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시대에 노인으로 살아남기~
엄상익(변호사) < 잔인한 예쁜 여성 >
며칠 전 동해에서 서울로 가는 KTX 열차 내에서였다. 나는 인터넷 앱을 통해서 기차표를 예매하고 탔다. 세상이 바뀌었다. 고시공부하듯 인터넷 앱을 공부하지 않으면 예전의 문맹같이 취급된다. 이년 전 소설가 김훈씨의 집필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스마트폰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걸 보더니 그는 스마트폰을 모르는 자기보다 내가 더 하다고 한마디 했다. 그러면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작동시키지 못하는 건 현대에서 ‘장애(障碍)’라고 표현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장애 내지 문맹이 안되기 위해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손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예매를 하고 로그인을 하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다. 하여튼 내손으로 표를 예매했던 기차를 타고 진부역을 지날 무렵이었다. 한 젊은 여성이 좌석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여기는 제 좌석인데요.” 그녀는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 폰의 화면을 내게 보여줬다. 좌석번호가 내가 앉아있는 자리였다. 이상했다. 나도 내 스마트 폰 속의 표를 다시 확인했다. 이미 두 번, 세 번 확인했었다. 분명 내 자리가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늙은 내가 남의 자리에 앉아있다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카톡을 확인했다. 예약이 완료되고 돈이 지급됐다고 확인문자가 와 있었다. 그걸 보여주었다.
그래도 젊은 여성은 내가 뭔가 틀렸을 거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기차 승무원이 다가왔다. “제 자리에 이분이 앉아 계시네요.” 젊은 여성이 승무원에게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경우 대개 나이 드신 분이 틀리는데…” 승무원이 순간 혼잣말 같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노인이 잘못했을 것이라는 어떤 고정관념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내가 스마트 폰 속의 기차표를 승무원에게 보여주었다. 승무원이 그걸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여성과 내 승차권의 좌석이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간에 가는 기차면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승무원은 이번에는 그 여성의 스마트 폰을 받아 기차표를 한참 보다가 말했다. “날짜가 틀리시네요. 오늘이 아니고 내일 기차를 예약하셨네요.” 그 여성의 착오였다. 나는 IT시대에 살아남은 듯한 작은 승리감을 느꼈다.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노인 나라의 시민이 되었어도 공연히 빈 깡통이 되어 소리치지도 말고 주눅 들지도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카톡으로 동영상이 하나 전송되어 왔다. 지하철 안에서 노인과 이십대 여성이 심하게 싸우는 장면이었다. 젊은 여성이 앙칼진 목소리로 쌍욕을 하면서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노인의 머리통을 내리찍고 있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찍어대고 있었다. 노인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추행이라도 당해 분노해서 그런 것일까? 젊은 여성은 갸름한 턱선에 예쁘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러나 핸드폰으로 노인의 머리를 계속 내리찍어 피를 내는 그녀의 잔인성은 그녀의 미모를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카톡의 영상 화면에는 간단한 글이 적혀 있었다.
지하철 바닥에 침을 뱉는 젊은 여성에게 주의를 주다가 머리가 터졌다는 설명이었다. 화면에서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하철 안에는 승객들이 있었다. 여성이 핸드폰으로 노인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찍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노인이 피를 흘리면서 도망하려는 여성을 잡으려고 하자 굵은 팔이 나타나서 노인을 제지했다. 그 두툼한 손의 주인은 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말리려고 했다면 먼저 여성을 말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도 노인 세대로 들어서인지 뭔가 묘한 감정이 드는 것 같았다. 노인들이 느끼는 피해의식 비슷한 게 아닐까?
노인은 추하고 더럽고 둔하다는 ‘에이지즘’이 이 사회에 스며든 지 오래다. 젊은 세대의 팽배한 불만이 노인세대에 대한 증오로 변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IT시대의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약자였다. 기계도 칠십 년 이상 쓰면 붉은 녹물을 흘러내리고 부서지기 마련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늙고 병들고 약해졌기 때문이다. 인내하는 게 노인의 태도 아닐까. 무시하는 젊은 사람의 인격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하고 말이다.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동영상의 장면을 보면서 나 혼자 상상해 봤다.
그 노인이 말없이 그 젊은 여성이 지하철 바닥에 뱉어놓은 침을 휴지로 닦아냈다면 어땠을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 한 회사, 나이 먹은 사장의 모범이 되는 행동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맨손으로 화장실의 변기를 청소했다. 그리고 수건으로 남성 소변기 앞에 떨어진 오줌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걸 보면서 뭉클한 감동이 다가왔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를 보면 장로님들이 화장실을 반들반들하게 닦아놓고 있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 올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범을 보였다. 십자가는 상징과 은유다. 노인들이 본보기가 되는 행동으로 젊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좀 더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샬롬 !!
청명한 불금 멋과 맛 향기로 즐거운 시간 보람 되시고...
항상 건강 조심 하시고 편안 하시며 늘 웃는 인생 삶 행복 하세요~
안녕 하세요? 수고 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일만 있는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