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언제, 어떻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됐을까? ‘세종실록’엔 1446년 음력 9월 훈민정음을 반포했다고 돼 있지만,
그날의 모습은 나타나 있지 않다.
한글창제 563돌을 기념해 10월 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훈민정음 반포 재현 행사’가 열렸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세종문화회관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한글 창제 과정과 반포의 순간을 알리는 자리였다.
훈민정음 반포 재현 행사에 쓰인 책 <훈민정음>. |
이번 행사의 절차는 ‘세종장헌대왕실록’ 오례(五禮)의 ‘교서반강의(敎書頒降儀)’를 참고해 재구성했다.
관람객들은 ‘초엄→이엄→삼엄→국궁사배→훈민정음 반포→국궁사배→삼고두→산호→
국궁사배→예필→해엄'이라는 훈민정음 반포 절차를 지켜보며 뿌듯해하기도 했고 가슴 뭉클해하기도 했다.
또 세종대왕 역을 맡은 세종대왕 19대 후손 이군익씨(45)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냈다.
“세종대왕님, 한글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관람객들은 경복궁 근정전 양쪽에 있는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훈민정음 반포 의례절차를 자세히 보고,
훈민정음 예의본의 해설을 보기도 했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라는 해설을 함께 읊는 이들도 많았다.
훈민정음 반포 재현 의례의 절차는 세종장헌대왕실록 오례의 교서반강의를 기초로 했다. |
“처음엔 훈민정음이 뭔지 몰랐어요. 여기 오기 전에 엄마가 훈민정음이 한글이라고 설명해줬어요.
행사를 보니까 세종대왕님이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앞으로는 한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예쁜 말을 쓸 거예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온 일곱 살배기 한준석군은 처음 보는 의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군은 연신 엄마에게
“저건 뭐예요? 저 사람들이 임금님한테 뭘 주는 거예요?”하고 물었다.
엄마 김소희씨(40)는 “아는 대로 설명했는데, 사실 나도 훈민정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이름이
훈민정음에서 한글로 바뀌었는지 정확하게 몰라 팸플릿을 보면서도 쩔쩔맸다”며 “매일 쓰면서도
한글이 어떻게, 왜 만들어졌는지 몰랐다는 점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를 이르는 말이다.
세종이 1446년 훈민정음 28자를 세상에 반포할 때 찍어낸 책 ‘훈민정음’은 훈민정음 창제 취지 등을 담고 있다.
세종이 당시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국어가 중국어와 달라 한자를 가지고는 잘 표기할 수 없는 점, 고유한 글자가 없어
생활에 불편이 심한 점 때문이었다. 훈민정음은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정음’, ‘국문’이라고 불렸고, 우리말과 글을
연구한 국어학자 주시경이 처음 ‘한글’이라 불렀다고 한다.
영어 철자는 지키면서 한글 파괴 용인하는 사람들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훈민정음 반포 의례절차가 끝나자, 궁중무용 ‘헌선도’와 ‘봉래의’ 등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행사가 끝나자 광화문에서 시청을 지나 남대문까지 어가 행진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한글로 된 이색포스터와 블라인드, 책 등을 전시한 ‘한글디자인전’을 관람했고, 한글 자모 스탬프 찍기,
한글 퍼즐 맞추기, 한글 스티커붙이기 등 한글과 관련한 놀이체험에도 참여했다.
이색적인 한글 디자인으로 꾸며진 옷과 신발들. 특히 많은 외국인들이 이를 보고 감탄했다. |
1년 전 베트남에서 와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있는 레티김지엥씨는 직물물감으로 한글을 새긴 운동화, 옷가지를
보며 “예쁘다, 독특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 공부가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볼수록 글자모양이
귀여워 친근감이 든다”며 “행사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한글공부를 할 때 종종 떠올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온 주부 이은희씨는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한글날이 세계 유일의 문자기념일’이라는
말에 아이가 깜짝 놀라며 자랑스러워했다”며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아이가 한글의 위대함이나
과학적 우수성을 알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이은희씨가 한글 디자인전을 돌아보고 있다. |
“‘한글 파괴’라고 부를 만큼 이상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TV 자막에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은 말이 많이 보여 안타깝죠.
영어철자 틀리는 건 지적하면서 한글표기법 바로잡는 사람이 드문 점도 그렇고요. 한글날에만 한글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말고 수시로 바른 말, 고운 말을 가르치고 배우면 좋겠어요.”
"하루빨리 공휴일로 지정됐으면…"
대체적으로 ‘훈민정음 반포 재현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조선시대 의례 절차에 따라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모습을 보니, 더 위대하게 보인다”, “비록 재구성한 행사지만, 563년 전에도 백성들이 이렇듯 가슴 뭉클하지
않았겠느냐”, “백성과 의사소통하려는 세종대왕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한글날을 하루빨리 법정공휴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휴일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돼야 아이들,
청소년, 직장인 등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한글 관련 문화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보니 젊은이들의 행사 참여도가 저조한 듯 보였다.
전 세계 200여개의 나라 중 자국어를 가진 나라는 28개국. UN 발표에 따르면 한글 사용 인구는 2005년 기준으로
약 8000만명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많은 규모다.
한글이 있다는 것, 나라 문자 창제일이 국경일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만이 누리는 행운이고 특권이다.
자부심에만 그치지 말고 한글을 소중하게 써,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비롯한 당시 학자들의 노고를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책기자단 김수정 crystar19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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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례본을 도둑맞았다"는 골동품 가게 주인과 현 소유자 간 형사소송이 급기야 민사소송으로까지 번진 것. 국보급 가치로 보존처리와 연구가 시급하지만 법원의 가처분결정 이후 외부 접근이 철저히 차단돼 훼손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11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등에 따르면 2008년 발견된 훈민정음 상주본에 대해 골동품 상인 조 모씨가 현재 소유자인 배 모씨(45ㆍ경북 상주시 낙동면)에게 청구한 '물품인도 무효 소송'이 오는 23일 2차 변론을 앞두고 있다. 훈민정음 상주본 소송의 시작은 지난해 7월 경북 상주에 사는 배씨가 한국국학진흥원에 감정을 의뢰해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판본"이란 진품 판정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러자 상주본의 원소유자라고 주장하는 조씨가 배씨를 상대로 지난해 8월 '절도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조씨는 지난해 8월 상주경찰서에 진정을 하면서 "배씨가 '지씨홍사집' '송명신록' 등 비교적 저렴한 고서적을 내가 운영하는 골동품점에서 박스째 사가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몰래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은 올해 2월 해당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정황상 배씨가 고서적을 구입하면서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해간 정황이 있지만 '절도' 증거는 없다는 것. 고소인 조씨가 처음부터 고서적 가치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과 달리 정밀감정을 하지 않았고 해례본 발견 열흘 이후에 신고한 점 등도 조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검찰 수사에 불복한 조씨의 항고가 뒤따르고 조씨와 배씨 양쪽 모두 블로그를 개설해 서로의 주장과 수사자료 등을 연거푸 올리면서 조씨와 배씨 간 명예훼손 고소건이 발생했다. 어렵사리 명예훼손건이 무혐의 처리될 때쯤 이번엔 조씨의 증언에 참고인 진술을 했던 조씨 동료 등을 배씨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양쪽 모두 '상처투성이 신세'로 전락했다. 현재 조씨는 형사소송이 무혐의 처리됨에 따라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민사소송을 통해 배씨가 조씨로부터 서적을 사간 상황이 입증되면 얼마간의 이익배분이 가능해질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송사가 길어지면서 서적의 훼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 경북대 남권희 교수(문헌정보)는 "현재 서적을 낱장으로 비닐에 넣어 보관 중인데 이는 습기를 유발해 오히려 서적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서적 내 기생하는 벌레와 균을 죽이는 훈증처리라도 하면 좋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소송이 어렵사리 끝난다 해도 문제다. 훈민정음 상주본의 거취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소유자인 배씨는 "복잡한 송사가 3~4건 남은 상황에서 해례본의 처리방법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배씨는 50억원에 매각할 것을 제안받은 적이 있다. 또 정체불명의 매각자에 의해 경매시장에 800억원대 매물로 등록됐던 적도 있어 고가에 팔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훈민정음 상주본을 둘러싼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상주본'으로 밝혀진 사실과 달리 현재 서울 간송미술관이 보관 중인 국보 70호처럼 '안동본'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 조씨는 수사과정에서 "안동에 있는 박 모 상인으로부터 해당 서적을 구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교수는 "안동의 경우 세도가가 많았고 학문연구 환경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해당 서적이 '제2 안동본'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지용 기자 / 이새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