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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산부인과 의사들로써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친구가...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주인인 神의 시험을 여러 번 받았지만 기도로 이겨내고... 무사히 아기를 낳게 되었고 그리고... 드디어 돌을 맞이하게 되어, 돌잔치에 다녀왔습니다.
한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더니...
그날 모인 친구들이 모두 기독교인이 되어 있더군요.
하단 지역이 물이 나쁜지...(이건 우스게 소립니다. 그곳에 친구 셋이 사는데 모두 그쪽이라..ㅠㅠㅠ)
한동안 저거 하나님의 은혜로 어쩌고~ 하는 소리를 ‘내공의 힘’을 발휘해서 별로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듣고 있었더니...
갑자기 “성철스님의 마지막 유언을 봐도 그렇다아이가~ ” 하며 불교는 결국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 다는 단정어투로 이야기를 해나가더군요. 갑작스런 공격에 저는 깜짝 놀라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성철스님의 “산은 산~” 이야기만 알았지 스님 돌아가실 때 어떤 유언을 하셨는지 금시초문이었던지라...(이 부분은 저의 無知함을 드러내는 거 같아 부끄럽습니다.)
아무런 응대를 하지 못하고 말았지요...
일방적인 완패에 예전 같으면 그랬으려니 하고 넘어갔을 건데...
어제 저녁에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려니 자꾸 그 일이 생각이 나더군요.
그 때 이런 말을 해줄걸... 하는 때 늦은 후회를 해봤지만 이미 배 떠난 후 이고...
그래도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어떤 부분에 오해해서 자기들끼리 성철스님의 말씀을 꼬투리를 잡고 그러는가 싶어 다음(daum)의 검색창에 ‘성철스님의 유언’을 쳐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글들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그 출처가 모두 기독교 단체들이었습니다.
일단, 함 읽어보세요.
제목 : 석가모니와 성철스님의 마지막 유언을 보고.....
왜 성철 스님은 천추의 한을 품고 떠났나?!
초인적인 극기 수행과 용맹 정진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 스님.
그러나 그는 마지막 임종직전에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했습니다.
과연 그가 도달한 깨달음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성철스님의 열반송. - (조선일보 1993.11.15 15면),동아일보(1993.11.5 31면)
경향신문 1993.11.5 9면, 중앙일보 1993.11.5 23면, 도서출판[삶과 꿈]류범상
생평기광 남녀군 - 일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미천과업 과수미 -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신보다 더 크구나
활염아비 한만단 -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 구나
일륜토홍 괘벽산 -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으로 있던 1987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에서
"사단이여! 어서 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 부처님입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조선일보 - 1987.4.23 7면 경향신문 - 1987.4.23 9면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사서실 [큰 빛 총서 1] - 서울사시연 1994년 p. 56-59
운명 전 지옥의 석가를 보고 쓴 성철의 시
[ 성철의 마지막 운명 전 참 깨달음의 시-최후의 말]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西天(서천)에 속이고 東土(동토)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도적이여 !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 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 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녀 잎에 夜叉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 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섭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빽빽함이여 바람이 씽씽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1 2 3 4 5 6 7 이여 두견새 우는 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억!--- ”
그리고는 "억-!" 소리와 함께 운명하였습니다.
위의 시는 성철의 운명 전 시사저널 담당기자가 취재해 온 것이며, 이 시는 추상적인 시가 아니라 운명 전 영안이 열려서 영계를 직접 보면서 지옥의 석가와 달마와 가섭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싯구로 묘사한 것입니다.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극락은 천국의 낙원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 가는 곳이며 석가와 달마도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성철이 영계 속에서 직접 본 것이지요.
구례 화엄사에 보관 중인 불경 나마다경(38:8) 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석가모니의 예언적인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何時 爺蘇來 吾道 無油之 燈也 (하시 야소래 오도 무유지 등야)
이 말은 놀랍게도
"언젠가 예수(爺蘇)께서 오시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이 쓸모가 없다"
라는 뜻입니다
석가가 입멸하기 전 최후로 한 설법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석가모니는 마지막에는 자신이 깨닫고 가르쳐왔던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부정하고 갔습니다.
일부에서는 여의도교회 김동일 장로가 나마다경을 라마다경이라고 첫자를 실수로 오기한 것을 가지고 "세상에 그런 불경이 어디 있느냐"며 거짓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마다경은 없을지라도 나마다경은 실제로 구례 화엄사의 불경으로서, 이 사건 이후로 화엄사 스님들이 이 부분을 제거해 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운 흔적이 남아 있기에 이를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보여줄 건 무어냐, 오히려 더 심증을 주지 않느냐, 그리고 이미 그걸 예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무어라고 하겠느냐"고 항변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으로 태어난 인간의 삶을 살다간 사람들은 어느 누구든지 자신의 죄와 더욱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 자신도 도를 닦고 수행을 하며 선행을 하는 것으로는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불교의 최대 성인들인 석가와 성철스님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극락)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求主)로 믿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경전서 (요한복음 14:6)
출처 : 대성 은혜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사랑의 종
이 글을 읽으니까 얼마 전 우리의 카페에 올라온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이란 글이 생각나던데...
아십니까?
우리도 예수를 우리들 식으로 해석하고 이야기하며 기독교를 비하하듯이 기독교 쪽에서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던 셈입니다.
순간 ‘과보’를 생각했습니다.
한치의 어김없는 과보...
‘우리가 그러했듯 그들도 그러는구나’...
그리고 일어나는 욕심을 봤습니다.
...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나면 성철스님의 유언에 관해 불교식의 색깔이 묻어나는 말이 아닌...
보통의 언어로 무얼 어떻게 잘못알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저조차 분명하게 알아지지 않아...
여러분께 자문을 구합니다.
어떻게 이야기 하는게 좋을까요?
아래글은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의 내용입니다.
제목 :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하여....
지금까지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알려지기로는, 기원 전 5년 12월에 나서 기원 후 30년 4월까지 만 33세 4개월의 일생 중에 탄생부터 12세까지와, 30세부터 33세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만 알려져 있을 뿐, 13세부터 29세까지의 17년 사이는 예수가 무엇을 하고 지났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과연 이 사이는 무엇을 하고 지났을까. 부친의 목수업을 돕기만 하고 지나왔을까. 설사 그렇게 목수업만 거들고 30세까지 지나왔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목수 일만 해왔기 때문에 별로 기록할 거리가 못 되어서였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지나온 경과일진대, 조금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고 17년이란 긴 세월을 그냥 비워두고 언급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그 비밀이 무엇일까?
그리고 예수가 사랑을 제창하고 신의 아들로서 자처하며, 병을 고치는 의술이라든가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 같은 것, 그리고 또 그만한 인격과 신념을 갖게 된 데에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 무슨 이유가 없을 수 없다. 단순히 부친의 목수일만 거들었을 뿐으로는 아무리 특출한 자질을 타고 났을지라도 그렇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설사 유대인은 구약성서를 읽고 그들 민족의 전통 교훈을 배운다 하여도 기껏 율법학자나 예언자 정도, 제사장 정도는 모를까, 그리스도로서의 역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된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의 대부분이 17년간의 비밀 시기 속에 감추어져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연 제기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수가 그리스도 노릇을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게 된 것이 17년간의 비밀에 싸인 시기 중이었다면, 왜 그것을 기록하여 17년의 공백을 메우지 않았느냐, 왜 그런 좋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감춰야만 했던가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에는 무슨 중대한 곡적이 숨어 있음이 틀림없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을 푸는 열쇠가 17년간의 예수의 행적을 알아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이 의문을 풀 수 없는 것이라고 단념하고, 이것은 우리 인간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뜻으로「비밀」속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인간의 생리는 수수께끼를 그냥 두고 넘기는 성격이 아니다. 언젠가 이것을 풀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의문을 풀어보겠다고 유럽의 학자들은 오랜 연구를 거듭해 오는 줄 안다. 결국 이는 풀리고 말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르리오 요즘에 와서 이의 실마리가 풀리려 하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것은 몇 년 전의 프랑스 학자 필립 드 슈아레가 발표한 「토마스에 의한 복음서」라는 저서를 한국의 한양대학교 민 희식(閔憙植)교수가 국내에 전한 것을 모 신문에 발표한 것이 그것이다.
이에 의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말해지고 있다. 그것은 그 17년 간의 수수께끼란 다름아닌 예수가 인도, 티베트 등지로 수학차 다녀간 세월이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순서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인도의 오릿사주의 왕족 라반나라는 사람이 일단의 브라만 승려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지혜를 구하러 갔을 때, 유대 나라의 제사에 참석하게 되어 거기서 어린 예수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라반나는 너무나 그 총명함에 놀라 제사장 힐렐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가 사는 나사렛 마을로 찾아가서 브라만의 지혜를 배우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예수는 공부하기를 열망하였기 때문에, 양친도 승낙하였으므로 일행을 따라 인도로 들어가서 쟈간나스 사원에 브라만 승려가 되어 공부하기도 하고, 베나레스의 유명한 의사 우드라카에게서 높은 의술을 전수 받기도 했다. 그러나, 브라만의 사성계급인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였기 때문에 브라만 교도의 미움을 받아 목숨까지 위험해졌으므로 북쪽으로 피하던 중, 불교 승려의 구함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불교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의 성자 피차파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그 배운 사본이 티베트 랏사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직접 보기 위하여 소개장을 받다가 그곳에 사는 동양 제일의 현자(賢者)라는 맹구스테에게서 그 사본을 배우며, 또 심지어 영계의 힘을 빌어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까지 터득케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예수는 라호르를 거쳐 귀국하는 동안 석가모니의 모범을 따라 병자를 고쳐가며 설법도 하면서 돌아간 기간이 17년 걸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전기 민희식 교수가 최근 주간중앙지 17면에 게재된 주장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교수는 예수가 인도 등지에서 불교 승려 노릇을 하여 그 이름도 이사(Issa)라 하여 우리나라 원효대사와 같은 고승이었다고 하였으나, 필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예수가 불교 수행을 하여 고승으로까지 되었다면 어찌하여 불교를 버리고 기독교 교주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예수는 그냥 불교를 참고로만 배웠지 그 깊이에까지 들지 않았으며, 그것을 도리어 이용하여 신의 종교를 펼쳤을 뿐이라고-.
이러한 본인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1987년 2월에 번역 간행된 서양인의 저서에 니콜라스 노토비치(Nicholas Notovitch)라는 사람이 인도를 여행하다가 발견했다는 문제의 이사전(Issa傳)에 예수가 6년에 걸친 불경 연구를 말한 것은 있어도 승려노릇을 했다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고, 그것을 시사할 만한 구절도 없음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예수가 진정 승려 노릇을 했다면 머리를 깎고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으며 또 승려복을 입었다는 확증도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예수가 귀국 도중 페르샤에서 옛날 자기가 탄생할 시 찾아왔다는 동방박사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동방박사라는 사람들은 마기승(Magi僧) 즉 조로아스터(Zoroaster) 교도들로서 예수는 이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불교보다 그쪽에 더 기울어진 것 같다는 설이 있고 보면, 이것은 완전히 불교 공부라 하는 것도 견문을 넓히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알게 하고, 동시에 불교 진리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함도 알게 한다. 또 예수는 불경 공부를 한 후에도 계속 자기 고국에서 지녔던 창조주 신을 주장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불교인이 되지 못했음을 입증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예수는 불교 승려들이 환대해 주는 대로 처사(處士)처럼 눌러있으면서 불교 연구를 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는 고승은커녕 전혀 승려노릇을 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불교에 와서 배워간 것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오늘날 타교인이 불교를 배워서 그들의 종교를 위해 써먹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러하다면 불교 측으로 보아서는 별로 달가울 것도 반가울 것도 없는 셈이 된다. 오히려 불교를 배반하고 불교와 상치되는 교를 창안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상 예수가 승려였다는 문제를 놓고 고찰해 보았으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는 인도와 티베트에 다니면서 학식과 인격을 도야하였기에 그리스도 노릇도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어째서 감추고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나, 그 까닭은 예수가 신의 독생자로 자처 또는 만들어지고, 그리스도까지 높여짐에 따라 신의 아들이 어찌 사람들에게 배웠다고 할 수 있겠느냐, 뿐만 아니라, 불교라는 타교에 가서 배워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위신상 있을 수도 밝힐 수도 없다 하여 극비에 붙여진 것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이라면 기독교계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밀은 언젠가 폭로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토마스 복음서」나「이사전」의 노출이 바로 그런 것이요, 앞으로 이것이 더 밝혀져서 기독교는 성경의 재편성, 교리의 재조정이 불가피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이 약간 시도되고 있는 듯도 하다. 그것은 소위 1985년 9월에 번역 발행된 이른바 성약성서(成約成書)라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예수가 인도 티베트 등지를 다녀간 것이 수록되었으나 배워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르치고 다닌 성자로 우상화되어 있음이 다르다. 그러나 이 책이 서문에 보니 서양 등 기독교계에서 "사탄의 책"으로 몰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여러 저서들을 통하여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로마 교황청에 극비로 간직되어 있다는 63개 비밀 사본도 공개하고, 만천하에 정식으로 발표되어야 할 시기에 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댓글 자고로 거짓말이란 것은 소수의 사라들에게 짧은 기간은 통할런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긴 세월동안 아니 영원한 비밀이 지켜지는 경우는 없는 법이다. 제가 젊은 시절 제법 열심히 구약신약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리 되풀이해서 읽어도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꿰맞추기식 서술에 불과했다고 생각이 되는 반면 부처님 가르침은 아무리 머리가 아둔한 사람이 읽어도 세상에 이치와 합당치 않는 부분이 단 한 가지도 발견한 사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