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본기 태조왕3년, AD55년.
三年 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秋八月 國南蝗害穀
3년(AD55년, 乙卯) ==> 년(AD105년, )
봄 2월,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서 한 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가을 8월, 남쪽 지방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 곡식을 해쳤다.
*<본기신편열전> 에서 築國西十城 으로 되어 있어, <고구려본기>의 遼西十城는 오류가 난 것.
*신명선제 33년, AD105년, 3월, 鎭北將軍(진북장군) 麻樂(마락)이 개마의 여러 성을 重修(중수)하였고, 맥의 기병을 이끌고 요동을 쳐서 백암, 장령, 토성, 문성, 장무, 둔유 등 6성을 얻었다.
*삼국사기만 보던 연구가들은 태조왕 3년 AD55년 기사에 나오는 요서 10성 축성 기사를 보고는 바로 낚여 버리죠.
國西 => 遼西 로 김부식이 글자를 바꿔치길 한 것을 몰라요.
초보자들은 AD55년에 고구려가 강성하여, 요서에 10개 성을 쌓았다고 낚여 버리죠.
그런데, AD55년에, 나라 서쪽에 10성을 쌓을 수는 있지 않나? 그럴 수 있어요.
AD55년 중국 사서를 찾아서, 8월 여름에 황충 기사가 있는지 체크를 해봐야 해요.
그리고 <신라본기> AD57년 탈해왕 원년 기사는 AD107년이 탈해왕 원년입니다.
*107년 - 57년 = 50년 편차.
+50년 더하기, 기사가 이동합니다.(신라본기 기년에 영향받음)
<본기신편열전>이 중심이고, <고구려사략>은 보조 사서이죠. 기년이 개판이므로..
원래 고대사 연구는 조직력 있게 연구해야 해요~
3명이서 팀을 만들어서 하는데, 1명은 돈이 많은 사람으로, 빌딩 몇 채 갖고 있는 회장님으로.. 실력있는 2명을 밀어 주는거죠.
고서 구입도 지원을 해주고, 최신 컴 지원도 해 주고, 책 3개 사서 나누고요.
1~2달 정기적으로 만나서, 그간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자료 복사도 공유하고..
이렇게 하면 연구 속도는 1인에 비해, 3~5배 가속이 붙어요.
글 많이 올리면 뭐 해요?
초짜는 한문 해석도 못 하지, 된장 구분도 못 해서 허덕거리지..
2006년~2010년 상간에는 실력자들이 많았으나, 생업에 바뻐서 다들 잠수타버렸죠.
저도 9년만에 나타나 끄적거리는거죠.
과거 글 땡겨서, 정리해서 하루 2개씩 글 올리면, 1년에 700개 정도 되겠네요~
*어제밤에 네이버 블로그 그 사람은 예리하더군요.
"추모왕은 광개토왕비문에는 북부여 후손이라 되어 있고, 동부여는 속국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금와 운운..하며.. 동부여 계보가 들어 있는 것은 동부여 후손 누군가가 후대에 개입하여, 계보를 집어 넣은 것이다"
이 정도는 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