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13. 스물한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조용림 권사,이원준 장로,염성섭 장로,하경숙 권사,
성경말씀 에스겔 21:6~7,13,24,26,27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행복
찬송 200 주의 피로 이룬 샘물
헌금 기도
광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
카네이션을 모든 어르신 가슴에 달아 준 신우회께 감사드립니다.
찬송 157 즐겁도다 이 날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지금 우리 요양원 4층에는 죽음에 맞닥트려 사시는
임규택 집사님이 계십니다.
곡기를 끊은 지가 3주되어 갑니다.
어쩔 수 없이 혈관 주사에 의존해야하겠기에
제 생각대로,
제 의지대로,
전혀 보호자들과 상의 없이
제가 지시해서 혈관주사를 놓아 드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어제는 식사를 다시 드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기쁜 일인지,
제가 잘하고 있는 일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제 임규택 집사님 작은 아버님 내외분이 찾아 오셨습니다.
임규택 집사님도 늙어 암수술을 받고 시름시름 사시는데
작은 아버님은 얼마나 더 늙으셨겠습니까?
작은 아버님 내외분께서
목사님,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목사님 소신대로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저는 장로님 내외분께
고맙습니다.
인사 드렸습니다.
인생이 하루 더 살면 어떻고
인생이 하루 덜 살면 어떻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루를 살아도 사랑하고 싶습니다.
6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7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소문을 인함이라
재앙이 오나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정녕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저도 이렇게 탄식한 경험이 있습니다.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목이 쉴 정도로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래서 울다가 지쳐서 고구라 쓰러졌습니다.
저는 우리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제 손으로 우리 어르신들의 장례예배를
50명 정도 드렸습니다.
어찌 보면 제 인생은
항상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정리 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트리피스수도원이 있습니다.
일명, 침묵의 수도원이라고 부릅니다.
이 수도원에서 단 한마디 허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형제여, 우리가 죽음을 기억합시다.”
우리 요양원에는 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암’임을 알면서도
손도 대보지 못하고
그냥 ‘암’과 함께 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암’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맞닥트려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암’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사는 삶이
뭔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생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래서 우리 임규택 집사님도
오늘 죽게 될지,
내일 죽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 임 집사님의 오늘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하루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이 우리 임규택 집사님을 대할 때마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이 우리 어르신들을 대하실 때마다
귀하게,
거룩하게,
대하셔야 합니다.
내 인생이 소중하면,
침상에서 똥냄새를 풍풍 풍기는 우리 어르신들의 인생도
소중한 것입니다.
스티브잡스는 수백만달러를 기부하고
56세에 췌장암으로 죽었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췌장암으로 병상에 누워있을 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있습니다.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정점에 도달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일을 떠나서는
기쁨 이라고는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돈이라는 것은
내게는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췌장암 때문에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 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돈은
임박한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굶지 않을 정도의 돈만 있다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6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왜?
우리가 이렇게 허리가 부러지도록 탄식해야겠습니까?
바로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지은 죄 때문입니다.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건과가 드러나며
너희의 모든 행실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지 않을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지금까지 잘 못 한 일들을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정직한 회개입니다.
그럼 우리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내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약속을 파기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내가 한 약속입니다.
언약은 곧 성경testament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
100만 번 죽고
100만 번 다시 태어난 고양이가 있습니다.
이 고양이는 호랑무늬 고양이입니다.
호랑무늬 고양이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호랑무늬 고양이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에도 전혀 슬프지도 않게
태연했습니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전혀 슬퍼할 감정조차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혀 애통하는 법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울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호랑무늬 고양이가 다시 태어난
어느 생애에서
처음으로
흰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고양이는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생애 처음으로 사랑을 했던
흰 고양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호랑무늬 고양이는
100만 번을 끄억끄억 울고
처음으로 사랑했던 흰 고양이를 따라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건강할 때는
우리가 돈이 많을 때에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말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에 참으로 인색합니다.
그리고 ‘암’ 수술을 받고도 다시 태어났는데도
죽었다가 다시 살았는데도
우리들의 삶이 전혀 달라지지도 않는
바보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애통스럽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4층에서는 죽음을 부여잡고 사시는
우리 임규택 집사님도 계십니다.
우리 임규택 집사님에게는
1분 1초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아마 우리 임규택 집사님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여보, 사랑해요.
여보, 고마웠어요.
여보, 미안했어요.
여보, 용서해줘요.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 말이 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는 게 무엇이라고,
죽는 게 무엇이라고,
돈 에게
구걸하며 살아야겠습니까?
죽으면
돈이 없어도 되는데.
어제 우리 한 권사님께서 누우면 허리가 아파 죽겠고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궁댕이가 아파 죽겠다기에
제가 그랬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남은 것은
죽으면 되겠네요.
그리고 우리는 웃었습니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라.
저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고통스럽습니다.
돈이 없어 죽겠고
목숨도 허덕거려 죽겠습니다.
그렇지만 행복합니다.
26절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27절,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이런 세상이 곧 도래 할 것입니다.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지는 세상
공평한 세상
사랑스런 세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