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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불교, 기독교 경전의 성립과정에 대한 고찰
낙서장
2007/01/28 09:38 |
유교, 불교, 기독교 경전의 성립과정에 대한 고찰
1. 서론
종교만큼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류역사의 초기에는 종교와 정치가 일체의 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그 관계의 밀접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후대에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후에도 종교는 인간의 내적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교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교조와 교리와 교단이 있게 마련이다. 이중 교리는 교조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며 교단을 형성하는 이론적 근거를 이룬다. 종교의 교리는 각 종교마다 경전(經典)으로 체계화되어 있으며 최고의 권위로서 인정받고 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인류는 수많은 종교와 사상으로 가치의 혼란을 겪고 있다. 아울러 다가오는 미래에 대하여도 뚜렷한 지침을 제시받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선천종교의 한계성이 점차 드러나고 있으며 이것은 경전의 한계성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차제에 선천종교 경전의 경전화 과정과 진위(眞僞)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사료된다.
경전은 예로부터 재도지서(載道之書, 도를 싣고 있는 책)라 하여 그 진위여부를 가리지 않고 숭봉되어 왔다. 그러나 선천역사의 분열성과 한계성에 의해 각 종교 자체가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경전화 과정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본 논고에서는 선천종교 중에서 유교, 불교, 기독교 경전의 구성과 성립과정 그리고 문제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유교의 경전과 그 문제점
1) 유교 경전의 구성
유교는 공자(B.C 551~479)에 의해 이룩된 종교이다. 유교의 경전은 일반적으로 사서오경이라 일컫는데, 사서는 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가리키고 오경은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를 말한다.
사서오경이 유교의 기본경전으로 자리잡은 것은 신유학이 성립된 이후의 일이고 이전에는 육경(六經), 칠경(七經), 구경(九經), 십삼경(十三經) 등의 분류법이 있었다.
육경은 詩, 書, 禮, 樂, 易, 春秋를 말한다. 여기에 논어(論語)를 더하면 칠경이 된다. 易, 詩, 書, 三禮(禮記, 周禮, 儀禮), 春秋, 論語, 孝經을 구경이라 하고 三禮, 三傳(春秋의 좌전, 공양전, 곡량전)에다 易, 書, 詩를 합하고 송대(宋代)에 논어(論語), 효경(孝經), 맹자(孟子), 이아(爾雅)를 더해 십삼경이라 한다. 현재 중국에서의 경학(經學)은 심삽경(十三經)을 기본으로 연구하고 있다.
비록, 칠경, 구경, 십삼경 등의 다양한 분류법이 있지만 기본은 육경이며 이것들은 모두 공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孔子)가 詩와 書를 산(刪)하고 禮와 樂을 바로잡았으며 주역(周易)의 십익(十翼)을 짓고 춘추(春秋)를 지었다고 하였다.
2) 유교 경전의 문제점
여기에서 十三經의 경전화 과정과 문제점을 모두 살펴보기에는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서경(書經)과 삼례(三禮)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서(書)는 요(堯), 순(舜), 하(夏), 상(商), 주(周)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역사서이다. 당나라 공영달(576~648)의 『상서정의』에는 한(漢)나라 정현의 서론(書論)에 인용한 상서위(尙書위)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ꡐ공자는 書를 구하였는데, 황제의 현손인 제괴(帝魁)의 書로부터 진(秦)나라 목공(穆公)에 이르기까지 모두 3240편을 구했다. 이중 너무 오래되어 불확실한 기록은 버리고 가까운 시대의 세상의 법도가 될 만한 것 백이십편을 골라 그 중에서 백이편을 모아 상서를 만들고 18편으로 중후(中侯)를 지었다. 나머지 3120편은 버리었다.ꡑ 그런데 현재 전하는 서경은 58편으로 금문상서 33편,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 25편으로 구성된다.
금문상서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인해 책이 없어지자 한(漢)의 무제때 복생이 외운 것을 당시의 서체인 예서로 베껴낸 것이다. 그 뒤 무제 말기에 노(魯)의 공왕이 공자의 구택을 헐다가 과두문으로 쓰여진 다수의 책을 발견했는데, 이중 금문상서에 없는 16편을 더 찾아서 조정에 받쳤지만 무고(巫蠱)사건으로 학관(學官)에 들지 못했고, 이 고문상서는 한말 병란(兵亂)에 망실(亡失)되었다.
동진(東晋)때에 예장(豫章)의 내사(內史)를 지내던 매색(梅賾)이 여러 고적중에 인용된 상서의 구절을 모두 모아 25편을 만들고 아울러 복생의 29편을 33편으로 늘려 도합 58편을 지어서 조정에 바쳤다. 이 매본(梅本)은 진(晋)으로부터 당(唐)에 이르도록 위서(僞書)인 줄 모르고 당태종(唐太宗)의 명에 의해 공영달이 정의(正義)를 지을 때도 이를 믿고 정본(正本)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역대로 의심을 받아 오다가 청대의 염약거, 혜동 등에 의해서 이 25편은 위작임이 뚜렷이 드러났다. 지금 전하여지고 있는 서경 58편중 위고문상서 25편은 경문자체가 완전한 가짜로서 천여년 이상을 속아 왔으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는 실정이다.
주례(周禮)의 본래 명칭은 주대(周代)의 관직이란 뜻의 주관(周官)이며 이를 높여 주관경(周官經)이라고 불렀다. 주례의 작자에 대해 예로부터 주공(周公)의 작(作)이라고 믿어져 왔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고 전국말기에서부터 서한말(西漢末) 사이에 위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더우기 이 책은 비록 三禮에 포함되어 있지만 정부 조직 중에서 중추적인 관제를 기술해 놓은 것이지 실제로 禮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의례(儀禮)는 송(送), 영(迎), 승(升), 강(降), 배(拜), 존(尊), 가(歌), 곡(哭)의 의식(儀式)을 적은 것으로 작자는 주례(周禮)와 함께 주공(周公)이 지었다는 설(說)과 공자의 손을 거쳐 나왔다는 피석서(皮錫瑞)의 설, 그리고 둘다 아니고 주(周)나라 말기에 나왔다고 주장하는 최술(崔述)의 설 등이 있다.
예기(禮記)는 禮에 대한 학술(學術), 예의(禮意), 예속(禮俗) 등을 잡다(雜多)하게 체계를 갖추지 않고 모아 놓은 기록으로, 주자(朱子)는 의례(儀禮)를 해석한 전(傳)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공자의 제자들과 후학(後學)들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 하여 성인의 글만을 경(經)이라 하여 높이 받들고 있으나 三禮는 전국말기에 나와서 한나라때 정리된 일반 학자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경에 포함되어 읽혀지고 있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3. 불교의 경전과 그 문제점
1) 불교경전의 결집과 구성
유교의 경전이 공자에 의해서 정리된 것과는 달리 불교의 경전은 부처님 입멸후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제자들에 의해 경전으로 편찬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를 결집(結集)이라고 한다. 모두 여섯 번의 결집회의가 열렸다고 하지만 중요시되는 것은 네 번째 결집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 결집은 입멸직후인 여름에 500명의 장노 비구니들이 왕사성 근처에 있는 칠엽굴(七葉窟)에 모여서 마하가섭, 우바리, 아난다의 세 장노가 상좌가 되어 먼저 우바리가 율(律)을 외우고 다음에 아난다가 법(法)을 외움에 자리에 모인 대중이 이를 협의한 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승인한 것이다.
특히 법의 결집에 공통된 형식은 서두에 如是(信成就), 我聞(聞成就), 一時(時成就), 佛(主成就), 在某處(處成就), 與某衆俱(衆成就) 등 六成就를 갖춘 것이다. 이 제1회 결집을 왕사성 결집 혹은 참가 인원의 숫자에 따라 오백결집이라고도 하며 상좌결집이라고도 한다. 이와같이 결집되어 현전하는 것이 네가지의 아함경(阿含經)이다.
제2회 결집은 제1결집후 백년이 되어 제1결집에서 부처님의 교설이 많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의 교설로 전해오는 것을 많이 아는 비구 700명이 베사리성에 모여 아난다의 문하생인 살바가마를 상좌로 하여 삼장을 읽고 외우기 3개월만에 결집을 완료하였다. 이를 베사리결집 혹은 칠백결집이라고 한다. 이때 밧지푸타카 비구가 십사(十事)를 주장한 것은 비법(非法)이고 교단을 문란시킨 것이라고 배척하였다.
이 결집에서 서쪽 비구보다 동쪽 비구가 더 많이 참석을 하였는데, 서쪽 비구들이 여기에 불평을 품고 또 十事를 비법(非法)으로 배척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주장하여 베사리 결집을 반대하고 보다 더 많은 비구를 모아 대중결집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십사(十事)가 비법이 아니라 불법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3결집은 호법왕으로 일컬어지는 아쇼카왕때 이루어졌는데, 불타의 교설을 한마디도 유실하지 않고 인도전체와 스리랑카 등 주변국가에 전도하기 위한 정통경전을 만들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때 대수를 상좌로 1,200명이 화씨성(華氏城)에 모여 특히 논장(論藏)의 주석을 결집하였다. 화씨성결집 또는 일천결집이라고 한다.
제4결집은 대월지국의 카니쉬카왕이 500명의 비구를 카습미라에 모아 바스미트라(世友)를 상좌로 협존자(脇尊者), 묘음(妙音)등 대아라한 들이 참석하여 경장의 주석 10만송, 율장의 주석 10만송, 논장의 주석 10만송 등을 결집하였다. 이 결집을 카습미라결집이라 한다.
이후에도 결집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한 전거가 없다. 이상의 내용을 고찰해 보면 불교의 경(經)과 률(律)이 주로 결집된 것은 제1차결집 회의이고 이후는 논(論)에 대한 결집이 주종을 이룬 것으로 사료된다. 경(經)과 률(律)과 논(論)을 삼장(三藏)이라고 하는데, 經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기록한 것이고 律은 계율에 관한 사항이고 論은 부처님의 제자나 후세의 승려들이 경의 뜻을 해석하거나 그들이 깨달은 법상(法相)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불교경전이 이루어져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에는 총 1514종류의 불경이 들어 있고 이를 책으로 엮으면 무려 6606권에 이르며 총 판수는 78,500판, 총 인쇄장수는 154,299장이라고 한다. 여기에 근세에 있었던 보판 권수 238권을 합하면 총 6844권에, 총판수는 81240판, 총인쇄장수는 160,642장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고려대장경의 분류를 보면 크게 대승불교의 삼장(三藏)과 소승불교의 삼장 그리고 보유잡장(補遺雜藏)으로 나뉜다. 다시 대승삼장은 전체 1514종 가운데 종별번호 K.1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 K.646 십이인연론까지로 반야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유마경, 정토삼부경, 대보적경, 승만경, 대방등대집경, 지장십륜경, 열반경, 인왕경, 유마경, 능가경, 약사경, 미륵삼부경, 부모은중경, 우란분경, 원각경, 능엄경과 밀교계통의 대일경, 금강정경, 천수경등이 있고 대승률(大乘律)에 법망경, 보살영락본업경 등이 있고 대승론(大乘論)에 대지도론, 유가사지론, 중론, 대승기신론 등이 있다.
그리고 소승삼장은 K.647 불설장아함경부터 K.978 벽지볼인연론 까지로 소승경(小乘經)에 장아함경, 중아함경, 중일아함경, 잡아함경, 앙굴마경, 마등녀경, 옥야경, 사십이장경, 정법념처경, 과거현재인과경, 생경, 불본행집경, 방광대장엄경 등이 있고 소승률(小乘律)에 마하승기율, 십송율, 사분율 등이 있고 소승론(小乘論)에는 아비달마발지론, 아비달마법온족론, 아비달마계신족론, 아비달마구사론, 성실론 등이 있다.
보유잡장은 전체 1514종 가운데 K.979 불본행경부터 K.1514 고려대장경 보유목록까지를 말하는데, 전기류에 불소행찬 마명보살전, 용수보살전, 고승전, 조당집 등이 있고 경전류에 현우경, 백유경, 불설불의경(佛說佛醫經), 법구경 등이 있고 사서목록류에 경률이상 제경요집 개원석교록, 일체경음의 등이 있고 여행기류에 대당서역기, 고승법현전 등이 있고 논서류에 시설론, 금강삼매경론, 화엄경탐현기 등이 있다.
2) 불교경전의 문제점
많은 사람들은 논장(論藏)을 제외한 대승의 經과 律, 소승의 經과 律 등을 모두 석가모니 부처께서 직접 설한 것을 문자로 기록한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제1회 결집때 이루어진 소승경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승경전, 밀교경전 등은 후세의 승려들이 본문에 가필을 하거나 완전히 새롭게 창작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소승불교인들에 의해서 ꡒ대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ꡓ라는 문제가 제기 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智顗)가 주장한 오시설(五時說)에 의하여 모든 경전을 이의 없이 다 불설(佛說)로 신봉하였다. 오시(五時)란 석가모니의 45년간 설법을 다섯 시간대로 나누어 총결한 것이다. 첫 번째가 화엄시로 성도후 21일동안 화엄경을 설한시기이고, 둘째가 아함시로 이후 12년 녹야원에서 아함경을 설한 시기이며, 셋째가 방등시(方等時)로 이후 8년간 유마경, 금광명경, 능가경, 승만경, 무량수경 등 방등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이고, 넷째가 반야시로 다음의 22년동안 제부(諸部)의 반야경을 설한 시기이며, 다섯째가 법화열반시로 최후의 8년간 법화경을 설하고 입멸시 열반경을 설한 시기이다.
그러나 일본의 유학자 부영중기(富永仲基)가 에도시대에 ꡒ대승은 석가모니가 설한 것이 아니다.ꡓ라는 대담한 주장으로 일대 파문을 일으킨 이후 많은 연구를 거쳐 이제 대승의 경전은 부처님 입멸후 배출된 불교학자들이 자기들이 깨달은 바를 불설(佛說)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뒤에 다시 여러 학자가 고치고 보태어 정리한 것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증거를 살펴보면 반야경의 경우 후한의 축불삭(竺佛朔)이 실고 온 것은 단순히 도행경(道行經) 1권이었지만 서진의 축법호가 가져온 광찬반야경은 10권 27품이었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한 반야도행품경은 10권 30품, 서진의 무라차가 번역한 방광반야경은 20권 90품, 온진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마라반야경은 27권 90품이며 그 내용 및 분량도 각각 다르다. 그리고 현장이 번역한 대반야바라밀다경은 600권 275품으로 되어 있다. 고려 팔만대장경의 목록을 보면 K.1에서 K.21까지가 모두 반야부계통의 경전이며, 반야부계통의 경전은 팔만대장경 전체 분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이것을 통해 보면 대승경전의 대부분은 옛 경전을 늘린 것도 있고 독창적인 창작도 있는데, 후세로 갈수록 점점 같은 계통의 경들이 하나로 묶어져서 분량이 방대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대승불교의 최고 경전으로 알고 있는 화엄경, 금광명경, 법화경, 열반경 등도 앞에서 언급한 반야경의 경우와 대부분 비슷하다.
더 재미있는 경우는 아미타경에는 아미타여래가 과거에 비구로 있을 때의 유명한 서원이 나오는데, 대아미타경과 평등각경에는 아미타의 본원으로 오직 24원을 들고 있으나 대승무량수장엄경에는 36원이 되고 무량수경, 대보적경에는 48원이 되며, 산스크리트어 무량수경 및 티벳역 비화경(悲華經) 등에는 46원 내지 50여원을 열거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같은 24원이면서도 대아미타경과 평등각경은 그 순서나 내용도 같지 않으며 48원이면서도 무량수경과 다른 본들이 반드시 같지 않다. 이는 대부분의 불교경전이 량을 증가시키는 시도 외에 한편으로는 경의 본문을 수정하고 첨삭하여 문의(文義)를 정리하고 새로운 주장을 보태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고 일어났던 것이다.
대승불교의 경전은 기원전 무렵부터 편찬되기 시작하였지만 고래로부터 인도인에게 수행의 중심이었던 진언이 대승에서 새로운 수행의 방법론으로 제시된 밀교의 경전이 편찬되기 시작한 것은 2~3세기에 걸쳐서이다. 그후 인도의 중기 밀교시대에 이르러 대일경, 금광정경, 이취경 등의 경전이 성립하는데, 불타의 말씀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다. 그렇지만 대승불교의 경전과 밀교계통의 경전이 佛說이 아니면서도 권위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불교자체가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므로 부처님의 정신을 계승한 대학자들이 깊은 삼매에 들어 부처님의 교지를 받았다거나 또는 깨달음의 경지를 기록했다고 믿는 종교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우리는 佛說이라고 기록은 되어 있지만 중국에서 수많은 위의경(僞疑經)들이 편찬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위의경의 제작은 도교와 유교의 충돌속에서 상대방을 폄하하거나 또는 상대방의 교리를 받아들여 조화 내지는 당시의 사회에 영합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경들이 많다.
위의경의 제작은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어 부태(苻泰)의 도안(道安)이 지은 역경목록에는 역자불명의 경전이 134부, 이경(異經)이라 불리는 것이 175部가 있었다. 법경(法經)등이 지은 수중경목록(隨衆經目錄)에는 의혹경(疑惑經)으로 55부 67권, 위망(僞亡)으로 141부 335권이 있다. 그리고 개원석교록에는 741부 952권을 열거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역경사의 특이한 현상중의 하나로 여기에 언급된 대표적인 위의경으로는 청쟁법행기(淸爭法行紀, 부처님이 마하가섭을 중국에 보내어 노자로 삼고 광정(光淨)보살을 보내어 공자로 삼고 월광(月光)보살을 보내 안회로 삼았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싣고 있다.), 덕호장자경(德護長者經), 수미사역경(須彌四域經), 제위경(提謂經), 약사유리광경, 법망경, 사천왕경, 대관정경, 인왕반야경, 보살영락본업경 등등 수없이 많은데, 이중에는 대장경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적잖이 있다.
이러한 경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전의 가치를 실추시키는 역할을 하였지만 그 중에는 고원한 이념을 발휘한 것도 있어 반드시 한꺼번에 이를 배격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4. 기독교의 신․구약의 형성과 그 문제점
1) 신․구약의 구성
기독교의 성서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합하여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66권은 저자도 다르고 형성된 시기도 다르며 또 지어진 환경도 모두 다르다.
먼저 구약성서에 대해서 살펴보면 구약 성서 39권은 기독교의 경전일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경전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히브리어 원어 성서를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聖文書)로 구분하고 있지만, 구약성경의 내용에 따라 율법서 5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소위 모세 5경), 역사서 12권(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 에스라, 느레미야, 에스더), 시가서 5권(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예언서로 17권중 대선지서 또는 대 예언서 5권(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선지서 또는 소 예언서 12권(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다,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으로 나누는 것이 보편적이다.
다음으로 신약성서 27권에 대해 살펴보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복음서 4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역사서 1권(사도행전), 서신 21권(바울 서신이 13권으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데살르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등이고 일반서신이 8권으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 1,2,3서, 유다서 등이다.), 묵시록 1권(요한계시록)으로 구성된다.
2) 구약의 형성과 문제점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으로 오류가 전혀 없는 완전한 글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도 인간의 기록이며 과거의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한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모세 5경의 법률적인 내용은 함무라비법전(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6대왕 함무라비가 공포한 법전으로 모세보다 500년 전의 인물이다.)과 공통된 유사점이 너무나 많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모세 5경이 함무라비 법전을 계승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전통적으로 모세5경은 모세가 쓴 율법이며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모든 성서의 기준으로 삼아 왔는데, 이것이 허구라는 것을 밝혀준다.
히브리인들은 B.C20세기경 갈대아 우르에서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애굽까지의 방랑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구전으로 전하여 왔고 이것이 문자로써 정리되었다. 따라서 모세5경을 모세 개인이 썼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창세기 1장부터 신명기 34장까지 율법서 전부를 한 사람이 쓴 것으로 보기에는 용어, 문체, 이야기의 내용, 시대성 등에 수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창세기에는 천지창조 이야기와 홍수 이야기가 두 번 되풀이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야곱이야기도 같은 이야기가 서로 중복돼 있는데,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또, 신명기 34장에는 모세의 죽음과 죽은 다음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는데, 이것은 시대 착오적인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ꡐ엘로힘ꡑ이라 부르고 있는데 비해, 2장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ꡐ야웨ꡑ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상충되는 중복기사 또는 내용의 불일치나 불연속성 등은 여러 자료들을 종합한 데서 생긴 오류이다. 학자들은 율법서 전체를 세밀히 검토한 결과 적어도 네 개 이상의 자료가 결합되었다고 보고 이를 J.E.D.P라는 기호로 분류하였다. J문서는 B.C850년경 하느님을 야웨라고 부른 남왕국 유다에서 형성된 자료이고 E문서는 대체로 B.C750년경 하느님을 엘로힘이라 부른 학자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이 그 생성지이다. D문서는 신명기의 주요자료로 B.C650년경 기록된 것으로 보여지며 P문서는 제사문서로 바벨론 포로시대(B.C586~538)와 그 이후 B.C500년경의 제사장들에 의해 생성된 문서이다. 이러한 문서들이 서로 합쳐져서 B.C400년경 제일 먼저 성서로 확정되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문학을 기록해 놓은 책들 중에서 정경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한 책들이다. 반면 비록 정경의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중요하게 취급되는 책으로 구약의 외경 15권(솔로몬의 지혜, 집회서, 에스드라 1서, 에스드라 2서, 토빗, 유디르, 마카비1서, 마카비2서, 바룩, 예레미야 서신, 에스더서 첨가, 아사랴의 기도, 수산나, 벨과용, 므나세의 기도)이 있고 다시 수많은 위경이 있다. 이들이 존재한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구약성서의 권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3)신약의 형성과 문제점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도 여러 저자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된 책들이 집대성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철저하게 ꡒ신구약 성경 66권이 가르치는 바 내용은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이든 간에 -신앙, 실천, 역사, 지리, 연대, 과학 등- 그 원본에 있어서는 아무런 오류가 없는 진리이다.ꡓ라는 무오류성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예수사후 30여년 이상 기독교의 사상은 구두로 전달되었다.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도 저술 연대가 A.D60년 이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구전시대가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의 사상이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쳐 전해지다 보면 어떤 면으로든지 변질되고 확대되고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계통이 각각 다르다. 또한, 요한 복음은 성전을 청소한 사건을 예수 생애의 초기에 두었고 반면에 다른 세 복음은 그 말기에 두었다. 첫 세 복음은 예수가 유월절 후에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기술하였는데, 요한 복음은 유월절 전에 십자가를 진 것으로 기록했다. 예수의 부활 설화도 복음서마다 차이점을 가진다.
또한 기록이라는 것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술한다고 해도 작자의 의도와 기록하는 사람의 정신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신약 4대복음서에서도 이러한 일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 독자를 대상으로 기록한 책으로 이 책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수의 족보에서부터 글이 시작되고 구약과의 관련성을 강조한다. 마가복음은 이방인 독자 특히 로마인을 상대로 쓰여진 책이고 누가복음서는 교양 있는 헬라독자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해 쓰여졌다. 요한복음은 앞의 세 공관복음서가 예수의 말과 행동을 가급적 그대로 묘사한 것과 달리 저자 자신의 사상과 언어 형태를 자유로 사용하여 예수의 말씀을 해석하여 보도한 것이 특징이다.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신약정경과 유사한 외경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기독교인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특정 교파에 의해서 정경대신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으로는 로마 복음서, 베드로 복음, 바울 행전, 요한 행전, 베드로 행전, 고린도 3서, 베드로 계시록, 바울 계시록 등이 있다. 신약성서 27권이 정경으로 정식 채택된 것은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였다. 이때 수많은 기록들이 외경(外經)으롤 배제되었고 당시 기독교계의 사조와 부합되는 내용들만이 정경으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5. 결론
일반적으로 경전은 인류 최고의 지혜를 모아 놓은 책으로 자연의 道와 인간의 道를 밝혀 놓은 경전으로 받들어져 왔다. 그러나 종교의 특성에 따라서 그 형성과정과 내용이 너무도 다르다.
유교의 경전은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서적이 공자에 의해 산삭(刪削)되고 정리되어 경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문학, 역사, 철학, 윤리등의 분야가 망라되어 있음이 특징이다.
불교의 경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것이지만 불교자체가 깨달음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으므로 깨달은 자에 의해 경에 대한 수많은 증보와 주석, 論들이 추가되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경전으로 받들어 온 특징이 있다.
기독교의 경전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을 확정한 이후 단 한 권의 증감도 없이 고수해 왔다는데 특징이 있다. 그리고 유교, 불교, 기독교의 경전이 모두 오랜 세월을 걸쳐 이룩되었으며 오랜 시간을 거쳐오는 사이에 많은 오류가 현실적으로 발생했음을 인정할 수 있으며 교조의 정신과도 어긋나는 경전의 성립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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