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의 언어풍조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이즘은 시대가 변천하여 의(衣),식(食), 주(住)의 변화가 크게 일어난 건 물론, 일상의 언어생활도 많이 바뀌어 감을 느낀다. 요즘은 사람들이 입고 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옛날처럼 떨어진 옷을 기워 입지도 않고 넝마를 걸치고 다니지도 않는다. 허수아비도 헌옷은 사절한다.
먹고 사는 것도 형편 따라 다르긴 해도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사람은 없다. 집도 마찬가지다. 자가가 아닌 전세를 살더라도 다 허물어져간 초가집 문간방을 얻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향상된 환경과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간다.
한데 사람들이 구사하는 언어생활을 보면 이에 따르지 못한다. 살아가는데 여유가 없고 인정이 메말라 가서인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일부는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폭력성과 천박함이 드러난다. 예컨대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하는데 듣기에 저급하기 짝이 없다.
그 말에서 도무지 정감이나 정취를 느낄 수가 없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마뜩찮아서 얼굴이 찌푸려진다. 무얼 하든 돈만 벌고 돈만 많이 가지면 된다는 천박함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혀가 차진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듣기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고 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어디 그러했던가. 돈을 천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는 건 금기시 했다. 적어도 삶의 태도가 그러했다. 그런 풍습이 이제껏 남아 있는 것이 곡물거래 어법이다. 곡식을 내다 판매해도 에둘러서 팔았다고 하지 않고 ‘샀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전에는 인사말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비록 가난하게 살면서 입은 입성은 허술했어도 건네는 인사말을 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안녕하신가요.” “진지 드셨어요” “어서 쾌차하십이오”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무미건조한 언어습관은 비단 인사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에는 대화중에 흔히 듣던 직유법이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같이, ~인양, ~듯이, 등과 같은 말이 실종되어 버렸다. 이것들은 대체로 속담의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런 직유법이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
“ 그 사람 야무지기는 대추방망이 같아.”
“그 사람한테는 두꺼비낯짝에 물 끼얹기지”
“늙은 소 흥정하듯 세월아 네월아 하더라고.”
각각 야무진 사람과 잘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고 고집 부린 사람, 늘어 터져서 시간만 보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그런 말맛 나고 정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다 사라진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많이 사용하던 반어법도 지금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얼씨구 잘 한다." (잘못을 책망할 때). "내일도 또 그리 해라 응"(빈정을 댈 때) 등이 실종 되어 버렸다.
언어생활의 표출은 일종의 문화의 축적이다. 어느 한때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수천년에 걸쳐, 좀 더 실감나고 의사표현을 보다 명료하게 하다 보니 속담이 된 것이다. 속담은 대부분 출처가 분명한 격언이나 명언과는 다르게, 서민대중이 자연발생적으로 생산해 낸 말로서, 그 안에는 해학이 있고 골계가 있으며 웃음이 있다.
간단한 말 속에 촌철살인의 뜻이 담겨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많이 무어따 아닌가”(경상도식 표현).“무엇이 중헌디”(충청도식 표현). “징하고도 징합네”(전라도식 표현).등이다.
한편, 속담 속에는 명언과 격언이 녹아든 것도 많다. “백문이 불여일견”은 한나라 조충국의 말이 속담으로 굳어졌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속담을 보면 우리나라가 농경문화 속에서 수천 년간을 지내와서인지 농사나 천기에 관련된 속담이 많이 발견된다. ‘이팝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 ‘벼 농사는 물 탐을 하면 망친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 마님도 나선다.’ ‘가을철에는 부지갱이도 한 몫 한다.’ ‘변덕부리기는 가을 날씨.’ ‘벼는 농부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 ‘가을들판이 어설픈 친정집보다 낫다.’이는 날씨가 순조로워야 하며 논의 물은 댈 때와 뺄 때를 아는 것은 물론, 가을철은 늘 바쁘고 날씨 변덕이 심하며 들판은 늘 풍성함을 이른다.
‘밥은 봄같이 먹고, 국은 여름같이 먹고, 장은 가을같이 먹고, 술은 겨울같이 먹으렷다’라는 속담은 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장은 서늘하게, 술을 차게 먹으라는 지혜를 전해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속담은 인정세태를 꼬집는 말에서 묘미와 빛이 난다.
그중에서는 특별히 말조심을 시키는 속담에 눈길이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게 발도 동여 매 듯이 말도 동여매고 해라.‘ ’지켜야 할 비밀은 관 뚜껑 덮을 때 까지 가져가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 입을 삐뚤어져도 말을 바로 하라.’ ‘말이 씨가 된다.’ ‘웃자고 한말이 살인낸다.’ ‘자랑 끝에 불붙는다.’ ‘아야 다르고 어야 다르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 갚는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등이 있다. 모두 한번쯤 새겨들을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나타내는 속담은 대화를 나누는데 풍부함을 준다.
‘도둑놈 개 꾸짖듯.’ ‘벙어리 발등 앓은 소리.’ ‘ 업은 애기 3년 찾는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사나운 개 코 아물 날 없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서푼 어치 밥 얻어먹고 치사가 백번이라.‘ ’가파치 내일 모레.‘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
‘ 부처님 가운데 토막.‘ ’물장수 10년에 엉덩이짓만 남았다.‘ ’활 시울 당겨 콧물 닦기. ‘ '분다 분다하니까 죽재 서 말을 분다.' '성안에서 빰 맞고 산 모퉁이서 입 삐죽거린다.' ’80에 죽어도 구들티에 죽었다한다.‘ ’옆집 떡치는 소리에 김칫국 마신다.‘ ‘장님도 눈 멀었다고 하면 성을 낸다.’ ‘상가 집 뒷 술로 벗 사귄다.’ ‘가시나 못된 것이 과부 중매 선다.’‘고쟁이 열 벌을 입어도 보일 건 다 보인다. ’ ’'꼬부장 자지가 제 발등에 오줌 눈다.' ‘길 터진 밭에 마소 안 들어 갈까’ ‘열녀전 끼고 서방질 한다.’‘상추밭에 똥 싼 개 저 개 저 개한다.’ ‘남의 다리에 행전 친 격 .’ '썩은 나무에 돌쩌귀'등등
대화를 하는데 풍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속담을 곁들이면 각박해진 세상에서 다소 윤활유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을까. 이즘의 대화법이라는 것이 하도 무미건조하고 온통 물신주의에 찌들어 말끝마다 돈과 결부시키니 눈살이 찌푸려져서 하는 말이다. (2022)
첫댓글 살아가는 게 여유가 없고 인정이 메마르다 보니 자연히 말도 삭막해지지 않는가 싶습니다.
매스컴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대를 찢어놓으라느니 폭파시켜버리라느니 하는 파괴적인 언어,
대박인지 됫박인지 하는 저속한 단어가 횡행하고 무슨 아이돌이 어떻고 디바, 보컬이니
시니컬하고 클래식하다느니 하며외국어가 판을 치는 가운데 사람 데리고 놀자는 것도 아니고
웬 '우리말 겨루기'라며 같잖은 프로그램으로 병 주고 약 주는 세태를 보고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정말이지 풍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머와 해학이 깃든 말 맛 나는
언어생활이 이루어지도록 매스컴이나 정부부터 각성해야겠습니다.
삶의 여유와 함께 해학이 넘치고 말 맛 나는 다양한 속담을 소개해주시니 절로 흐믓해집니다.
요즘 사용하는 말들이 천박하고 품위없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다보니 모든것이, 돈돈하는 세상이 되어서 그러하지 않는가 합니다.
연어가 강퍅해지고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어졌습니다. 조금은 여유를 되찾아서 말한마디라도 정감있고 따스한 것을 느끼도록 해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월간문학 2022.5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