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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장 승 흔히들 장승하면 석장승보다 목장승이 우리의 주변에서 자주 대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몇 일 전에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 갔다가 이곳에 있는 석장승을 우연히 보았다. 여기에 있는 석장승은 다른 곳의 석장승에 비해 입체미가 뒤떨어지지만, 대도시인 대구에 소재하고 있는 신당동 석장승을 소개합니다. 아울러 2008년 경남 창녕의 관룡산을 산행하면서 관룡사 입구에 서있는 1쌍의 석장승과 2009년 상주 노음산을 산행하면서 남장사 입구에 서있는 석장승을 비교 할 수는 기회를 가져봅니다. 장승(長丞)에는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으며, 전국에 분포한다.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의 성기(性器) 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사찰의 토지(寺田)의 표지(標識)로 이용 되었다는 여러 설이 있다. 목(木)장승은 솟대(蘇塗)에서, 석(石)장승은 선돌(立石)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장승(長丞)은 소속과 위치에 따라 마을을 지키는 마을 장승, 사찰의 입구나 사찰 경계에 세워진 사찰 장승, 지역 간의 경계, 성문(城門), 병영(兵營), 해창(海倉), 관로(管路) 등에 서있는 공공장승 등이 있다. 장승의 기능은 첫째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 둘째 이정표 구실, 셋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이정표시도 없으며, '천하대장군'류의 표시도 없고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서 주로 액병(厄病)을 빌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상(男像)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겨 있으며, 여상(女像)은 관이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 등의 글이 새겨 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높이 212cm의 돌장승으로 조선시대의 작품이다. 네모난 화강석 돌기둥을 다듬어 한 면에 얼굴을 새겼다. 눈썹·눈·코의 소박한 표현과 약간 웃는 듯한 입모양이 자비로운 이미지를 풍겨 민간 신앙적 요소가 깃든 미륵형 민속장승으로 보고 있다. 석장승의 코를 달여 먹으면 임신이 된다는 속설에 따라 코 부분이 마모되어 있는 점 등을 보아 다산(多産)의 복을 내리고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예전에 양산골이라 불렸던 마을의 절 입구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절의 경내에서 사냥·어로·땔나무채취를 금하는 표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경상남도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남장승 높이 220㎝, 너비 70㎝, 여장승 높이 250㎝, 너비 80㎝이다. 관룡사 입구에 좌우로 마주 보게 남녀상으로 새겨진 한 쌍의 화강암 장승이다. 왼쪽의 것이 남장승이며 툭 튀어나온 왕방울 눈, 주먹코, 아래로 향한 콧구멍과 턱 등이 특징적이다.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송곳니 2개가 양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양각되어 있으며 몸매가 육중하고 중량감이 있다. 여장승과는 달리 관모를 쓴 모습에 콧잔등에는 굵은 주름이 2개 새겨져 있으나 몸통에 명문(銘文)은 새겨져 있지 않다. 이 석장승을 벅수라고도 하며, 관룡사의 경내를 표시하는 석표의 구실, 즉 사찰의 경계 표시와 수문신으로서 세워진 듯하다.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경상북도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가 1.86m이다. 화강암으로 제작되었고, 머리 부분 왼쪽 위가 약간 파손되었으나 비교적 완전한 모습이다. 이 장승은 평면감을 살리기 위해 얼굴만을 곱게 다듬고 치켜올라간 왕방울 눈과 비뚤어진 주먹코를 조각하였다. 입은 선각(線刻)하고 꽉 다물었으며, 입술은 표시하지 않았다. 뒤쪽에서 내려 뻗은 두 이빨은 양쪽으로 향해 날카롭게 조각되어 생동감이 엿보인다. 몸통은 앞면만을 치석하여 왼쪽 어깨에서 내려간 한쪽 팔만을 조각하였으며, 그 밑에 ‘下元大將軍 壬辰年 九月 立’이라는 명문(銘文)을 두 줄의 해서(楷書)로 음각되어 있다. 임진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하원대장군의 표시로 보아 여신상의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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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석장승의 해설과 함께 잘 보았습니다.
관룡사의 한쌍의 석장승처럼 남장사의 석장승도 한쌍이 아니겠나? 上元大將軍이 어디 분실 되었을런지도 모르겠고...남장사의 장승도 사찰 경계의 역활을 했을턴데...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해학적이라 절로 웃음이 나네 ㅋㅋㅋ 좋은 자료 넘 고맙네...
에브노말님, 여유로운 생활이 부럽네, 목장승은 많이 봤지만 석장승에 대한 해석은 처음 접하는 것 같네, 좋은 자료 안내해줘서 고맙게 잘 보았네. 나그네가
석장승과 묘지 앞의 장군석,문관석과는 연관성이 없을까? 묘지 앞의 석물들도 수호신 정신이 깃들어 있음에 석장승과 연관성이 있을 듯?
보기드문 석장승 자료 재미있게 보았네. 그런데 신당동의 석장승 안내 돌 표지석의 丞(도울승) 글자와 안내판의 승( 木+生 : 사전에 발음은 생, 뜻 : 1찌 2제비 3장승) 틀리는데 그렇게 써도 되는지 의문이 생김.....
石長栍은 석장생으로 표기되어야 정상인데, 石長栍(석장생)의 사전적 의미는 돌로 만들어 세운 장승. 栍도 <장승>의 뜻이 있으니 丞과 함께 쓰이는 지도 모릅니다. 長栍(장생)은 장승의 원말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石長丞과 石長栍은 같이 쓰여진다고 봅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