爲咸吉道節度使作(위함길도절도사작)
유응부(兪應孚:?~1456)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
사육신의 한 사람,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장군의 높은 기개 변방 되놈을 진압하니
將軍持節鎭戎邊 장군지절진융변
변방의 모래먼지 개고 병사들도 편히 잠드네
沙塞塵晴士卒眠 사새진청사졸면
준마 오천 필 버들나무 아래서 울고
駿馬五千嘶柳下 준마오천시류하
사냥매 삼백 마리는 누각 앞에 앉아있네
毫鷹三百坐樓前 호응삼백좌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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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복위 실패로 현장의 이슬로 사라진 유응부장군은
출중한 무예와 학문을 겸한 명 장수였다.
남아 있는 장군의 시들은 하나같이 수준 높은 작품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가난했지만, 어머님을 지극정성 봉양하였다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청렴해서
거적자리로 방문을 가렸고 고기반찬 없는 밥을 먹었다.
단종복위 사건으로 국문을 당했을 때
세조에게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만약 이 사실밖의 일을 묻고자 한다면 저 쓸모없는 선비에게 물어보라!”
그는 선비들의 우유부단함을 질책하고 있다.
그는 성삼문 등 여럿 선비들을 둘러보며
“사람들이 서생(書生)들과는 함께 일을 모의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지난번 사신을 초청 연회 하던 날 내가 칼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대들이 굳이 말리면서 ‘만전의 계책이 아니요’ 하더니, 오늘의 화를 초래하고야 말았구나! 그대들처럼 꾀와 수단이 없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하였다.
살갗이 벗겨지고 달군 인두에 살갗이 타 들어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쇠가 식었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장군의 기개가 이 시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하여
오랑캐를 토벌하고
전쟁이 사라지고 나니,
병사들도 편히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오천 필의 말은 더 이상 달릴 필요도 없이
버들 나무아래서 쉬고 있고
누대에는 사냥 매들이 삼백마리가 앉아 있다.
그가 꿈꾸던 세상도
세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그의 기개와 인간미는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