리 모임에 가입을 했으니 우리 다 같이 환영하는 박수를 칩시다."
조민영은 능숙하게 모임을 이끌어 나간다.
"그래,
서유경! 정말 반갑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은 서로 서유경을 향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서유경도 그런 친구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면서 반가운 마음을 표시한다.
"자!
이제 모두들 다 온 것 같으니 우선 음식부터 먹자."
그들이 주문해 놓은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모두들 마음을 열고 수다스러워진다.
그제서야 서유경도 천천히 친구들의 모습들이 하나씩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으로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들이였다.
여자 나이 오십대에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유경!
네 남편은 아직도 그대로 상무로 있지?"
갑자기 한기숙의 말이 날아온다.
"으응?.. 그래!"
"아휴!
아직도 그대로 상무라면 더 이상 승진은 없겠구나!
그대로 정년을 맞던가 아니면 명퇴를 해야겠네!"
서유경은 한기숙의 그런 말에 순간 당황한다.
남편의 정년이나 명퇴는 생각해 본 일도 없는 서유경이다.
"그래!
요즘 명퇴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
다른 친구의 걱정스런 말이다.
"아냐!
우리 남편은 명퇴를 당하지 않아!"
서유경은 애써 반박을 하지만 목소리는 힘이 없다.
"허기야 유경의 남편은 알아주는 앨리트 사원이었잖니?"
"그럼 뭐하니?
지금쯤이면 사장자리라도 올라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까지 그대로 상무로 있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니?"
다른 친구의 말에 한기숙은 가시가 돋친 말로 대꾸를 한다.
서유경은 머리가 아찔해 짐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다.
한기숙과는 대학 때부터 라이벌이었다.
한기숙은 어느 것 하나 서유경을 이겨본 적이 없다.
집안도 가난한 한기숙은 모든 면에서 서유경을 질시하고 적대시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기숙은 사랑보다도 돈에 더 집착을 보이곤 했었다.
지금의 남편도 돈이 많고 부잣집 아들이라는 점에서
한기숙이 쫓아다니면서 애정 공세를 펴서 결혼에 이른 것이다.
한기숙의 얼굴과 몸매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한기숙의 남편은 사업을 크게 번창을 시켜서 누구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다.
그런 한기숙은 세상이 좁다하고 사치를 하면서 자신을 과시하면서 살고 있었다.
서유경은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명품들로 감싸고 있는 친구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했다.
서유경은 식사를 했는지 어땠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친구들의 식사가 다 끝나고 나서 후식이 들어왔을 때 서유경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안하지만 난 이만 가 봐야할 것 같아!"
"왜 그래?"
조민영이 눈치를 채고는 서유경을 만류한다.
"남편과 약속이 있어서..."
"얘는?
우리 모임이 있는데 약속은 왜 했니?"
"전부터 있는 약속이었어!
미안해!
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말 미안하다."
서유경은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룸에서 도망치듯이 나간다.
어떻게 나왔는지 정신이 없다.
가까스로 호텔의 로비까지 나오자 서유경은 커다란 한숨을 내 쉰다.
그리곤 그제서야 천천히 로비를 걸어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본다.
자신이 참으로 무모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문으로 걸어 나온다.
최고급의 호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차림은 너무나 보잘 것이 없이 온 것이다.
서유경은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 왔는지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문을 벗어나려고 할 때 서유경의 앞을 가로 막는 사람이 있었다.
"저...
잠시만..."
서유경은 천천히 앞을 가로 막은 사람을 올려다본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