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이 정말 없네. 어디에 누워도 메마른 신음, 어디에 가도 목이 막힌 주검들. 지친 몸 쉴 곳 없는 낯선 땅이 내 상처였지. 창궐하는 역병은 세상을 찌르고 사람들은 수없이 죽어서 쌓이고 매장할 곳도 화장할 곳도 없다는데 60년 전 시인이 되겠다고 한 건방진 약속, 늦었지만 이제 취소합니다. 숨 쉴 곳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당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집을 떠나면 반가운 나라가 보이고 그곳에서 모두 함께 만나 울면서 춤춘다는 말도 차츰 무서워 진다. 어떤 표정으로 당신을 맞이해야 할까? 바다의 별같이 화려할 수는 없겠지만 준비 없이 고통받기 두려워 한 발 물러서면서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모순. 미워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잡히지 않겠다고 도망 다닌다.
나는 욕심이 크지 않고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 내 열병만 참으면 되는 줄 알았지. 벌거벗어도 아름다웠던 날이 이었지만 이제 무엇을 더 피하고 무엇을 더 감추어야 편안해질까. 어느새 세대에 찢긴 바람도 멎고 내 영혼이 당신께 귀 기울입니다. 어려운 일곱 마디 말을 다 듣고 나서야 헐벗은 당신 윤곽이 차츰 분명해집니다.
한때는 나도 들꽃과 바람에 어울려 살았지만 당신이 피 흘리며 배척당했던 곳은 먼지와 빈 흙과 돌무더기, 아직도 인간의 짐을 지고 돌산에 오르고 있다고 믿는 그 길을 나도 허기진 채 걸어보았지요. 오랫동안 외로웠다고 이제는 말해도 될까요? 헐벗은 마을에서는 내 유일한 유희를 함께해줄 이가 없었지요. 듣지도 않고 모두들 가버렸습니다.
젊었을 적 밥 딜런이 바람 속에 답이 있다고 응얼댄다. 몇 번이나 고개를 들고 찾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잇는냐고 묻는다. 그래, 나도 평생 고개를 수없이 들어보았다. 나이가 들어서야 큰 것은 단순한 것에 스며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다. 해는 저물고 세월은 너와 나 사이로 흘러가는데 그 하늘은 아직 높고 멀기만 하다.
시체 해부로 밤을 지새우던 의대생 시절에 나는 당신이 주는 양식을 간단히 거절했지요. 나 혼자 살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 냄새의 세월이 가고 내 나라에서 쫓겨난 뒤에야 내가 배고픈 인간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 저쪽 골목을 돌아 세상에 왔을 때 눈물진 당신의 양식을 먹고 나서야 겨우 연명할 수 있었네. 가난하고 끝없는 애 피난처여.
오른쪽 뇌에서 쏟아진 자연과 자유와 느슨한 감성은 왼쪽 뇌에 서 잇는 풀리화할과 피의 기술을 만나 난상 토론 끝에 나를 이룬다. 그 괴를 조각으로 자르고 남의 심장을 뜯어 쓰시고 복강을 열어보며 배운 것이 인간은 누군가가 만든 신비하고 그 길 끝에서 우리를 집으로 인도해주는 손길. 반성의 기미만 내 유서가 되어 고개를 깊이 숙이네.
밝고 깨끗한 곳이 아니고 어둡고 고개 숙인 골짜기에만 무지개가 산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서로 다른 크리와 모양의 꿈이 내 지행이엇다. 무지개가 살아 잇는 한 당신도 언제고 돌아오리라 믿었다. 저기 고통에 절어 탈진된 채 망연히 서 계시는 이는 누군가. 스타바트 마테르의 노래가 들린다. 고통을 이겨낸 배경으로 찬란한 무지개가 선다.
거의 끝나가는구나. 다리를 끌며 앞서가는 이, 눙에 익은 뒷모습이 반갑다. 살아오면서 자주 들었던 한숨 소리는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는 게 아니었구나. 쓰러져 피 흘린 자에게 들리던 탄식은 다시 시작하는 신호. 눈을 뜰 줄 몰랐으니 한숨의 의미도 몰랐던 거지. 우리는 결국 다 함께 일어난다는, 다정하게 들리는 저 천사의 탄식!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놓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지고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이 오고 있다. 어렵던 미적분도 다 풀었고 산을 넘던 일몰도 멈추어 섰다. 이제는 생애의 성사를 받을 시간, 수많은 죄와 회한을 기쁨으로 바꾸어주는 당신께 다가간다. 지는 노을 속에 자욱한 영혼들, 천천히 날아오르는 오, 부끄러운 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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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님의 시집 2020년 9월 9일/문학과 지성, 시인선 545 [천사의 탄식]은
등단 60돌을 맞이하는 열두번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60/12=5.
평균 5년에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셨습니다.
1939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원하지 않은 미국으로의 이민생활을 "천사의 탄식"에 담으셨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미국에서 의사이며 시인으로 인생의 회한을 알게 되는 장시(長詩)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깊은 한숨과 낮은 탄식도
천둥처럼 큰 응원의 소리라 생각합시다.
내일부터 5월 3일까지 사업제안서 작성으로 몹시 분주하게 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단법인한국명시낭송가협회 카페에는 매일 방문은 하겠으나,
"좋은 시 작품"방에는 시를 드문드문 올리겠습니다.
오늘 중고 책방을 방문하여 구수한 책향기에 취해
몇 권의 시집을 데려오려고 합니다.
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장담컨데 인내와 끈기 그리고 장수와 행복이 가득하시리라 굳게 믿으며,
가시는 길마다 모두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는 기분 좋은 날 되세요.
=적토마 올림=
첫댓글 서울 행사 같이 가자고 말씀 드릴려고 했는데 어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