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여행] 한국최초 동정부부 초남이 성지.........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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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초남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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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유랑자가 완주군에 있는 초남이 성지를 찾았다. 농로길을 따라 굽이굽이 천길을 따라 달리다가 보니 어~ 눈에익은 강
변길, 그렇다 삼기정을 찬아 혜매던 길에 만났던 그길, 유랑자는 삼기정을 좌측으로 두고서 우회전 하여 좁을 다리를 건너 남계
리 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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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사도 유항검 생가터, 표지석 뒤로 정겨운 흙 돌담길을 따라 담장안에 몸을 숨기고 얼굴을 내민 행랑채와 야외강당이 보
인다. 이곳이 바로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 아우구스티노(柳恒儉, 1756-1801년)의 생가터가 자리한 곳이다. 완주군에
는 여러 종교와 관련된 유명한 성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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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종교들의 의미 있는 장소가 많은 탓에 전라북도 아름다운 순례길의 주축이 되는 곳이기
도 하다. 그중에서 천주교와 관련된 성지로 초남이 성지가 있다. 완주군의 서쪽에 있는 초남이 성지는 완주군의 동쪽에 있는 천
호성지, 되재성당과 더불어 완주군을 대표하는 천주교 성지다. 종교 역사의 현장을 가본다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각, 생활방식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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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익산, 김제, 완주로 진입하는 관문 같은 이곳은, 남계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에 있던 초남이 마을의 이름을 가져와
초남이 성지로 불리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99칸의 기와집을 가질 정도로 호남 제일의 부자였던 양반의 아들로 태어난 유항
검은 많은 재산과 후덕한 인품으로 인근의 백성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됐던 만큼 그는 과거 급제를 목표로 학업에 정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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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철 요한(柳重哲, 1779-1801년)은 이순이 루갈다(李順伊, 1782-1802년)와 평생 동정부부로 살겠다는 혼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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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중 천주교의 교리를 접하고, 조선 최초의 영세를 받은 이승훈을 만나 세례를 받고 호남에 천주교를 전파하고자 많은 노
력을 기울이다 신유박해(1801년) 때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집이 있던 자리가 초남이 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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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이곳 초남이에서 아버지 유동근과 어머니 안동 권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진산 사건으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
자가 된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년)와 함께 전라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거의 절대적인 공헌을 한 초창기 조선
천주교회의 핵심적 인물이었다. 또 그의 아들 유중철 요한(柳重哲, 1779-1801년)은 이순이 루갈다(李順伊, 1782-1802년)와 평
생 동정부부로 살았던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당시 1797년에는 초남리에서 전대미문의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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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요한과 이 누갈다가 '평생을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키겠다'는 동정 서원을 하면서 혼례를 올린 것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동정 부부였다.이들 동정부부는 1797년 혼인 후 1801년과 1802년에 신유박해로 치명할 때까지 4년여
간 이곳에서 동정생활을 했다. 1784년 늦은 가을 유항검은 양근의 권철신 집을 찾아가 그 집에서 천주교 서적과 천주상 등을
목격하고 권철신의 아우인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 교리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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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교리의 오묘한 진리를 들어 받아들인 그는 마침내 권일신을 대부로 하여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고향으로 내려와 암암리에 전교 활동에 힘쓰던 그는 1786년 봄, 조선 천주교회의 창설 주역이자 가성직 제도를 설정한 이승훈
에 의해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홍낙민 루카, 최창현 요한, 이존창 루도비코 등과 함께 신부로 임명되어 전라도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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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외국인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周文謨, 1752-1801년) 신부가 유항검의 초청으로 전라도
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주문모 신부는 1795년 그의 집에 머물며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하는 한편 유항
검과 함께 여러 가지 교리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이 때 그의 아들 유중철은 첫영성체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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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전라도 지역에는 신자들의 이주로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생겨났으며, 이후 10년 동안 고산, 전주, 무장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복음이 확대되고 있었다. 1801년 신유박해의 회오리는 이곳 초남이에도 거세게 불어 닥쳤다. ‘사학의 괴수’로 낙인찍힌
유항검은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먼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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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신부의 입국을 도와 내통했고 사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청원서를 냈다는 죄목으로 대역부도(大逆不道)의
죄를 적용해 머리를 자르고 사지를 자르는 능지처참(陵遲處斬)형을 언도받았다. 그리하여 다시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그는 그
해 10월 24일(음력 9월 17일) 남문 밖에서 참수되는데 이 때 그의 나이 4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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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인 신희, 큰아들 유중철, 며느리 이순이, 둘째 아들 유문석 요한(柳文碩, 1784-1801년), 동생 유관검 등 그의 일가친척
들이 거의 다 처형되고 나이 어린 세 자녀는 유배되는 등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이들의 시신은 노복과 친지들이 거
두어 백사발에 각각 이름을 적어 넣고 고향인 초남이 땅에 묻지 못하고 들 건너 김제군 재남리(현,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 바우
백이에 가매장했다. 이 신유박해로 인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반석이 무너지면서 전라도의 신앙 공동체도 와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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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남이 성지가 개발된 것은 1985년 전주교구 설정 50주년(1987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유항검 생가터인 ‘파가저
택’(破家瀦宅, 국사범에게 내려지는 죄목으로 집은 불사르고 집터는 웅덩이로 만들어 3대를 멸하는 조선왕조 500년사에 가장
큰 형벌로 누구도 다시는 그 터에서 살지 못하도록 흔적을 없애는 것)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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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는 유항검과 사돈 간인 이우집의 문초 기록과 지역 토착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파가저택지와 유항검의 생가터에서
약 400여m 떨어져 있는 교리당터도 확인했다. 또한 재남리 뒷산으로 추정해 온 가매장터가 초남이 성지에서 서쪽으로 600여
미터 거리에 위치한 밭터임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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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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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당터의 정지샴(샘물)과 종탑.전주교구는 유항검 생가터를 호남 천주교의 발상지로 인정하여 1987년 성지로 축복한 후 성
역화 작업이 진행하였다. 유항검 생가터는 또한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부부가 4년여 동안 동정생활을 해온 곳이며, 전라도 지역
에서 최초로 운영되었던 인근의 교리당터는 주문모 신부가 호남에서 처음으로 미사와 성사를 집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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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23일 생가터에 피정의 집과 새 제단 및 각종 성인상을 마련하여 축복식을 가졌고, 2002년 6월 23일 교리당터에 종
탑과 한옥 형태의 교리당(유항검 사랑채), 당시 사용했던 샘물인 ‘정지샴’을 복원하여 축복식을 거행했다. 2005년 5월 28일 사
랑채 옆 교리당 부지에 30여 평 규모로 주문모 신부 미사 봉헌 기념경당을 일자형 한옥 형태로 건립하여 봉헌했다. 경당 안에
는 미사를 봉헌하는 주문모 신부와 유항검과 신자들의 모습을 인형으로 제작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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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3일에는 파가저택지 한편에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부부가 4년간 살았던 행랑채를 복원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3
칸짜리 한옥으로 지어진 행랑채는 유항검이 왕손을 며느리로 맞으며 황송한 마음에 따로 별채를 지어 아들 내외가 살 수 있도
록 배려했던 곳으로 현재 성체조배실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호남의 사도와 동정부부의 시복을 준비하며 생가터에 경당을 마련하고, 교리당터 입구 조경공사 등을 통해 한층 아름다운
성지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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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사도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아들 유중철 요한과 유문석 요한,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조카 유중성 마태오(柳重
誠, 1784?-1802년)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모두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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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초남이 성지는 시끌벅적하게 방문하는 여행지라기보다는 침묵에 잠겨서 묵상하듯이 걷는 발길이 어울린다. 순례길은 멋
진 풍광 대신에 천주교의 씨앗이 이 땅에 떨어져 발아하던 때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조용하면서 차분한 방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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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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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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