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원력을 구별하자.
"스님은 욕심도 많으셔요...하루 네 번 기도하는 것도 부족해서
다섯 번이나 하시고...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셔요.
1~2시간 차를 타고 와서 매일 기도 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욕심도 많으셔라."
모든 욕망의 근본은 갈애渴愛라 하였다.
목마를 때 물을 갈구하듯
하고자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고자하는 뜻에 집착을 하는 것을 욕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욕심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는데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다섯 가지 욕심 중엔 공부에 대한 욕심은 없다.
불자들은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부 욕심이 많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왜 오욕 중엔 공부욕이라는 말이 없을까?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올리거나 절을 많이 하거나
경전을 많이 독송하거나 불사를 많이 하거나
용맹정진을 하는 것도 집착하니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도 욕심이라 불러야 할 터인데
경전에는 이런 것을 욕심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런 것들은 무엇일까?
바로 원력이라 부른다....원력이란 무엇인가?
불교를 신행(信行)하는 사람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내적으로 수립하는 기본적인 결심과 그에 따르는 힘이다.
백과사전에 있는 말이다.
불자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을 원력이라 부르는 것과
욕심이라 부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원력이라 부르면 같은 행동을 해도
자신감 있게 진취적으로 할 수 있는데 반해
욕심이라 부르면 열심히 하다가도 '내가 왜 이러지?
부처님께서 집착하지 말라했는데.'
하는 생각에 전념하여 행하기 어렵다..
세속의 일이든 수행이든 일념으로 하지 않으면 성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사업하는 사람이 돈을 열심히 벌려할 때
한참 열심히 하다가도 '내가 왜 이리 욕심이 많지?' 하는
생각을 하면 생각이 흩어져 제대로 돈을 벌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려하는 것을 원력이라 부르자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이 대체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하는 것이 대부분이니
돈벌려하는 것은 욕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돈을 벌려하는 것도 그 목적이 다르다면,
모든 중생을 위해, 불사를 위해 하려 한다면
그것도 원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욕심이 많아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원력이 강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
하나는 하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이요
하나는 불국정토에 나는 것이다.
하지만 원력의 이름으로 불사나 사업을
자신의 욕구 충만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그 관계는 지극히 미묘해서 구분하기 어렵지만
난 천수경이나 보현행원품을 매일 독송하면서
그 원력을 순수하고 굳게 만들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고 불사나 사업을 한다면 모두 욕심이라 생각한다.
불자들은 언어표현을 하는데 신중해야 한다.
선행을 하거나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을
원력이 강하다는 표현을 해야 불자로서의 자세가 더 곧아진다.
그러한 일에 욕심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출처 : 아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