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는 수학이 어렵기 때문에 영어는 초등학교 때 공부해야 한다."
앞선 글에서는 영어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나에게 신기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위의 말처럼 조언을 하던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1편의 이야기를 꼭 읽어봐주세요..^^)
5학년까지 영어 사교육은 커녕 영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던 아이, 6학년 바로 직전의 봄방학 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아빠와 아이를 포함한 여러 일행들과 미얀마에 갔었는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날 시내 쇼핑몰에서 각자 쇼핑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는 이것저것 구경하다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 있게 되었는데 Play Station매장에서 진열되었던 PS4를 떨어뜨린 것이다. 물론, 그 기계는 파손이 되었다. 주변에 어른은 없고, 말은 통하지 않고 그렇게 10분동안 붙잡혀 있었단다. 같이 간 또래 형들 중에는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도 있어서 그 아이들과 함께 있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혼자 떨어져서 발생된 일이라 대응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어른을 찾아 오겠다며 한국어로 이야기 하는 걸 점원이 알아들을 턱이 없음을 물론, 그도 영어를 잘 못했던지 "Wait" Wait."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팔을 잡았다고 한다.
다행히 언어를 잘하는 일행 중 한명이 등장하고 (미얀마어였는지 영어였는지는 기억이 안남) 망가진 제품은 고가의 헤드폰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후일 남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때 애가 얼굴이 아주 하얗게 질려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고, 짐을 풀면서 이 빨간색 헤드폰을 사온 이유는 그런 이유였다며 아무렇지 않은 듯 남편은 이야기를 했다. 매장에서의 상황은 심각했겠지만 무사히 돌아온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오히려 아이에게 그 헤드폰 가격만큼 통장에서 물어내라고 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난 후 아이는 자기도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전에 피아노도 딱 삼개월만 해보자고 사정사정을 해서 시작하고, 태권도는 차를 타고 안전하게 귀가 해야 해서 다녔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매일 가야하는데 쉽지 않을 거라고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그래도 자기는 영어를 공부를 해서 그때 봤던 형들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단다. 그래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의들과 아이의 성향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적당한 학원을 찾아보았다. 각자의 단계에 맞게 진도를 나감은 물론 개별적인 지도를 하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가면 수행할 수 있으면서도 원비가 비싸면 안된다.
다행히 찾아내었다.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랏, 정말 열심히 다닌다. 한달, 두달 후에는 좀 달라질 것도 같은데 꾸준히 다니며 정말 열심히 한다.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그때 어지간히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물론, 먼저부터 배우던 다른 친구들보다는 초급단계이긴 하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하고, 집중도 잘하고 인사성도 바르다며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칭찬도 받으면서 다닌다. 아이의 경험이 가장 큰 기반이었겠지만 사교육의 순기능도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6학년을 보내고 중학교 갈 때가 되니 주변에서는 또 그 학원은 초등애들 다니는 학원이라느니 이제 중학교 학원으로 갈아타라느니 조언이 많다. 하지만, 아이는 그 곳의 선생님들도 좋고 배우는 모든 과정도 좋고 계속 여기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사실, 뭔가에 즐거움을 느끼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여서 학교 교과 성적 같은 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보니 영어는 다른 교과보다 실력에 편차가 너무 커서 수준 별로 반을 편성하여 수업을 한다고 한다. 상, 중상, 중하, 하 이렇게 네 단계가 있는데 큰아이는 놀랍게도 상반에 속하게 되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에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거기에는 영어유치원부터 다니던 아이들, 어렸을 때 부터 꾸준히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두루두루 섞여있었다. 그때는 어떤 운으로 그 반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중상 이상의 실력은 유지하고 있긴하다. 2학년 들어 인생 최초로 시험이라는 걸 보니 전체 과목으로 봤을 때는 중간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뭔가를 이루고 난 다음의 자신감이 붙어있다.
그 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하며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이의 미래를 막연하게 불안해하지 않으며 공부의 목적을 좋은 성적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보다 아이와의 관계에 우선점을 두며 아이가 지금 어떤 것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는지를 좀 더 세심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작년에 중2였던 아이는 (영, 수 다른 과목은 다 내 팽개치고) 음악 수행평가를 위해 밤을 새보기도 하고, 유희왕 카드거래도 하고 더 나아가 중고거래를 하며 수익을 남겨 보기도 하며 세상을 배워나갔다.
사실, 위의 사례는 해외에서의 경험이 동력이 된 터라 사례를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아이에 따라서 이런 드라마틱한 경험 보다는 일상의 연습과 꾸준함이 더 필요한 아이도 있기 때문에 이것이 좋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단, 말하고 싶은 것은 (꼭 영어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나라고 성적이 이리도 중요한 사회 속에서 욕심이 없겠는가?
(아마도 좋은 성적에 대한 갈망이라면 나보다 아이에게 더 있을 것이다.)
단, 그런 욕심으로 자신의 방법으로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는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가리워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첫댓글 아이가 지금 어떤 것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는지를 좀 더 세심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