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있어 아름답다
구름처럼 허연 봄산의 자존심
요즘 도심을 벗어나 산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으로 가면 다른 때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다. 이 무렵 산사에 사는 스님들은 산빛깔이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고 좋아한다. 나무의 잎새들이 날마다 들썩들썩 자라면서 산들이 연초록 옷을 입고 있다. 그 연초록이라는 것도 날마다 질감이 달라지고 농도가 두터워지니 같은 색이라도 산색깔은 날마다 변한다. 그러니 요즘처럼 자연이 살아 있음을 실감나게 쳐다볼 수 있는 때가 없다. 산으로부터 눈에 가득가득 담겨오는 게 생명력 그 자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참다 못해 산으로 나물을 캐러 간다. 봄소풍도 이때 산으로 가야 제맛이 난다.
보통벚꽃보다 작고 보름 늦게 피어
자연의 색깔을 만나고 그것과 호흡을 함께하며 생명력을 느껴본다는 것은 이른 봄철 여행의 묘미이자 웬만큼 자연친화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면 갖기 어려운 흥취이기도 하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실천하면서도 실감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기도 하다.
요즘 산빛깔은 연록색과 함께 철쭉꽃(진달래는 지고 있다), 군데군데 섞여 핀 복사꽃(산이나 논둑 밭둑에 피는 일종의 재래종 복숭아나무의 꽃인데 개복숭아꽃이라고도 함. 초가을에 살구알만한 복숭아가 노랗게 익어 달린다)의 분홍 빛깔, 그리고 산벚꽃의 하얀 빛깔이 지배한다.
나무는 대장경 재목·껍질은 약용
충청남도 금산에 가면 산등성이 몇 구비에 모두 산벚꽃이 가득 피어 흰 뭉게구름처럼 뒤덮고 있는 곳이 있다. 금산군 군북면 보곡산골 산벚꽃단지가 그곳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의 산벚꽃 자생 군락지로 이웃한 산안리, 보광리, 상곡리 일대 200만평 산자락을 산벚꽃이 채우고 있다. 산벚꽃뿐만 아니라 산딸나무, 조팝나무, 진달래, 생강나무, 국수나무, 병꽃나무 등이 자생하며 앞다퉈 지천으로 꽃잎을 피워내니 이 무렵 이 땅 자연산 봄산꽃전시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산벚꽃은 사람들이 조경용으로 심는 보통 벚꽃이나 왕벚꽃에 비해 꽃의 크기가 작고 이파리와 함께 보통 벚꽃보다 보름 정도 늦게 핀다. 산벚꽃나무는 견고하고 변함이 없어 예로부터 귀한 소품이나 목판대장경을 만드는 데 썼던 재목감이다. 꽃잎과 열매(버찌)는 술이나 대용차로, 나무의 껍질은 약용으로 쓰였다.
저 산 너머에 그대 있다면/ 저 산을 넘어 가보기라도 해볼턴디/ 저 산 산그늘 속에/ 느닷없이 산벚꽃은/ 웬 꽃이다요// 저 물 끝에 그대 있다면/ 저 물을 따라 가보겄는디/ 저 물은 꽃 보다가 소리 놓치고/ 저 물소리 저 산허리를 쳐/ 꽃잎만 하얗게 날리어/ 흐르는 저기 저 물에 싣네(김용택 시인의 <산벚꽃>).
산벚꽃의 아름다움은 산에 있어서 자연미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진해나 화개골에 사람들이 심어서 질서정연하게 흐드러지게 핀 그냥 벚꽃이 겨우내 자연의 황량함에 목탄 사람들에게 생명감의 양적 욕구를 채워준다면 산딸나무, 조팝나무꽃, 다른 연록색 이파리들과 어우러져 핀 보곡산골 산벚꽃은 어울림과 겸허의 미덕을 알면서도 제 지킬 자리에서 제 존재의 과시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자존심의 꽃이기도 하다.
보곡산골은 산벚꽃을 보기 좋도록 비포장 임간도로를 잘 닦아 놓았다. 벚꽃이 핀 산골짝길을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 돌아나오는 데 2시간 안팎 걸린다. 도시락을 싸 가면 꼭 예전에 봄소풍 나온 기분으로 벚꽃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을 까먹을 수 있다. 가게나 보따리장사꾼들이 전혀 없는 심심산골 분위기도 좋다. 그래서 도시락 등 먹을 것과 마실 것은 꼭 가져가야 한다. 산돌이길에서 북서쪽 서대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서대산의 먼 안개빛 산색깔과 연초록 진초록이 섞인 가까운 산빛깔을 배경으로 흰 산벚꽃을 넣어 사진을 찍으면 담백하고 신선한 자연색깔이 연출돼 나올 것이다.
최성민 기자 smchoi@hani.co.kr>smchoi@hani.co.kr
30일까지 '비단고을 산꽃축제'
금산군은 1일부터 30일까지 보곡산골 산벚꽃단지에서 ‘비단고을(금산) 산꽃축제’를 열고 있다. 이 축제는 산꽃길명상여행(산벚나무꽃길), 길따라 꽃따라 함께하는 꽃차여행(산벚꽃자연공원 일주도로), 풍류산방여행(자진뱅이마을공원), 산나물싸게장터(자진뱅이마을공원) 등의 행사로 엮인다.
최성민 기자
◆보곡산골 산벚꽃단지 가는길
고속버스는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금산까지 2시간 20분 걸린다. 직행버스는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금산까지 1시간 걸린다. 승용차는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대전을 막 지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추부(또는 금산)나들목으로 들어간다. 나들목에서 보곡산골까지 50분 걸린다.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신평리를 거치면 행사장까지 1시간 걸린다.
금산 읍내에 숙식시설이 많다. 2일, 7일엔 금산약초장이 선다. 금산의 별미음식으로는 인삼삼계탕과 인삼어죽이 있다. 산꽃축제 기간 동안 민박을 원하는 사람은 보곡산골민속보존회장(041-752-2814, 011-428-2814)에게 전화하면 된다.
금산에는 이밖에도 비들목재 조팝꽃동산, 달아 진달래꽃동산, 태고사 철쭉꽃길 등 ‘금수강산 자연의 꽃밭 33’이 있다. 문의 (041)750-2225(금산군 문화공보관광과).
최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